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52화
160. 커피 선물(2)
궁극의 커피라니.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커피가 아닌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이사장님이 직접 타줬던 그 커피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놓을 정도로 풍미가 깊으면서도 달콤했었다. 극도로 몰입한 탓인지 그 당시에는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웠다.
음미했어야 했는데.
천천히 먹었어야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생각이 나서 동료들이 알려준 레시피대로 타서 먹어봤다. 그러나 그때의 맛이 아니어서 항상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런데.
지금 그 커피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게, 그러니까…… 궁극의 커피라구요?”
“네. 많지는 않으니까 아껴서 드시고요. 마개만 안 따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가,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하하, 네.”
그제야 선물이 무엇인지 알게 된 뒤쪽 직원들의 얼굴에 열망이 피어올랐다.
“이, 이사장님. 저도……!”
“여기 있습니다.”
“허업,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네. 다음이요.”
“저, 저요! 선물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상자씩 선물했다. 직원이 60명을 넘는 까닭에 절반에 가까운 양이 사라졌다.
이야, 진짜 금방 소진되네.
마지막으로 부사장이 내려왔다.
“이사장님. 무슨 선물이에요, 갑자기?”
“커피예요.”
“커피요?”
“네. 궁극의 커피요. 애들한테는 중독의 우려가 있으니 못 마시게 해주시고요. 꼭 부사장님만 드셔야 합니다.”
“아, 네. 그래야죠.”
한애라 부사장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아무튼, 이게 그 커피란 거죠?”
“네. 공장에서 기기로 만든 거라 맛은 좀 다르겠지만요.”
“그래도 기대되는데요?”
“마음에 들 겁니다.”
“그럼 잘 마실게요.”
사무실 직원은 전부 받았으니 이젠 외부 현장팀과 RS엔터 직원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차례였다. RS엔터에 속한 아이돌, 배우는 물론이고 감독과 사단 직원에게도 커피를 돌렸다.
당연히 엔터를 책임지는 부대표, 최서호에게도 커피를 건넸다.
“부대표님 건 이겁니다.”
“크으, 감사합니다!”
“나중에 부족하면 말하세요. 이제 공장에서 만드니까요.”
“그 말, 진짜죠?”
“네. 부담 갖지 마시고 언제든지요.”
마지막으로 조금 늦게 도착한 외부 현장팀에게 커피를 나누자 딱 6상자가 남았다. 한 상자는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에게 선물했고 나머지는 집에 들고 가기로 했다. 가족들도 꽤 좋아할 테니까.
“그럼, 가볼까.”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이 집에 도착했다. 상자를 들고 현관으로 들어서자 가족들이 바로 관심을 보였다.
“어? 오빠, 그거 뭐야?”
“커피야.”
“웬 커피?”
“궁극의 커피란다.”
그 말에 류현아는 물론이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어머니와 류환의 표정도 덩달아 변했다.
“진짜? 이게 궁극의 커피라고?”
“어.”
“와씨, 요즘 잘 안 타줘서 계속 생각났는데! 나, 나 먹을래!”
“아들, 내 것도.”
“형, 나도 먹어도 되지?”
그리곤 류성의 대답도 듣지 않고서 캔을 하나씩 들고 갔다.
“……왜 물어본 거야, 도대체.”
이윽고 캔 마개를 포옹, 하고 따더니 한껏 들이켰다. 어머니, 류환, 류현아 모두 눈을 번뜩이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박! 이거, 너무 맛있는데?”
“오오오오, 이 깊이 있는 맛!”
“으음. 역시.”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가족인 만큼 더 솔직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어때? 전에 먹었던 궁극의 커피랑 비교하면?”
“난 기존 궁극의 커피보다 더 맛있는데? 아, 그 예전에 뭐지?”
“초궁극의 커피?”
“어어! 그거, 그거보다는 살짝 아쉬운 거 같지만. 아무튼 대박이야!”
“다행이네. 엄마는?”
“너무 좋아.”
“형, 난 평생 이거만 마셔도 돼!”
딱 원하던 반응이었다.
