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76화
173. 움직이는 사람들(3)
국민의 관심 덕분이었을까.
사건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검사의 수사 역시 한층 더 빨라졌으며 팩트에 기반한 다양한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횡포를 일삼는 대기업 재벌 3세, 이대로 괜찮은가?]
[국세청을 뒤에서 조종하는 재벌?]
[국가 기관이 재벌의 압력에 휘둘리는 현 사태에 대하여]
[재벌의 횡포, 억압?]
[한낱 개인의 일탈일 뿐인가?]
기사 내용은 대부분 유중렬에 관한 것이었고 그 탓에 댓글에는 상당한 악의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대중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냐고 진짜
-와, 그러니까요
-재벌 외압에 국세청 감사라니...!
-몇 번을 생각해도 최악!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RS재단은 먼지 한 톨 없었다고 하네요
-역시 RS재단ㅠㅠ
-믿음의 재단이죠!
-심지어 마음먹고 털어버린 건데 말이죠
-리스펙합니다^^
-그 부분은 너무 좋긴 하지만,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을 듯?
-진짜 열받습니다!
-책임져야죠. 유중렬 혼자 뭐 검찰 조사받으면 땡인가요? 연계된 사람들 다 처벌합시다!
-맞습니다, 책임져야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합시다!
-해야죠, 나서야죠!
-그냥 넘어가면 큰일 납니다!
분노는 결국 여론을 만들었다.
끝내 국민청원 사이트에 해당 사건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갔다.
[우리 모두 함께 RS재단을 지킵시다!]
[이번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중렬이라는 인간이 RS엔터에 전화를 건 게 시작이었죠. 아이돌 멤버 성상납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그가 속한 소모임 인원 전원이 동의했다고 하는군요. 총 3명입니다.]
그간의 사건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당연히 엔터 부대표님, 그리고 대표님 역시 거절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유중렬은 국세청 과장을 만났고 다음 날, RS재단은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재단에 쳐들어와서 모든 자료를 들고 가서 털었지만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죠. 그런데 그 모든 악행을 일삼은 인간은 편안하게 검찰 조사나 받고 있네요. 껄렁거리면서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받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요. 심지어 처음에는 그렇게 받았고 그 이후로는 출두도 미루고 있는 상황이죠. 이게 말이나 됩니까? 드러난 악행이 몇인데 지금 이런 식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하나부터 열까지 옳은 말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유중렬과 그가 다닌다는 소모임, 그리고 그들 세 명이 속한 해당 대기업을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요청합니다!]
국민청원은 빠른 속도로 퍼졌다.
-여기 국민청원 올라왔어요!
-링크 공유합니다.
-동의 부탁드릴게요!
-동의합시다!
-시간 되시는 분들 참여 부탁드려요!
무수한 사람들이 움직였다.
엄청난 애정으로.
가득 찬 분노로.
타의보다는 자의적으로.
-동의했습니다^^
-동의 완료!
-저도 동의했어요
-이건 무조건이죠
-저 이런 거 진짜 안 하는 사람인데 저도 참여했어요!
-제대로 조사 갑시다!
-이건 참여해야죠ㅎㅎ
-참여했습니다
-동의 완료요. 화이팅!
-RS재단 만세!
-유중렬 타도! xx기업 타도!
서로가 하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였다.
[RS재단 지킴이, 국민청원 하루 만에 100만 명 돌파!]
[매초 증가하는 국민청원 동의 인원!]
[이튿날, 더 빠른 속도로 증가!]
[국민청원 250만 명 돌파!]
[사람들의 관심이 재벌 3세의 악행에 모여있는 가운데…….]
[RS재단이 걸어온 길!]
그렇게 국민청원 열풍이 불었다.
겨우 1주일이었다.
단 7일 만에 국민청원에 동의한 인원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변화가 찾아왔다.
* * *
대한민국 재벌계에서 명성을 드높이는 유 회장.
유중렬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볼을 부르르, 떨며 보고를 듣고 있었다.
“천만, 무려 천만 명이 넘었다고?”
“예…… 아버지.”
“허허, 그래. 자식 간수에 무관심할 수 있지. 실수했으면 달게 벌 받게 하면 돼. 하지만 그것도 정도란 게 있는 거자. 이런 상황까지 가게 만들어서 도대체 어쩌잔 거냐!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넌 뭘 한 거야!”
“……죄송합니다.”
