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66화
168. 모금(2)
류성은 오늘 입금된 모금액을 확인했다.
평소보다 금액이 컸다.
모금액은 꾸준히 줄어들다가 100억 정도에서 유지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1,120억 정도가 들어왔다. 한 곳에서 무려 1,000억 원을 보낸 덕분이었다.
“캐시론 캐피탈이라.”
기업의 이름으로 보낸 금액이었다.
대단한 곳이네.
이만한 거금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놀라운 마음이 컸지만 기쁨도 컸다. 후원에 진심인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줄은 몰랐으니까. 이 돈은 또 어디에 써야 할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흐음.”
덕분에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레 머금어졌다.
뭐랄까.
상상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다.
모금을 받기 시작한 이후 RS재단의 후원은 분명 몇 단계를 뛰어넘었다. 그간 하고 싶었던 후원이 많았는데 모금액이 어느 정도 유지만 되어도 마음껏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계획만 세우고 자금적으로 문제가 되던 대부분이 해결될 테니 말이다.
특히 한부모 가정.
워낙 가구 수가 많아서 엄두도 나지 않았었는데 후원 덕분에 길이 열렸다.
“진즉 받을 걸 그랬나.”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이제라도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앞으로의 후원을 정리하고 있는데 부사장이 사내 전화를 연결해왔다.
-이사장님, 캐시론 캐피탈에서 연락이 왔어요.
“캐시론 캐피탈이요?”
-네. 그, 오늘 1,000억 원을 후원한 곳이더군요.
“아, 네. 저도 확인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음, 일단 전화 연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곧이어 통화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캐시론 캐피탈의 본부장 김상호라고 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번에 저희 회장님께서 기부금을 크게 보내셨습니다.
“네, 마침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순간 류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후원하고 부탁이라?
안 좋은 생각이 먼저 들면서 조금 짜증이 났다.
“먼저 말씀을 드리자면 해당 모금액을 사적으로 사용할 순 없습니다. 그런 부탁이라면 지금 당장 해당 금액을 전액 돌려드리겠습니다.”
-네? 아, 그런 부탁은 아닙니다.
“어, 그러면……?”
-저희 회장님이 몸이 좋지 않습니다.
“아, 네. 그런데요?”
-프리미엄 갓 샷을 마시면서 기력을 많이 회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염치없지만 해당 커피를 소량이라도 팔아줄 수 있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구하려고 했는데 많이 힘들더군요.
“아…….”
이런 부탁일 줄은 몰랐다.
“이거, 제가 괜히 오해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음, 회장님이 몸이 안 좋으시다고요?”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안 좋으신 거죠?”
-노화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으음.”
-꼭 좀 부탁드립니다.
몸이 안 좋다는데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1,000억 원이 적은 돈도 아니고.
해당 모금액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만 아니라면 이런 부탁은 솔직히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많이는 안 됩니다. 애초에 소량으로 제작하는 커피라서요. 기껏해야 한 달에 두 상자 정도가 한계일 겁니다.”
-두 상자면 20캔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뭐.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해당 모금액은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아, 연락처 하나 알려주시고요.”
-네. 제 연락처는…….
“제가 문자 하나 넣을 테니 그쪽으로 주소 보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문자를 보냈다.
바로 주소가 날아들었다.
류성은 해당 주소로 노화 회복 물약을 사용한 그린 갓 샷을 두 상자 보내기로 했다.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기력 소모에는 해당 커피가 가장 효과가 좋을 테니 말이다.
* * *
오늘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네 명이 전부인 작은 공장.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매주 돌아가면서 공장일을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일상이었다.
“엄마아아아!”
“오구, 그래. 혼자 심심했지?”
“응!”
“뽀뽀!”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을 보면 기운이 났다.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
매일 그렇게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배고프지? 밥 먹을까?”
“응, 배고파!”
“조금만 기다려, 금방 맛있는 거 해줄게.”
“히히. 좋아!”
냉장고의 문을 여는데 암담해졌다.
반찬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친정집에서 받아오는 김치와 스팸이 보였다. 애써 웃으며 아들을 쳐다봤다.
“오늘 스팸 김치볶음밥 먹을까?”
“응, 너무 좋아!”
“맛있게 해줄게.”
그렇게 김치와 스팸을 활용한 김치볶음밥을 완성했다. 정말 별거 아닌 음식이었고 지겹도록 먹는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맛있어, 엄마!”
“많이 먹어.”
사랑하는 아들과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때,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민이 엄마, 소식 들었어요?
“무슨 소식이요?”
-이번 달부터 RS재단에서 한부모 가정에 후원해 준다고 그러네.
“어…… 정말요?”
-그렇다니까. RS재단은 알지?
“네, 들어는 봤어요.”
-인터넷 검색해 봐. 이야기 많이 나오는 중이니까.
“아, 네. 고마워요.”
-뭘. 아무튼, 힘내고.
“네. 들어가세요.”
통화를 종료한 그녀가 잠시 멈칫거렸다.
“지원…….”
나라에서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재단이 해주는 지원이어서 솔직히 기대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기껏해야 단발성일 테고.
