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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260화 (260/277)

돈과 재능이 쏟아져 260화

164. 판매 시작(2)

사진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 성삼전자 부회장을 다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오랜만일세.”

“예, 반갑습니다. 부회장님.”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부회장은 확실히 남들과 달랐다. 덩치는 왜소한 편이었으나 눈빛에서 뿜어지는 강력한 힘이 자연스레 그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대상 수상자가 재단 이사장이라니, 재밌구만. 어쩐지 그날 자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군.”

“어땠습니까, 그때의 저는.”

“지금과 비슷했네.”

“그런가요?”

“그래, 당당하다고 해야 할까.”

류성은 그런 부회장 앞에서도 당당했다.

긴장은 되지만.

그렇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문득 그날.

부회장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그 말에 부회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 그때 중얼거렸던 내 말을 들은 모양이군.”

“네, 맞습니다.”

“여전히 재밌는 친구야.”

“감사합니다.”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서 류성은 준비해 온 상자를 건넸다.

“그리고, 이건 선물입니다. 꼭 직접 전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선물이라?”

상자를 받아든 부회장이 눈을 반짝였다.

“갓 샷? 요즘 유명한 그 커피 아닌가?”

“맞습니다. 다만, 이건 레드 갓 샷이라고 일반적인 갓 샷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지?”

“더 맛있고 체력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허허, 커피가 말인가?”

“네.”

“정말로 체력에 도움이 된다, 그 말인가?”

“맞습니다.”

어쩐지 단호한 듯한 대답이었다.

아니, 확신이 서린 느낌이랄까.

부회장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말이니 그렇게 생각하고 잘 마시겠네.”

“감사합니다.”

“신기한 인연이야. 사진 공모전으로 만났고 또 그렇게 이어질 거라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어. 이제 RS재단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더 적지 않은가.”

“과찬입니다.”

“요즘 자네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고 있네. 나도 관심이 있고. 앞으로 종종 보면 좋겠군.”

“저야 영광이죠.”

마침 미리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일단 먹지.”

“예.”

흰쌀밥에 다양한 나물, 그리고 고등어구이와 찌개로 이뤄진 정갈한 한식이었다. 먼저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었다.

어……?

씹는 순간 퍼지는 고소한 단맛.

밥이 이렇게 맛있었나?

이어서 숙주 무침을 먹었는데 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입안을 맴도는 감칠맛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입에 맞는 모양이군.”

“아, 네. 너무…… 맛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전직 청와대 요리사가 차린 식당이야.”

“아…….”

“밥도 반찬도, 평범하진 않지.”

“진짜 놀랐네요.”

이런 단순한 반찬을 먹으면서 웃음이 터질 줄이야.

오물오물-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시금치는 특유의 향이 마약처럼 퍼졌고 석박지는 시원한 맛과 감칠맛 넘치는 양념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후아……!”

찌개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한 그릇만 더 먹겠습니다.”

“좋지.”

부회장은 깔끔하게 한 그릇으로 끝났고 류성은 두 그릇을 먹었다. 배는 엄청나게 불렀지만 조금 더 먹고 싶다는 욕구가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먹는 건 무리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갓 샷을 마셨던 사람 대부분이 이런 심정을 느꼈던 게 아닐까 하고.

대리 체험이었네, 나름.

고개를 들어 부회장을 쳐다봤다.

이 사람은 어떨까.

이런 식사를 매번 하는 부회장이 ‘레드 갓 샷’을 마시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졌다.

“잘 먹었습니다.”

“나도 잘 먹었네.”

“부회장님, 제가 드린 선물이 마음에 들어서 더 필요해지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더 필요해진다?”

“예.”

“그럴 일이 있을까 싶군.”

“맛이 정말 좋거든요.”

“내 입맛은 자네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네.”

“그럼 연락을 더 기다려야겠네요.”

“허허, 괜한 기대는 실망을 부르는 법이야.”

“실망할 거 같진 않습니다.”

“그 정도인가? 내가 자네에게 꼭 연락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커피가 맛있다고?”

“네. 자신 있습니다.”

“이러면 나도 기대하지 않겠어? 괜히 내 기대감을 높여봐야 좋을 건 없을 텐데 말이야.”

류성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자넨 여전히 독특하군.”

“칭찬 감사합니다.”

“젊은 친구와 말이 통할까 조금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시간이었어.”

“저도 즐거웠습니다.”

둘은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각자의 일터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조금 늦게 잠이 들어 아침이 피곤했다.

“몸이 무겁군.”

나이가 든 까닭이겠지만.

알고 있어도 싫었다.

몸이 서서히 죽어간다는 이 느낌이 말이다.

“후우.”

문득 어제 선물로 받은 커피가 생각났다. 어찌나 자신만만하던지. 궁금한 마음이 컸기에 오늘 아침은 그 커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냉장고에서 ‘갓 샷’을 하나 꺼내어 거실 안락의자에 앉았다.

거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

날씨가 맑은 덕분인지 오랜만에 경치가 좋았다.

타악-

캔 뚜껑을 따자 향이 올라왔다.

“호오.”

거기서 조금 감탄했다.

향이 좋았으니까.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맛있는 커피만 마셔왔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원두, 특색 있는 원두, 흥미로운 맛이라 칭해지는 대부분을 말이다. 심지어 실력 있는 바리스타가 내리는 커피를 주로 마셨다. 웬만해서는 결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과연 맛은 어떨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후르릅-

입안에서 한 바퀴 굴리며 원두의 맛을 조금 더 느껴보기 위해 애썼다.