“못난 놈.”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의 유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문 준비해라. 나도 발표하고, 너도. 그리고 네 녀석 자식도!”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무마해, 어떻게든. 네 자식 놈을 감옥에 처넣어서라도! 알겠어?”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 손자입니다.”
“그래서, 기업을 무너트리자는 거냐?”
“겨우…… 겨우 국민청원일 뿐이에요.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 잠잠해질…….”
“이런 멍청한 녀석!”
유 회장이 결국 손을 휘둘렀다.
짜아아악-
유중렬의 아버지가 뺨을 맞고 휘청거렸다.
“정신 차려, 이 녀석아! 무려 천만 명이다. 천만 명! 이러다 기업이 무너져! 숫자를 무시하지 마라! 아무리 개미여도 천만 마리의 개미라면 너 하나 정도는 죽이고도 남아!”
“……죄송합니다.”
“어서 준비나 해!”
“예.”
빠르게 대국민 사과를 준비했다.
그것도 생중계로.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준비가 끝났다. 무수한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유 회장이 가장 먼저 기자들 앞에 나섰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면서.
10초를 그렇게 있다가 얼굴을 들고서 말을 이어갔다.
“……해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밝혀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 손주 녀석의 문제 또한 제대로 밝혀내겠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불법을 저질렀다면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꽤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어서 사장도.
마지막으로 유중렬 본부장까지 나서 사과를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사과하는 그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그러나 카메라엔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들었을 땐 이미 표정에 가면을 쓴 상태였으니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제가 저지른 죗값,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멍청하게도…….”
생각보다 연기력이 좋았다. 일부 국민의 분노가 사그라들 정도로.
-흐음, 진심인가?
-보나 마나 연기일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회장은 봐줄 만한 듯
-그건 ㅇㅈ해요
-유중렬은 모르겠네요? 표정이 좀 오묘해서
-뭐, 일단 지켜봐야겠네요
-그래야 할 듯
-검찰 조사나 성실하게 받기를!
조금은 유해진 분위기가 형성된 순간이었다.
누군가 손을 들면서 외쳤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겁니까? 그럼 왜 애초에 그런 짓을 한 거죠? RS엔터에 성상납을 제안하고 거절당해서 그 분노를 RS재단 죽이기로 표현한 거 아닙니까? 언론을 움직이고! 국세청을 움직이다니!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긴 한 겁니까! 대답 바랍니다! 정말 진심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겁니까!”
그에 유중렬의 표정이 썩어갔다.
“기자님…… 혹시 이름이……?”
“xx방송국 사회부 기자 박연후입니다! 제 이름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협박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질문에 대답이나 해주시죠!”
“물론……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치기 어린 감정을 이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표정은 그렇지 않은데요?”
“아닙니다.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도저히 믿음이 가질 않지만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그에 방송을 보던 이들이 크큭거리며 웃었다.
-ㅋㅋㅋㅋ속이 시원하네
-역시 기자정신!
-엇? 박연후 기자님이면 그 사람 아닌가요? 국세청 과장이랑 유중렬이 만났던 사진 증거 기사로 쓰셨던 분?
-에엑?
-찾아보니 맞네요ㅋㅋㅋ
-와, 여윽시!
-멋집니다!
그렇게 대국민 사과가 끝나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유 회장은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가 초조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 실장, 분위기가 어떤가?”
“다행입니다, 회장님. 분위기가 한층 유해졌습니다. 소란이 제법 가라앉을 모양입니다.”
“그래? 정말인가?”
“예, 지켜보자는 이야기가 다수입니다.”
그 말에 유 회장은 흡족한 듯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다행이군, 정말로 다행이야.”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조용히 지나갈 줄 알았던 고요한 새벽은 광란의 질주로 뜨거워졌다.
* * *
아침부터 대한민국이 달아올랐다.
-ㅋㅋ이럴 줄 알았지!
-반성은 무슨ㅎㅎ
-전부 다 연기였던 걸로^^
-ㅅㅂ음주운전? 거기다 속도 200으로 질주했다고?
-사고까지 났대요
-다른 차 몇 대를 박은 거냐고!
-본인은 심지어 멀쩡함
-진짜 최악이다ㅠㅠ
-하, 사회에 피해만 주는구나ㄹㅇ
-반성한다고? 죄송하다고? 이게 그런 사람의 태도임? 말이 된다고 봄?
