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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263화 (263/277)

돈과 재능이 쏟아져 263화

166. 이사

류성은 지방에 있는 A보육원에 들렀다.

“여기가 마지막인가요?”

“네, 이사장님.”

“어떤지 한번 봅시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놀란 걸까?

움찔거리며 숨는 아이가 몇 명 보였다.

“으음.”

얼핏 봐도 너무 많이 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령을 비롯한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질렀다는 건 알고 있었다. 거기에 심지어 밥도 제대로 먹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해당 사태에 죄를 지은 이들은 지금 송치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여론도 그렇고 권력을 지닌 이들이 뒤를 봐주고 있으니 아마 제대로 처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열이 뻗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우…….”

그러나 이곳엔 아이만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화를 낼 대상이 없었다.

마음을 삭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건물 구석진 곳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바닥을 긁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뭘 하는 거지.

궁금한 마음에 소년에게 다가갔다.

“안녕?”

“안녕하세요오.”

“혼자서 재밌는 거라도 하니?”

“자, 잘못했어요.”

“응?”

“그림 안 그릴게요…….”

류성은 미간을 찌푸리려다 참았다.

웃어야지, 이럴수록.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의 그림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았다.

“그려도 돼. 이야, 그림 잘 그렸네. 늑대인가?”

“……돼지요.”

“아, 그래? 오, 맞네. 돼지네.”

여전히 늑대처럼 보이긴 하지만.

기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조금만 더 배우면 훨씬 멋지겠는데?”

“정말요?”

“응. 혹시 그림 제대로 배워볼래?”

“저…… 안 혼나요?”

“그럼. 당연하지.”

소년이 한참을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고 싶어요.”

“그래, 배워보자. 앞으로 뭐든 다해줄게.”

그 말이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참으로 예뻤다.

“자, 그럼 일단 들어갈까? 친구 소개 좀 해줄래?”

“네에!”

소년 덕분에 조금 더 쉽게 아이와 친해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더 쉽게.

그렇게 힘든 생활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어른 앞에서 경계심을 순식간에 풀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앞으로 재밌게 지내보자.”

“네에!”

이제 더는 힘든 생활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 테니까.

힘들었던 만큼 앞으로의 생활은 더없이 즐거울 것이다.

* * *

요즘 들어 집에 고장 나는 부분이 늘어났다.

“오빠, 화장실 환풍기 또 멈췄어.”

“아, 그래?”

“응. 어우, 냄새나!”

환풍기를 수리한 게 지난달이었는데 또 고장이 나버렸다. 고장이 났다는 화장실 문을 열자 하수구 냄새가 느껴졌다.

“쩝, 확실히 아파트가 좀 오래되긴 했네.”

여기저기 고장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사를 가야 하지 않나 싶었다.

정든 집이긴 하지만.

사실 금천구라는 동네가 썩 좋은 건 아니었다. 주거지 대부분이 노후화되기도 했고 아버지 직장이나 RS재단, 그리고 동생들의 대학교와도 거리가 멀었다.

“흐음.”

머지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면서.

류성은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엄마.”

“음?”

“왜 그러니, 아들?”

“좀 더 좋은 동네로 이사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류성의 질문에 어머니가 눈을 빛냈다.

“이사 말이니?”

“응, 여기 좀 오래됐잖아. 여기저기 고장도 나고 위치도 애매하고.”

“너무 좋지.”

“아버지는요?”

“음. 나는 뭐, 상관없다.”

아버지의 덤덤한 반응이 어머니가 어깨를 때렸다.

쫘악-

생각보다 타격 소리가 컸다.

“크흠, 아퍼.”

“아프라고 때린 거야! 당신 회사도 멀잖아.”

“조금 멀기야 하지.”

“그러니까.”

류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동생을 쳐다봤다.

“오빠…….”

“형.”

류현아와 류환 두 사람 전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중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발 이사 좀 가자는 의미이리라.

“용산공원 근처에 신축 아파트 하나 작년에 지어진 게 있더라고요.”

“아, 거기 말이냐.”

