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56화
162. 가치
오랜만에 RS음료 공장을 방문했다.
“오셨습니까, 이사장님.”
“네, 오늘 커피도 좀 가져가고 1박스는 체력 증진에 효과적인 커피로 만들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슬쩍 사장을 눈에 담았다. 잠재력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등급이 높은 잠재력을 지나 B등급까지 천천히 훑어봤다.
“역시…….”
“네?”
“아, 혼잣말입니다.”
다시 확인해도 배신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아니,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만 더 강해졌다.
만약 배신한다면 지금 보고 있는 시스템이 잘못되었거나 혹은 잠재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류성의 잘못일 것이다.
그러니 믿기로 했다. 이 사람은 절대 체력 강화 물약의 성분을 몰래 분석할 성향이 아니었다.
“사장님.”
“예.”
“혼자만 드셔야 합니다, 이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 마시면 효과가 어떤지도 알려주시고요.”
“물론입니다.”
물론 그저 믿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사장이 류성 몰래 성분을 분석해도 딱히 나오는 건 없을 테니까. 시스템의 힘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었다.
즉, 만에 하나의 확률로 사장에게 배신당해도 큰 탈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류성을 한층 과감하게 만든 것이었다.
“들어가시죠.”
“예, 이사장님!”
내부로 들어서자 작동 중인 기기가 보였다. 류성은 완성되기 직전의 캔 커피 위로 체력 강화 물약을 떨어트렸다.
톡, 톡, 톡.
그렇게 레일 위를 타고 미끄러진 커피 위로 마개가 씌워지면서 갓 샷이 완성되었다.
“음? 이거…….”
과정이 의외로 쉬워 보이는데.
“사장님. 제가 하는 거 보이시죠?”
“예, 보입니다.”
“마지막 마개가 씌워지기 전에 공정 하나만 추가할 수 있겠어요? 지금처럼 제가 물약을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공정이요.”
“어……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그렇죠?”
“네.”
“그러면 따로 on, off가 가능하게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그럼 그렇게 공정 하나 추가하죠.”
“알겠습니다!”
류성은 마지막 한 방울을 넣고서 물약을 품에 넣었다.
“자, 정확히 열 캔이네요.”
“고맙습니다.”
“참, 갓 샷은 좀 쌓였나요?”
“대략 250상자 정도 쌓였습니다.”
여전히 갓 샷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래도 250상자면 충분하고도 남을 터였다.
“이후로 쌓이는 물량은 대부분 판매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일부는 계속 선물용으로 사용하겠지만요. 벌써 다 마셨다고 조르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 정도로 맛있긴 합니다.”
“그렇죠? 일단 홍보는 충분하다고 보니까 판매 루트만 잘 준비해 주세요.”
“예, 확실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류성은 대답을 듣고서 기존에 거래하던 배송 직원에게 배달을 맡겼다.
“네, RS재단 1층 창고까지 배달해주시면 됩니다. 하하, 네. 고맙습니다.”
사장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오늘 오후에 배달 업체에서 갓 샷 250상자 실어갈 겁니다. 문제없이 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류성은 곧바로 동탄으로 향했다.
드디어 오늘.
최근 매입한 두 채의 건물이 새롭게 태어난 까닭이었다. 부분 리모델링 이후 인테리어까지 완료되었다고 하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 * *
외부 영업팀 전원에게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본사와의 거리가 멀어 편의를 누리지 못했던 이들을 위해서 동탄에 새로운 휴게소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여러 지역에 휴게소를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해당 휴게소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존재하며 언제든 무료로 이용 가능한…….]
메시지를 받은 외부 영업팀장, 김만호가 눈을 반짝였다.
“오호, 바로 옆이네.”
마침 오후 12시 30분에 동탄 근처에 있었던 터라 타이밍이 딱 맞았다.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무료로 이용 가능한 식당도 있다고 하니 거기에 들러 점심을 먹으면 될 거 같았다.
혼자는 심심하니까.
가는 길에 여자친구인 이미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오빠! 아니, 팀장님?
“우리 미나, 어디야?”
-나 수원인데?
“가깝네, 그러면 동탄에서 같이 밥 먹자.”
