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43화
156. 류카월드(3)
기대 반,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정수현과 동행했다.
“같이 가주셔서 고맙습니다.”
“꽤 머니까.”
“그래도요. 코치님이 데려다줘도 된다고 하셨는데.”
“이런 건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 말에 정수현이 조금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운전에 집중하고 있던 류성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 거기 애들 진짜 실력 좋을 거야.”
“아, 그렇겠죠?”
“그럼. 전국에 있는 축구 클럽에서 실력 있는 애들만 테스트 훈련에 참여하는 거니까. 그렇다고 괜히 주눅 들지 말고.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 있는 그대로 전부 보여주면 돼.”
“네, 그럴게요.”
그제야 잠깐 고개를 돌리는 류성이었다.
“표정은 좋은데?”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요.”
“재미?”
“네. 축구 하는 거 자체가 신나고 재밌잖아요. 잘하는 친구들이랑 하면 배우는 것도 많을 거고요. 그래서 기대돼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될 놈이라니까.
류성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어릴 때는 그런 마음으로 뭔가를 배우더라. 즐거우니까, 재밌으니까. 근데 그 마음을 어른이 될 때까지 이어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어.”
“그래요?”
“응. 신기하지?”
“네.”
잠시 침묵하던 정수현이 물었다.
“근데 왜 그런 거예요?”
“글쎄. 때가 묻어서 그런 거려나.”
나이를 먹을수록 순수함은 사라지니까.
돈에 구애받지 않고서 오직 꿈과 목표를 향해서 달린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계속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아아…….”
“그런 사람들이 결국 끝까지 가더라.”
세상을 바꾸는 건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너도 재밌게 해봐.”
“네, 그럴게요. 전 축구가 세상에서 제일, 아니. 두 번째로 좋으니까요.”
“음? 첫 번째는?”
“당연히 우리 엄마죠.”
“오, 기특한데.”
흐뭇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사이에.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파주 NFC에 도착했다. 정확한 이름은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였다. 성인 프로축구 선수들도 훈련하는 곳으로 축구장이 여러 개 구비되어 있고 훈련 시설도 최상급인 곳이었다.
“이야, 시설이 어마어마하네.”
“우와……!”
차에서 내리자 센터의 위압감이 상당했다.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그런 압도감을 뿜어내는 건물이었다.
“멋지네. 들어가자.”
“아, 네!”
정수현은 신난 아이처럼 센터를 이리저리 살폈다.
“신기하지?”
“네, 엄청나게 커요.”
“듣기로는 U12, U15, U18, 그리고 프로 선수들도 와서 훈련한다고 하더라.”
“지, 진짜요?”
“어. 아마 볼 수 있을 거야. 물론 훈련하는 축구장은 다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지 정수현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하는 선수는 있고?”
“네!”
“누군데?”
“송훈민이요.”
“역시 보는 눈이 있구나.”
“헤헤.”
그사이 센터에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에게 신분을 확인받고서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함부로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보안이 철저했다.
이윽고.
감독실에 도착했다.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 이상으로 정정한 기운을 풍기는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류성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RS재단 이사장님이시라구요?”
“맞습니다.”
“평소에 정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래, 네가 정수현이구나.”
“네, 감독님. 안녕하세요.”
“오냐. 오늘까지는 자유시간이다. 훈련은 내일부터 시작이니까 쉬어도 좋고 구경을 해도 좋다. 내일 9시까지 5번 필드로 나오면 된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내일 아침에 방송으로 알려줄 테니 걱정하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기대하마. 장 코치, 안내 부탁드려요.”
“네, 감독님.”
코치가 직접 숙소까지 안내해 줬다.
“난 여기까지. 나머진 네 몫이야.”
“데려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 열심히 하고. 가끔 구경하러 올 테니까.”
“네, 재밌게 할게요.”
숙소로 들어가는 정수현을 확인하고서 몸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는 길에 필드로 향하는 입구가 보였다. 바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쉬워서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음? 생각보다 많은데?”
훈련하고 있는 선수가 상당히 많았다.
내일부터 시작일 텐데.
특히 5번 필드는 다른 필드보다 선수가 더 많았다.
