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54화
160. 커피 선물(4)
백반집 사장님은 택배로 받은 선물이 커피인 걸 확인하고서는 하나를 꺼내어 단골손님에게 건넸다.
“단골 맞으시죠?”
“아, 네. 자주 오는 편이죠.”
“여기, 이거 서비스입니다.”
“아, 감사합…….”
순간 커피를 받아든 손님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왜 그러세요?”
“어, 저기. 이걸…… 주신다고요?”
“네.”
“서비스로요?”
“맞습니다.”
“어, 그. 이거 서비스로 주면 안 될 거 같은데…….”
“네?”
“아니, 아닙니다. 잘 마실게요!”
“아, 네. 다음에 또 오시고요!”
뭔가 반응이 묘한 느낌이었는데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어차피 커피를 잘 안 마시는 편이었기에 다른 손님들에게도 나눠주기로 했다.
“3만 2천 원입니다.”
“여기요.”
“영수증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서비스입니다.”
“아, 네.”
일부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서 가기도 했다.
그 사람이 유별났던 건가.
그러다 또 기이한 반응을 보이는 손님이 등장했다.
“헐, 이걸 주신다고요? 진짜로요?”
“아, 네.”
“가, 감사합니다! 대박, 대바아아악!”
“저기, 그런데요, 손님?”
“네?”
“그 커피가 뭐길래 그러시는지…….”
“헙, 설마 모르셨어요?”
“네?”
“이거 RS재단이랑 관련 있는 사람만 선물 받는 거로 아는데…….”
“아, 관련은 있습니다.”
“아하, 그러시구나. 이게 지금 SNS에서 엄청 핫한 화제거든요.”
“그래요? 제가 SNS을 안 하다 보니…….”
“대충 설명을 해드리자면 이게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커피거든요.”
“예? 돈을 주고도 못 구한다고요?”
“네. 엄청 유명한 연예인들이 막 인증사진도 찍을 정도고요.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더 난리가 났죠. 그러니까 나머지는 절대 나눠주지 말고 직접 드세요. 꼭이요. 이렇게 서비스로 사용할 커피가 아니라구요.”
“아, 어어. 네. 그럴게요.”
“전 이만 가볼게요!”
손님은 커피를 빼앗길세라 냅다 식당에서 도망쳤다.
“어, 음.”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백반집 사장이 남은 커피를 확인했다.
3캔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 그래 봐야 커피가 커피라는 생각만 들었다. 어깨를 으쓱이던 백반집 사장은 조금 전 손님의 말을 떠올리며 커피를 개봉했다.
“이게 뭐라고, 참.”
의아한 마음과 함께 맛을 봤다.
“어……?”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시 마셔봤다.
이번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순식간에 한 캔을 다 마셨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장은 텅텅 비어버린 커피 박스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 * *
중학교로 택배 하나가 배송되었다.
“여정아 선생님 계신가요?”
“아, 전데요.”
“택배 왔습니다.”
“택배요?”
“네. 사인 부탁드릴게요.”
“아, 네.”
택배기사가 사라지자 근처에 있던 동료 선생님들이 관심을 보였다.
“뭐예요? 상자가 그렇게 크진 않은데.”
“글쎄요.”
“최근에 주문한 거 없어요?”
“네. 올 게 없는데…….”
여정아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택배 상자에 붙은 배송지를 확인했다.
“RS재단…….”
“어라? 그러네요. RS재단에서 온 거네요?”
“우와, 거기서 왔다구요?”
그녀의 일화는 학교에서도 유명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너무 많은 돈을 쓴 까닭에 막상 본인이 아플 때는 치료할 돈이 부족했었던 선생님으로 말이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으나 현실적으로 도와줄 길은 없었다. 항암 치료비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등장해 그녀의 항암 치료비를 전액 지원해준 바로 RS재단이었다.
정말 고마운 곳이었다.
그러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이는 학생이 보이면 여정아 선생님은 거침없이 RS재단에 문의를 하곤 했다.
“네, 제 인생을 바꿔준 곳이죠.”
그녀가 웃으며 말하자 주위 선생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좋은 일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거기서 뭘 보낸 거래요?”
“글쎄요. 한번 볼까요?”
“어서 풀어봐요, 궁금해 죽겠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개봉했다.