-아, 그 문자 온 곳?
“응, 거기.”
-히히, 알았어. 바로 갈게!
“응, 조금 이따가 봐요.”
-넹!
오글거리는 대화를 나누고서 운전에 집중했다.
“하, 날씨 좋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바쁘게만 움직였던 건지. 이렇게 맑고 예쁜 하늘을 보고서도 별다른 생각을 못 했던 건가 싶기도 했다. 어쩌면 외면했을지도 모르고.
“상쾌하네.“
요즘은 그냥 돌아다니기만 해도 세상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멍하니 경치를 즐기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김만호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으로 올라와 주소를 확인했다.
건물이 상당히 컸다.
휴게소라고 하기에 뭔가 싶었더니.
“진짜 형님도, 참.”
혼자 감탄하고 있는데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아, 왔어?”
“나보다 먼저 도착했네?”
“나도 근처였거든.”
“아하. 근데 여기 맞아? 휴게소라고 메시지에 와있던데.”
“여기 맞는 거 같은데.”
“우와……!”
“일단 좀 살펴보자.”
건물을 조금 둘러보니 1층 오른쪽에 RS식당이 보였다.
“맞네. 우리 저기서 밥부터 먹을까?”
“응! 좋아!”
“그럼 들어가자.”
문을 여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커졌다. 밖에서 볼 때는 사실 식당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부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어, 이거……?”
“본사랑 비슷한 구조네.”
“대박!”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등. 원하는 음식을 주문해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본사와 마찬가지로 셰프까지 대기 중이었다.
“진짜 제대로 준비하셨네.”
“정말.”
“일단 먹고 싶은 거 주문부터 하자.”
“좋아!”
둘은 음식을 주문한 뒤에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주기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 우리 다음 주에 동물보호소에도 놀러 가자.”
“좋지. 도담이 보러 가야지.”
“덕분에 우리도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럼, 그럼.”
“하, 진짜. 그때 도담이 돌봐주다가 딱 만난 사람이 어떻게 이사장님이었을까?”
“언제 생각해도 신기하지.”
“응, 매번 얘기하는데도 신기해!”
반복되는 이야기였지만 언제 꺼내도 즐거웠다.
그사이 음식이 나왔다.
“오오, 나왔다!”
“먹어보자.”
맛을 보는 두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본사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할 만큼 뛰어난 요리였다. 느긋하게 먹는 사이 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어엇?”
전부 RS재단 외부 직원이었다. 그들은 이미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김만호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팀장님도 오셨네요!”
“오, 근처에 있었나 봐요?”
“네, 하하.”
“여기 본사만큼 맛있으니 어서 드세요. 저희는 거의 다 먹었거든요.”
“오, 기대되는데요?”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은 음식을 깨끗하게 비웠다. 이후 두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 느긋하게 건물을 구경했다. 6, 7층에 오르자 RS라 적힌 문구가 여기저기에 보였다.
“어? 스포츠마사지도 있는데, 오빠?”
“오, 대박! 여긴 VR오락실도 있어.”
“와……!”
“스크린 골프장이랑 헬스장도 있고.”
“끝내준다, 그치?”
“어, 미쳤어. 진짜.”
“오빠.”
“응?”
“우리 마사지 받고 가자!”
“어…… 그럴까? 안 그래도 몸이 조금 무겁긴 했는데.”
“가자, 가자!”
두 사람은 웃으며 내부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아, 네. 저희 둘 다 RS재단 직원인데요.”
“사원증 확인 가능할까요?”
“여기요.”
“잠시만요. 네, 확인되었습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여기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고 나오면 5, 6번 족욕기에서 다리부터 마사지하고 이후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생각보다 전문적이어서 기분이 들떴다. 마사지 비용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족욕기 앞에 앉아 따뜻한 물에 발을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오전에 힘들게 돌아다녔던 피로감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오빠, 기분이 좀 요상하지 않아?”
“응? 발바닥이?”
“아니, 그거 말고. 지금 이렇게 마사지 받는 거 말이야.”
