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69화
170. 인공와우(2)
RS재단 정기 회의가 시작되었다.
직원도 많이 늘었고.
덕분에 회의가 조금 회의다워진 상태였다. 류성은 가장 상석에서 직원들의 보고를 들었다.
“……그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좋습니다.”
“다음은 모금에 관한 보고입니다. 현재 모금액이 최고 기록을 달성한 이후 하락하면서 200억 원까지 줄어들었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해당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예전 100억 원에서 유지되던 갈 생각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한층 더 늘어난 덕분입니다.”
“어떤 식으로 늘어난 거죠?”
“아, 네. 기존에 후원하던 이들은 후원금을 조금씩 늘렸고 후원하지 않고 있던 이들은 소액이긴 하지만 정기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그 덕분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렇군요.”
좋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덕분에 여유로워졌고.
해당 여유금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다음은 청각장애인 인공와우 후원에 관한 보고입니다. 관련 병원 대부분에서 협조해 주기로 했습니다. 협업은 끝난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후 조건에 따라서 중증 청각장애인을 분류했습니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지 못한 이들과 받은 이들을 나눴습니다.”
류성은 묵묵히 보고를 들었다.
“먼저 수술을 받지 못한 이들의 경우 수술비 전액을 후원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후 재활비와 교체비는 차등으로 후원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미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이들은 재활과 인공와우 교체비를 전액 후원해 주는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괜찮네요. 그 말은 즉,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얘기죠?”
“맞습니다, 이사장님.”
“그러면 회의 끝나고 바로 진행하죠.”
“예. 회의가 끝나는 대로 공지사항 올리고 후원 진행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다음 안건이 이어졌다.
영업팀의 주임, 이연이 단상에 올랐다.
“마지막 추가 안건입니다.”
“어떤 거죠?”
“예전에 시각장애인을 도울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셔서요. 이거저거 찾다가 알아낸 회사가 하나 있는데 투자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투자라, 일단 들어보죠.”
이연 주임이 힘차게 말을 이어갔다.
“회사명은 ‘아이 어시스트’입니다. 말 그대로 눈을 보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해당 회사의 기술력은 매우 좋았습니다. 한때는 대기업에서도 관심을 보이면서 투자까지 진행했었고요. 하지만 이후 지지부진해진 상태입니다. 아쉽게도 시중에 선보일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지금은 자금 부족으로 기술 개발 진행이 더딘 상황입니다. 그 마지막을 RS재단이 멋지게 장식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각장애인에게는 유일한 대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아이 어이스트의 기술력이 소개되었다.
“뇌를 속이는 VR을 활용한 기술입니다. 이 고글을 착용하게 되면 아이 어시스트가 실시간으로 주변 상황을 사진처럼 찍어내어 곧바로 시신경을 대신하여 뇌에 해당 사진을 쏘아 보내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시신경까지 파괴된 시각장애인도 주변 사물을 영상처럼 인지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기술력은 확실히 좋았다.
소개된 적도 많았고.
하지만 시중에 판매될 수준은 아니었다는 게 유일하게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음, 괜찮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함부로 결정할 순 없으니 조금 더 조사해보죠. 아이 어시스트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후로도 문제가 없다면 투자, 진행해 보겠습니다. 해당 조사는 외부 현장팀이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회의를 마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공지사항이 올라갔다.
<청각장애인 후원을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RS재단입니다. 저희는 지금부터……>
소식은 대한민국 곳곳으로 퍼졌다.
-오, 드디어 시작하네요^^
-기다려 왔던 소식!
-조사할 게 많았군요, 어후. 공지사항 보니까 장난 아니네요ㅎㅎ
-하긴 병원 협업도 해야 하고ㅋㅋ
-이야, 후원도 전액이라니ㅠㅠ 물론 일부 차등이긴 하지만
-좋네요, 좋아요!
