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화 마수들이 습격
비체와 유미르는 곧바로 보금자리 바깥으로 나섰다.
그들이 보금자리로 만든 곳은 던전 내에서도 동굴처럼 형성된 곳이었다.
움직이는 동안 비체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승님이 이토록 불안해하시는 것은 처음 봅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던전 내에 이 정도 파동이 있을 때는 우두머리 급 녀석이 나올 때다.”
“우두머리요?”
“그래. 무리의 정점에 있는 녀석 말이다.”
비체의 말에 유미르도 서서히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싸워온 마수들과는 다를 거란 얘기였다.
유미르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간혹 우두머리급 중에는 나와 필적하는 놈들도 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예.”
비체는 잔뜩 굳은 유미르를 보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긴장의 끈은 놓지 않되 너무 걱정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켜줄 테니.”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크게 신경 쓰지 않도록 저도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해내겠습니다.”
“좋다.”
비체와 유미르가 한참을 달리자 먼발치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마수들이 보였다.
마수들을 보며 유미르는 언젠가 비체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던전 내에서 마수들과 계속해서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그러자 비체는 답했다.
“특별한 이유? 아주 간단하다. 빌어먹을 마수들을 막기 위해서지. 놈들의 목적은 아포칼립스 문의 붕괴다. 틈새에서 빠져나와 아포칼립스 문의 봉인을 풀려는 거야. 그러니 놈들의 목적을 그대로 이루게 둘 수는 없지 않느냐? 아포칼립스에서 뭐가 튀어나올진 모르겠다만 봉인이 풀리면 세상에 엄청난 위기가 닥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이곳에 온 것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의 답에 유미르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남은 사명이 무엇인지 말이다.
유미르는 앞서 나가는 비체의 등을 바라보았다.
저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뒤쳐지지 마라.”
“네!”
비체가 검을 뽑자 화려한 빛이 검신을 감싸 안았다.
“크롸아앙―!!”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마수는 늑대처럼 생긴 외형을 갖고 있었다.
놈들의 이마엔 뿔이 돋아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조심해!!”
비체의 경고와 동시에 뿔에서 쏘아진 전격이 대지를 가격했다.
그의 경고성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가까스로 전격을 피해낸 유미르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크롸앙!!”
빈틈을 노린 마수 한 마리가 빠르게 덤벼들었다.
한 차례 호흡을 고른 유미르가 검을 들어올렸다.
이어 그가 한 발을 내딛으며 호흡을 뱉었다.
새하얀 검신이 곧은 직선을 그린다.
스강―!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이만큼 해내기 위해 밤낮없이 같은 동작들을 반복해왔다.
마수의 다리가 깔끔하게 잘려나가자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잠깐 주춤한 그 틈이 기회였다.
유미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내질렀다.
푸슉―.
검끝이 마수의 심장을 꿰뚫었다.
잠시 경련을 일으키던 마수가 이내 축 늘어졌다.
“후우…….”
잠깐 호흡을 고를 시간조차 없었다.
이어진 마수의 공격이 유미르의 허벅지를 스쳐지나갔다.
녀석의 단단한 발톱은 스치기만 했는데도 옷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함께 뜯겨진 살점에 핏물이 튀었다.
동족의 죽음 때문인지 마수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미르는 침착했다.
그는 검을 들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를 찾았다.
혹시나 싶어 유미르를 주시하고 있던 비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유미르는 등 뒤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벽을 등졌다.
뿐만 아니라 마수들의 시선을 주시하며 다음 공격을 예측했다.
“가르치는 맛이 나는 녀석이라니까.”
어쨌거나 저 정도면 당장 마수들에게 당할 일은 없어보였다.
그 사이에 자신이 빠르게 이곳을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비체가 영기를 개방하자 검끝의 환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내가 있는 한 너희들은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빠르게 날아간 빛의 점들이 마수들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마수들은 어떻게 해서든 비체와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
하지만 비체에게 빈틈은 없었다.
그는 조금의 다가섬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우우우우―――!!”
그때 커다란 하울링이 들려왔다.
영기를 사용해 마수들을 도륙하던 비체도 이번엔 눈을 빛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구나.”
높은 바위 위로 자태를 드러낸 녀석.
다른 녀석들처럼 늑대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이마에 돋아난 두 개의 커다란 뿔 사이로 눈 하나가 더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세 개의 꼬리를 갖고 있었다.
회백색의 피부를 지닌 녀석이 날선 시선으로 비체와 유미르를 노려보았다.
녀석의 하울링 때문인지 비체가 만들어낸 빛의 점들이 크게 흔들렸다.
후우웅―!!
녀석의 꼬리에서 세 개의 구체가 떠올랐다.
“네 뜻대로 될 성 싶으냐.”
비체가 먼저 몸을 날렸다.
그의 검이 환한 빛무리를 일으키며 소용돌이쳤다.
슈웅! 슈웅!!
세 개의 구체가 차례로 쏘아져나갔다.
두 개의 구체는 비체에게로, 다른 하나는 유미르에게로 향했다.
비체는 빠르게 검을 휘둘러 한 개의 구체를 베어버렸다.
이어 다른 하나를 막아내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 순간,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이 비체의 몸을 물어뜯으려 했다.
“어림없는 짓을!”
비체가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수가 자신의 뿔로 비체의 검을 튕겨내 버렸다.
“!!!”
비체가 놀란 눈으로 마수 녀석을 쳐다보았다.
뿔까지 통째로 베어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콰라랑!!
마수가 쏜 구체가 바닥을 격하자 거센 폭음이 들려왔다.
마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비체에게로 달려들었다.
“흐압!!!”
