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70화
170. 인공와우(3)
재활 훈련사로 보이는 남성이 웃으며 박건욱을 반겼다. 그러나 함부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수술이 끝나면 소리가 정말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입을 꾸욱 다문 채로 손을 들어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에 태블릿 화면이 있었다.
[소리가 많이 거슬릴 거예요. 그래서 반복 훈련이 필요해요. 자,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걸 집중해서 들으세요. 태블릿 보면서요. 태블릿 화면에는 제가 말하는 단어가 표시될 겁니다.]
박건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바뀌는 태블릿 화면의 글귀.
[어때요? 제 목소리, 들려요?]
박건욱은 글자를 눈에 담은 채로 재활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때요? 제 목소리, 들려요?”
여전히 거친 소리였다. 하지만 재활 선생님이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말하면서 조금씩 소리가 바뀌었다.
지저분한 쇳소리가 조금 안정된 것이다. 덕분에 흐릿했던 소리가 형상을 이뤄내더니 이윽고 미약하게 인지되었다.
“어때요? 제 목소리, 들려요?”
아직은 듣는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만 더.
몇 번을 더 들으며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아……!”
분명히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가 인식된 것이다.
“드, 드려여. 아니, 들…… 려요.”
놀라운 순간이었다.
정말로 들리다니.
그 순간 태블릿 화면이 또 바뀌었다.
[오,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모음이랑 자음부터 하나씩 들어보자고요. 조금 전에는 실제로 들린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질문했던 거니까요. 오랜만에 들었을 텐데, 괜찮죠?]
정말로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자, ㄱ부터 시작할게요.]
그렇게 어린아이가 한글을 배우듯, 조금씩 듣는 능력을 길렀다.
느렸지만 그래도 들렸다.
거칠었지만 그래도 들렸다.
그게 중요했다.
하나씩 배워가던 박건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죄, 죄소…… 해여.”
더는 세상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여겼었는데.
이렇게 소리가 들리다니.
참을 수 없이 기쁘고 놀랍고 신기했다.
희망이 보였다.
그 모든 게 응어리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박건욱은 이내 스윽, 닦아내며 밝게 웃었다.
“여, 여시미 하께여.”
재활 선생님도 웃으며 화답했다.
* * *
인공와우 수술을 마친 수만 명의 청각장애인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재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박건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더 노력했다.
덕분에 두 달이 조금 흘렀을 무렵엔 자음, 모음을 전부 인지했으며 단어 정도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자, 오늘은 천천히 대화를 나눠볼게요.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긴장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차분하게, 천천히 들으려고 해보세요. 준비되셨나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발음도 정말 많이 좋아졌다.
[좋습니다. 그러면 시작할게요.]
재활 훈련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날씨가 어떤가요?”
“어, 오면서, 봤는데…… 맑았어요.”
“맑았군요. 조금 뒤에는 비가 온다고 하던데, 우산은 준비했나요?”
“네……?”
박건욱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2번, 3번.
제대로 들려올 때까지 쉬지 않았다.
“맑았군요. 조금 뒤에는 비가 온다고 하던데, 우산은 준비했나요?”
“아, 아니요. 준비 못 했어요.”
“그러면…….”
느렸지만 그래도 대화가 이어졌다.
“아아……!”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박건욱의 어머니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신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막은 것이다.
차차 나아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이렇게 대화까지 나누는 걸 보고 있으니 너무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피아노 연습은 다시 시작했나요?”
“어, 조금씩…….”
이어지는 대화.
갈수록 어색한 느낌이 조금씩 사라졌다.
정말 놀라운 발전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류성이었다.
“어머, 오셨어요?”
“네. 곧 끝나죠?”
“네, 5분 정도 남았어요.”
류성은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청능훈련이 끝나고 박건욱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주차장으로 향해 손에 들려있는 커피를 박건욱 어머니께 건넸다.
“또 이렇게……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저도 많이 찾아봤어요. 이 커피, 정말 신기한 효능이 있다고.”
“그런 마음으로 만들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애가 이렇게 빨리 적응하나 봐요.”
정말 그런 거라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 자체가 중요할 때가 있죠.”
“네, 맞아요. 믿음…….”
물론 이 커피는 진짜로 도움을 주는 거지만.
아무튼.
예전에 상점 뽑기에서 ‘차오르는 유리병’을 획득하고 프리미엄 커피의 생산량이 2배로 늘어났다. 그래서 늘어난 양은 청각장애인 재활 훈련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있었다.
