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68화
170. 인공와우(1)
RS재단 시나리오 공모전의 독립 영화로 데뷔한 이후 크게 주목을 받은 여배우, 류현아. 그녀는 이후 영화 하나를 더 찍었는데 거기서도 존재감과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덕분에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 인기스타만 가능하다는 화장품 CF까지 계약하면서 대세 배우로 떠올랐다.
지금은 5화까지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맡고 있었다.
“오케이, 컷! 바로 다음 씬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류현아는 본인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인사부터 했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스태프와 인사를 마쳤다.
이후 바로 자리를 떠나지도 않았다.
다음 배우의 연기를 보고 싶어서.
“조금 구경하다가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류현아 배우님은 항상 열정이 넘쳐서 보기 좋다니까요.”
“한창 배워야 할 때니까요.”
“좋습니다, 좋아요.”
그사이 현장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음 촬영을 위해.
많은 스태프가 바쁘게 돌아다녔다.
“자, 박건국 배우 보호자님?”
“네!”
“지금부터 피아노 연주를 할 텐데요. 저희 신호에 잘 맞춰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촬영이었다.
청각장애인 학생이 스스로의 곡을 완성하는 장면이었으니까.
“타이밍 어긋나면 안 됩니다.”
“네, 집중할게요.”
류현아가 맡은 배역은 음악 선생님이었고 청각장애인 학생은 피아노 신동이었던 아이였다. 그러나 사고로 청력을 잃었고 그럼에도 피아노를 손에서 놓지 못해 방황하는 상태였다.
그 모습에 선생님은 학생을 돕기 시작했고 청력을 잃기 전, 스케치해 뒀던 곡을 완성하게 된다.
그 결과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그렇기에 멋들어지게 화면에 담아내야만 했다.
“시간 좀 걸리겠지만 짜증 내지 말고.”
“예!”
“고생하자고, 다들.”
“알겠습니다!”
상당한 난이도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지금 촬영해야 하는 학생이 정말로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시나리오의 학생과 너무나 흡사한 상황에 부닥친 아이였던 것이다. 현실감을 더욱 잘 살릴 수 있기에 강행했지만 촬영이 잘 진행될지는 의문이었다.
“씬 37-2번 들어갑니다. 레디…… 액션!”
촬영이 시작된 그 순간.
저벅.
촬영 현장에 들어선 류성이 해당 장면을 눈에 담았다. 흘러드는 피아노 소리가 아름다웠다. 중간에 삐끗하는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촬영을 멈추고 다시 이어갔다.
“컷! 좋습니다. 중간부터 다시 가죠. 박건욱 배우님은 그냥 똑같이 쳐주면 됩니다. 보호자님, 이번에도 잘 부탁드릴게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박건욱 배우의 어머니가 스마트폰에 글자를 적고 아들에게 보여줬다. 박건욱은 해당 지시사항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겠습니다. 레디…… 액션!”
류성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 피아노를 치는 아이가 진짜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 연주한다고?
놀란 류성이 아이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잠재력]
리듬감(A+급) 손재주(A+급) 감성(A+급) 집중(A+급) 몰입감(A+급)…….
A+급 잠재력만 몇 개인지.
그 뒤로.
집중력, 창의성, 균형, 노력, 열정, 절대음감, 음악적 해석 등. 음악에 관련된 대부분이 A급이었다.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하늘이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났다. 다만 안타깝게도 사고로 청력을 잃었을 뿐.
“으음.”
류성은 촬영 현장을 보고 있는 류현아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렸다.
“어, 오빠?”
“와봐.”
여동생을 데리고 현장에서 조금 멀어졌다.
“저 학생, 뭐야?”
“응? 뭐가?”
“진짜 청각장애인이 맞지?”
“어, 맞아. 이번에 드라마에 나오는 학생인데 캐릭터랑 너무 흡사해서 감독님이 강행했거든. 물론 저 학생도 하고 싶다고 그러고.”
“으음…….”
