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247화 (247/277)

돈과 재능이 쏟아져 247화

157. 피아노(3)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세모 중학교 앞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예?”

“학교에 도착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딴생각을 하느라…….”

“괜찮습니다.”

어떤 마음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류성은 재촉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박기식과 함께 학교 정문을 지나쳤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였다.

“점심시간이라 여유가 있겠네요.”

“네, 다행이군요.”

“일단 교실로 가볼까요?”

“이쪽으로.”

박기식이 류성을 안내했다.

1학년 2반.

막상 도착해 보니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박세연도 없었고.

뒤늦게 박기식이 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음악실에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음악실에 있다고 하네요. 이쪽으로…….”

“안 서두르셔도 돼요.”

“아, 괜히 조급해져서는.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도 없구요.”

“하하, 네.”

이렇게 저자세로 굴지 않아도 되는데.

이럴 땐 참 속이 상했다.

류성은 하고픈 말을 애써 삼키며 걸음을 내디뎠다. 어떤 전환점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말한다고 해도 쉽게 바뀌지 않을 태도였으니까.

저벅.

그렇게 음악실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들려오는 소리.

이건 분명 피아노의 음률이었다.

“아…….”

듣는 순간 예술가의 감각이 반응했다.

저릿했다.

류성은 걸음을 서둘렀고 그 뒤를 박기식이 따랐다. 이윽고 도착한 음악실 내부에서 박세연은 선생님으로 보이는 교사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 ♩♪♩♪♬-

류성은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했다.

지그시 눈이 감겼다.

드넓은 초원에 드러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청량하고 맑았다.

자유로운 와중에 격식이 존재했다.

이건 더 평가할 게 없었다.

천재가 맞았다.

예술가의 감각으로도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이윽고 음악이 끝났다.

“후아.”

정신을 차린 류성은 저 아이의 천재성이 어느 정도 수준이나 될지 궁금해졌다. 조심스레 박세연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잠재력]

섬세함(A+급) 감수성(A+급) 예술적 이해(A급+) 공감능력(A+급) 감각(A+급)…….

외에도 해석, 손재주, 절대음감 등.

여러 잠재력이 존재했다.

하나같이 A급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총평]

천재적인 음악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압도적인 총평이었다.

천재적인 음악가라.

도저히 후원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아이였다.

류성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 * *

기척을 느낀 한소유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누구……?”

그러다 박기식을 발견하고는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세연이 아버님?”

“네, 맞습니다.”

박세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그래, 우리 딸.”

“학교엔 무슨 일이야? 그리고 옆에는…… 어?”

류성의 얼굴을 확인한 박세연이 눈을 끔뻑거렸다.

“우, 우와……!”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 것처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반짝이는 눈동자로 류성을 올려다보는데 그 시선이 마치 장화 신은 고양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RS재단! 마, 맞죠?”

“날 알아?”

“당연하죠! 완전 유명한걸요?”

“그 정도는 아닌데. 아무튼 반가워.”

“아, 네! 안녕하세요!”

“피아노 멋있게 치더라. 잘 들었어.”

“히히, 감사합니다!”

가만히 둘을 지켜보던 한소유 선생님과도 인사를 나눴다.

“아, 저는 여기서 음악을 가르치는 한소유라고 해요.”

“류성입니다. 아버님이랑 같이 세연이 피아노 실력 좀 확인하려고 왔어요. 재능이 있으면 후원할 생각이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마침 피아노가 들리더군요. 짧았지만 직접 들어보고 바로 확신했습니다.”

한소유 선생님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어떻던가요?”

“재능이 넘치더군요.”

“그렇죠?”

“네. 반할 정도로요.”

천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혹시나 자만할까 봐.

고개를 돌려 박세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세연이라고 불러도 될까?”

“네!”

“음, 그래. 피아노 배우는 건 재밌고?”

“네, 재밌어요!”

“얼마나?

류성의 질문에 박세연이 잠시 침묵했다. 무언가 생각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다 결심을 했는지 류성을 빤히 쳐다보며 대답했다.

“재밌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모든 걸 뒤덮을 만큼이요.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내왔는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울 만큼이요. 모든 게 지겨웠는데 이젠 모든 게 즐거울 만큼이요.”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피아노를 참 좋아한다는 걸.

“멋진데? 그럼 제대로 배워볼래?”

“네. 배우고 싶어요!”

박세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RS재단에서 후원해 줄게. 원하는 만큼 실컷, 그리고 재밌게 배워봐.”

“고맙습니다!”

후원을 하는 건 확정이었고 그 규모나 방법은 재단 차원에서 충분한 조사를 마친 이후 진행될 터였다. 그때 옆에 있던 박기식과 한소유 선생님이 함께 인사를 해왔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두요. 고마워요, 정말.”

두 사람 전부 류성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이러려고 존재하는 게 재단인걸요.”

“그래도요. 이걸 진짜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자꾸 그러시면 저 그냥 갑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래도 굽신거리는 아버님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속삭였다.

“아버님, 세연이가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까. 자식에게 부모란 존재는 슈퍼맨과 같습니다. 저는 지금 무한한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에요. 아무 생각 없이 후원하는 게 아니라 세연이에게 투자하는 겁니다.”

박기식의 눈이 조금 커졌다.

류성은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래에 세연이가 세계에 이름을 떨치면 RS재단 역시 그 이름을 더 널리 알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당당하셔도 됩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세연이의 아버님이잖아요.”

