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51화
160. 커피 선물(1)
초궁극의 커피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처음부터 난관일 텐데…….”
먼저 드립 커피를 내려야 했다.
이걸 기계가 할 수 있을까?
의문과 기대로 가득한 가운데, 기계 팔이 움직였다. 준비되어 있던 원두를 한 움큼 쥐고서 둥그런 기계에 후두둑, 떨어트렸다.
“저건 뭐죠?”
“아, 저건 드립 커피 전용 기계입니다.”
“아……!”
“드립 커피를 제조하는 기계가 이미 시중에 있어서 공정을 만드는 게 상당히 편리했죠. 준비된 원두만 넣어주면 되니까요.”
“그랬군요.”
그래서 이렇게 빨리 제조공정이 완성된 거였다.
위이이잉!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듯 드립 커피 기계가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자 추출된 커피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톡, 토옥.
심플하게 생긴 캔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확실히 드립 커피가 시간을 적잖게 잡아먹네요.”
“예, 맞습니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재능 ‘바리스타의 손맛’이 적용되지 않는 만큼 초궁극의 커피는 되어야 어느 정도 맛이 나올 테니까.
“커피를 제외한 다른 건강 음료를 만들려면 드립 기계만 제외하면 되겠군요.”
“네. 제외하고 싶을 땐 여기 주황색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러면 알아서 드립 기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제조공정이 진행될 겁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물론 맛은 봐야겠지만.
위이잉!
드립 커피가 거의 다 내려졌을 즈음 기계 팔이 움직였다. 한쪽에 놓인 인스턴트커피와 우유를 섞기 시작한 것이다.
“호오.”
그 과정이 꽤 매끄러웠다.
이어서 완성된 우유 커피와 드립 커피가 섞였고 뚜껑이 닫히면서 캔커피 하나가 만들어졌다.
스윽.
그걸 사장이 손에 쥐었다.
“여기 있습니다.”
류성은 받아들고서 마개를 땄다.
따악!
퐁하고 터지면서 향이 먼저 피어올랐다.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캔커피를 들이켰다.
입안에 차오르는 맛.
그건 익숙하면서도 낯선 종류의 것이었다.
“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건 의외인데?
재능 ‘바리스타의 손맛’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라 직접 만든 초궁극의 커피와 비교할 순 없었다. 애초에 비교할 생각도 없었고. 다만 기존 궁극의 커피와 비교할 수준만 되어도 좋겠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 마셔보니 ‘궁극의 커피’랑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다. 궁극의 커피가 중독적인 가벼운 맛이라고 한다면 지금 마시는 커피는 중독성이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깊은 맛이 우러났다.
드립 커피라 그런가.
확실히 차이점이 존재했다.
“저, 어떠신가요?”
“아주 좋은데요.”
“하하, 합격입니까?”
“네. 합격입니다.”
류성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놀라운 맛을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이 정도 맛을 양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만족스러웠다.
홀짝.
류성이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는 사이, 완성된 커피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
“사장님도 한번 드셔보세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RS음료를 책임지게 될 김상수 사장이 캔커피의 마개를 땄다. 자연스레 풍겨오는 향을 맡더니 눈이 조금 커졌다. 이내 음미하듯 캔커피를 조심스레 마셨다. 입안에서 커피를 굴리며 맛을 음미했다.
“헙……!”
꿀꺽, 삼키는 것과 동시에 사장이 류성을 쳐다봤다.
“이, 이사장님.”
“네.”
“이게, 이게 뭡니까……?”
“하하, 괜찮죠?”
아무리 망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음료 공장을 운영하던 사장이었다. 애초에 그의 집안에 레시피가 존재하기도 했었고. 당연히 다양한 음료의 맛을 봤고 그중에는 커피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공장 운영에는 실패했으나 맛을 보는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커피 중에선 단연코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그래요?”
“다만 원두가 워낙 좋은 거라 판매가격이 많이 부담될 거 같습니다.”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예?”