“왜?”
“아니, 도울 방법이 없나 해서.”
류성의 말에 류현아가 눈을 빛냈다.
“나, 아는데.”
“응?”
“인공와우. 그거 검색해 봐.”
“인공와우?”
“응. 그거 수술받고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재활 훈련에 임하면 일반인처럼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
류성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어 인공와우를 검색했다. 내용이 꽤 많았다.
“좋은 정보네. 웬일이냐?”
“나도 마음이 아팠거든.”
“그래?”
“응. 근데 뭐, 오빠가 나서준다면야 난 좋지.”
류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돕지 않을 수가 있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텐데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순간에만 살아있는 듯, 눈이 타오르는데.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있으면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컷! 좋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계속되었다.
뒤늦게 배우의 어머니가 스마트폰을 내밀자 연주를 멈추는 박건욱.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눈빛이 죽었다.
고개마저 숙인 채.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 * *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난 RS재단에 인공와우 조사를 부탁했다.
-네, 알아보고 보고서 올릴까요?
“음, 일단 정말 도움이 되는지, 가격, 기간, 재활, 후원한다면 어떻게 진행할지에 관한 부분들만 간단하게 정리해서 메시지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촬영을 지켜봤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중요한 장면이다 보니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소통까지 안 되니 그 부분도 시간을 적잖게 잡아먹었고.
그래도 이어지긴 했다.
조금씩 장면이 완성되기 시작한다.
“자, 얼마 안 남았으니 힘냅시다!”
“예, 감독님!”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공와우는 이식술인데 고도의 난청이 있는 환자에게 기능을 대신할 전극을 와우 내에 삽입하여 직접 청신경을 자극하도록 고안된 수술법입니다.
-가격은 600만 원이고 유지보수비는 1년에 50만 원입니다.
-첫 교체 5년 뒤에 건보료 지원을 받아 200만 원을 주고 교체할 수 있고 이후 5년마다 계속 교체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1,000만 원이 소모됩니다.
-수술 후 청능훈련, 적응훈련 재활이 필요합니다.
-재활비가 오히려 더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보입니다.
-물에서 듣는 듯한, 칠판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나기도 하는데 적응을 잘 마치면 일반인이 스피커로 소리를 듣는 것처럼 또렷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한쪽 귀에만 수술하고 이후 재활 훈련이 끝나면 나머지 귀를 수술한다고 합니다.
-재활 훈련 기간은 환자에 따라 다른데 선천적이라면 한쪽 귀에만 3년이 소모되고 반대쪽 귀는 1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후천적 환자의 경우에는 보통 한쪽 귀에 1년이 소모되고 이후 반대쪽 귀를 수술받으면 반년이면 충분히 적응한다고 합니다.
-전국 청각장애인은 대략 37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17만 명이 선천적, 20만 명 정도가 후천적 청각장애인입니다.
-중증 청각장애인의 숫자는 10만 명 내외로 파악됩니다.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한 결과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적응을 마친 이들이 대략 39%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즉, 중증 청각장애인 중에서 인공와우 수술을 아직 받지 못한 이들의 숫자가 대략 6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상입니다.
생각보다 내용이 상세했다.
“짧은 시간에 조사 잘했네.”
차분하게 읽으면서 내용을 머리에 담았다.
가격도 상당하고.
특히 5년마다 교체에 들어가는 비용이 컸다.
이러니 부담스러워하지.
성인이 된 청각장애인은 사회생활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초반 수술비에 재활훈련비도 써야 하고 5년마다 교체비까지 내야 하면 힘들 수밖에 없으리라.
“흐음, 생각보다 숫자가 많지는 않네.”
이 정도면 전액 지원도 가능할 거 같았다. 최근 일일 모금액은 100억 원 정도로 유지되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한 달에 3,000억이 모이는 것이다. 물론 한부모 가정 지원금으로 많이 쓰고는 있지만 그 이후 주기적으로 사용할 곳이 마땅치 않았었다.
