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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6화 (6/424)

006화 아시테르가 태어나다

두 사람은 다음날 비체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

“아이를 가졌다니!! 축하할만한 일이로구나!”

비체는 이 기쁜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밖으로 나섰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큼지막한 돼지형태의 마수를 업고 돌아왔다.

비체는 곧장 불을 지피며 마수를 손질했다.

“이놈이 생긴 건 이래도 고기가 아주 부드럽고 맛있거든. 지금부턴 무조건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홀몸이 아니니 책임감을 갖고 건강을 지키는 거야!”

비체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입꼬리는 조금 전부터 내려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비체는 이 경사스러운 일을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의 진심에 유미르와 아레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딱!

비체가 들고 있던 막대기로 유미르의 어깨를 때렸다.

“흡!”

“뭘 하고 있는 거냐 이 아둔한 제자 녀석아! 빨리 와서 도와야지!”

“아, 예! 알겠습니다!”

“이제 네놈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거니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어깨에 지워질 책임감이 무겁다 느껴지지 않으려면 말이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스승님.”

유미르는 비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좋았다.

가끔 거칠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엔 자신과 아레나를 걱정하는 말들이 가득이었다.

그는 비체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고 있으면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얼굴에 뭐 안 묻었다. 그러니 고기 손질에 집중해라! 빨리 하고 다시 수련해야지. 이제 아이까지 생겼으니 더더욱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강해져야 하지 않겠느냐? 이 험한 던전에서 소중한 가족들을 지키려면 말이다.”

“예!”

유미르는 힘찬 대답과 함께 손질에 박차를 가했다.

그가 빠르게 손을 움직이는 걸 보면서 비체도 피식 웃어버렸다.

비체는 이날 이후로도 아레나의 건강에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뿐만 아니라 유미르를 가르치는데도 결코 소홀함이 없었다.

그런 비체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유미르도 가르침을 받는데 최선을 다했다.

사실 마력을 모두 잃은 그에게 새로운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절실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도 재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

유미르를 바라보던 비체가 괜히 입꼬리를 실룩였다.

그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유미르는 평생 마력만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덴 영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비체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 걸.

막상 가르쳐보니 유미르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다.

엉성하던 움직임도 차츰 안정감을 찾아갔다.

게다가 몸에 근육이 붙는 속도도 놀라웠다.

“호오…….”

비체가 유미르를 가르친지 1년이 지났을 땐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그 변화가 뚜렷했다.

곁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아레나도 한 마디씩 거들어주었다.

“정말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은 변화가 있어요.”

그녀의 말이 유미르에게 하나의 기폭제였다.

아레나가 지켜보고 있을 때면 평소보다 더욱 집중해 수련했다.

변화는 유미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레나 또한 점점 불러오는 배 때문에 거동이 힘들어졌다.

그런 아레나를 유미르뿐만 아니라 비체까지도 소중히 대해주었다.

그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두 사람은 많은 부분들을 도와줬다.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두 사람은 할 거 하세요.”

아레나가 몇 차례나 괜찮다는 말을 전했지만 의외로 두 사람 다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아레나도 연거푸 거절하진 않았다.

그런 일상들의 반복되던 어느 날 새벽.

두 사람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아레나는 건강하게 예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응애―!응애애!!”

조용하던 던전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아이를 보며 유미르가 눈시울을 붉혔다.

던전에서 태어난 이 소중한 생명은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어디보자… 이야! 이거 사내아이로구나!”

아이를 바라본 비체가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에게도 아이는 많은 감정들을 가져다주는 모양이었다.

비체는 지금껏 보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고생했어요.”

유미르는 땀범벅이 된 아레나의 곁에 다가가 그녀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레나의 시선은 아이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놈 참 울음소리가 우렁차구나!”

비체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깨끗한 이불로 아이를 감싸주었다.

어느새 세 사람의 시선이 아이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아레나의 품안에서 새근대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우웅――

아레나의 몸에서 환한 빛이 일고 아이의 몸에서 덩달아 희미한 빛이 일었다.

놀란 유미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레나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우리 가문에선 흔히 있는 일이에요. 아무래도 우리 아이가 제 마력을 이어받은 모양이에요.”

“아! 그렇다면……!”

“프로메테 가문은 고유의 마력을 갖고 있어요. 때문에 우리 가문은 대대로 화염 마법만을 다뤄왔죠. 우리 아이도 저를 닮아 화염 마법을 사용하려나 봐요.”

“하하!! 아하하하!! 좋지좋지!! 외모는 나를 닮은 대신에 마법은 당신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나보군요!”

“어머? 외모도 저를 닮아 미남으로 자라겠는 걸요?”

“에? 그런…….”

유미르와 아레나의 대화를 들으며 비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세상… 씁쓸하구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비체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비체에게 유미르가 다가갔다.

“스승님께서도 아이를 안아보시겠습니까?”

“나?”

“예.”

“아니… 흠…….”

아레나가 괜찮다는 얼굴로 아이를 비체의 품에 안겨주었다.

금방이라도 울 줄 알았건만 놀랍게도 아이는 비체의 품에 조용히 안겨들었다.

“허허, 녀석.”

작고 소중한 생명체였다.

너무도 연약해 힘을 주는 것조차도 극도로 신경 써야 했다.

