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65화
168. 모금(1)
술과 노래, 그리고 여자. 그 모든 걸 옆에 낀 채로 얼음이 담긴 고급 양주를 들이켰다.
“크흐으으.”
빈 잔을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으며 소파에 몸을 늘어트렸다. 거만한 눈빛으로 모든 것을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남성.
“아, 오늘따라 술맛이 영 별론데?”
대한민국 10위권에 속하는 대기업 회장의 재벌 3세, 유중렬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그건 아닌데. 좀 거슬리는 놈이 보여서.”
“허, 그래? 누군데? 내가 당장 밟아줘?”
“됐어. 일단 술이나 마시자고.”
“좋지.”
그렇게 한참 술을 마시면서 옆에 앉은 여자들을 품에 안았다.
“아이, 오빠아.”
“쓰읍. 가만 안 있냐?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운데.”
“아니, 뭐라고 한 게 아니구.”
“얌전히 있어, 오늘은.”
“알았어엉.”
그렇게 시간을 보냈지만 어쩐지 갈수록 기분이 더러워졌다.
“안 되겠다, 시발.”
“왜 그래?”
“계속 그 새끼 생각나서.”
“이야, 심하게 거슬리는구나?”
“어.”
“누군데, 도대체?”
“……RS재단.”
유중렬의 말에 그와 함께 놀던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거기?”
“어.”
“근데 거기 뭐 있냐? 어차피 재단이잖아.”
“그렇긴 한데, 거기 이사장이 우리나라 재벌 20위권에 올랐더라고.”
“에? 진짜?”
“어.”
“미친, 뭐지? 어떻게 한 거야?”
“무슨 개인 투자 자금만 2조가 넘는다고 하던데.”
“와, 실화냐? 뭔가 재수 없는데?”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어, 왜 거슬리는지 알겠다. 재단이나 운영하는 주제에 개인 자산이 2조라니. 뭔 헛짓거리를 한 거지? 얼마나 뒤로 돈을 남겨 먹은 거야? 미친놈.”
“아마 재벌이라도 된 줄 착각하고 있겠지.”
“어우, 선 넘는데?”
“뭐, 그래 봐야 재단이긴 하니까 일단 지켜보려고. 진짜로 선 넘으면 내가 직접 나설 생각이거든.”
“흐흐, 역시. 그때 나도 끼워줘라.”
“당연하지. 나중에 심심할 때 장난감 삼아서 가지고 놀면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고.”
“오, 좋지. 그래 봐야 결국 서민이니까 문제 될 것도 없을 테고. 재벌이 그냥 되는 줄 아냐. 돈만 있다고 재벌이 아니잖아. 그동안 우리가 걸어놓은 목줄이 몇 갠데. 우리 앞에서 벌벌 기는 정치인, 공무원, 판사, 검사, 변호사가 한 트럭이야. 슬쩍 찔러만 줘도 걔네들이 알아서 쓸어버릴걸.”
“크흠, 그렇지?”
“그렇다니까.”
속내를 풀어서인지 짜증이 좀 가라앉았다.
“아, 기분 좀 풀리네. 이거 용돈이나 해라.”
유중렬은 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수표를 허공에 던졌다.
“꺄아아악, 오빠!”
“오빠, 진짜 최고라니까!”
“어머, 이게 얼마야!”
벌레처럼 기면서 돈을 줍는 애들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 * *
잠에서 깬 황 노인이 상체를 일으켰다.
“으음.”
가만히 스스로의 몸을 내려다봤다.
이내 침대에서 일어났다.
샤워실로 향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확인했다. 예전에는 쳐다보는 것조차 싫었었는데.
“혈색이…… 좋구만.”
지난주부터 기침도 멎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라진 거라면 단 하나, 김상호가 구해준 그 묘한 프리미엄 커피를 2주째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띠리링-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김상호가 들어왔다.
“회장님,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몸은 좀 어떠십니까?”
“지난주부터 계속 묻는구나.”
“죄송합니다.”
“뭐…… 괜찮다. 아니, 좋아.”
황 노인의 말에 김상호가 밝게 웃었다.
“제가 보기에도 좋아 보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구나.”
“뭐든 하셔도 됩니다.”
“묘하게 힘이 나.”
“그렇습니까?”
“그래. 어쩐지 생기가 감도는구나. 기침이 멎고 몸도 가벼워졌어. 물론 그래 봐야 나이 든 노인네긴 하다만. 그래도…… 확실히 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
김상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커피 때문인 거 같습니다.”