-갑시다^^
-제 친구가 집안이 안 좋아서 인공와우 수술도 못 받고 있었는데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도 정말 좋아하고 있어요ㅠㅠ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류성은 해당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업무에 매진했다.
“후아.”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오늘 일을 마무리 짓고 퇴근했다.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에 침대에 누웠다.
냐아아-
럭키가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고, 왔어?”
녀석의 미간을 긁어주자 골골송을 불러댔다.
골골골-
류성은 부드럽게 웃으며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었다. 심심해서 너튜브나 볼까 싶었는데 상단에 RS재단 소식이 보였다.
[RS재단, 드디어 시작하는 청각장애인 후원!]
류성은 해당 영상을 눌렀고.
3천 개가 넘어가는 댓글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조회수도 10만이 넘었고…….”
영상이 나온 게 겨우 3시간 전이었는데 말이다.
확실히 주목받고 있었다.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 * *
투자사의 모든 자금을 미국 주식 매수에 전부 쏟아부었다.
“후우, 드디어 끝났네.”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이제 투자사 자금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당분간은 지켜보기만 하면 되리라.
미국의 기술주야, 뭐.
우상향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연계퀘스트 ‘어서 와, 정기후원은 처음이지?’가 갱신됩니다.]
[선행 포인트 63점을 획득합니다.]
[상한선에 도달했습니다.]
[후원금액이 초기화됩니다.]
[소아병동의 키다리 아저씨!]
[소아병동 아이들 치유 진행 정도를 파악…….]
월말 포인트가 정산되었다.
그 아래로 긴 글귀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흐음, 또 쌓였네.”
이젠 대수롭지도 않았다.
그간 쌓인 포인트가 워낙 많았으니까.
물론 간간이 정보권을 구매하면서 상점 물품의 가격도 높아지긴 했다. 그래도 부담되진 않았다. 솔직히 포인트가 넘치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그간 모은 카드를 쓰고 포인트를 조금 털어보기로 했다.
“일단 카드부터.”
최하급부터 차례대로 사용했다.
크게 볼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자 여러 물품이 툭툭 튀어나왔다.
“오, 이건 괜찮네.”
그러다 괜찮은 게 보이면 오른쪽으로 밀어뒀다. 꽝이나 복권, 쓸데없는 것들은 왼쪽으로 밀어버렸다.
사실 대부분이 왼쪽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정말 괜찮다 싶은 건 극히 희박했으니까.
중급, 중상급, 상급까지.
카드를 전부 사용하자 오른쪽에 쌓인 괜찮은 물품이 5개로 압축되었다.
재능 1개.
쓸모 있는 물약 1개.
정보권 5개.
왼쪽을 보니 수두룩했다. 복권이 제일 많았고 무슨 이상한 털이나 가죽 같은 것도 보였다.
“사실 정보권도 뭐…….”
지금 상황에선 그리 좋다고 할 순 없었다.
부동산 정보권이 2개.
코인 정보권이 2개.
국내 주식 정보권이 1개였으니까.
규모가 너무 작았다.
지금은 그냥 모금이나 받는 게 훨씬 나았다. 그래도 기왕에 나왔으니 나중에 너튜브 생방송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컨텐츠로 쓰기엔 괜찮겠네.
이어서 재능과 물약을 확인했다.
[걷기의 달인(1회)]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오래 걸을 수 있습니다.]
뭐, 그럴 줄 알았다.
사실 좋은 재능이 나오는 게 더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시력 강화 물약]
[시력을 강화해 줍니다.]
물약은 그래도 쓸 만했다.
괜찮네, 이건.
애매하게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마시면 효과가 있을 거 같았다. 아니면 나중에 시각장애인 후원을 시작할 때 사용해도 될 거 같고.
“하나 건졌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상점을 열었다.
물품이 떠올랐다.
다 필요 없고.
이번에는 랜덤 재능과 랜덤 기타 물품에 포인트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괜찮은 게 나오길.”