나온 것은 캔커피 상자였다.
여정아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설마…….”
“그거 맞죠?”
“맞네요, 갓 샷! 와, 이걸 선물로 주다니……!”
“요즘 진짜 핫하잖아요.”
“여정아 선생님, 너무 부러워요.”
동료들의 시선에 여정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혼자 먹긴 조금 그렇고.
천성이 그런 건지 딱히 혼자서 간직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좋은 게 있으면 나눠주고 싶다고나 할까.
고칠 수 없는 본성이었다.
“일단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리고 학생 주임 선생님이랑 제가 마실 거, 4캔은 제외할게요. 그러면 6캔이 남는데…….”
고개를 돌려 동료 선생님들을 쳐다봤다.
“죄송하지만 다른 선생님들하고 조금씩 나눠서 드셔야 할 거 같아요.”
“어머, 정말요?”
“우리가 마셔도 되는 거예요?”
“네, 그럼요.”
“고마워요, 정말!”
“진짜 맛이 엄청 궁금했는데…….”
“일단 1캔만 나눠 마실까요?”
“좋죠.”
수업 전에 정신도 차릴 겸 한자리에 모인 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작은 캔 하나를 종이컵에 나눴다.
“맛은 충분히 볼 수 있겠네요.”
“후아, 저는 사진부터……!”
이윽고 선생님들이 종이컵을 입에 갖다 댔다.
호로록-
맛을 본 선생님들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이, 이거…….”
“허어.”
다들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
“유명한 이유가 있었네요. 와, 이 정도면 그럴 만하죠.”
“정말요.”
“커피를 진짜 좋아하는데, 하아…….”
“저도요, 후우…….”
다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여정아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맛있는 거 맞죠?”
“그럼요.”
“근데 왜 그렇게 한숨을 쉬세요.”
“앞으로 다시 마시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벌써 눈앞이 캄캄해서요.”
“아…….”
다들 각자만의 이유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다.
참으로 묘한 상황이었다.
“혹시나 더 얻게 되면 또 드릴게요.”
“정말요?”
“그럼요.”
“고마워요, 여정아 선생님!”
그녀는 감사 인사를 받으며 캔커피를 들고 돌아다녔다.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그리고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한 캔씩 건넸다.
“오오, 잘 마실게요.”
“고마워요.”
“이거 요즘 유명하던데…….”
마지막으로 조용한 곳에서 그녀도 커피를 음미했다.
“아…….”
그제야 소량씩 나눠 먹은 동료 선생님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제나 나누는 걸 좋아하는 그녀조차도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진짜 맛있네.”
음미하며 하늘을 바라보는데.
날이 참 맑았다.
그때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커피 너무 맛있었어요.”
“정말요.”
“여정아 선생님도 대단하죠, 그걸 그렇게 나눠주시고.”
“다음에 저도 맛있는 거 사드리려고요.”
“오, 좋죠.”
“그리고, 우리 다음에 누가 아프면 동료 선생님들끼리 작게라도 돈을 모아보면 좋을 거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럴까요?”
“전 찬성이요.”
“저두요!”
“사실 이번에 마음이 좀 안 좋았거든요.”
“맞아요, 다음엔 꼭 모아봐요.”
몰래 듣는 듯한 느낌에 여정아 선생님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었다.
“선생님들도, 참…….”
역시 나누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아침에 눈을 뜬 RS음료의 사장, 김상수.
“으음?”
몸을 일으킨 그의 표정이 묘했다.
이상하네.
묘하게 몸이 가벼운 느낌이었다.
“착각인가?”
세수하고 차려진 아침을 먹고 있는데 그걸 마누라도 눈치챘다.
“당신, 컨디션 좋아 보이네.”
“어, 그러게. 오늘따라 몸이 좀 가벼운데?”
“그래?”
“큰 차이는 아니고 그냥 평소보다 괜찮아.”
“다행이네.”
순간 어제 마신 캔커피가 떠올랐다.
체력을 높여준다고 했던가.
설마 그게 진짜라고?
아침을 먹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에이,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집을 나서 공장에 도착하니 오히려 더 신경이 쓰였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이사장님. 어제 제가 마신 건강 커피 말입니다. 테스트를 해봐도 될까요?”
-테스트요?