전부는 불가능했고.
상태가 좋지 않은 일부에게만 말이다.
재활 선생님에게 듣기로 박건욱의 쇳소리가 유난히 심한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이후 커피를 선물해줬고 그걸 마신 후로 박건욱도 한결 상태가 좋아졌다면서 즐거워했었다.
청능훈련 속도도 올라갔고.
덕분에 오늘은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
“고맙, 습니다.”
“고맙긴. 앞으로도 훈련 열심히 해.”
“여, 열심히 할게요.”
“이야, 진짜 잘 듣는데?”
류성의 감탄에 박건욱이 밝게 웃었다.
“그래도 아직은 소리가 좀 이상하지?”
“네?”
“아직은, 소리가 이상하지?”
“아, 네. 그래도…… 괜찮아요. 나아지고, 있으니까.”
“좋은 마인드야.”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그들과 헤어졌다.
들러야 할 곳이 많았으니까.
상태가 좋지 않은 다른 이들에게도 커피를 전해줘야 했다.
* * *
결국, 아이 어시스트에 투자를 결정했다. 조사해 본 결과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돈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그건 RS투자사에서 투자를 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큰 금액은 아니라 가능한 투자였습니다.”
물론 수백억이 넘었지만.
RS투자사 자금에 비하면 크지 않은 금액인 건 사실이었다.
“그럼 마무리 잘 지어주시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보겠습니다.”
아이 어시스트에서 나와 재단으로 돌아갔다.
인공와우 경과보고가 올라왔다.
<인공와우 수술 8개월 경과보고서>
-인공와우 수술을 한 모든 이들이 재활, 청능 훈련에 집중하는 상태
-일부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에게 프리미엄 갓 샷 선물
-커피를 마신 이들의 상태가 빠르게 좋아지기 시작
-커피를 마시지 않은 이들과 비교했을 때 약 3개월 정도 치료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남
-협업한 병원 재활 선생님들의 의견을 참고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어서 파악하기에 좋았다.
“경과가 확실히 좋긴 하구나.”
프리미엄 커피가 큰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벌써 8개월이 지난 것도 놀라웠다.
시간, 참 빨라.
그간 적지 않은 일이 있었다.
인디 게임 공모전을 개최했고 수상한 작품들로 모바일 게임을 준비하는 상태였다. 말 그대로 인디 게임이라 개발비가 크게 소모되지 않는 게임들이었다. 자세하겐 모르지만 방치형 게임이 많았고 퍼즐이나 전략 게임도 존재했다. 캐쥬얼 게임이 사실 가장 많았다.
RS엔터도 크게 성장했다.
특히 류현아.
앱플릭스에 방영된 드라마가 대박이 나면서 정말 스타가 되었다. 여동생이긴 하지만 조금 어색할 정도로 핫한 대스타 말이다.
뭐, 그래 봤자 철부지지만.
특별히 RS재단 공익 광고 모델로 채용하기도 했다.
배우나 가수도 많이 데뷔했고. 기존 경력 있는 이들은 물론 신인들도 이름을 많이 날렸다. 덕분에 RS엔터의 가치가 상승한 건 덤이었다.
개인적인 사건으로는 이모티콘 웹 애니메이션이 완성되어 너튜브를 비롯해 국내 OTT에 공개되기도 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래, 나쁘지 않은.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웹툰은 여전히 해외 1위를 유지하는 중이었고 책은 유럽 전역에 판매되면서 한참 증쇄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RS재단 일일 모금액은 150억을 유지하는 상태였다.
더 줄어들진 않았다.
가끔 일시적 후원으로 금액이 크게 튀어 오르는 경우는 있지만 150억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정기후원의 힘이었다.
그래서 후원 규모를 더욱 빠르게 늘렸다.
-와, 이번에는 전국 초, 중, 고등학교에 후원한다고 하네요
-그것도 정기후원...!
-사실 이미 쿠폰 후원은 하고 있었던지라ㅋㅋ
-아, 그렇죠?
-그래도 좀 더 계획적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네요
-전국 대학교에 장학금도 기부한다고 합니다^^
-오오!
-가정형편이 좋지 않으면 RS재단 특별전형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와, 대단한데요?
-대학교랑 연계가 장난 아니네요
-RS재단이니까요ㅋㅋ
-하긴, RS재단 거스르면 욕먹죠^^
-ㅇㅈ합니다
사람들의 관심도 꾸준히 이어졌다.