섬전과도 같이 나아간 비체의 검이 단숨에 우두머리 마수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동시에 마수의 뿔에도 붉은 핏물이 묻었다.
그 사이 마수의 뿔이 비체의 옆구리를 뚫고 지나간 것이다.
“크읍……!”
방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생각보다 마수의 움직임이 빨랐다.
“아우우우――!!!!”
녀석이 포효하자 함께 있던 무리들이 똑같이 울음을 토해내었다.
비체의 시선이 빠르게 유미르를 찾았다.
미처 막아내지 못했던 다른 한 개의 구체가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도 유미르는 무사한 모양이었다.
그는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마수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잘 피했나보군.”
이제 다시 눈앞의 마수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만만치 않은 놈이로구나.”
마수의 황동색 눈동자가 비체에게 집중되었다.
녀석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그러자 녀석의 뿔에서 전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쏟아지는 전격을 모두 피하는 것은 제아무리 비체라 해도 무리였다.
그는 검을 들어 영기를 쏘아냈다.
* * *
비체와 유미르가 마수 무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아레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우애――”
아시테르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아레나를 바라보았다.
아레나는 새하얀 손이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마, 아시테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만큼 전투가 격렬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지금이라도 가서 도와야줘야 할까…….”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시테르를 두고 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아시테르를 업고 가기에도 무리였다.
결국 그녀로선 두 사람을 믿고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크릉……!”
그때 두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몰래 진입 해 온 마수가 보였다.
아레나는 곧바로 두 팔을 들어 올려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륵―!
그녀의 손에서 쏘아진 화염구가 마수의 몸을 가격했다.
그러나 이곳을 습격해 온 것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의 마수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시선이 아레나와 아시테르를 훑었다.
마수들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감히!!”
두 눈을 번뜩인 아레나가 화염 마법을 펼쳤다.
허공에서 발화(發火)한 화염이 마수들을 휩쓸었다.
아레나는 마수들이 아시테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화염벽을 만들었다.
이어 그녀의 무시무시한 화염 마법이 마수들에게 쏟아졌다.
열댓 마리의 마수들이 화마에 휩쓸려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럼에도 아레나는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아직 많은 수의 마수들이 이쪽을 노리고 있었다.
“크롸아앙!!”
그때 칠흑빛깔의 늑대 한 마리가 기괴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나섰다.
녀석의 커다란 꼬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이마의 중앙에 커다란 뿔이 돋아난 놈은 아시테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아레나는 몸을 움직여 놈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한 눈에 녀석이 이곳의 대장임을 알 수 있었다.
“와라.”
그렇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노려야 할 것은 바로 저 놈이었다.
아레나의 양 손에서 화마가 치솟았다.
여기저기 치솟는 불길에도 마수들은 전혀 움츠러듦이 없었다.
오히려 놈들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납게 짖어대었다.
팟!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었다.
녀석은 빠른 움직임으로 아레나의 불길 속을 헤집었다.
아레나의 손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녀의 손끝에서 화염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크롸아앙!!”
녀석의 포효에 잠깐이나마 화염의 기세가 꺾였다.
마력을 흩트리는 특이한 능력에 아레나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더욱 세밀한 마력 조작으로 화염창을 만들었다.
창은 빠른 속도로 마수의 목을 노렸다.
콰직!!
화염창이 마수의 몸을 꿰뚫으려는 찰나 아레나의 옆구리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다.
“뭐……!?”
분명 녀석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
이들 중 그녀의 화염을 뚫을 만한 녀석들은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공격을 당한 것이란 말인가!?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어?”
두 개의 꼬리를 가진 마수 한 마리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녀석의 표정은 마치 아레나를 비웃는 듯 했다.
붉은 눈동자의 놈이 꼬리를 흔들며 움직였다.
그러자 놈의 몸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 과연. 그랬던 거였나. 그래서 눈치 챌 수 없던 거였어.”
놈은 자신의 몸을 숨기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마력을 흩트리는 녀석과 자신의 몸을 숨기는 녀석.
까다롭기 그지없는 상대들이었다.
그 순간 아레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놈이 없어……!”
화염창에 꿰뚫려 고통스러워해야 할 마수 한 마리가 눈앞에 보이질 않았다.
아레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다.
“안 돼!”
그러자 아시테르를 향해 뛰어가는 마수의 모습이 보였다.
아레나는 황급히 몸을 움직이며 화염 마법을 준비했다.
놈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녀를 순순히 놓아줄 마수들이 아니었다.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한 마리가 집요하게 아레나의 빈틈을 노렸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에워싸고 있던 녀석들도 공격에 가담했다.
“윽……!”
몇 차례 공격을 허용한 아레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등이 찢기고 핏물이 흘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급한 것은 아시테르를 지키는 것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아시테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둔 화염벽을 지나치게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수들에 이끌려 아시테르에게서 멀어진 것 또한 자신의 실수였다.
혹시나 아시테르가 싸움에 휘말릴까 싶어 거리를 벌린 것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고 말았다.
휘잉―!!
화라락!!
아레나의 손끝에서 쏘아져나간 화염의 화살이 빠른 속도로 마수의 뒤를 노렸다.
한 개의 뿔을 지닌 마수가 자신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화살을 응시했다.
“크허엉!!!”
놈이 포효했다.
그러나 놈의 예상과 다르게 화염으로 된 화살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수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놈은 몸을 피하기 위해 대지를 박찼다.
하지만 화살의 속도는 빨랐다.
화륵!
화살의 끝이 마수의 몸에 꽂혔다.
“됐어!”
그러나 아레나의 외침이 무색하게 마수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녀석이 큼지막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송곳니는 곧 아시테르의 연한 살갗을 파고들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