“네. 주기적으로 마셔보고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요. 당연히 이사장님 개인적인 레시피니 성분을 분석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부분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냥 정말로 이게 체력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해져서요.”
-아아, 오늘 아침이 평소랑 달랐나 보네요.
“하하, 네. 조금 가볍더라고요.”
-그러시죠. 그러면 제가 며칠 뒤에 찾아뵐게요. 그때 건강 커피 한 상자 만들어드릴 테니까 주기적으로 드셔보세요. 이건 사장님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묘약 자체를 극소량만 만들 수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 부탁드립니다.
“어휴, 충분합니다.”
-그럼 그때 뵙죠.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아, 그리고 직원들도 피곤해 보이면 커피 좀 돌리시고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고서 사장은 상념에 잠겼다.
“……정말 효과가 있으려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 효과가 없으면 어떤가.
사실 그게 정상이기도 했고.
맛 하나만 내세워도 충분하고도 남을 터였다.
“그래,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이니까.”
의도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한층 더 맛있는 갓 샷을 얻게 되었다. 일하는 걸 떠나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흐흐, 한 상자면 10캔인데.
한동안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들뜬 모양이었다.
“후, 정신 차려야지.”
이럴수록 기합을 넣고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
“자자, 오늘도 문제없는지 점검부터 합시다!”
“예, 사장님!”
“점검 끝나고 아주 기막힌 커피 돌릴 테니까 기대들 하시고!”
“커피요? 좋죠!”
“역시 우리 사장님!”
이윽고 점검이 잘 마무리되었다.
그들에게 갓 샷을 나눠줬다.
눈을 빛내며 맛을 본 직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 사장님……!”
“흐흐, 기가 막히죠?”
“이게, 도대체 무슨……!”
“엄청난 맛인데요?”
“어떻게, 기운 좀 납니까?”
“예!”
“완전 최곱니다!”
“그럼 오늘도 열심히 움직여 보자고요!”
어쩐지, 평소보다 더욱 활동적으로 일하는 김상수 사장이었다.
* * *
2차 예선전 합격자가 발표되기 직전.
“제발, 제발……!”
캘리그라피로 참가했던 29살의 성연아가 손을 모아 기도했다.
부디 합격하게 해달라고.
그녀는 중학교 시절부터 취미로 캘리그라피를 해왔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잡념이 떠오를 때,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한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막상 공모전에 참여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내 길이 아니라고 여겼으니까.
안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이번에는 워낙 이슈가 되는 바람에 눈에 들어왔고 마음이 동해서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다.
처음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욕심이 생겨 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본선까지는 올라가고 싶어졌다.
아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입상까지 해보고 싶었다.
상금도 엄청났다.
대상은 무려 5억 원이었으니 눈이 돌아갈 만했다.
물론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특선이라도, 제발……!”
특선 상금도 1,000만 원으로 절대 적지 않았다. 이후 입상한 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그 부분도 기대할 수 있었고.
외에도 RS재단에서 앞으로 진행하게 될 다양한 분야에 캘리그라피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참여할 수도 있을 터였다. 예쁜 한글은 사실상 어느 분야에서건 쓰이는 법이었으니까.
그녀의 삶에서 갖게 된 가장 선명한 목표였다. 뚜렷한 목적 없이 살아가던 인생에 내려온 갑작스러운 동기부여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목표를 달성하고 싶어졌다.
생에 처음으로.
욕심이란 게 생겼으니까.
“나왔다!”
드디어 떠오른 합격자 발표 공지사항.
서둘러 확인했다.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면서 본인의 이름, 성연아가 눈에 들어오기를 희망했다.
“아……!”
그러다 발견했다. 중간보다 조금 아래쪽에 성연아라는 이름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참가번호까지 확인했다.
“하, 합격. 합격했어, 합격했다고! 꺄아아아아악!”
그 괴성에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니?”
“엄마! 나 합격했다고오오!”
“어, 어어? 그래? 아이고, 잘됐네, 잘됐어. 근데 무슨 합격을 했다는 거야?”
“공모전! 아, 몰라! 그런 게 있어!”
“공모전? 아이고, 장하다!”
“너무 좋아!”
“그래, 그래. 잘했다. 잘했어.”
무언가를 달성하고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감정이 격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