돈과 재능이 쏟아져 236화
153. 천부적인 재능(2)
류성과 마찬가지로 흥분을 애써 억누른 교수가 한 가지를 부탁했다.
“이번엔 나도 아는 노래를 들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네, 가능해요.”
“좋아, 들어보자고.”
“……시작할게요.”
이어지는 첼로 연주.
어, 이건?
류성도 알고 있는 곡이었다.
바흐의 프렐류드 1번.
가만히 눈을 감고 첼로의 중후하면서도 입체감 있는 음색을 즐겼다.
곡 자체는 사실 쉬웠다. 하지만 쉬운 곡을 이상적으로 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어려운 일을 정예슬은 참으로 쉽게 해냈다. 곡 자체를 생동감 있게 살려내면서 말이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현을 내려놓는 순간 교수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정예슬 양?”
“네.”
“답가로 나도 곡을 하나 들려주고 싶은데.”
“좋아요.”
갑자기 서강욱 교수가 첼로를 켰다.
그만의 답가였다.
평생을 음악에 바친 덕분인지 확실히 소리가 남달랐다. 뛰어난 재능에 멈추지 않았을 노력까지 더해지며 그만의 영역을 구축한 까닭이었다. 강렬한 염원을 외치는 듯한 음악이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엄마, 아빠가 허락하시면요.”
부드럽게 웃은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부모님을 바라봤다.
“두 분, 지금 대화가 이해가 안 되죠?”
“아, 네.”
“답가로 제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내게 제대로 배워보지 않겠냐고요. 그랬더니 두 분이 허락하면 된다고 하는군요.”
“아……? 그, 그 말씀은…….”
“네.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키워보고 싶군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참고로 비용 일부는 대학교에서 부담할 겁니다.”
기다리고 있던 류성이 한마디 거들었다.
“나머지 부분은 RS재단에서 지원해 드리죠.”
그 말에 정예슬의 부모님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 재능을 가진 첼리스트라면 지원은 당연한 일이었다. 슬쩍 정예슬을 쳐다봤는데 역시나 덤덤한 표정이었다.
아니, 입꼬리가 올라간 건가?
나름대로 충분히 좋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라면.
언젠가 세계를 경악시킬 거라고.
* * *
잠깐 하락하던 반도체가 다시 솟구쳤다.
성삼전자의 기세가 매서웠다.
덕분에 해당 종목 토론방이 치열한 의견 대립으로 팽팽하게 맞서 싸웠다.
제목 : 역시 성삼전자^^ 믿음의 주식!
제목 : 이번엔 꼭 10만원 찍기를!
제목 : 일단 8만 원부터 깨트리자고요ㅎㅎ
제목 : 쌀 때 많이 사놓길 잘했네요
제목 : 이제 그냥 존버갑니다
제목 : 전 여전히 적립식 매수ㅎㅎ
장투하는 이들은 존버를 외쳤고.
제목 : 벌써 7만 후반대라고?ㅋㅋ
제목 : 너무 비싸요ㅎㅎ
제목 : 솔직히 지금 가격도 비싼데. 8만원은 무슨ㅋㅋ
제목 : 응, 어차피 마감할 땐 마이너스!
제목 : 다음 달 다시 6만 원대로 복귀할 겁니다ㅋㅋ
제목 : 전 5만 원에서 입 벌리고 있겠음
타이밍을 놓쳐 매수하지 못한 이들은 하락을 외쳐댔다. 물론 그렇게 싸우는 두 세력도 한 가지는 인정했다.
제목 : 차라리 RS ETF를 사놓을 걸ㅠ
제목 : 쩝... 아쉽구만요ㅎㅎ
제목 : 이제라도 사야죠!
제목 : 전 애초에 정보꾼님 따라 미국 주식을 사놓은 터라ㅋㅋ
제목 : 국내 주식이야 부수입일 뿐!
제목 : 진짜 돈 벌려면 미국이죠, 미국!
제목 : ㅋㅋㅋㅋ
제목 : 난 RS ETF 들고 있는데ㅎㅎ
제목 : 수익률 장난 아님ㅋㅋ
제목 : 수익 자랑합니다!
그 정도로 현재 미국 증시는 물론 국내 증시도 상황이 좋았다. 흔들린다 싶어도 금방 복구되었고 어느새 보면 전고점을 탈환하고 있었다.