아이가 작은 기침을 하자 비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이곳이 너무 춥나? 더 따뜻하게 불을 지펴야 하나?”

비체가 놀라 묻자 유미르와 아레나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가 이렇게 당황한 것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왜, 왜 그렇게 봐?”

“너무 걱정마세요. 충분히 따뜻한데다 프로메테 가문의 마력이 깃들어 있어서 춥진 않을 거예요. 게다가 따뜻한 이불로 덮어주셨잖아요.”

“흠흠…….”

비체는 헛기침을 하며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보니 아이를 안은 손에 따뜻함보단 살짝 뜨거운 느낌이 전해졌다.

아마 아레나와 같은 프로메테 가문의 마력이 아이를 지켜주고 있는지도 몰랐다.

비체는 저도 모르게 빤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아아… 미안하구나. 내가 너무 오래 안고 있었나?”

“아뇨. 그게 아닙니다.”

“그럼?”

“스승님께서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예.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이름을 고민하던 때에 아레나가 먼저 말해주더군요. 아이의 이름을 비체님께서 지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유미르의 말에 아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체가 오히려 멍한 얼굴이 되었다.

이내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정말 내가 아이의 이름을 지어도 되겠나?”

그러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비체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험험… 그렇지 않아도 미리 생각한 이름이 있긴 했다만. 나는 아이의 이름을 ‘아시테르’라고 짓고 싶구나.”

잠시 말없이 아이를 바라보던 비체가 다시 아레나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유미르가 환한 웃음을 보였다.

“아시테르라… 좋은 이름 같습니다.”

“저도 찬성이에요.”

아레나도 비체가 붙여준 이름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비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이곳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하늘을 잊고 산지 오래였다. 그런데 오늘 저 아이를 보니 참으로 소중한 느낌이 들더구나. 많은 벅찬 감정들을 느꼈다. 내가 이곳에서 나가 하늘을 본다면 바로 이런 느낌들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군요.”

“하하하!! 그래. 이 녀석이 내겐 하늘과 다름없는 거지.”

비체가 사랑스런 시선으로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유미르. 아레나.”

“말씀하세요 스승님.”

“너희들만 괜찮다면 이 아이가 다섯 살이 되는 해 선물을 주고 싶구나. 만약 아이가 선물을 받게 된다면 우리 발도르 왕국의 명맥을 잇게 될 거다.”

“그렇게 하십시오.”

곧바로 이어진 유미르의 답에 비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놀란 모습에 유미르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스승님께선 저와 아레나를 진심으로 위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시테르는 스승님의 소중한 하늘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하는 동안 보여주셨던 표정은 이곳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습니다. 스승님께서 그만큼 감정을 내비칠 정도로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스승님께서 아시테르에게 좋으면 좋았지 해가 될 만한 것을 선물해주시진 않겠죠. 아레나,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유미르의 자연스러운 질문에 아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사실 유미르만큼이나 비체를 신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자신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이자 비체도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렇게 얘기해주니 정말 고맙구만. 유미르 너도 알다시피 나는 우리 왕국 수호신들의 영기를 사용한다. 발도르 왕국의 사람들은 왕국 수호신들의 힘을 빌리지. 수호신의 기운이 사람에게 가장 잘 깃들 수 있는 시기는 태어난 지 5년째 되는 해다. 그때 영계의 문을 열게 되면 너에게도 힘을 빌려줄 수 있는 수호신이 있는지 시도해보마.”

“아……!”

비체의 말에 유미르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유미르는 비체의 힘을 빌려 영기를 사용했었다.

비체와 함께 하고 있는 수호신이 유미르에게 영기를 빌려준 것이다.

비체에게 수호신의 힘이 깃들어 있다면, 유미르는 그의 힘을 빌리는 일종의 계약자인 셈이다.

하지만 만약 유미르에게도 수호신의 힘이 깃들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터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시테르가 태어난 이후 유미르는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레나의 몸도 점차 회복되어갔다.

다행히 아시테르도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히 자라주었다.

“후후, 엄마아빠 고생 안 시키고 정말 잘 자라주는구나.”

비체도 그런 아시테르가 어여뻤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아시테르를 보살펴 주었다.

잠시 비체가 아시테르를 돌봐주는 동안 아레나가 유미르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수련은 할 만한가요?”

“확실히 마법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더군요.”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당신도, 아시테르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난 멀었어요. 얼마 전 마수들을 토벌하러 갔을 때도 스승님이 백여 마리를 상대하시는 동안 난 고작 열 마리 상대로도 벅찰 지경이었어요.”

“당신 너무 배부른 소리 하는 것 아니에요? 첫날을 떠올려 봐요. 마수를 상대하는 것은커녕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힘들어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마수들이 우릴 노려도 충분히 지켜줄 힘이 있잖아요.”

“진짜… 당신은 최고의 아내예요.”

유미르가 아레나에게 살짝 입맞춤을 했다.

쿠르르릉―!!

그때 갑자기 던전의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를 안아들었던 비체가 서둘러 유미르와 아레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비체에게서 아레나가 아시테르를 안아들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가보자.”

“예.”

굳은 비체의 얼굴 때문인지 유미르도 덩달아 긴장한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레나도 떠나가는 유미르와 비체를 보며 말했다.

“두 분 모두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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