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39화
155. 세 번째 공모전(1)
류성은 조심스레 그녀를 불렀다.
“실례합니다.”
“저요?”
“네. 여기 제 명함입니다.”
명함을 받은 그녀가 류성을 쳐다봤다. 이미 그를 알고 있었던 건지 RS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보고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 감사합니다. 근데 명함은 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보니까 일 처리가 꼼꼼해 보여서요. 재단에서 일하면 딱 좋을 거 같은데 혹시 하시는 일 있으신가요?”
“어, 아뇨. 아직은요.”
“좋네요.”
“근데 지금은 학생이라서요.”
“아, 괜찮습니다. 나중에라도 관심이 생기면 꼭 연락해 주셨으면 해서요.”
“아, 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차라리 이게 나을 거 같았다.
단순한 직원은 아깝지.
조금 더 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시간은 충분했으니 천천히 자리를 만들어놓으면 될 터였다.
연락이 안 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충분히 설득할 자신도 있었고 말이다.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하고서 면접을 마무리했다.
“올, 뭐냐?”
“응?”
“아르바이트생한테 관심 있냐?”
“뭔 헛소리야.”
“그럼 뭔데? 흐흐.”
“아, 그냥 같이 일하면 좋을 거 같아서.”
“그게 관심이지. 뭐, 예쁘긴 하네.”
“아니, 거참.”
잠재력이 보인다고 설명할 수도 없고.
꽤 난감했다.
그럴수록 이신우는 재밌다는 듯 더욱 놀려댔다. 하지만 언제나 먹히는 진리의 한 마디가 존재했다.
“확 그냥, 투자금 빼버린다.”
“죄송합니다, 투자자님!”
“잘해라.”
“옙!”
간신히 투자금으로 협박을 하고서야 장난을 멈출 수 있었다.
뭔가 부끄럽구만.
괜히 귓불이 붉어진 류성이 걸음을 서둘렀다.
“빨리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오케이, 내가 산다!”
“비싼 거로 먹는다.”
“흐흐, 좋지!”
류성은 정말로 꽤 비싼 식당으로 이신우를 끌고 갔다.
“횟집이네?”
“어, 여기가 퀄리티가 좋더라고.”
“뭐 먹으려고?”
“대방어나 먹자.”
“어어? 너무 비싼 거 아니냐.”
“어허, 프랜차이즈를 20개나 운영할 사람이 왜 이러실까.”
“크흠. 그런가?”
“그럼, 그럼.”
“오케이! 오랜만에 끝내주는 거 한번 먹어보자!”
참 단순한 녀석이라니까.
“여기 대방어 세트 하나요.”
“네!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음식이 빠르게 차려졌다.
“오, 밑반찬 좋은데?”
류성은 미소를 감추지 않은 채 상을 빼곡하게 채운 음식들을 하나씩 맛봤다. 대방어 세트 55만 원짜리를 주문한 까닭에 사이드 메뉴도 퀄리티가 좋았다.
조금 먹고 있으니 대방의 메인요리, 대방어가 등장했다.
“와우……!”
때깔이 정말 예술이었다.
“근데 너무 많지 않나?”
“남는 건 신선하게 포장해서 들고 가면 돼.”
“맞네.”
“반씩 포장해서 가자.”
“좋지. 마누라가 좋아하겠는데? 애들이랑도 같이 먹어야겠다.”
“난 가족들이랑.”
그렇게 마음 놓고 대방어를 즐기기 시작했다. 류성은 먼저 큼직한 회를 한 점 들어 고추냉이가 풀어진 간장에 살짝 찍어 먹었다.
“으음……!”
참치와 연어 사이의 맛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 쫄깃하면서도 찰진 식감에 넘치는 감칠맛까지. 그야말로 완벽했다.
“끝내주는데?”
“크흐으으!”
이번에는 쌈을 싸서 먹어보기로 했다.
깻잎 위에 김을 올렸다.
그 위에 대방어 한 점과 마늘, 고추, 된장, 그리고 백김치를 조화롭게 얹었다.