1년가량 억눌려 있던 힘이 제대로 폭발한 것이었다.
제목 : 와, 오늘도 상승이네ㅠ
제목 : 왜 이래, 정말?
제목 : 크흐, 가자, 더 가즈아아아아!
제목 : 아니, 못 탔는데ㅠ
제목 : 운전기사님, 저도! 저도 좀 태워줘요!
제목 : 멈춰어어어어!
하루하루 시간이 쌓여갔다.
계속되는 상승세.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제목 : 미친, 8만 원이라니...!
제목 : 이 가격이 다시 왔구나
제목 : 고지가 멀지 않았다!!!!
어느새 성삼전자가 8만 원을 돌파했다.
그제야 기사가 뒤늦게 쏟아졌다.
[반도체 슈퍼싸이클, 돌아왔나?]
[반도체 기업들 연일 상승세!]
[멈추지 않는 기세, 성삼전자 8만 원 돌파!]
[국내 증시 호조]
[반도체 어디까지 상승하나?]
[투자 전문가들 너무 가파른 상승세에 염려를 표해]
[반도체 투자는 신중하게…….]
[RS ETF, 반도체 기업 대거 매수한 걸로 알려져]
[반도체 싸이클, 신중하게 결정해야!]
그러나 아직 반도체에 관한 의구심은 조금 보였다. 다들 슈퍼싸이클이 온다고는 하지만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잠깐 멈칫할 때, 시장은 이미 무섭게 솟구칠 뿐이었다.
[미국 나스닥 쉴 새 없는 상승!]
[파월, 금리 인하 단행!]
[S&P지수, 나스닥 지수, 다우 지수 전부 3퍼센트 상승!]
[최고점을 향해 나아가는 미국 증시!]
[불붙은 미증시, 어디까지 올라가나?]
[나스닥 종합지수 15,177포인트로 마무리]
[미국 반도체 기업 줄줄이 상승세]
[반도체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찾아온 여유로움.
류성은 정말 오랜만에 평일 오전 생방송을 틀었다.
“반갑습니다.”
최근 밤에만 방송했었으니 시청자들에게는 정말 의외의 시간대일 터였다.
알탕 : 허얼? 이 시간에요? 오오!
커뮤니티 : 바쁘실 텐데, 크으ㅠㅠ 좋아요!
클립 : 와, 뭐예요?ㅋㅋ
류성이 미소를 머금었다.
“네, 요즘 정말 바빴는데요. 그래도 조금 시간이 나기도 했고 국내 증시에 관해서 말씀드릴 것도 있고 해서요. 오랜만에 국내 증시 보면서 수다나 떨어볼까 하고 와봤습니다. 반가우시죠?”
채팅이 우수수 올라왔다.
어느새 5천 명이 넘어선 이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반도체갓 : 쏴리질러어어어!
물날라 : 끼효오오옷!
짝발 : 너무 좋지요ㅋㅋㅋ
번영 : 수다 최고ㅋㅋ
돈벌자고 : 국내 증시 궁금!
임티걸 : 반도체 더 오를까요?
대곰탕 : 방가방가ㅋㅋ
그들의 열렬한 채팅에 괜히 흡족해졌다.
“요즘 제가 국내장에선 반도체 기업 위주로 매수하는 건 아실 거예요. 근데 이게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가 문제인 거죠. 시간이 날 때마다 게시판이나 여러 투자 관련된 사이트를 훑어보는데요. 이미 너무 올랐다는 말이 많더라고요. 물론 맞습니다. 성삼전자는 지금 8만 원이 넘어버렸죠?”
해당 기업의 차트를 띄웠다.
“지금이 오전 10시거든요? 오늘도 상승하고 있네요. 벌써 83,700원입니다. 확실히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해요. 근데 1월에도 말했지만 반도체 슈퍼싸이클이 온다고 했었죠? 제대로 오면 최고점 뚫고 더 올라가리라 보거든요.”
류성의 말에 난리가 났다.
어느새 1만이 넘어간 시청자들이 물음표와 느낌표로 도배를 했다.
알탕 : ?!?!??!
길길이 : 최고점이요??????
지상 : 에에엑!? 9만 7천 원을 넘는다고요?