그래도……
눈앞에 있는 아들에게 한 끼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감사했다.
“엄마, 뭐 해?”
“응? 아니, 아니야. 어서 먹자.”
“응!”
밥을 한 숟가락 뜨고서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한부모 가정 지원.
그러자 기사가 촤르륵, 떠올랐다.
[RS재단, 한부모 가정 지원하기로 결정!]
[상대 배우자로부터 양육비 받지 못한 이들 전원에게 후원하기로!]
[정확한 금액은 정해지는 대로 발표할 예정……]
[RS재단이 대한민국을 외치다!]
[모금액을 바탕으로 측정해야 하므로 매달 지원금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 양해 바란다는 RS재단 이사장의 말에……]
[선한 영향력, 어디까지 뻗치나?]
제목만으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
쉽게 믿기지 않아 하나씩 눌러 확인했다.
그런데, 진짜였다.
정말로 후원을 꾸준히 지속한다고 나와 있었다.
멍한 기분이었다.
이게, 진짜일까.
솔직히 아직은 와닿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그래도 어서 그 시간이 찾아오기를 희망했다.
“잘 먹었습니다아.”
“아, 그래.”
“근데 엄마는?”
“아, 엄마는 배가 불러서.”
별로 먹은 건 없지만 어쩐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기대감이 허기를 채워버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지자체에서 공무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서류를 작성해가기도 했다.
“RS재단이랑 협업 중이라서요.”
“아…….”
“좋은 소식 들려올 겁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조, 조심히 가세요.”
순식간에 1주, 2주가 흘렀다.
조금씩 기대감이 흐려지고 평소와 다름없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지쳐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무한히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찾아온 말일.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또 스팸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확인했는데.
[x협 입금 500,000원
11/30 17:23
잔액 593,221원]
RS재단으로부터의 입금 메시지였다.
“아……?”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면서 확인했다.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50만 원이라는 금액은 그대로였다.
“이, 이렇게 많이……?”
사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이들 전부가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정말 소액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10만 원씩 50만 가구에만 전달해도 500억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액수였다.
그런데.
무려 50만 원이라니.
“정말로, 50만 원…….”
물론 이후 모금액에 따라 후원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사를 보긴 했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50만 원이면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아들에게 매일 맛있는 걸 해줄 수 있었고 가끔은 시장에서 새 옷을 사줘도 부담되지 않을 터였다. 여름에는 선풍기 대신 에어컨을 쓰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조금 더 틀어도 좋으리라.
정말 빠듯하게 지내고 있는 지옥 같은 상황에서의 50만 원은 단순한 50만 원이 아니었다. 돈은 누구에게나 상대적이듯, 그녀에게는 충분히 거금이었다.
삶이 바뀌었다고 느낄 정도로.
그렇기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후우, 하아…….”
지금까지 명치를 꾸욱, 막고 있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심정이었다. 차마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 * *
한세훈, 그는 보육원을 졸업해 세상에 홀로서기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머리가 똑똑했던 덕분에 장학금을 받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1년간 열심히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돈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군대에 입대를 결심했다.
1년 6개월.
긴 시간 동안 매달 지급되는 상당한 월급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았다. 그래도 부족해서 전역하자마자 잠을 줄이면서 아르바이트를 3개씩 뛰었다.
“이 정도면…….”
뒤늦게 2학년으로 재학했다.
다시 공부에 심취했다.
하루 3시간을 자면서 공부했고 4학년을 졸업하고서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문제는 학비였다.
한 학기에 700만 원.
1년에 1,400만 원이었다
기타 생활비, 교재비.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암담해졌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어.”
악착같이 성공을 향해 나아갔다.
버티고 버티다.
돈이 떨어지는 순간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이 순간을 위해 참고 참다가 드디어 대출에 손을 뻗은 것이다.
목표는 검사였다.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는 길이 있고 재학 중에 검찰 실무 수업을 이수하여 검사 선발시험에 통과하면 졸업 후 바로 검사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머지않았다.
조금만 더.
이를 악물고 견디면 도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다시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내년 초, 3학년 1학기가 시작될 테니까.
“……또 받아야 하나.”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알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화가 치밀었다.
취업하기도 전에 빚만 수천만 원이었다.
솔직히, 버거웠다.
“야, 세훈아!”
“어?”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
그때 절친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환하게 웃었다.
“RS재단 특별 후원금 말이야!”
“뭔 소리야?”
“이 자식, 아무도 모르고 있었네. 여기, 여기 보라고!”
친구가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RS재단, 이미 보육원을 졸업한 대학생과 사회에 안착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특별 후원금 전달키로 결정! 그들은 버팀목 없이 세상에 홀로서기 한 사람들! 충분히 보답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혀.]
해당 기사에 한세훈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특별, 후원금…….”
“그래, 인마. 특별 후원금 준대!”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단어.
홀로서기.
그리고 보답받을 자격.
“……힘들었는데.”
“어후, 알지. 난 다 알잖냐.”
“어, 진짜…… 진짜로 힘들었는데.”
보답받을 자격이 있다는 저 한 마디가 뭐라고.
이렇게도 힘이 나는지.
빌어먹게도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