엄청난 영향력을 지녔으니까.
인지도로만 따진다면 성삼전자나 알지그룹에 못지않았다.
사람만 후원한 것도 아니었다.
동물 후원도 멈추지 않았다.
-RS동물보호소 봉사활동 다녀왔어요!
-와, 저도 가고 싶었는데...
-진짜 깨끗하고 깔끔하고 시설 장난 아니고 강아지들 하나같이 쾌활하고ㅠㅠ 좋았어요, 정말!
-으으, 부럽네요
-꼭 다녀오세요, 진짜 좋습니다! 그리고 마침 타이밍이 맞았는지... RS재단 이사장님도 슬쩍 뵈었네요ㅎㅎ
-헐, 대박!
-정말요?ㄷㄷ
-네, 저랑 같이 봉사활동했어요 ㅋㅋ
-와...!
-그건 좀 많이 부러운데요?ㅋㅋ
-이번에 또 새로운 후원 하네요!
-어떤 건가요?
-형편이 안 좋은 경우 동물들 병원비를 일부 부담해 준다고 합니다! 바로 신청하세요!
-와...ㅠㅠ
-이런 곳에 돈을 쓰니까 후원을 멈출 수가 없죠
-맞습니다ㅎㅎ
-이번에 소액이지만 5,000원 정기후원 금액 늘려야겠네요
-저 매달 2만 원씩 후원하는데, 솔직히 크게 부담되지도 않고... 근데 내 돈이 이렇게 쓰이는 거 보면ㅠㅠ 기분이 정말 묘해요
-저두요
-다른 곳에 후원할 땐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ㅎㅎ
정말 계속해서 들려오는 RS재단 소식에 사람들은 칭찬을 멈출 수 없었다.
* * *
인공와우 수술 1년 경과 보고서가 올라왔다.
“흐음.”
드디어 청능훈련 및 재활의 중반을 넘어섰다.
전부 경과 상태도 좋았다.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에겐 마법의 커피를 전달해 주곤 했었는데 그게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상태가 좋아지면 커피 선물을 멈추고 다른 이들에게 선물을 이어가면서 계속 관리를 해왔었다. 덕분에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이들 중에서 커피를 한 번도 마시지 못한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부 최소한 1번씩은 마셔본 것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프리미엄 갓 샷은 신의 음료라고.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해당 커피를 둘러싼 괴소문이 한층 더 진화했다.
-시간 참 빠르네요
-왜요?
-RS재단에서 작년부터 인공와우 수술 후원했었잖아요
-아, 그랬군요?
-와, 진짜 1년이나 지났네요ㅎㅎ
-경과가 좋다고 들었어요!
-그래요?
-넵! 제 친구가 RS재단에서 지원받아 수술을 받았거든요. 근데...
-왜요? 뭐 있어요?
-네ㅋㅋ
-뭔데요? 뜸 들이지 마요ㅠㅠ
-커피가... 그렇게 맛있대요!!!
-네?ㅋㅋㅋ
-아, 커피도 받았어요?
-두 번 받아서 마셔봤다고 하더라고요ㅎㅎ 프리미엄 갓 샷이 나름 건강 커피잖아요ㅋㅋ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괴소문도 있고요
-그렇죠ㅋㅋ
-그래서인지 그거 마시고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아무튼 그걸 떠나서 너무, 너무너무너무 맛있대요ㅎㅎ
-와... 그 정도예요?
-네, 한 달 정도 또 마시고 싶어서 계속 생각났다고 하더라고요
-ㄷㄷㄷ
-일반 갓 샷도 구해서 마셔봤는데 그 맛이 아니라고 하네요ㅎㅎ
-엄청나군요
-역시 프리미엄 갓 샷!!!
-근데 맛을 떠나서ㅋㅋ 마시기만 해도 젊어진다거나 어떤 상처에도 효과가 있다든가, 체력 괴물이 된다든가, 뭐 그런 이상한 소문은 왜 나는 걸까요?
-글쎄요ㅋㅋㅋ
-마셔보지 못해서 더 소문이 나는 거 같아요
-그런 거겠죠?ㅋㅋ
-그럼요ㅎㅎ
-아무튼, RS재단 덕분에 요즘 편안합니다^^
-저두요ㅎㅎ
-세상 살 만한 거 같아요!
그러나 RS재단은 해당 괴소문에 관해서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이사장은 그저.
건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