“이건 선물용으로만 제조할 생각이라서요.”
“아, 그러시군요.”
“대신 건강음료를 소량으로 제조해서 비싸게 팔 계획입니다. 물론 당장은 아니고요. 건강음료도 처음에는 주변에 선물부터 할 생각이니 그렇게 알아두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김상수 사장은 의견을 보태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는 RS재단 이사장이었으니까.
돈이야 차고도 넘치리라.
걱정할 부분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사장님.”
“예.”
“아시겠지만 제가 프리미엄 음료를 제작해봐야 이 정도 공간이면 충분합니다. 나머지 공정을 활용해서 사장님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시면 됩니다.”
“그, 그래도 될까요?”
“네. 됩니다. 계약서를 보면 사장님 레시피를 활용한 음료는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가 지급될 거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시죠?”
“물론입니다.”
“하지만 손해는 제가 떠안을 겁니다.”
“…….”
“그러니, 마음껏 도전해 보세요.”
애초에 김상수 사장은 인재였다.
잠재력도 뛰어났고.
운영 능력이 부족했을 뿐, 다양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A-급이긴 하지만 맛을 보는 능력도 탁월했고.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커피는 계속 만들어두세요. 며칠 뒤에 가지러 오겠습니다.”
류성은 사장과 인사를 나눈 뒤 공장을 벗어났다.
* * *
캘리그라피 예선전의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졌다.
벌써 5일 차.
실시간 생방송 시청자가 35만 명을 돌파했다.
소낙비 : 뭔데 이게 재밌음?ㅋㅋ
뉴스내라 : 진짜 재능있는 사람들 겁나 많네요!
패닉 : 미래가 밝다^^
빛덩어리 : 문화로 세상을 지배하리라!
드론은 실력 있는 이들을 콕콕 짚어서 화면을 크게 잡았다. 덕분에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같은 글자를 써도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화면에 보이는 53번 참가자는 유독 글자를 그림처럼 표현했다.
아주 간단한 ‘ㄱ’부터 멋들어졌다.
굵은 심으로 화면을 찍고서 오른쪽으로 선을 그었는데 그 와중에 힘을 절묘하게 빼버렸다. 당연히 선은 얇아졌고 자연스러운 곡선미가 살아 움직였다. 적당한 시점에서 펜을 멈추고서 아래로 그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균형감이 일품이었다. 마지막으로 길게 꼬리를 남기자 어디서도 보지 못한 ‘ㄱ’자가 완성되었다. 거기에 눈과 수염을 그려 넣으니, 마치 승천하는 용을 보는 듯했다.
퇴근맨 : 글자가 아니라 그림인데 어라? 글자였네?
마감 : 한글이 이렇게도 예쁘다고ㅠㅠ
성과급 :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김춘복 대가가 보고 있었다.
몇 명의 제자와 함께.
“오늘 수업이 지루하진 않고?”
“물론입니다.”
“어제 영상을 보니 배울 점이 많이 보이더군. 그래서 오늘 자네들과 함께 공부나 해보려고 이렇게 부른 걸세.”
“배울 점이라니요.”
“예쁘지 않은가?”
“그렇긴 합니다만…….”
떨떠름한 표정의 제자를 보며 장춘복 대가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들이 우리랑 다른 게 뭔가?”
“예? 그거야…….”
“결국, 한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럼 그 좁은 시각을 버리게. 그러지 않으면 발전할 수가 없으니.”
“알겠습니다, 선생님.”
표정을 푼 장춘복 대가가 다시 영상을 쳐다봤다.
정말 재밌었다.
저런 식으로 글자를 적어내다니.
“허허, 흥미롭구만.”
언제부턴가 머리는 안개처럼 뿌옇게 변했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기계적인 일이 되었었다. 무엇을 쓰건, 경험과 규칙에 의거하여 손을 놀리면 그럴듯한 글자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 이상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안개가 걷히고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호오, 여기 이 글자를 따라서 적어보도록 하겠네.”