U15가 사용할 공간.
나이가 어린 만큼 열정도 큰 모양이었다.
슬쩍 잠재력을 확인해봤다.
“어후.”
하나같이 축구 신동이나 다름이 없었다.
엄청나네, 정말.
재능도 있고 열정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미래의 꿈나무였다. 류성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한애라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부사장님.”
-아, 네.
“요즘 우리 예체능 유망주에 후원하고 있잖아요.”
-그렇죠.
“생각을 해보니 스포츠 후원은 조금 약한 거 같아서요.”
-어…… 맞네요. 아무래도 그림이나 음악 분야가 많은 편이긴 하군요.
“그래서 스포츠 분야에 후원을 늘리려고요.”
-좋은 생각이에요.
“제가 지금 체육관에 나와 있거든요. 훈련만 하는 중인데도 실력이 대단하다는 게 느껴져요. 근데 혹시 모르잖아요. 실력이 더 뛰어난 친구가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꿈을 포기하고 있을지도요.”
-그럴 수 있죠.
“그러니 세심한 조사 부탁드릴게요.”
-철저하게 확인할게요.
든든한 말에 류성은 웃음을 지었다.
그때 낯익은 이가 보였다.
“그럼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요.”
-알겠습니다.
서둘러 통화를 종료하고 모습을 드러낸 정수현을 쳐다봤다.
훈련할 모양이네.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던 정수현이 공 하나를 들고 필드에 진입하더니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몸 푸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3분 정도 지났을까.
또 다른 아이가 등장하면서 마침 숫자가 딱 22명이 되었다.
“잠깐만! 다들 보여볼래?”
그때 한 아이가 선수들을 모았다.
한자리에 모인 녀석들이 무어라 대화를 나눴다.
거리가 멀어 들리진 않았다.
인사라도 하는 건가.
그러더니 어느새 11명씩 팀을 나눠 경기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양쪽 모두 색깔이 있는 조끼를 입은 덕분에 팀을 구분하기가 쉬웠다.
“이건 기대도 못 했는데.”
시합이라도 할 모양이었다.
오래 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흥미로움을 감출 순 없었다.
이윽고 경기가 진행되었다.
5분 정도 크게 활약이 없던 정수현이 조금씩 라인을 내렸다. 어느 순간 직접 공을 뺏어버리더니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깔끔한 드리블로 수비수를 제쳐나갔다.
한 명, 두 명.
그러나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에 포위를 당했다.
팡!
그 순간 이어지는 깔끔한 패스. 정수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빈자리로 파고들었다. 거짓말처럼 그의 앞으로 공이 굴러왔다. 함께 달리던 팀원의 완벽한 리턴패스였다.
눈을 반짝인 정수현이 그대로 오른발을 휘둘렀다.
철렁-
빠른 속도로 날아간 공이 골문을 두드렸다.
“이야…….”
지켜보던 류성의 눈이 반짝였다. 정수현의 실력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리턴패스를 준 아이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린 꿈나무가 이렇게도 많았구나.”
하지만 여전히 잠재력만큼은 정수현이 한 수 위였다.
여기서 많은 걸 배우겠지.
류성은 다시 필드에 자리 잡는 정수현을 확인하고서야 몸을 돌렸다.
* * *
캘리그라피 공모전 준비가 한창인 시기에 연성재와 약속한 날이 찾아왔다. 류성은 잠깐을 시간을 내어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오셨어요?”
“네. 이야, 사무실이 넓네요?”
“하하, 네. 제가 좀 장비를 많이 쓰거든요.”
“어휴, 이 정도는 쓰셔야죠.”
“흐흐, 일단 앉으시죠.”
“아, 네.”
“한 20분 뒤에 방송 시작할 텐데요. 정보꾼 님은 그냥 간단하게 단타만 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주식이 체결되는 동안에는 제가 평소에 준비했던 컨텐츠 몇 개만 가볍게 풀어볼 생각이고요.”
“재밌겠는데요?”
“하하, 네. 증시랑 관련된 정보로 준비했으니 잘 어울릴 겁니다.”