-말 안 되죠ㅋㅋ
-선 넘었다, 이건 정말
-애초에 넘었었음ㅎㅎ
-봐줄 수가 없네
오늘 새벽, 유중렬이 술에 취해 스포츠카로 도로를 질주했다. 해당 사건이 인터넷을 도배해 버렸다.
내용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중간에 경찰에게 걸려 도주 행각까지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다른 차량을 치는 등, 사고까지 발생했다는 소식이 주를 이뤘다.
경찰과 일부 시민이 중상을 입었으나 유중렬은 멀쩡히 걸어 다니는 사진이 퍼지면서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건 진짜 국민을 호구로 아는 거 같은데?
-아침부터 어이가 없으려니ㅋㅋ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어요ㅠ
-어제 대국민 사과를 한 사람이 음주운전에 도주에 음주사고까지?
이어서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도 나왔다.
텐프로였다.
-이야, 여자 옆구리에 끼고 아주 떡이 된 거네?
-대단하다, 대단해
-ㅎㅎㅎ
-할 말이 없네요, 정말
그 순간 등장한 하나의 단어.
-ㅅㅂ불매운동 합시다!
모두가 그 단어에 빠져들었다.
-오, 불매운동!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었는데ㅎㅎ
-저만 생각하던 게 아니었군요?
-참여합니다, 불매운동
-진짜 제대로 한번 당해봐야 사람이 무서운 줄 알죠!
-우리가 ㅈ으로 보이냐고!
-불매 가즈아아아!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냄비근성? 식을 때마다 다시 불 지르면 되지, 뭘!
-가보자고!
그렇게 재계 서열 10위권의 대기업이 5천만 국민의 불매운동을 정통으로 맞았다.
망나니 재벌 3세.
단 한 명으로 인해서 말이다.
* * *
류성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흐음. 이건 괜찮겠고.
많은 이들을 후원하는 중이었고 다양한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해당 수익은 다시 사회에 환원되는 걸 목표로 했다.
그렇게 2시간이 흐르고.
“후아. 좀 쉴까.”
기지개를 켜고 서류를 덮은 뒤 휴게실로 향했다. 몇 명의 직원들이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앗,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네, 저도 좀 쉬러 왔습니다.”
“커피 드시려고요?”
“맞아요.”
“옆에서 같이 마셔도 되나요?”
“그럼요.”
직원들은 눈을 반짝이며 류성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부터 다가오는 걸 막지도 않았고 워낙 직원들과 마주하는 일이 많아서 거리감이 크지 않은 덕분이었다.
뭐, 작업을 거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는 느낌이라 류성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일단 커피부터 탈게요.”
“네!”
“마실래요?”
“정말요? 전 좋아요!”
“저도 좋습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느긋하게 커피를 제조했다.
일곱 잔이면 되겠네.
이후 궁극의 커피를 나눠주고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연스레 직원들이 류성의 주위에 포진했다.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참, 그 유중렬이란 사람 구속 영장 나왔다던데…….”
“맞아요.”
주제는 뭐, 뻔했다.
유중렬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제 구속된 상태에서 검찰 수사를 받는 거죠?”
“그렇죠. 고생 좀 할 겁니다.”
“어휴, 잘됐네요. 진짜.”
“속이 시원하네요!”
“진즉에 구속 수사를 해야 했던 건데.”
류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도 마음 졸였을 테니까.
“참, 그리고 불매운동도 장난 아니래요.”
“그래요?”
“네. 이번엔 진짜 사람들이 단단히 마음먹었나 봐요.”
“으흠.”
“혼쭐 좀 나면 좋겠어요!”
“아무튼 이번에…….”
이야기를 계속 듣던 류성은 커피를 다 마시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휴게실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이사장실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크흠.”
눈빛이 꽤 무겁게 다가왔다.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는 듯.
흐음.
그들의 시선에 류성은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RS재단은 세상 누가 털어도 먼지 하나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누군가 우릴 음해해도 우린 어떤 타격도 받지 않을 겁니다. 이번 사건처럼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업무에 집중해 주세요.”
“네, 이사장님!”
“알겠습니다!”
“RS재단 최고예요!”
“그럼 먼저 올라가 볼게요.”
“네!”
휴게실에서 나와 이사장실로 들어왔다.
직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평소에는 업무가 워낙 바빠서 유중렬 사건에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큰 흐름 정도야 알지만 세세한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한번 제대로 알아볼까.
오랜만에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지 봐두기로 했다.
먼저 너튜버에서 검색을 해봤다.
이름만 쳤는데.
관련 있는 영상이 주르륵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