그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걸까.

스윽.

박기식이 천천히 허리를 폈다.

왜소하던 모습에서.

딸을 지켜내고 키워왔던 든든한 기둥으로 변모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어느새 달라진 분위기가 박기식에게서 풍겨왔으니까.

“이사장님.”

“네.”

“……마음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부드럽게 웃은 박기식이 몸을 돌렸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딸, 박세연에게 다가갔다.

“세연아.”

“어, 응?”

“앞으로 열심히 배워야 한다. 알겠지?”

그의 손이 박세연의 머리 위에 놓였다.

크고 투박했다.

“응, 열심히 할게……!”

그렇기에 박세연에게 아빠란 존재는 여전히 넓고 거대했다.

* * *

NFC(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의 5번 축구장에 아이들이 모였다. 그보다 조금 늦게 등장한 감독이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 대표팀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채점하는 날이니 최선을 다해 뛰어라.”

“네!”

“그래, 그간의 점수를 합산해서 뽑을 예정이니 불만은 없을 거다. 혹시나 이후 불만이 생긴다면 날 찾아오도록 해라. 이야기는 들어줄 테니까.”

그 말에는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좋군. 장 코치.”

“예, 감독님.”

“두 팀으로 나눠서 경기 진행해.”

“알겠습니다.”

곧이어 팀이 나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정수현은 A팀이었다.

파란 조끼를 입은 상태로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B팀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수현은 상대 진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기회를 노리는 맹수처럼 조용히, 하지만 쉼 없이 움직이면서 공간을 창출해냈다.

“오프 더 볼 움직임이 좋은데?”

“나날이 발전하더라고요.”

“볼수록 참 대단해.”

그때 A팀이 공을 탈환했다.

이어지는 기습.

순간 정수현에게 날카로운 패스가 날아들었다.

“패스 좋고.”

빈 곳으로 달려가던 정수현은 빠른 속도로 수비수를 따돌리며 공을 차지했고 가볍게 방향을 틀면서 접근하는 수비수의 태클까지 피했다.

이어지는 기회.

한 박자 빠른 슈팅이 쏘아졌다.

콰아아앙!

공이 골문을 뒤흔들었다.

“이번엔 왼발이군.”

“네. 양발잡이가 진짜 엄청난 메리트죠.”

“심지어 슈팅 비율이 52대48이야.”

“허어.”

코치는 정수현의 지난 점수를 확인했다.

첫날은 많이 부족했다.

재능은 뛰어났으나 객관적인 실력은 다른 선수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총점 67점으로 꼴찌였다.

그것도 잠시.

하루하루 훈련이 더해질수록 실력이 급증했다.

매우 가파른 속도로.

덕분에 최근 점수는 87점으로 정수현이 1위였다.

“기대되는군.”

과연 오늘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경기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움직이는 모든 선수를 눈에 담은 채로.

“흐음.”

긴장한 까닭인지 몇 명 선수들의 실수가 보였다.

아쉽지만 마이너스였다.

큰 대회일수록 긴장하지 않는 선수가 제 실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긴장으로 인한 실수의 여부는 꽤 중요한 지표였다.

연습에서 잘하는 선수가 실전에서 약한 이유기도 하고 연습에선 그저 그런 선수가 실전에서 유난히 도드라지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더 대단하지.”

정수현은 연습에서 아주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정수현은 시합 내내 훌륭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2골 2어시스트를 달성했다.

* * *

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퀘스트 ‘미래의 꿈나무를 위하여!’가 갱신됩니다.]

[아이가 꿈에 한 발 더 다가섭니다.]

[한일 교류전, 유소년 축구 대표팀 선발!]

[시스템의 판단에 따른 보상을 지급합니다.]

[선행 포인트 상자를 습득합니다.]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뭐, 당연한 일이지.”

그만한 재능이라면 대표팀에 뽑히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여겼으니까. 혹시나 떨어졌다면 그건 감독이 이상하거나 혹은 정수현이 게을러졌거나, 둘 중에 하나였으리라.

하지만 정수현이 게을러지는 건 솔직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노력과 끈기, 그리고 인내까지 겸비한 대단한 녀석이었으니까.

남은 경우의 수는 하나인데.

그조차 괜찮았다.

정수현을 바래다주면서 감독을 만났었으니까. 슬쩍 그의 잠재력을 확인했었는데 그는 온화하게 보이나 실제로는 냉철한 실력주의자였다. 그러니 당연히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지.”

이제 일본 유소년팀과의 교류전만 기다리면 되었다.

기대되네.

거기서도 제 실력을 보여준다면 정수현은 분명 크게 주목을 받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 가지 유혹이 뒤따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지켜주고 막아내는 게 바로 RS재단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상자나 열어볼까.”

잡념을 지우고 선행 포인트 상자를 확인했다.

[선행 포인트 상자]

11점부터 23점 사이의 포인트를 랜덤으로 획득한다.

U-15 대표팀에 뽑힌 게 확실히 큰일이긴 한 모양이었다.

보상이 꽤 좋았다.

힘을 주어 상자를 오픈했다.

화아악-

강력한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21이라는 숫자로 바뀌었다.

[선행 포인트 21점을 획득합니다.]

23점에서 겨우 2포인트 모자란 수치였다.

“이야.”

어쩐지 오늘 운세가 좋은 모양이었다.

두드드드-

마침 걸려온 전화에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