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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272화 (272/277)

돈과 재능이 쏟아져 272화

171. 아이 어시스트(2)

고등학교 1학년 이미영.

2년 전,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시신경도 일부 다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능은 살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각막과 망막이 완전 손상되면서 비가역적인, 그러니까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지경에 처했다.

한마디로.

다시는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절망했고 또 좌절했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로 1년을 넘게 지내다, 간신히 삶을 이어갔다.

조금씩 적응했다.

인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적응의 동물이었으니까.

“그래,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이것아!”

“…….”

죽을 순 없었기에 살아야 하는 삶이었다. 죽고 싶진 않았기에 억지로라도 나아가야 하는 삶이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한 걸음을 내뻗었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한다는 그 사실은 매일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한 걸음을 나아가면 몇 걸음을 뒤로 물러나야만 하는 수렁과도 같은 늪이었으니까.

쉽게 포기하진 않았다.

여전히 무섭지만.

그래도 두려움조차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감각을 일깨우며 어떻게든 살아갔다.

꾸역꾸역, 버텨냈다.

그래, 산다는 건 견뎌낸다는 거였다.

“……오늘도 버텼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미, 미영아!”

“응……?”

“그, 그게, 그러니까. 일단, 일단 병원으로 가자!”

“갑자기……?”

“빨리! 눈 검사, 눈 검사 해야 돼!”

난데없는 병원행에 의구심이 솟구쳤다.

이렇게 서두르다니.

게다가 난데없는 눈 검사라니. 눈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였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게 있나?

“뭔데.”

“일단, 일단 가서 검사부터 하자. 엄마가 설명을 제대로 못 해서 그래.”

“……알았어.”

그리고 이어진 검사.

결과는 금방 나왔다.

“다행이네요.”

“그, 그 말씀은……?”

중요한 대목인 걸까.

분위기가 진중했다.

이미영은 본능적으로 의사 선생님과 엄마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가 이내 긴장감을 내려놓았다.

대수로울 것 없었으니까.

괜한 기대는 실망을 낳는다는 걸 2년간 무수하게 느껴왔었다. 정말로 더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상실감이었기에 지금만큼은 오기로 버텼다.

기대되지 않는다고.

어차피 더 좋아질 일은 없다고 속삭이면서.

“아이 어시스트,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저, 정말인가요, 선생님?”

“네. 일단 병원에서 사용해 보면서 경과를 지켜봅시다. 혹시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사용을 멈춰야 하니까요. 물론 가능성은 지극히 낮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뭘요.”

도대체 아이 어시스트가 뭐기에 이러는 건지.

“엄마……? 무슨 얘기야?”

“너, 볼 수 있대!”

“뭐……?”

“볼 수 있다고, 이것아!”

이미영은 그 말에도 여전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뭔 소리야.”

“볼 수 있다니까! 이제, 볼 수 있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볼 수 있다고?

어쩌면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농담이거나.

혹은 몰래카메라일지도.

“엄마, 그런 장난 치는 거 아니야.”

“이것아. 여기 병원이잖아!”

“어? 그, 그렇긴 한데.”

그때 의사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영 환자?”

“아, 네.”

“검사를 해봤는데 아이 어시스트, 그러니까 VR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보여요. 정확한 건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체크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가능성은 큰 편이에요. 그러니까, 먼저 가서 착용부터 해볼까요?”

“어, 네.”

그러니까 VR기기를 착용한다는 얘기였다.

증강현실, 그런 건가.

근데 그거 써도 안 보이던데.

일단 병원이니까.

다른 뭔가가 있겠거니 여기고 이동했다.

“그럼, 착용할게요.”

“……네.”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감의 VR기기를 착용했다.

“자, 밝아질 테니까 놀라지 마시고요.”

옆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가 기기를 조작하더니 순간 눈앞이 번쩍거렸다. 간호사의 말대로 정말 시야가 밝아졌다.

물론 보이진 않았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망감이 올라왔다.

기대, 했던 건가.

그 와중에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신경에 바로 전달되는 거라 눈을 감거나 떠도 보일 거예요. 그러니까 조작이 필요하거든요. 직접 한 번 만져볼까요? 오른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연결이 되고 3초간 길게 누르면 연결이 해제될 거에요.”

“아, 네.”

이미영은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버튼을 살짝 눌렀다.

그 순간.

밝기만 하던 빛이 순식간에 형상을 갖췄다.

“어……?”

화질이 정말 좋은 사진, 혹은 영상을 보는 것처럼.

세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대와 걱정으로 얼룩진 표정의 어머니와 조용히 기다리는 의사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까지. 그 모든 게 너무나 명확했다.

선명하게 보였다.

“어떤가요? 앞이 보이세요?”

“보, 보여요.”

“정말요? 어색하진 않나요? 불편한 점이라거나.”

“보여요…… 전부, 전부 다 보여요……!”

이미 그녀에게 의사나 간호사의 말은 들려오지도 않았다.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눈에 담았다.

“어, 엄마. 엄마가 보여.”

“아이고, 진짜야? 정말로 보여?”

“응, 보여, 보인다고……!”

손을 뻗자 체온이 느껴졌다.

“정말 맞는 거지? 엄마, 맞지?”

“맞아, 이것아!”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엄마, 나…… 나, 진짜로 보여…….”

“아이고, 잘했어. 정말 잘했어.”

온기에 파묻혀 한참을 울었다.

배신하기만 했던 기대가.

오늘만큼은 현실이 되어버린 날이었다.

* * *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았었다.

그렇게 21년을 살아왔다.