고이 접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니 입안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크으.”
두 사람은 말없이 대방어를 흡입했다.
* * *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서 이신우와 함께 한국극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며칠 전에 개봉한 영화 티켓을 예매했다.
“재밌으려나?”
“당연하지.”
류성에게는 이것도 업무였다.
이신우에겐 휴식이겠지만.
“자신만만한데?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뽑힌 마지막 영화라서 그런가.”
“잘 아는데?”
“솔직히 RS엔터에서 나오는 영화는 다 재밌더라고. 전부 챙겨봤거든.”
“오, 역시 마이 프렌드.”
잡담을 나누며 상영관에 들어갔다.
관객이 꽤 많았다.
앉아서 기다리자 광고가 나오더니 영화가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되었다.
고요한 가운데 팝콘이나 음료를 먹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관객 전부가 영상에 빠져 버린 까닭이었다.
“후아.”
영화가 끝나고서야 긴장이 턱하고 풀렸다.
“재밌었지?”
“어, 대박.”
이신우가 엄지를 턱 하니 치켜들었다. 류성은 흡족한 가운데 다른 관객들의 반응도 살폈다.
“아오, 팝콘도 제대로 못 먹었네.”
“재밌었단 거지, 그 정도로.”
“인정. 뭔가 최근 RS엔터에서 나온 영화는 하나같이 재밌단 말이지.”
“시나리오 좋고. 투자금도 클 테니까.”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우리도 그러면 좋은 일에 작게나마 보탠 건가?”
“당연하지.”
“흐흐, 좋네, 좋아.”
관객의 반응이 좋았다.
이번 영화도 흥행에 성공할 모양이었다.
깔끔하네.
훌륭한 마무리였다.
“커피나 한잔하자.”
“좋지.”
류성은 한국극장을 나와 근처 카페에 들렀다. 이신우와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1시 40분이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어, 잘 가라.”
이제 업무에 복귀할 시간이었다. RS재단 사무실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인사를 해왔다.
“이사장님, 오셨어요?”
“네. 다들 점심은 맛있게 드셨고요?”
“그럼요.”
“좋네요. 그럼 슬슬 회의 시작할까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오후 2시에 맞춰 회의가 진행되었다.
오늘의 주제는 하나였다.
바로 제3회차 공모전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는 자리였다. 몇 개의 후보지를 두고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게임 공모전을 추천하는 이유는요?”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이 규모도 큰 만큼, 어느 정도 자금을 활용해 게임을 제작하게 되면 수익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제작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요.”
최대한 그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었다. 당장 해당 공모전을 개최하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훗날 차례대로 진행할 생각이었으니까.
“음, 저는 건축 공모전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시나 대중적인 음악 공모전을 개최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치열한 의견의 대립이었다.
전부 일리가 있었다.
사실 어떤 공모전을 개최하더라도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 더 외면받는 시장에 힘을 쏟아보고 싶었다.
“음악은 미루죠.”
“알겠습니다.”
음악이야 워낙 대중적이니 조금 뒤로 미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 RS재단의 규모로는 게임 공모전이나 건축 공모전으로 무언가 만들어나가기엔 버겁다고 생각합니다. 모바일 게임도 사실 수백억씩 투자해야 하는 예도 있으니까요. 심지어 건축은…… 말 안 해도 될 거라고 봅니다. 물론 언젠가는 해당 공모전을 열 생각이긴 합니다만. 당장은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결국 남은 건 하나였다.
“서예 공모전 하나가 남았군요.”
“네.”
“나쁘지 않습니다. 조금 더 현대적이면 좋겠는데…….”
순간 하나가 떠올랐다.
“그래요, 기왕이면 서예 공모전보다는 캘리그라피 공모전으로 바꿔 진행해보죠. 사실 비슷한 의미지만 요즘 같은 블로그 시대에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사람이 정말 많으니까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거 같네요.”
“아, 캘리그라피……!”
“현대적이면서도 붓글씨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최송이가 의견을 더했다.
“거기에 주제를 추가하면 어떨까요?”