먼저 랜덤 재능을 뽑았다.
[랜덤 재능을 구매합니다.]
[35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재능 ‘명상의 달인(1회)’을 습득합니다.]
이름만 봐도 꽝임을 알 수 있었다.
[랜덤 재능을 구매합니다.]
[70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재능 ‘수면의 달인(1회)’을 습득합니다.]
오, 이건 그래도 괜찮았다.
[수면의 달인(1회성)]
[마음먹는 순간 잠들 수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피로가 확 풀립니다.]
안 그래도 요즘 잠을 좀 설치는 거 같았는데.
오늘 밤에 쓰면 될 거 같았다.
이후 계속해서 랜덤 재능을 구매했다.
[랜덤 재능을 구매…….]
[랜덤 재능을 구매…….]
필요 포인트가 무섭게 상승했다.
“음…….”
이제 랜덤 재능을 뽑으려면 245포인트가 소모된다. 아무리 포인트가 많다지만 이건 좀 아까웠다.
“벌써 735포인트나 써버렸단 말이지.”
적지 않은 포인트를 사용했다.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다.
그래도 수면의 달인이나 마지막에 뽑은 한식의 대가는 나쁘지 않았다. 영구 재능을 구매하면 평생을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다음은 랜덤 기타 물품을 구매할 차례였다.
“이건 시작부터 좀 쌔네.”
처음부터 100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래도, 뭐.
기왕 마음을 먹었으니 몇 번이라도 뽑아보기로 했다.
[랜덤 기타 물품을 구매합니다.]
[100포인트가 소모됩니다.]
[튼튼한 가죽을 획득합니다.]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물품이었다.
“음……!”
포인트가 너무 아까워졌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이번에는 무려 200포인트가 소모되었다.
“아.”
이번에도 꽝이었다.
넘친다고 생각했던 포인트가 녹아가는 게 보였다.
여기서 멈춰?
아니, 아니지.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진짜 마지막이다. 럭키야, 가자!”
럭키와 함께 또 포인트를 소모했다.
무려 300포인트를.
그리고 등장한 물건에 류성의 눈이 커졌다.
[차오르는 유리병을 획득합니다.]
[특수 아이템이라 상점에 등록되지 않습니다.]
대박이 터져버렸다.
* * *
박건욱의 손을 꼬옥 잡는 여인.
“건욱아, 수술 잘 받고 나와.”
그에 박건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 거정 마.”
“그래, 우리 아들,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으응.”
이윽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고요한 공간.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수술실은 생각보다 더 두려웠다. 온몸을 감싸고 마스크를 쓴 이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그게 또 섬뜩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상황을 마주했다.
“자, 마취 시작할게요.”
잘 들려오진 않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정신이 흐려졌다.
눈을 다시 떴을 땐 입원실이었다.
“건욱아, 정신이 들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쇳소리 같았다.
지지직, 거리는 거친 소리.
제대로 인식되지도 않는 소음이었다.
본능적으로 손으로 귀를 막았다.
“으윽…….”
“왜, 왜 그래? 괜찮아?”
“으으으.”
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뒤늦게 등장한 간호사가 그런 어머니를 만류했다. 조심스레 데려가서 상황을 설명해줬다.
“청능훈련을 하기 전에는 쇳소리처럼 들릴 거예요.”
“아, 그, 그랬죠, 참.”
“네. 그래서 되도록 말은 조심해 주세요.”
“그럴게요.”
“그럼 30분 뒤에 바로 청능훈련부터 시작할게요. 뭔가 말하고 싶을 때는 되도록 스마트폰에 적어서 보여주시고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잘못이었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어 메시지를 입력했다.
[아들, 미안. 많이 시끄러웠지?]
그걸 보여주자 박건욱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괘, 괘차나.”
본인의 목소리도 듣기 거북했다.
으으으.
간신히 참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찾아온 재활시간.
3층으로 내려가자 훈련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