꿀꺽.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뇌리를 강타했다.

“음……?”

그냥 갓 샷이 아니었다.

체력 강화 물약이 들어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갓 샷이었다. 시스템의 힘이 깃든 그 맛은 부회장으로서도 느껴본 적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맛의 역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최초.

더불어 최고의 맛이 혀를 농락했다. 정신이 번쩍하고 들었다.

“……맛있군.”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 * *

물량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사회가.

아니,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이 오랜만에 한마음이 되어 외쳤다.

“하, 이건 아니지 않냐?”

“진짜, 이건 아니지.”

“그치? 너무 소량이잖아!”

“동네 편의점에 갔는데 5시간 기다려서 1캔도 못 샀다니까.”

“미친.”

“하, 근데 아는 사람이 두 캔을 샀더라고. 그래서 2만 원 주고 1캔 받았거든?”

“마셔봤냐, 그래서?”

“어, 마셔봤지.”

대답한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하, 그게…….”

“맛없어?”

“아니, 더럽게 맛있더라.”

“이야, 그 정도냐?”

“어, 미쳐, 이건 미친 맛이라니까.”

“가격도 비싼데?”

“야, 난 2만 원 주고 샀는데도 대만족이었다니까. 다른 거에 쓰는 돈 줄이고 그 돈 주고 갓 샷 마시려고. 근데 그래서 더 짜증이 솟구치더라니까. 지금 미치게 마시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 어느 편의점을 가도 갓 샷이 없다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러했다.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호기심에. 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다시 한번 마셔보고 싶은 욕심에.

[갓 샷, 물량이 너무 적어……!]

[RS음료, 갓 샷은 만드는 방법 자체가 오래 걸려……]

[애초에 갓 샷은 프리미엄 커피!]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량에 사람들 불편 호소]

[제조 공정이 부족해……]

[갓 샷, 그렇게 맛있나?]

[불어닥치는 갓 샷 열풍, 도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그렇게 모두가 외쳐댔다.

갓 샷을 더 달라고.

류성은 그런 게시글과 인터넷 기사를 보며 고민에 휩싸였다.

“반응이 엄청나네. 대량 생산을 해야 하나.”

사실 처음 기획했던 건 건강한 프리미엄 음료였다. 그러다 선물용 커피를 만들면서 그게 어느새 대세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커피를 프리미엄화시키는 방향을 잡았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프리미엄 커피는 ‘갓 샷’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진짜는 레드 갓 샷이니까.”

체력 강화 물약을 사용한 만큼 맛과 건강을 모두 챙기는 진정한 프리미엄 커피가 존재했다. 그렇기에 일반 ‘갓 샷’은 대량으로 생산해도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예, 이사장님.

“의논할 게 있어서요. 뵐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럼 제가 공장으로 가죠.”

-아, 네. 알겠습니다!

확신을 위해 RS음료 사장, 김상수를 만났는데 그의 표정이 상당히 밝았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하하, 딱히 그런 건 아니구요.”

“그럼요?”

“요즘 제가 레드 갓 샷을 매일 마시고 있잖습니까. 덕분에 체력이 많이 좋아진 느낌이어서요.”

“아아.”

“마누라가 절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고요. 어느 순간부터 아침을 안 차려줬었는데 요즘은 아침도 잘 챙겨주지 뭡니까. 대우받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거기에 활력도 넘치니 일도 잘되고 기분도 좋아지고. 뭐, 그런 상태입니다. 전부 이사장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갓 샷 덕분이죠.”

“그걸 이사장님이 만드신 거니까요.”

“비행기 그만 태우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희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뛰어난 모양이었다.

“그보다 의논할 게 있으시다고요?”

“네.”

“뭐든 물어보십시오.”

“흐음, 현재 제조 중인 갓 샷이요. 그거 공정만 추가하면 대량 생산도 가능하겠죠?”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죠.”

류성은 틈틈이 생각해 왔던 갓 샷을 명확하게 구분 짓기로 했다.

“앞으로 일반 갓 샷과 프리미엄 갓 샷으로 분야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일반 갓 샷을 위한 공정을 추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또한, 프리미엄 갓 샷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생각입니다.”

“세 가지라면……?”

“체력에 도움을 주는 레드 갓 샷. 피로 회복을 돕는 블루 갓 샷, 마지막으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그린 갓 샷. 이렇게 세 가지 프리미엄으로 구분 지으면 될 거 같군요.”

“아……?”

블루 갓 샷과 그린 갓 샷은 김상수 사장도 처음 듣는 거였다.

“엄청나군요.”

“네, 이 정도면 일반 갓 샷은 대량으로 판매해도 프리미엄 커피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가격은 어떻게 할까요?”

“일반 갓 샷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15,000원으로 하고 프리미엄 갓 샷은 일단 미정으로 하죠.”

“미정 말입니까?”

“조금 더 상황을 보고 정해봅시다.”

“알겠습니다.”

희석을 많이 하겠지만 그래도 효과를 생각한다면 한 캔에 수십만 원도 아주 싸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건 류성의 기준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구매해서 마시려면 과연 얼마가 되어야 할까.

“흐음.”

그렇다고 서두를 생각은 없었다.

조급할 이유가 없지.

프리미엄 커피인 만큼 정말 소량만 만들 생각이었고 값도 제대로 받을 작정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일반 갓 샷, 제조 공정부터 최우선으로 처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취미로 소소하게 하려고 했던 사업이 커져 버렸다.

그래도, 뭐.

솔직히 이렇게 인기를 얻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외면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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