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42화
156. 류카월드(2)
이윽고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타악.
잔을 내려놓은 연성재가 멍하니 류성을 쳐다봤다.
“이, 이게…….”
“하하, 조금 놀라셨나요?”
“어, 음. 이게…… 뭐죠?”
“커피입니다. 맛있는 커피요.”
“허, 허허,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 잠시만요.”
연성재가 다시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극한에 이른 맛의 향연에 입술이 파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건 덤이었다.
“반응이 과하신데요.”
“후아, 제가 커피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오, 그러셨군요.”
“정말 커피 없이는 못 사는 몸인데 이건, 그냥 차원이 다른데요? 제가 평소에도 커피 한 잔에 10만 원까지는 쓸 수 있다고 자부하는 몸이거든요.”
“엄청난데요?”
“예전에 모 프로그램이 그런 문제가 나왔었어요. 세상에 유일하게 한 잔의 커피가 남은 상태인데 그 커피를 여러 사람이 노리고 있다고요. 가장 높은 가격을 쓴 사람에게 그 커피가 돌아가는데 얼마까지 쓸 수 있겠냐고요.”
“오호…….”
“그때 저는 속으로 1억까지 생각했다니까요.”
그 정도로 커피를 좋아한다는 의미이리라.
“근데 그게 만약 이 커피라면요. 저…… 거짓말 안 하고 전 재산 다 줄 수 있어요.”
“하하.”
“농담 아니라니까요.”
“알겠어요.”
“와, 진짜…… 대박이네요.”
연성재는 남은 커피를 바라보며 아쉬움에 혀를 찼다.
“아껴서 먹어야겠어요.”
“또 타드릴게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과하게 인사를 해오는 게 장난기도 다분했다.
아무튼 재밌는 사람이었다.
“그보다 왜 보자고 하셨는지.”
“아, 실은 말이죠. 제가 류카월드 채널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그렇죠.”
“거기에 꼭 이사장님을, 아니, 정보꾼 님을 초대하고 싶어서요.”
“저를요?”
“네. 방송에 같이 나가기도 했었고 그 당시 차트 보는 수준이 정말 엄청나셨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대신 그 이후 RS ETF를 출시하면서 단타 하는 모습도 거의 보여주질 않으셨으니 많이 아쉽다고나 할까요.”
“음, 그렇긴 했죠.”
“그래서 합동 방송으로 오랜만에 단타를 하면 재밌을 거 같아서요. 저는 옆에서 경제에 관한 이야기나 해당 기업에 관한 수다도 좀 떨고요. 차트 분석하는 것도 배워보면 참 좋을 거 같고요.”
“차트 분석이라…….”
그냥 보이는 걸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르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제가 가르치는 건 영…….”
“어휴, 그냥 보이는 그대로 설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옆에서 어떻게든 부가적으로 채워 넣을 테니까요. 이래 보여도 생방송 시청자 요즘 10만 명 정도까지 들어오는 추세라서 도움이 될 겁니다.”
“저야 감사하지만…….”
“오, 그럼 방송 같이하는 겁니다?”
연성재의 기대로 가득한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해보죠.”
“하하,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양손에 안긴 소중한 커피잔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커피를 음미하더니 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후아…….”
조금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괜찮겠지. 커피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참, 그리고 저도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네, 어떤……?”
“이런 걸 어디에 부탁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요. 류카월드 님이 예전에 증권사에서 일도 하셨으니까요. 혹시 음료 공장 매물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음료 공장 매물이요?”
“네. 괜찮은 곳으로요. 유통망도 있고 실력도 있고. 그냥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매출이 안 나오는 그런 곳? 휘청이고는 있지만 제가 매입해서 자금만 넣어주면 충분히 잘 나갈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공장으로요.”
“음…….”
잠깐 고민하던 연성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맥 동원하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거 같네요.”
“정말요?”
“네.”
“후, 이거 걱정이었는데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근데 공장은 왜 인수하려고요?”
“그냥 음료수나 만들어보려고요.”
“예……?”
“하하, 가벼운 취미생활입니다.”
마법의 물약과 차오르는 유리병을 활용한 건강 음료 사업을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
체력 강화 물약.
정신력 강화 물약.
노화 회복 물약.
피로 회복 물약.
치료제 하급.
이 5가지만 활용해도 엄청날 터였다.
물론 처음엔 소소하게.
체력 강화 물약부터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 * *
류카월드와 헤어진 후 외부를 돌아다녔다.
“오늘은 좀 바쁘겠네.”
서둘러 협업 병원으로 향했다.
부와아앙-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병실을 찾아 올라갔다.
“엇, 이사장님?”
“누워 계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요즘 정말 많이 좋아졌거든요.”
“어휴, 다행이네요.”
“이사장님 덕분이죠.”
류성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받아야 했을 대우였습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밖엔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정말로요.”
류성은 애써 밝게 웃었다.
“어휴,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좀 보여주시겠어요?”
“걷는 모습이요?”
“네.”
“물론이죠.”
20대 후반의 청년, 허승현이 웃으며 침대 옆에 놓인 로봇 의족을 부착했다.
“이 녀석이 정말 물건이더라고요. 무게도 가벼운데 걷는 건 이제 그냥 일반인이랑 다를 게 없어요. 게다가 부착만 하면 스마트폰이랑 연동이 되거든요. 바로 제 신체에 맞춰지죠.”