“주제라면, 어떤 거죠?”
“캘리그라피가 예쁘고 멋진 글씨잖아요. 뭘 써야 할지 주제를 정하는 거죠. RS재단과 어울리는 것으로요. 예를 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문구라던가. 사회 약자를 위한 글자도 좋을 거 같습니다.”
“오호. 괜찮군요.”
류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야기가 빠르게 진전되었다.
“이사장님!”
“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많은 이야기가 존재할 거 같은데 그 부분을 가장 큰 주제로 두면 좋을 거 같습니다!”
“괜찮네요.”
“자연과 사람,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에 관한 주제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지구에 메시지를 주는 건 어떨까요? 그럼 환경 문제라던가 다양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괜찮군요.”
다양하면서도 좋은 의견이 쏟아졌다.
“좋습니다, 전부 좋아요. 나온 이야기부터 제대로 정리해 보죠. 다음 주까지 보고서를 작성해주셨으면 합니다. 제일 처음 주제를 언급한 최송이 대리?”
“네, 이사장님!”
“책임지고 보고서로 작성해서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RS재단의 제3회 공모전은 캘리그라피로 결정되었다.
* * *
시간을 내서 평택 서정리역에 들렀다.
“이야, 좋네.”
고덕 수변공원을 타고 흐르는 도심지가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아래에 엄청난 규모의 반도체 공장이 존재한다. 엄청난 일자리가 이곳 평택에 존재하는 것이다.
“뭐, 어느 정도는 자동화가 진행되겠지만.”
그래도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 자체가 최고의 호재였다.
도시도 깔끔하고.
적당한 규모의 건물 하나 사들이는 건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현지답사를 위해 천천히 평택 고덕동을 돌아다녔다.
“깔끔하네.”
거리는 깨끗했고 건물은 큼직했다.
도로도 넓었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정보권에도 시세가 많이 오른다고 나와 있었으니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바로 근처에 있는 공인중개사에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뭐 필요하신 거라도?”
“음, 건물 좀 보려고 하는데요.”
“건물이요? 아, 장사라도 하시려고요? 월세로요?”
“아뇨, 건물 한 채 매입하려고요.”
류성의 말에 부동산 업자의 표정이 변했다.
“큰손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적당한 물건 있을까요?”
“그럼요! 지금 부동산 시세가 바닥이라서 건물이 꽤 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한번 보러 가실까요?”
“그러시죠.”
중개업자와 함께 첫 번째 건물을 확인했다.
흔한 상가형 건물이었다.
“음, 이런 건물은 말고요.”
“그러면 어떤……?”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이면 좋겠는데요. 최신식이면 좋겠고 외관 디자인도 보는 편이라서요.”
“아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확인한 건물은 9층짜리 오피스텔형 상가건물이었다. 4층까지는 상가가 들어올 수 있었고 5층부터 9층까지는 사무실로 쓰기에 제격이었다. 게다가 건물 디자인 또한 세련미가 있었다.
“어떠신가요?”
“좋은데요?”
“아이고,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군요.”
“네. 상가도 전부 입점해 있는 상태고.”
“맞습니다. 사무실도 대부분 사용하고 있죠. 보증금 제외하면 건물 매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좋습니다. 매입하죠.”
“헙, 감사합니다! 그럼 시일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이번 주 내로 가능합니다.”
“그, 그러면 바로 건물 주인한테 연락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중개업자가 건물 주인과 통화를 했다.
“알겠습니다. 하하, 네.”
통화를 끊고서 그가 류성에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이번 주 가능한 시간에 최대한 맞추겠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후 가계약을 체결하고서 계약금을 지급했다.
“그럼 일정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사장님!”
가는 길에 동탄에 들러 괜찮은 건물 하나를 추가로 구매하기로 했다. 그렇게 총 두 개의 건물이 곧 손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크게 비싸지도 않았다.
이미 들어온 사람들이 있어서 보증금까지 제외하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합쳐서 100억도 안 들어가네.”
가벼운 쇼핑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