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74화
173. 움직이는 사람들(1)
링크가 올라간 걸 확인하고서 채팅을 쳤다.
나 : 우리 친구들,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님들!
나 : 이거 기사 좀 읽어보세요! 급합니다!
숫자 7이 하나씩 줄어들었다.
내용을 확인한 것이다.
동기1 : 뭔 기사지?
선배님1 : RS재단 내용 같은데, 잠시만!
동기2 : 보고 올게ㅋㅋ
동기3 : 확인 중!
머지않아 분노 어린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동기2 :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냐?
동기3 : RS재단을 씹어?
동기1 : 와, 정신 나간 녀석들인데? 기사 논조 자체가 쓰레기잖아, 이건!
선배2 : 못 먹는 감 찔러보는 것도 아니고 진짜
선배3 : 황당한데? 건드릴 게 없어서, 참.
분위기가 적당히 달아올랐을 즈음 박연후가 본론을 꺼냈다.
나 : 이거 아무리 봐도 누가 사주한 거 같지 않아요?
채팅을 치자 호응이 올라왔다.
동기1 : 그런 듯
선배1 : 기사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졌고 심지어 나온 건 며칠 전이네
동기1 : 그러게요?
선배2 : 오늘 조회수가 급증한 거 보니 알바도 쓴 모양이고
선배1 :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도 올랐어
선배2 : 이 정도면 뭐, 빼박이지!
동기2 : 흐름상 확률이 높네요
자, 그러니까 제대로 한번 파보자고.
나 : 우리가 배후 밝혀보는 거 어때요?
그러나 당장은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동기1 :찔러보기 식인 거면 잡기 어려운데...
동기3 :기사만으로 파악하는 건 힘들긴 해
동기2 :그래도 RS재단에 신경은 좀 쓰고 있어야겠네요, 선배님들?
선배2 :그렇지, 주시해야지
확실히 지금 당장은 무언가 파악하는 게 어려웠다.
뭔가 더.
잡아낼 만한 사건이 터져야 하는데.
나 : 그럼 제가 수시로 RS재단 체크해 보겠습니다!
그 정도로 마무리하려는 순간이었다.
동기1 : 엥? 연후야. 나 지금 인터뷰하러 가는 길이거든? 마침 충무로 네거리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지금 RS재단 본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일단 내가 여유 시간이 10분 정도 있으니까 보고 있을게. 빨리 와라.
그에 박연후가 눈을 빛냈다.
나 : 바로 간다, 기달!
서둘러 차량을 이끌고 RS재단 본사로 향했다.
* * *
들려오는 내용에 류성의 표정이 굳었다.
-……10분 내로 국세청 직원들이 도착할 겁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당한 거금을 모금했으며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모금을 이어가고 있는 캐시론 캐피탈이었다. 정확하게는 황 노인을 모신다는 김상호의 연락이었다.
-아닙니다, 부디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예.”
-정 힘들면 말씀하십시오. 회장님께선 언제든 힘이 되어줄 의향이 있으십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통화를 종료했다.
김상호 덕분에 미리 조사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국세청.
세금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국가 기관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사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
투명함 그 자체가 바로 RS재단의 모토였다. 아무리 강하게 털어본다고 한들, 먼지 자체가 없다면 흩날릴 것도 없는 법이었다.
다만 한 가지.
과연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이 벌인 건지는 확실히 궁금했다.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게 있기는 한데.
일단은…….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 정도 자신은 있었다.
수년간 여러 후원을 하면서 다양한 인맥을 맺었다. 덕분에 오늘도 미리 국세청 감사를 알 수 있었고.
그래,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위기를 모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성삼전자 부회장에게 부탁할 수도 있는 일이었고 아니면 조금 전 전화를 건 캐피탈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 해결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류성은 제대로 끝을 보고 싶었다. 상대의 정체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그들이 책임을 지게 만들고 싶었다.
“흐음.”
당장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지만.
묘수가 존재할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었다.
* * *
박연후가 RS재단 본사에 들어섰다.
이미 내부는 번잡했다.
“왔냐?”
“어, 시X…… 국세청에서 나왔다고? 이게 맞냐?”
“그러게 말이다.”
사실 그렇게 난잡한 상황은 아니었다. 국세청 직원도 깔끔하게 내부 자료를 수거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분위기가 좋을 순 없었다. 재단 직원들은 특히나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일단 후원 문의하러 온 것처럼 둘러대고 기다리는 중이거든. 근데 나 이제 시간이 없어서 빨리 가봐야겠다.”
“고맙다. 내가 확인할 테니까 어서 가 봐.”
“그래, 먼저 간다.”
동기가 떠나고 박연후는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며 몰래 사진을 찍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저벅.
그때 뒤쪽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덤덤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RS재단의 이사장, 류성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아, 네.”
“후원 문의하러 왔다가…….”
“그러셨군요. 안 좋은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어휴, 아닙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바로 처리해 드릴게요.”
“아, 예…….”
이런 상황에서도 기다려 달라니.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박연후는 류성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태평할 수가 있나.
아니지, 하긴.
어떤 탈세도 저지르지 않았을 테니까.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힘내시고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걸어가는 이사장의 뒷모습은 든든한 거목과도 같았다. 스스로에게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어 보였다.
멋있다……!
박연후는 속으로 감탄하며 그 모습도 사진에 담았다.
스윽
곧이어 국세청 조사팀장과 류성이 마주했다. 둘은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일단 자료는 전부 수거했습니다.”