“예, 선생님.”
“준비하겠습니다.”
어쩐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 * *
궁극의 캔커피가 대량으로 쌓였다.
상표는 RS음료.
캔커피의 이름은 갓 샷(God shot)으로 정했다.
“몇 캔이나 되죠?”
“1,400캔 정도 됩니다.”
“꽤 많네요.”
물론 선물하면 금방 사라질 물량이었다.
“10개씩 담겨 있어서 금방 소진될 겁니다.”
“그럴 거 같네요. 음, 더 필요할 거 같으니까 계속 기기는 돌려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들고 가보겠습니다.”
“예, 조심히 가십시오!”
물량은 배송 직원들이 트럭에 실었다.
목적지는 RS재단이었다.
“1층 창고까지만 부탁드립니다.”
“어휴, 당연히 옮겨드려야죠.”
두 명의 젊은 사내가 열심히 10상자, 그러니까 100캔씩 커피를 옮겼다. 덕분에 1,400캔을 옮기는 일이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캔커피 하나에 200㎖ 정도. 10개가 담긴 상자 하나에 2㎏이었으니 10상자면 20㎏ 수준이었다.
“흔들려서 무거울 텐데, 엄청나시네요.”
“거뜬하죠, 이 정도야.”
“형님, 서두릅시다. 바쁘신 분인데.”
“아, 그래야지!”
1,400캔이 순식간에 창고에 쌓였다.
대단하시네.
류성은 감탄하면서 준비해 뒀던 봉투를 꺼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 선금을 받은 거로 아는데요.”
“물량이 너무 적어서 손해 보셨잖아요. 게다가 빨리 옮겨주셨고요.”
“아니, 그래도…….”
사내가 조금 망설이자 옆에 있던 동생이 나섰다.
“아, 형님. 뭐 해? 어휴, 고맙습니다. 이사장님!”
“아닙니다.”
“흐흐, 오랜만에 저녁 맛있는 거 먹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시고요.”
“다음에 또 불러주십시오!”
배송 직원 두 명이 서둘러 트럭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봉투를 열더니 기함을 터트렸다.
“허업……!”
“왜 그래?”
“형님. 대박이야, 대박!”
“……많아?”
동생이 끄덕이면서 봉투 속을 보여줬다.
“크흐, 역시 재단 이사장님이라니까.”
“허어…….”
초록초록한 만 원짜리 지폐가 두툼하게 출렁거렸다.
“으으, 다음에 또 불러주면 좋겠다.”
“그러게.”
“뭐,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는 고기나 먹자고, 어때?”
“크흠. 그럴까?”
“콜이지?”
“콜이다.”
“좋았으. 그러면 마지막 배달지로 가보자고!”
두 사람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 * *
류성은 창고 앞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흐음.”
퇴근이 머지않은 상태였으니 직원들에게 먼저 커피를 선물하기로 했다. 사무실로 올라가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제가 여러분한테 선물을 드릴 게 있어서요.”
“선물이요?”
“네. 이제 퇴근 시간이니 마무리하고 1층 창고로 와주시면 됩니다.”
“아, 네.”
“자, 서두릅시다.”
류성의 재촉에 정신을 차린 직원들이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저는 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빨리들 내려오세요.”
“아,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그들의 조급함을 느끼며 류성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분주한 움직임이 밖에서도 느껴져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하긴, 이사장이 재촉하는데 느릿하게 움직일 순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는데.
장난이 조금 지나쳤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창고로 내려갔다.
1분 정도 기다렸을까.
벌써 직원 몇 명이 달려왔다.
“이사장님, 왔습니다!”
“빨리 오셨네요? 자, 여기요.”
“이건……?”
류성이 건넨 캔커피를 보던 평사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로운 궁극의 커피입니다.”
“구, 궁극의 커피요?”
선물 받은 커피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평사원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