“그게 말이…….”
말이 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황 노인이 직접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 안 되는 일이.
말이 되고 있다고.
그런 기적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이게, 가능한 게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안될 건 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예. 어떤 명약도 체질에 맞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체질에 맞는 걸 찾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체질에 맞는 명약이라.”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렇구나.”
“예.”
“상호야. 어떻게든 더 쟁여둬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RS재단에 선 하나 만들어보고.”
“선 말입니까?”
“그래, 우호적으로.”
“한 번 도와준 적이 있으니 어렵지 않을 거 같습니다.”
“좋아, 믿으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오늘은…… 산책이나 가자꾸나.”
황 노인의 말에 김상호가 눈을 크게 떴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얼마 만에 해를 보는 건지.
“하늘이 참 맑구나.”
“춥진 않으십니까?”
“따뜻하게 입어서 괜찮다. 그보다 해를 더 보고 싶은데.”
“적당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후후, 좋구나. 좋아.”
“그러게 말입니다.”
어쩐지 보너스 같은 삶을 얻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모은 돈들.
죽으면 어차피 사라질 것들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쓰고 싶어졌다.
* * *
개인 자산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면서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제, 우리 RS재단도 모금을 받을 생각이에요.”
“모금이요?”
“네. 사실 후원 문의가 많기는 했었잖아요. 다만 그 책임을 온전히 다하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서 거절했었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요.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저 선의로서 RS재단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마도 최근 보육원 사건에서 사람들의 한결같은 태도에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RS재단을 지지하고 믿는다는 무수한 댓글에 감동하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회의에 참여한 팀장급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인 거 같습니다.”
“저도 찬성해요.”
“너무 이사장님 개인 자금으로 운영되기는 했죠.”
“그렇죠. 대신 모금을 받기 전에 우리도 제대로 준비해야겠죠. 일단 직원을 더 늘리겠습니다. 특히 모금을 받기 시작하면 전화도 많이 걸려올 테니 고객센터 직원도 더 고용해야겠고요. 건물 자체 경비 시스템이랑 경비 인력도 늘리겠습니다. 외에도 대형 세무법인과 연계를 하고 모든 후원 내역을 낱낱이 공개…….”
해야 할 일을 나열하고 그것들을 각 팀에 부여했다.
“그럼 다음 달 내로 마무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모든 지시사항이 이행된 것이다.
단 3주일 만에.
사실 가장 오래 걸린 게 직원채용이었고 나머지는 1주 만에 끝났었다.
“덕분에 모금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네요.”
“오늘인가요?”
“네, 부사장님. 바로 공지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RS재단에 공지사항이 올라갔다.
모금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그저 스쳐 갈 해프닝이었으리라.
하지만 RS재단은 달랐다. 재단의 행보를 꾸준히 주목하는 많은 사람이 다수 존재했다.
덕분에 해당 소식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헙, 여러분! 대박 사건, 빅 뉴스입니다!
-오? 뭔가요?
-RS재단에서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뭐죠?ㅋㅋㅋ
-아, 빨리 말해주세요ㅎㅎ
-혼납니다?ㅋㅋㅋ
-드디어! 모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헉, 정말요?
-네! 공지사항으로 떴어요!
-와우, 대박! 와... 진짜 소액이지만 RS재단만큼은 후원하고 싶었거든요ㅠㅠ
-저두요ㅠㅠ 큰 금액은 아니겠지만...
-크, 어서 주변에 알려야겠네요ㅎㅎ
곧이어 각종 게시판에 해당 소식이 전해졌다.
인터넷 기사도 떴다.
[RS재단, 드디어 모금 받기 스타트!]
[RS재단, 지금까지 모금을 받지 않은 이유는?]
[RS재단의 모금액은 과연……?]
[드디어 국민과 함께하려는 RS재단의 행보?]
[주목받는 RS재단, 모금액으로 어떤 후원을 할 것인가?]
[RS재단의…….]
하나같이 조회수가 높았다.
댓글도 많았고.
전부 긍정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일부 너튜버들도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생방송 중에 해당 소식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을 제가 먹방을 하면서 전달할 수 있게 되다니, 영광스럽네요. 자자, RS재단에서 모금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거든요? 오늘 시청자 여러분이 후원하는 금액 전부 재단이 모금하도록 할게요. 추가로 같은 금액만큼 제 사비까지 더하겠습니다!]