뛰어난 인사이트를 지닌 사람이 바로 연성재, 류카월드였다. 그의 지식과 정보를 옆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류성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절로 기대가 될 지경이었으니까.
“커피 한잔하고 준비하면 되겠네요.”
“좋죠. 그러면 커피는…….”
“제가 타드려야죠.”
“흐흐, 고맙습니다!”
초궁극의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증시나 기업, 경제 이야기.
산업에 대한 전망은 물론이고 RS재단과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도 튀어나왔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는지 연성재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궁금하신 거라도?”
“아닙니다. 이건 방송에서 여쭤볼게요.”
“방송에서요? 괜히 긴장되는데요?”
“흐흐, 별건 아니에요.”
그렇게 커피를 전부 마시고서 방송 준비를 했다.
“자, 그러면 시작할게요.”
“네.”
“잠깐 화면 밖에 계시다가 부르면 나와주세요.”
“알겠습니다.”
곧이어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자, 반갑습니다. 오늘도 쓸데없는 정보와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여러분의 귀를 더럽힐 류카월드입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방송하는 까닭일까.
정말 단 1분 만에.
무려 3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진입했다.
“자자, 오늘은 특별 게스트분을 모셨거든요? 류카월드 역사상 최초입니다! 기대되지 않으시나요?”
그러자 채팅창이 폭발했다.
킹콩 : 오? 누구?ㅋㅋㅋ
빠밤바 : 레알????
초코 : ㅇ_ㅇ?
무지 : 실화?
아린다 : 게스트? 웬일?ㅋㅋ
탑백귀 : 와씨ㅋㅋ
오랑우탄 : ?????
엄청난 화력이었다. 솟구치는 채팅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단 하나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냥 대충 물음표가 많이 보이기는 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바로 소개할게요. 나와주시죠!”
류성은 앞으로 나서며 시청자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너튜브 채널 주식대마왕TV를 운영하는 류성이라고 합니다.”
이후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확인했다.
역시나 채팅창은 난리였다.
“와, 화력 진짜 장난 아니네요.”
“흐흐, 그렇죠?”
“이래서 류카월드 님이 질문에 대답을 못 하시는 거였군요.”
“맞습니다. 솔직히 채팅 못 읽어요. 제가 그래서 그냥 준비한 것만 주야장천 얘기하는 거죠. 채팅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거든요.”
“이해가 가네요.”
물론 오, 우와, 하는 등. 놀라는 듯한 감탄사가 흐릿하게 읽히기는 했다. 다만 그건 워낙 비슷한 감탄사가 많이 올라온 덕분이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자, 저도 반갑습니다. 근데 소개가 너무 짧았어요. 제가 제대로 소개를 해드려야겠네요. 정보꾼 님이라고 하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렇죠? 채팅 못 읽으니까 맞으면 이응만 쳐주세요.”
그러자 ‘ㅇㅇ’이 스크린을 장악했다.
“좋습니다, 좋아요. 주식 투자계에서는 사실상 압도적인 원탑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시죠. 신들린 듯한 주가 예측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단타 실력을 갖추고 계시거든요. 이게 끝인가요? 어휴, 아니죠. RS재단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무려 그 재단의 이사장님이십니다! 최근 캘리그라피 공모전으로 화제가 된 곳이라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오직 본인이 직접 투자해서 벌어들인 돈으로만 그 거대한 규모의 재단을 운영하고 계시죠. 어때요, 놀랍지 않습니까? 네, 그런 분을 제가 모셨습니다! 세기의 투자자, 정보꾼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듣고 있던 류성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귓불도 조금 붉어졌다.
심각할 정도로 과한 소개가 창피한 까닭이었다.
아이니쥬 : 귓볼ㅋㅋㅋㅋ
내꼬 : 고개 숙인 남자ㅋㅋㅋㅋ
로맨스남 : 창피한 듯ㅋㅋㅋ
상처 : ㅋㅋㅋㅋ웃기네
정보내놔 : ㅋㅋㅋ
주식갓 : 홍당무세요?ㅋㅋㅋ
키읔 : ㅋㅋㅋㅋㅋ
채팅이 웃음으로 도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