반도체갓 : 형님, 실홥니까?
인기 : 와, 정보꾼님이니 그래도 이 정도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욕 많이 먹었을걸요ㅋㅋㅋ
히죽 : 설마요...!
스웨터 : 믿을 수가 없는데, 믿어야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니!
반응이 꽤 재밌었다.
더 놀라게 해볼까.
“전 올해 2분기에 10만 원은 넘을 거라고 봅니다. 뭐, 그 이상 얼마나 올라갈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일단 거기까지는 가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명확한 가격 언급에 다들 멍해졌다.
정신가출 : 헐, 10만이요???
밤새고 : 찐입니까?ㅋㅋㅋ
정보좀줘 : 10만, 10만이라니...!
불나방 : 와, 정보꾼님 말 아니면 진짜 흘려들었을 텐데
돈복사해줘요 : 믿음 만빵인데 성삼전자 10만은...ㅠㅠ
얼음물 : 가능하려나요, 그게...?!
빵빵 : ㅠㅠ엄청 큰 금액 물려 있는데 진짜 정보꾼님 말대로만 되면 소원이 없겠어요...!
“저는 그렇게 보고 있어서 최대한 열심히 매수를 해왔고요. 현재 RS ETF 자금 대부분을 사용한 상태입니다. 물론 못 믿는 분도 많으시겠죠? 그래서 기사 몇 개 준비했는데요. 심심풀이로 혼자 공부하다가 괜찮은 내용이 보여서 가져온 거니까 같이 보자고요.”
준비해온 반도체 기사를 읽으며 시청자와 소통했다.
“현재 반도체 칩 가격 상승세가…….”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벌써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잘 보셨나요? 참고만 하시고요. 계속되는 증시 상승세 우리 다 같이 즐겁게 누려보자고요. 오늘 해야 할 이야기는 전부 한 거 같네요. 배고 고프고 하니 슬슬 종료해야겠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서 생방송을 종료했다.
* * *
점점 많은 사람이 RS재단의 문을 두드렸다.
<지원 접수서>
하루에도 수십 개가 넘는 지원서류가 접수되었다.
덕분에 외부 현장 팀원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그들은 서류를 접수한 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상황을 파악했고 주변을 조사했다. 거짓이 없다면 지원이 통과되었지만 거짓이 섞여 있다면 탈락이었다.
“아쉽게도 탈락했습니다.”
-아니, 왜……?
“조사해 보니 사실과 달랐습니다. 다음에 다시…….”
-그런 게, 그런 게 어딨어요! 내가 힘들다는데! 거짓말 좀 했다고 힘든 게 안 힘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방침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난 힘들다고요! 거기라면 도와준다고 하더니! 그렇게 큰 곳이 이렇게 거짓말해도 되는 건가요? 분명 도움이 되어줄 거라더니! 이런 식이면 나 그냥 못 넘어가요!)
듣고 있던 직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통화 녹음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신청하게 되면 해당 녹음본이 참고자료가 될 겁니다.”
-아, 아니, 그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더군요. 착각하지 마세요. RS재단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자의적으로 나서서,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는 겁니다. 그쪽이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대고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손을 내밀어주는 곳이 아닙니다.”
-그, 그거야…….
“알아보니 돈만 생기면 도박에 탕진하고 있던데, 남은 인생이라도 편히 살려면 도박부터 끊으세요. 한 번만 더 억지 부리면 저도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죠. RS재단 방침이 악질적인 사람은 처음부터 제대로 끊어내 버리는 거라서요. 어떻게 할까요?”
-……죄송합니다.
“선의에 그렇게 대응하는 거 아닙니다.”
-저, 저도 모르게 그만…….
“일단 도박부터 끊으시고 다시 신청해 보세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다음 목적지를 확인했다.
30분은 걸리겠네.
가끔 이런 황당한 일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좋게 마무리되는 편이었다. 그래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거고 또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거였다.
“흐, 솔직히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는데.”
사실 처음에는 이런 업무가 적성에 안 맞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렇게 마음이 먹먹할 수가 없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자그마한 손길 하나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고는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영혼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보람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쉴 수가 없었다.
아니, 쉬고 싶지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체크해야지.”
당장 죽지 못해 살아가는 누군가가 간절히 도움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저벅.
그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RS재단 외부 현장팀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