특히 호양TV가 앞장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후원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와, 또 이런 날이 오네요. 여러분들,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꼭 이럴 때만 후원 많이 하시더라고요? 아, 오늘 또 죽겠네, 죽겠어!]
엄살을 부릴수록 후원금은 커졌다.
[그, 그만, 그만!]
벌써 7천만 원이 넘어갔다
상상을 초월했다.
재미가좋아 : ㅋㅋㅋㅋㅋㅋㅋ
포스 : 엌ㅋㅋㅋㅋ
1년간 : 개꿀잼ㅋㅋㅋㅋ
안 그래도 후원할 생각이었는데 추가로 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호양TV에 시청자가 엄청나게 접속을 해버린 까닭이었다.
펩시짱 : 내가 소문냈지^^
밤빵 : 안 그래도 재단에 모금할 생각이었는데 기왕이면 1+1이 낫잖아요?ㅎㅎ
후원이 계속 쏟아지고 어느새 1억 원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와, 씨. 진짜 그만이요. 안 돼요, 저 죽어요! 어우, 포기입니다, 포기! 여러분 전 재산 전부 털리기 전에 생방송 여기까지만 할게요. 다음에 봐요!]
결국 호양TV는 평소보다 훨씬 이르게 생방송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 * *
RS재단의 모금 소식은 하루가 지나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와ㅋㅋㅋㅋㅋ
-하루만에 모금액 711억 원ㅋㅋㅋㅋㅋ
-우리나라가 이 정도였어요?
-어우, 어마어마하네요ㄷㄷ
-심지어 첫날이라 모금 안 한 사람이 훨씬 많을걸요?
-ㅇㅈ합니다ㅋㅋ
-한 달만 지나도...ㄷㄷ
과연 얼마나 많은 모금액이 쌓일까.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모금액 1,352억 원.>
<모금액 1,639억 원.>
<모금액 2,031억 원>
<모금액 2,395억……>
1주일이 지나자 모금액은 3천억 원을 가볍게 넘겼다.
과연 어디까지 돈이 쌓이는지를 떠나서 이제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그 부분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씩 튀어나왔다.
[RS재단, 모금액 어디에 사용할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저 신뢰를 보낼 뿐이었다.
-어휴, 기레기^^
-알아서 잘 쓰겠죠ㅋㅋㅋ
-맞습니다ㅎㅎ
-이런 거 언론에 휘둘리지 말자고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해주길!
-RS재단, 믿습니다!
RS재단은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RS재단, 한부모 가정 지원하기로 결정!]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한부모 가정은 200만 가구를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상대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한부모 가정이 무려 50만 가구에 육박한다는 충격적인 조사에 따라, RS재단은 양육비를 받지 못한 모든 한부모 가정에 후원금을 지급하기로…….]
관련 단체방과 게시판에 해당 글이 올라왔다.
-와, 한부모 가정 후원금 지급!
-50만 가구...ㄷㄷ
-10만원씩만 지급해도 얼마죠?
-500억이요ㅋㅋ
-근데 지금 RS재단 1주일 모금액이 3천억이니까ㅋㅋ
-오오, 그러면 정말 괜찮게 지급할 수 있겠네요
-한 30만 원?
-더 할 수도 있고요ㄷㄷ
-크흐, 역시 리스펙ㅠㅠ
그게 끝이 아니었다.
[RS재단, 이미 보육원을 졸업한 대학생과 사회에 안착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특별 후원금 전달키로 결정! 그들은 버팀목 없이 세상에 홀로서기 한 사람들! 충분히 보답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혀.]
단발성이긴 하지만 특별 후원금을 뿌리기로 했다.
-ㅠㅠ진짜 홀로서기 한 사람들 전부 존경합니다
-특별 후원금ㅠㅠ 너무 좋네요
-내가 낸 돈이 이렇게 어디에 쓰이는지 보이니까 뭉클하네요
-저두요ㅠㅠ
-심지어 쓰는 족족, 명세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ㅋㅋ
-크, 리스펙합니다!
-역시 RS재단은 믿을 만하죠ㅋㅋ
-이런 일을 지금까지 이사장님 개인 자금으로 해왔다니...ㄷㄷ 그렇게 후원을 하고서도 우리나라 자산 서열 21위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와, 대박...!
-돈이 진짜 많군요ㄷㄷ
-투자의 신이기도 하니까요ㅋㅋ
-그래서 더 믿음이 갑니다!
-기분 좋네요ㅎㅎ
-저는 모금 조금만 더 해야겠네요
-감동ㅠㅠ
이 또한 큰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