적막 속에서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무수한 읽을거리들이 존재한 덕분이었다. 특히 소설과 웹툰이 어린 시절의 버팀목이 되어줬다.

물론 중, 고등학생 시절에는 너튜브나 각종 OTT의 자막을 보면서 나름대로 컨텐츠를 즐기기도 했고.

그래도 가장 재밌는 건 소설이었다.

로맨스, 로판 웹소설.

지금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업을 듣고서 침대에 누워 웹소설을 읽었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모두와 다름이 없었으니까.

귀가 들리는 사람조차 웹소설은 눈으로 읽어야 하니까.

동등해지는 것이다.

장애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그런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RS재단의 후원 덕분이었다.

인공와우 수술.

그걸 받고서 거칠지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이상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 듣는 소리라서 그런지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그냥 소리가 난다는 현상 자체가 신기할 뿐이었다. 이후 청능훈련과 재활을 하면서 조금씩 언어를 습득해나갔다.

조금씩, 천천히.

소리가 뭔지 알게 되었다.

“기, 기억…… 니은…….”

조금씩 말도 하게 되었다.

기적이었다.

그렇게 소음과 소리가 뒤섞인 어느 날, RS재단에서 온 커피를 마시면서 청능훈련에 가속도가 붙었다.

“……어때요?”

질문에 쇳소리가 조금 들리긴 했지만.

어쨌건 알아들을 순 있었다.

“괜…… 찮아요.”

“좋군요.”

악마가 속삭이는 듯한 기분이기도 하고. 아무튼, 재활이 끝나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고 자막으로 공부를 했으며 시간을 내어 운동했다. 남은 시간에는 웹소설을 보며 버텨냈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흘렀다.

소리가 더 정확해졌다.

이따금 사방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음악이란 거구나.

처음엔 호기심이 있었지만 듣는 순간 찢어지는 듯한 괴성에 귀를 막아버렸다.

으윽……!

그 이후 음악을 듣지 않았다.

“안녕, 하세요.”

“좋습니다. 아주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3년은 해야 할 훈련을 2년 만에 클리어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일반인과 다를 게 없네요.”

“아……!”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 순간, 음악이 떠올랐다. 계속해서 피해왔던 음악을 이제는 들어도 괜찮을 거 같았다.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했으니까.

제대로 된 음악은 과연 어떤 걸까. 병원에서 나와 거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너튜브에 접속했다. 돌아가신 아빠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검색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재생을 누르자 잔잔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황홀했다.

솟구치는 닭살에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이어지는 가수의 목소리가 선율과 하나가 되었다.

“아…….”

그저 글로만 읽었던 단어가 하나씩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애환이 이런 거구나.

슬픔, 한, 절실함, 애절함 등등.

이게 감정이란 거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몰라도 가수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느껴졌다.

신기했고 놀라웠다.

그 모든 걸 떠나서 노래가 그냥 너무 좋았다.

이게 진짜 노래구나.

음악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동시에 조금 분했다.

처음부터 이런 기적과 함께 살아왔을 보통의 사람들이 부러워서.

그래도 행복했다.

앞으로 이런 음악을 무수히 들을 수 있다는 현실이.

* * *

류성은 RS재단으로 온 편지를 읽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소리를 듣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처음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부 다르다는 거에 놀랐고. 지금은 음악에 반했어요. 새소리에 감탄했고 풀벌레 소리가 이렇게 예쁘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전부 재단에서 후원을 해줘서 가능한 일이라고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소리를 듣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하나같이 진심으로 꾹꾹 눌러 담은 글귀였다.

다음 편지도, 다음 것도.

[엄마를 2년 만에 봤어요. 피부가 많이 상했더라고요. 흰머리도 나도 주름도 생기고. 아마 저 때문이겠죠. 2년이란 시간이 그만큼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그래도…… 엄마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보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사연은 전부 달랐다. 각자가 품고 있는 생각 또한 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서글프고 아련했다.

세상에 참,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게 느껴져서.

똑똑.

그때 누군가 노크를 했다.

“영업 1팀장입니다.”

“아, 들어와요.”

안으로 들어오는 영업부의 1팀장 최송이. 본래는 업무팀의 대리였으나 이제는 영업팀으로 통합되면서 1팀의 팀장이 된 상태였다.

“인공와우랑 아이 어시스트 경과보고입니다.”

“벌써 25개월이군요.”

시간이 참으로 빨랐다.

“저도 경과보고 작성할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그럴 만하네요.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녀가 나가고 류성은 책상 위에 놓인 경과 보고서를 손에 들었다.

[인공와우 25개월 경과보고서]

-수술자 97% 청능 훈련 종료.

-훈련이 종료된 이들 전원 명확하게 소리를 인지.

-통상 속도보다 30% 이상 빠르다는 학계 의견이 실리면서 화제

-새롭게 등장한 청각장애인의 경우…….

크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없었다.

잘 진행되고 있네.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은 3%에 집중하고 새롭게 등장할 청각장애인에게 후원하면 되리라.

[아이 어시스트 11개월 경과보고서]

-현재까지 사용자 중에서 이상 현상 발견되지 않음

-해당 기기 사용자 99% 만족

-일부 기기를 3시간 이상 사용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언급

-해당 부분은 사진을 영상처럼 인지하면서 생기는 정보의 과부하로 판단

-아이 어시스트2를 통해 일부 개선될 것으로…….

아이 어시스트 또한 훌륭했다.

99%의 만족도라니.

류성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또 어떤 후원을 해야 할까.

즐거운 고민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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