“네. 깔끔한 조사 부탁드립니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사팀장으로 보이는 이도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뭔가 있어.
박연후는 눈을 빛내며 모습을 숨겼다.
머지않아.
국세청 직원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고 박연후는 조심스레 그들을 미행했다.
지하로 가려나.
예상대로 그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국세청 직원들이 차량에 탑승했고 조사팀장은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과장님, 일단 수거 완료했습니다. 예. 근데, 이게 맞습니까, 진짜로?”
꽤 거리가 있었는데도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그보다, 과장이라?
박연후는 서둘러 몰래 찍었던 사진을 단체방에 올렸다.
나 : 선배님들, 이 사람 아십니까?
그러자 바로 답장이 왔다.
선배3 : 국세청 조사과 3팀장이네
나 : 아,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3 : 그래, RS재단인가 본데?
나 : 맞습니다!
선배3 : 조심하고, 조금 있다 정리해서 알려줘 봐. 나도 돕고 싶으니까
선배1 : 나도ㅎㅎ
동기2 : 국세청에서 조사까지 나왔으면 심상치 않네
동기3 : 이건 돕는 게 맞지
선배3 : 솔직히 RS재단 건드리는 건 아니잖아
나 : 그럼요! 옳은 말씀입니다!
선배3 : 그래, 한번 해보자. 까짓거!
나 : 감사합니다!
아무튼, 정체는 나왔다.
조사과 3팀장.
그렇다면 전화 통화를 했던 상사는 조사과장일 터였다. 분위기로 보아하니 3팀장보다는 조사과장을 조사하는 게 배후를 알아내기에 더욱 적합하리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미행을 이어갔으나 예상대로 그들에게선 더는 특이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 * *
조사과장을 조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움이 더 필요했다.
박연후는 오랜만에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친구의 형이나 누나. 다시 그들의 지인으로 뻗어 나가 닿은 한 사람이 눈앞에 등장했다.
“그래, 후배님이라고 했죠?”
“예, 선배님!”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이 집중된 서울중앙지검. 거기서 근무를 하는 검사였다. 서둘러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사회부 기자, 박연후이라고 합니다!”
“친한 친구 부탁이라서 일단 만나기는 합니다만. 제가 바빠서 직접 움직일 순 없고요.”
“아, 네.”
“다행스럽게도 관심을 보이는 후배가 있어서 불렀어요.”
“가, 감사합니다!”
“곧 도착할 텐데…….”
그때 꽤 젊은 사내가 등장했다.
“어, 여기야.”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딱 맞췄어. 앉아.”
사내는 자리에 앉아 뜨거운 눈빛으로 박연후를 쳐다봤다.
“반갑습니다. 저는 한세훈 검사라고 합니다.”
“아, 네. 박연후 기자입니다.”
“RS재단이 곤란한 상황에 부닥친 건 알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열이 뻗쳐서 알아보던 중이었거든요.”
“아아……!”
“터놓고 얘기하기 전에 먼저 묻겠습니다.”
“예.”
“왜 RS재단을 돕는 겁니까? 서로 간에 확실히 해둬야 의심을 사지 않을 거 같아서요. 참고로 저는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시절, 특별 후원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고아원 출신이었거든요. 결국, 로스쿨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고 덕분에 검사가 될 수 있었죠. 그래서 돕는 겁니다. 은혜는 갚아야 하니까요.”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은 이상, 뒤로 발을 뺄 순 없었다.
“저는…… 제 여동생이 불치병이었어요.”
“으음.”
“지금도 완전히 치료된 상태는 아니죠. 어쩌면 평생 치료를 받으면서 살아야 할 가능성도 크고요. 문제는 병원비였어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죠. 근데 그걸 RS재단이 해결해 줬어요. 벌써 3년이 넘게 모든 비용을 후원받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제가, 어떻게 안 도울 수가 있겠어요.”
“그랬군요.”
그에 옆에 있던 선배 검사가 헛기침했다.
“크흠, 난 그 정도로 받은 건 없지만 그래도 RS재단이 좋은 곳이란 건 알지. 근데 너무 바빠서 말이야. 세훈아, 나머지는 부탁 좀 하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님.”
“든든하네. 그럼 난 먼저 가야겠다. 먼저 가볼게요, 후배님.”
“아, 네.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선배 검사가 물러나고 박연후 기자와 한세훈 검사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둘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어느 정도 의기투합을 한 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먼저 박연후부터 알아낸 걸 언급했다.
“일단 조사과장이 연관된 건 확실해요.”
“조사과장이라면…….”
그 말에 한세훈이 눈을 빛내더니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람 말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으음……!”
“왜 그러시는지.”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아 주목하는 재벌 3세가 있습니다.”
“네.”
“총 세 명인데 주로 이끄는 녀석이 유중렬이죠. xx기업 부회장의 세 번째 아들인데 행실이 좋지 않아요.”
“그렇군요.”
“외에도 재벌그룹 20위권, 30위권에 속한 망나니 두 녀석이 속해 있는데. 아무튼 거길 이끄는 유중렬이 최근 조사과장과 만난 적이 있더군요.”
“예? 저, 정말요?”
“네, 확실합니다.”
“허, 그러면…….”
“물론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배후를 확신할 순 없죠.”
“아, 그건 그렇죠.”
“조금 더 파헤쳐 봅시다.”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다만 확신을 위해 세밀한 조사가 필요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