* * *
RS엔터에 속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이혁. 그는 시나리오 공모전 작품으로 데뷔를 했고 해당 영화가 인기를 누리면서 일약 스타덤에 떠올랐다.
덕분에 여러 예능에도 출연했고 CF도 많이 찍었다. 지금은 다음 작품을 고르면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커피를 선물로 받았다.
“웬 커피를…….”
그래도 RS엔터의 대표이자 재단 이사장이 준 거였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
고마운 사람이었으니까.
얼굴을 그리 많이 보진 못했지만 정말 대단하고 좋은 사람인 것도 분명했고.
“흐음, 처음 보는 브랜드인데. 일단 마셔볼까.”
활동하지 않는 시기에는 낮과 밤이 바뀌는 편이라 저녁이 다 되어가는 지금이 그에겐 하루의 시작이나 다름이 없었다.
“친구도 만나야 하고.”
정신도 차릴 겸 한 캔만 마셔보기로 했다.
타악!
향이고 뭐고 일단 들이켰다. 카페인을 섭취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꿀꺽-
그런데 한 모금 넘긴 순간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크허업!”
너무 놀라서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뱉어버렸다. 순간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손에 들린 캔커피를 쳐다봤다.
“뭔 일이야, 이게……?”
매일 커피를 마시는 사람으로서.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조심스럽게 다시 캔커피를 마셨다. 입에 머금는 순간 퍼지는 꽃향기에 이어 목을 넘기는 순간 차오르는 맛의 향연까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 맛있잖아!”
웬만큼 유명한 개인 커피숍 핸드드립 커피를 마셔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인생에 한, 두 번.
진짜 말도 안 되게 맛있었던 커피와 비견될 정도였다.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라고, 이건.”
손에 들인 캔이 황금처럼 느껴졌다.
지극히 소중해졌다.
앞으로 이것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뭐야?”
아무리 검색해 봐도 나오질 않았다.
갓 샷이 맞는데.
아무래도 수제 커피인 모양이었다.
“안 파는 모양이네.”
그 말은 앞으로 다시 먹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사장님에게 부탁하면 또 얻을 가능성도 있지만 얻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박스에 놓인 커피 캔 아홉 개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란 사실만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다니.
그러나 겨우 아홉 개뿐이라는 생각도 함께 솟구쳤다. 짧은 시간 동안 기쁨과 슬픔이 빠르게 교차했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게 느껴졌다.
“겨우 아홉 개라.”
아껴서 먹으면 한 달은 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3일에 하나씩인가.
아니,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1주일에 하나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두 달은 마실 수 있겠지.”
손에 들린 커피를 그제야 다시 마셨다.
호로록.
아주 조금만 입에 머금고서 음미했다.
“으으음……!”
그렇게 한 캔을 다 비우고서 잠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서둘러 그 사진을 SNS에 올렸다.
-집에서 커피 한 잔. 근데... 이 커피 너무 맛있는데 혹시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아시는 분?
최근 대세로 떠오른 까닭일까.
하트가 빠르게 솟구쳤다.
* * *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이슈가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그 이슈가 계속해서 뜨겁게 유지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최근 계속해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 하나가 캘리그라피 공모전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갓 샷(God shot)에 관한 의문들이었다.
시작은 이혁의 SNS였다.
그가 올린 하나의 글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최근 핫한 배우였으니 당연했다.
-갓 샷? 커피 이름인가요?
-처음 보긴 하네요
-검색을 해봤는데... 못 찾겠는데요?ㄷㄷ
-와, 어디서 구한 거예요???
-얼마나 맛있기에 SNS에 이렇게 올리는 거죠ㅠㅠ
-우리한테 물어볼 정도로 급한 듯!
-찾아주고 싶다ㅋㅋㅋ
-그거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추리를 해보자고요ㅋㅋ
사실 거기서 끝났으면 금방 시들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상급 아이돌로 꼽히는 걸그룹 카타르나가 해당 SNS에 답글을 달았다.
-아, 이거 우리도 받았어요!
-대표님이 주셨어요, 선물로^^
사진도 함께 올렸다.