허승현이 일어나서 걸었다.
정말 편안해 보였다.
긴 바지를 입고 있었다면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뛸 수도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좋네요, 정말.”
“네. 덕분에…… 저도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어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 말,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그와 함께 가볍게 병원 근처를 산책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간의 재활로 온전히 적응한 모양이었다.
“진짜 괜찮아 보이는데요?”
“네. 이제 다리 하나 없는 건 문제도 아니죠.”
남은 문제는 오직 하나였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다른 문제는 RS재단에서 전부 치워드리죠. 당당하게 걸으세요.”
류성의 말에 허승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곤 이내 환하게 웃었다.
* * *
오랜만에 축구 천재, 정수현을 찾아가 봤다. 녀석의 실력은 이미 또래 아이를 압도했다. 심지어 프로가 되기 위해 모인 많은 아이 중에서도 유난히 도드라졌다.
“어때 보이나?”
“천재죠.”
그때 감독과 코치의 대화가 들려왔다.
수현이 얘기인가?
조심스럽게 이야기가 더 자세하게 들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정수현의 사진을 찍으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빛나는 재능인 건 확실하지.”
“감독님, 그래서 말입니다만.”
“그래, 뭔가?”
“이번에 한국 유소년 축구협회에서 U12, U15, U18까지 세 개의 대표팀을 만든다고 합니다.”
“아, 그 얘기는 들었네.”
“거기에 참여시켜보는 건 어떨까요?”
“수현이를 말인가?”
“네. U15 대표팀에서도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거 같은데요.”
“흐음…….”
사실 감독도 고민하던 중이긴 했다.
“너무 이른 건 아닐지.”
“축구를 배운 경력이 짧은 건 맞습니다만 그래서 더 좋다고 봅니다.”
“왜지?”
“거기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줘도 나쁠 게 없고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 실력에 조금은 좌절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걸 배우고 느낄 기회가 될 테니까요. 솔직히 여기서는 실력이 너무 압도적이지 않습니까.”
“자만할 수도 있다, 이거군.”
“맞습니다. 물론 그럴 성격은 아닌 거 같지만요.”
물론 모든 코치가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감독님, 저는 반대입니다.”
“이유는?”
“여기선 정말 잘하는 게 맞아요. 근데, U15 대표팀은 아직 무리라고 봅니다.”
“그런가?”
“네. 정말 크게 좌절한다면 오히려 실력이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습니다.”
우려하는 코치도 적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몰래 듣고 있던 류성의 눈이 빛났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RS 재단으로서는 당연히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물론 정수현이 정말 U15 대표팀에 뽑힌다면 그때는 보고가 올라오겠지만 말이다.
찰칵-
더 자세히 듣고 싶은 마음에 조금 티를 냈다.
“크흐, 역시. 우리 수현이!”
그러자 코치 몇 명이 류성을 쳐다봤다.
“어?”
그를 알아보곤 코치가 다가왔다.
“RS재단 이사장님 아니세요?”
“네, 맞습니다.”
“참, 수현이 후원해 주고 계시죠?”
“하하, 맞습니다.”
“크, 요즘 정말 수현이 얘기로 떠들썩해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이번에 한국 유소년 축구협회에서 U12, U15, U18까지 세 개의 대표팀을 만들기로 했거든요. 일본 유소년팀과 교류전을 치를 예정이라서요.”
“오호.”
“알잖아요, 한일전은 유소년 시합도 꽤 주목을 받거든요.”
“그렇죠. 한일전은 뭐.”
“그래서 수현이도 테스트 훈련에 참여를 시키느냐 마느냐, 말이 많은 상황입니다. 아직 배운 시기가 얼마 되지도 않고요. 물론 흡수력은 정말 대단하지만요. 정신적으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류성은 정수현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다.
[잠재력]
지구력(A+급) 노력(A+급) 끈기(A+급) 발재간(A급) 손재주(A급) 인내(A급) 스포츠지능(A-급)…….
[총평]
천재적인 스포츠 스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력, 끈기, 인내 등.
정신적인 측면으로 봐도 타고난 천재였다.
“근데 말이죠.”
“네, 이사장님.”
“가장 중요한 건 수현이의 의견 아니겠습니까. 자격이 있다면 직접 물어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코치가 눈을 끔뻑거렸다.
“아?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잠시만요. 얘기를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시죠.”
코치는 서둘러 감독에게 그 말을 전했다.
“음, 그렇군. 하긴 실력은 확실하니 테스트 훈련에 참여할 건지 아닌지는 당사자가 정하는 게 옳겠어. 수현이를 불러주게.”
“네, 감독님.”
코치가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의 부름에 정수현이 가볍게 달려갔다.
와중에 류성과 눈이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하는 녀석을 보니 괜히 뿌듯해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가보라는 의미로 손짓하자 정수현이 감독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수현아.”
“네, 감독님.”
“……이런 상황이란다. U15 대표팀 훈련에 참여해볼 생각이 있니?”
정수현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표정에도 힘이 넘쳤고.
녀석의 선택은 류성이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좌절할 수도 있어.”
“감당할게요.”
“허허…….”
정수현을 가만히 바라보던 감독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 거다. 괜찮겠어?”
“아무 문제 없어요.”
“그래. 그러면 한번 해보자.”
“고맙습니다, 감독님!”
이제 정수현은 U15 대표팀에서 테스트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류성도 궁금해졌다.
과연 그곳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