“이거면 되겠어.”
뭐, 대충 계산해 보자면.
중증 환자 10만 명.
5년마다 교체비를 지원하면 1조 원이 사용된다.
1년이면 2,000억.
한 달이면 170억 원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부담되진 않겠네.”
상황이 안정되면 다른 장애로 후원 범위를 넓혀도 좋으리라.
“컷,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류성은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곧바로 박건욱 학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인사를 해왔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RS엔터 대표 류성이라고 합니다.”
“아, 재단 이사장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옆에 있는 박건욱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류성을 쳐다봤다.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놀란 듯 눈이 조금 커졌다.
“아, 아녕하세여.”
“그래, 안녕?”
아무래도 류성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사고 난 게 5년이 넘거든요. 애가 갈수록…… 발음이 어눌해지네요.”
“괜찮습니다. 당연한 거죠. 음, 그보다 박건욱 학생이 중증 청각장애인, 맞죠?”
“네, 맞아요.”
“실례가 되겠지만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지금 청각장애인 후원을 고민하는 상황이라서요.”
“아……!”
“그래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든지, 뭐든지 여쭤보세요.”
“음. 인공와우 수술을 안 시키는 이유가 있을까요?”
류성의 질문에 어머니가 서글프게 웃었다.
“돈이…… 많이 들더라구요. 못난 엄마라서, 모아둔 돈이 없거든요.”
“그랬군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답을 듣고 싶었다.
역시나 돈 문제였다.
“그래서 건욱이도 어떻게든 수술 한번 받아보겠다고 이렇게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요. 저도 이제 다시 일하러 가봐야 할 시간이네요. 최대한 빨리 모아서, 수술해 줘야죠.”
“그랬군요.”
류성이 품에서 명함을 건넸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게끔 노력하겠습니다.”
바빠 보였기에 더 대화를 나누는 건 힘들었다.
“그럼 다음에 연락 주세요. 건욱이랑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거든요.”
“네, 그,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빨리 조사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해 좁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을 테니까.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또 다른 장애.
시각.
그 부분에 대해서도 미리 파악해 두기로 했다.
* * *
RS재단에서 한 가지 소식이 퍼졌다.
[RS재단, 중증 청각장애인 후원하기로 결정!]
[RS재단, 인공와우 후원에 대해서]
[인공와우란 무엇인가?]
[인공와우 수술비만 600만 원, 교체비만 1,000만 원에 달한다고 밝혀져]
[청각장애인의 희망, 인공와우 후원 스타트!]
[RS재단, 후원 어디까지 하나?]
해당 소식은 생각보다 주목을 많이 받았다.
덕분이라고 할까.
RS재단 모금액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RS재단, 일일 모금액 200억으로 늘어나]
[무려 두 배로 증가…….]
[RS재단 관계자, 많은 관심 덕분에 후원을 더 빨리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언급해.]
그리고 결국.
기록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성삼그룹, RS재단에 100억 원 후원!]
[알지전자, RS재단 항상 지켜보고 있었다고 언급]
[알지전자, 200억 원 통큰 후원 결정!]
[알지전자, 청각장애인에게 부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성삼그룹, RS재단에 추가 후원!]
[라카이코리아, 조용한 후원! 그러나 금액은 무려 100억 원에 달해!]
[일부 기업, 모금에 동참하기로!]
[대중들 역시 모금에 큰 관심을 보여…….]
[모금 챌린지 벌어지나?]
[당일 최고 모금액 신기록 달성!]
그 모든 게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이사장님.”
“아, 네.”
“오늘 모금액이 1,500억이 넘었어요!”
“예……?”
류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얼마라고요?”
“1,500억 원이요!”
“허어.”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했다.
기사가 주르륵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모금에 관심을 가질 줄이야.
“이거, 후원을 서둘러야겠네요.”
“네, 정말 그래야 할 거 같아요.”
“최대한 빨리 조사 마치고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마음이 따스해지는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