아리, 나라, 연서.
셋이서 함께 캔커피를 손에 쥔 채 활짝 웃고 있었다.
-흐앗! 카타르나! 존예!
-어라? RS엔터 대표님?
-그러면 RS재단 이사장 아니에요?
-맞음!
-거기 이사장님이 류성! 맞죠?
-ㅇㅇ
-그러면 뭐지?
-이사장님이 구해온 커피라니 확실히 평범한 건 아니겠네요
-그래서 저 커피는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거죠?
-저도 마셔보고 싶은데ㅠㅠ
-와, 제가 최애하는 배우랑 최애 걸그룹이 마시는 커피라니ㅠㅠ 저도 제발 하나만 주세요!!
-나도 주라고요오오옥!
-갓 샷 구합니다!
이어서 RS엔터에 속한 배우와 가수가 전부 캔커피를 잘 받았다면서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인증 챌린지였다.
-전부 RS엔터구나.
-그러게요
-부럽네요ㅠㅠ
-진짜 마셔보고 싶은데, 없네요 없어!
거기에 강펀치 하나가 추가로 꽂혔다.
-이사장님, 잘 마실게요! 완전 중독적^-^
갓 샷이라고 적힌 커피를 손에 든 마이유의 사진이 SNS에 올라와 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해당 사건은 평범한 이슈에서 뜨거운 이슈,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핫이슈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지금.
인터넷에서 기묘한 현상이 발생했다.
-갓 샷 구합니다!
-갓 샷 비싸게 사요!
중고장터 및 중고로 거래가 가능한 무수한 사이트에서 갓 샷을 사기 위한 사람들의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 * *
류성은 잠깐 고심에 빠졌다.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된 이상 커피와 물약을 섞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판매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 같았다. 커피라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카페인 섭취가 제2형 당뇨의 발생 위험을 낮추기도 하고 관상동맥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활성산소를 제거해 항산화 효과에도 도움을 준다.
이처럼 적절한 섭취는 분명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과하게만 마시지 않는다면 말이지.”
일단 이 부분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볼 문제였다. 당장은 선물해야 하는 곳이 워낙 많았으니까.
류성은 잡념을 지우고 고개를 들었다.
“흐음.”
실내에서 치러지는 2차 예선전 현장을 눈에 담았다. 1차 예선전에서 수천 명의 참가자가 탈락했고 지금은 500명의 참가자가 남은 상태였다. 덕분에 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반응도 좋고.”
실내라서 소음도 거의 없었고 환경도 훨씬 좋았다.
생방송 시청자도 적당했다.
시청자가 27만 명을 넘긴 했지만 확실히 1차 예선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아무래도 참가자의 지인들이 대거 이탈한 모양이었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만 해도 정말 놀라운 관심이었으니까.
“이사장님.”
“아, 왔어?”
외부 현장 팀장, 김만호였다.
“상황은 어때?”
“조용하고 떠드는 사람도 없고. 쾌적해요.”
“크게 신경 쓸 건 없겠네.”
“네. 오늘 2차 예선전 끝나고 다음 주에 마지막 본선인데, 그날도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좋아, 마지막까지 잘해보자고.”
“넵. 그리고 이사장님.”
그때 김만호가 슬쩍 한 걸음 다가왔다.
“그, 보육원 조사요.”
“어, 왜?”
“곧 마무리될 거 같아서요.”
그의 말에 류성의 눈이 예리해졌다.
“협조하지 않았던 보육원 대부분에서 증거를 거의 다 수집했거든요. 근데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나머지만 잘 찾아내면 확실하게 끝날 거 같아요.”
“얼마나 걸리겠어?”
“한 달 내로 마무리 지을게요.”
“한 달이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모양이었다.
“수고했어.”
“네, 나머지 증거 보강하고 바로 보고서 올릴게요.”
류성이 김만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이번 사건 끝나면 외부 현장팀에 보너스 제대로 쏠게.”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잘 처리해 봐.”
“예, 걱정하지 마세요.”
보고를 마친 김만호가 의지를 다지며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