“아아, 그렇지, 아무래도. 뭔가 일하던 중에 이러니까 일탈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려나. 고등학교 다닐 때 야자 째고 도망쳐서 친구랑 놀던 그런 기분?”
“오오, 맞아. 딱 그거네.”
10분 정도 발을 불리자 마사지사가 와서 물을 닦아냈다. 이후 시원한 수건으로 발 온도를 낮추고서 지압을 해줬다. 그제야 얼마나 발에 피로가 쌓였던 건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흐어…….”
엄청나게 시원했으니까.
꾸욱, 꾸욱.
발 마사지를 충분히 받고서 마사지사가 둘을 안내했다.
“방으로 들어가실게요.”
“아, 네!”
같은 방에 들어가 본격적인 스포츠마사지가 시작되었다. 뭉친 근육이 풀리면서 전신이 나른해졌다.
여기가, 천국인가.
1시간이란 시간이 정말 찰나처럼 흘러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버, 벌써요?”
“하하, 네. 1시간 타이머 울렸거든요.”
“수고하셨습니다.”
마사지사가 나가고 둘이 몸을 일으켰다.
“흐아, 대박. 몸이 엄청 가벼워.”
“후우, 난 한숨 자고 싶을 정도긴 한데. 좋긴 하네.”
그러다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마음 같아선, 쉬고 싶지만.
“그래도, 나머진 다음에 해보자. 스크린 골프랑 VR오락실이랑.”
“그래야겠지?”
“응. 이제 일하러 가야지. 지금도 후원 신청하고서 언제 연락 올까,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으으. 그런 말까지 들었으면 더 못 쉬지.”
“미안.”
“오빠가 왜 미안해. 나도 좋아서 하는 일인데.”
“하하…….”
“빨리 가자!”
건물에서 나온 둘은 웃으며 헤어졌다.
“저녁에 봐!”
“그래. 운전 조심하고.”
다시 바쁘게 움직일 때였다.
* * *
매일매일이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성연아, 그녀에게는 더더욱.
“우리 딸, 또 너튜브 댓글 보는 거야?”
“응! 완전 재밌거든.”
“오늘은 또 뭐 새로운 거 달렸고?”
“글을 너무 잘 쓴대!”
“어머, 그래?”
“그리고 나보고 예쁘다는데……?”
“어휴, 그럼. 우리 딸이 얼마나…… 얼마나 예쁜데, 그럼. 근데 우리 딸이 예쁘단 게 아니라 글자가 예쁘단 게 아닐까?”
“……와, 엄마. 진짜!”
“농담이야, 농담.”
“크흠, 아무튼 좋아!”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댓글을 잘 안 보게 되었다.
긴장되었으니까.
이제 곧 수상자 발표가 공지로 뜬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이지?”
“으응.”
“많이 긴장되나 봐.”
“그냥 입상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긴장이 많이 되나 봐. 엄청나게 두근거려……!”
그녀의 엄마가 성연아를 꼭 끌어안았다.
“입상 못 해도 괜찮아.”
“……그래도.”
“우리 딸,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거면 충분해.”
“으응…….”
괜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오후 2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공지사항이 떠올랐다.
두근, 두근.
조심스럽게 수상자 명단을 클릭했다.
<캘리그라피 공모전 당선자 발표>
그 아래로 대상이 가장 먼저 보였다.
생각했던 대로였다.
“역시, 장춘복 대가님!”
이윽고 최우수상도 마찬가지였다.
김만길 대가가 차지했다.
남은 최우수상 자리는 누가 차지했을까 싶어서 스크롤을 살짝 내린 순간이었다.
“어……?”
성연아가 눈을 끔뻑거렸다.
<대상 - 장춘복>
<최우수상 - 김만길>
<최우수상 - 성연아>
<최우수……>
다시 확인해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뭐, 뭐야, 이게……?”
너무 놀라 한참이나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뒤늦게 어머니가 다가와 최우수상에 오른 그녀의 이름을 보면서 만세를 질렀다.
“아이고, 우리 딸. 장하다!”
“나, 진짜 최우수야?”
“그럼, 여기 있잖아! 동명이인도 없고!”
“아…….”
스스로의 재능을 몰랐던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주 조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