“네. RS재단이랑도 가깝고 이 녀석들 대학교도 가깝고. 아버지 회사랑도 훨씬 가까워지고요. 그 정도 위치면 괜찮지 않나 싶어요.”

“용산…… 좋지.”

“그럼 이번 주말에 거기 아파트 한번 보러 가요.”

“크흠, 그러자.”

아버지의 확답에 가족 모두 환하게 웃었다.

“대박, 거기 완전 좋다던데!”

“한강도 보일걸?”

“공원도 지어진 지 얼마 안 됐잖아. 주한미군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그 엄청난 부지가 전부 공원으로 지어진 거니까.”

“진짜 크던데…….”

“용산구 절반 크기는 될걸?”

“대박!”

실제로 용산공원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아파트 뷰도 좋을 테고.

여러모로 괜찮을 거 같았다.

“으, 주말 빨리 와라!”

가족 모두가 주말을 기다렸다.

* * *

토요일 아침을 먹고 바로 온 가족이 용산으로 향했다.

“이촌역 근처구나.”

“네. 조용하니 한강도 가깝고 바로 옆에 용산공원이고.”

“크흠, 좋긴 좋구나.”

특히 눈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참으로 멋있었다.

“와, 대박!”

“저기 옆에 용산 센트럴파크보다 더 멋있는데?”

“미쳤다, 진짜!”

“와, 단지 조경도 끝내주는데?”

류현아랑 류환이 특히 좋았다.

물론 그에 못지않게 부모님도 즐거워했고.

“좋긴 좋네.”

류성도 한껏 신이 났다.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단지를 걸어 다니면서 아파트를 구경하는 사이 미리 연락을 해뒀던 공인중개사가 등장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음, 사전에 가장 넓은 평수로 고층 한강 뷰랑 고층 공원 뷰를 보여달라고 하셨는데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그럼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예, 아버지, 가요.”

“그래, 가보자.”

가족과 함께 105동 고층으로 올라갔다.

“우와, 37층!”

“하하, 네. 39층까지 있으니 로얄층입니다.”

“오오오!”

류현아와 류환이 오버하면서 뷰를 감상했다.

“미친, 대박!”

“와씨……!”

“먼저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거실입니다. 바로 앞 한강을 시작으로 대교 건너서 관악산, 청계산이 멋지게 늘어서 있죠. 한눈에 봐도 아주 아름다운 뷰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뷰가 정말 좋구나.”

“당신도, 참. 좋은 게 아니라 끝내주는 거지.”

“크흠, 끝내주네.”

“아들은 어때?”

류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말 뷰가 장난 아니었다.

50평이 넘어서 공간도 여유로웠고 집 내부 곳곳을 찬찬히 살펴봤는데 솔직히 흠잡을 게 없었다.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네.”

충분히 살펴보고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107동 용산공원 뷰입니다. 최고층이고요.”

“최고층이라면, 39층이요?”

“맞습니다. 마지막 층이라 유일하게 테라스도 넓게 잘 빠져있는 방입니다.”

“오호, 좋네요.”

하지만 실제로 보니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일단 뷰부터 압도적이었다.

“한강 전망도 예쁘긴 합니다만 이쪽도 만만치 않죠. 최고봉은 저 멀리 늘어선 북한산이고요.”

“와…… 저게 북한산이었군요.”

“네, 보러 오시는 분들이 다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는데요?”

류성은 일단 뷰에 꽂혔다. 특히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이 압도적이었다. 조금 더 앞에 보이는 인왕산과 북악산도 장관이었다.

다만 그 뒤를 수놓은 거대한 북한산이 너무 대단했을 뿐. 가족과 함께 뷰를 감상하다가 몸을 돌렸다.

“테라스는 어디일까요?”

“이쪽입니다.”

이번엔 테라스에 반해 버렸다.

“와, 이게 테라스라고요?”

“하하, 네.”

“그냥 마당인데요?”

“아주 넓게 잘 빠진 거로 유명합니다. 나무 데크도 잘 깔려 있고 인조잔디라 관리가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집을 세심하게 확인하고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음, 난 아주 마음에 들더라.”

“엄마는?”

“너무 좋더라. 정말 꿈에 그리던 집이었어.”

류현아, 류환이야 당연하다는 듯 엄지를 들었다.

“최고야, 오빠!”

“형, 제발…….”

류성은 가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여기로 계약할게요.”

“그러자. 근데 부담되는 건 아닌가 싶다.”

“전혀요.”

“크흠, 그럼 고맙게 받으마.”

류성은 공인중개사에게 향했다.

“지금 계약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그럼 빠르게 진행하시죠.”

“예,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가계약을 치르고 며칠 뒤 본계약까지 진행했다. 이후 이삿짐센터를 불러 완전 포장으로 깔끔하게 이사도 끝마쳤다. 가전제품도 새 걸로 바꿔버리니 인테리어까지 단번에 완성되었다.

그저 이사만 했을 뿐인데.

집안 분위기가 한결 더 화사해졌다.

대화도 더 많아졌다.

집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엄마, 나 친구 불러도 돼?”

“마음대로 해.”

“아싸! 그럼 이번 주말에 부를게!”

“그래, 맛있는 거나 먹여야겠네.”

“엄마 최고!”

류현아와 류환이 차례대로 친구를 불렀다.

“와, 대박……!”

“너무 좋다.”

다음엔 부모님 지인분들이 찾아왔다.

“허, 집이 너무 좋은데?”

“이야……!”

한동안 그렇게 집들이가 이어졌다.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 * *

오랜만에 작사가 류성이 이름을 알렸다.

-이번에 마이유 음반에 류성 작사가님이 곡을 무려 3개나 썼네요

-성숙시대 음반도 나왔잖아요!

-엥? 설마...?

-ㅋㅋㅋ거기도 곡 1개 있어요!

-와, 대박...ㅋㅋ

-심지어 이번에 데뷔한 RS엔터 신인 아이돌 곡도 작사했더라고요

-노래 나왔어요?

-나왔죠ㅋㅋ

-어떰?

-노래 완전 좋아요ㅎㅎ

-크, 역시!

음원 차트 1위부터 20위 사이에 존재하는 스무 개의 곡 중에서 류성이 작사가로 참여한 곡이 무려 5개였다.

-몸이 몇 개인 거죠?

-RS재단도 엄청 활발하게 후원활동 하던데...

-다음 공모전 또 준비 중이시고요

-캘리그라피도 보니까 엄청 많이 팔렸던데요? 업무 연계도 상당하고

-크, 부럽,,,!

-다음 공모전은 뭘까요?ㅋㅋ

-작곡해주세요ㅠㅠ

-오, 작곡 좋을 듯!

-음? 작곡?

-얼레? 듣다 보니까 진짜 좋아 보이네ㅋㅋ

-오오, 가즈아아!

-작곡에 이사장님이 직접 가사 써주면 굿?

-굿, 나이스!

-무조건 이거다ㅋㅋㅋ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곡을 즐겼다. 노래 그 자체로 좋아해 주는 건 물론이고 가사를 깊게 음미하는 이들도 꽤 늘어났다.

-크, 가사 퀄리티ㅠㅠ

-예전 감성 느껴져서 더 좋아요!

-아, 맞네요! 예전 감성!

-계속 가사 써주세요ㅎㅎ

류성은 게시판의 글을 읽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원하신다면야.”

솔직히 영감을 쏟아내는 일종의 취미기도 했으니 멈출 이유가 없기는 했다.

재밌기도 하고.

이렇게 음원에 한 곡, 한 곡 쌓여가는 걸 보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으음.”

지금도 영감이 떠올랐다.

오늘의 주제는 여유.

최근 크게 바쁜 일도 없어지고 재단도 안정화에 접어들면서 한결 여유로워졌다. 이사도 하고 가족과 더 화목해진 기분도 들고. 그래서인지 여유라는 주제에 행복을 더해보기로 했다.

가사가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진심이 담긴 글귀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절이 완성되어 있었다.

“괜찮네.”

조금만 가다듬고 2절까지 완성시킨 뒤에 RS엔터에 보내놓기로 했다. 부대표가 적절하게 사용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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