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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8화 (8/424)

008화 던전의 신수

후우웅―!!

그때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무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커다란 몸체를 지닌 붕새였다.

녀석은 허공에 뜬 채 마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건?”

아레나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색찬란한 깃털로 몸을 감싼 커다란 붕새가 아시테르의 위에 머물렀다.

슈파아앙!!!

녀석의 날개 짓에 아시테르 곁에 있던 마수가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붕새는 오만한 시선으로 마수들을 내려다보았다.

아레나조차도 붕새의 엄청난 존재감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붕새가 아시테르를 지켜주려 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녀석은 아시테르가 있는 곳 위에 사뿐히 착지해 날개로 아시테르를 감싸주었다.

“크허엉!!”

분노에 찬 마수가 괴성을 지르며 전격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전격은 붕새의 날개에 모두 막혀버리고 말았다.

“키야아아――!!”

붕새가 분노했다.

녀석의 날개 끝이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날개 끝에서 번진 새하얀 빛의 점들이 어둠과 함께 뻗어나갔다.

후르르릉―!!

유수처럼 몰아치는 어둠이 주변의 마수들을 집어삼켜 버렸다.

마수들이 어떻게 해서든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마음만큼 쉽진 않았다.

강물처럼 번진 어둠은 삽시간에 마수들을 휩쓸었다.

붕새가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쳤다.

그러자 이번엔 날개 끝에 화염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아레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붕새를 쳐다보았다.

어둠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마수들이 숨을 헐떡였다.

그사이 그들의 위로 화염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커헝!!”

“크랑!!!”

붕새의 엄청난 힘에 주눅들만도 하건만 마수들은 오히려 적의를 드러냈다.

화염의 비가 마수들의 몸을 사정없이 불태워버렸다.

우두머리 마수를 따라 남은 마수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마치 사냥감을 쫓는 맹수들처럼 놈들은 원을 그리며 붕새를 포위했다.

붕새는 아시테르를 보호하며 괴성을 질렀다.

마수들을 향한 경고성이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계속해서 아레나의 위치를 살폈다.

그제야 아레나는 붕새가 자신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레나는 혹시 몰라 붕새를 돕기 위해 마력을 끌어 모았다.

그러자 녀석의 눈동자가 아레나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시선은 마치 아레나에게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메시지 같았다.

붕새가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쳐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붕새의 꼬리가 푸르게 물들었다.

“설마……!”

아레나가 놀라는 것도 잠시 붕새의 주위가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대체 뭐야?”

아레나가 이토록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붕새는 지금 혼자서 다양한 원소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녀석이 드러내는 힘은 하나같이 막강했다.

“크랑!!”

“크헝!!”

붕새에게 시선을 빼앗긴 틈을 타 마수들이 그녀를 습격했다.

놈들의 기습은 신속하고 간결했다.

아레나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오른편에서 셋, 왼편에서 네 마리의 마수가 덤벼오고 있었다.

콰지직!!!

그 순간 멀리서 날아온 얼음송곳들이 마수들을 꿰뚫었다.

화염 마법을 펼치려던 아레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붕새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아시테르를 보호하며 마수들과 싸우고 있었다.

커다란 뿔이 달린 우두머리 급 마수들도 맹렬한 기세로 붕새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붕새도 이들의 공격을 막기만 하진 않았다.

휘콰아앙―!!!

마력의 폭풍이 마수들을 덮쳤다.

녀석들은 온몸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에도 붕새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붕새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결국 녀석의 힘 앞에 모든 마수들이 굴복하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분투하던 우두머리 급 마수들도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대단해…….”

붕새의 힘에 아레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직 녀석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자신 혼자였다면 아시테르를 저렇게 상처하나 없이 지켜내진 못했을 터였다.

붕새에게 커다란 은혜를 입은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왜 아시테르를 지켜주는 거지?”

모든 마수들이 쓰러진 것을 확인한 붕새가 마치 알을 품듯 소중하게 아시테르를 품었다.

그러자 오색찬란한 붕새의 몸에서 영롱한 기운이 일었다.

기운은 서서히 아시테르를 향해 스며들어갔다.

아레나는 단 한시도 붕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붕새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붕새가 아시테르를 품고 있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가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 뒤늦게 유미르와 비체가 도착했다.

두 사람 모두 마수들의 피로 흥건히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한눈에 두 사람이 치르고 온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여기까지 마수들이 들이닥쳤었군요.”

“엄청나구만.”

주위의 잔해들을 보며 유미르와 비체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전투를 마치고 급하게 달려왔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였다.

고개를 돌리자 유미르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저, 저게 뭐에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유미르의 질문에 아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비체가 곁에서 입을 열었다.

“저건 던전의 신수구나.”

“신수요?”

“그래. 나도 신수를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던전에 ‘신수’라는 것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왕국에 전해져오기로 던전의 신수는 이곳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존재해왔다고 했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저 신수는 우리들에게 곧 행운을 상징하기도 한다.”

“행운이요?”

“평생 어비스 던전을 돌아다녀도 단 한 번도 신수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선택받지 못하면 신수를 만날 수도 없다는 얘기야. 하지만 그럼에도 발도르 왕국 전사 중 어떻게 해서든 신수와 마주 하려는 자들이 많았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신수가 주는 특별한 행운 때문이다.”

비체가 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침 신수의 눈동자가 발도르에게 머물러 있었다.

“날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

신수의 날개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날개가 움직이니 민들레 씨처럼 생긴 초록빛 기운들이 사방에 퍼졌다.

그 기운들은 아레나와 유미르, 비체의 몸에 스며들며 상처를 치유해주었다.

신수의 시선이 이번엔 아레나에게로 향했다.

후웅!

단숨에 날아오른 신수가 아레나의 앞에 멈췄다.

신수는 자신의 부리를 아레나의 이마에 가져갔다.

후우웅―!!

그러자 물밀 듯 밀려오는 무언가가 아레나의 몸을 감싸 안았다.

“아…….”

갑작스런 현기증에 아레나가 몸을 휘청거렸다.

놀란 유미르가 곧바로 그녀의 몸을 부축해주었다.

“아레나! 괜찮아요?”

“아… 괜, 괜찮아요. 잠깐 어지러워서…….”

머리를 짚은 그녀의 손에서 푸른 불길이 일었다.

처음 보는 현상에 유미르도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그녀의 손에서 불길이 일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갑자기 푸른 불꽃이라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던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에요.”

두 사람을 지켜보던 비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가 신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바로 내가 말한 선물이다. 갖고 있는 힘을 한 단계 더욱 성장시켜주는 것.”

그때서야 유미르와 아레나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는 다시 아시테르의 곁을 지켰다.

“그런데 신수는 왜 아시테르를 보호해주려는 걸까요?”

“흠… 이건 내 짐작이다만, 아마 이 어비스 던전에서 처음으로 생명이 태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던전의 수호신이나 다름없는 신수가 함께 축복해 주는 거지.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좋을 대로 생각한 거지만 말이야.”

“그렇군요…….”

신수가 아시테르를 보호하려는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직 신수만이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한동안 신수는 아시테르의 곁에 머물렀다.

놀랍게도 아시테르는 신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울지 않는 모습에 세 사람 모두 안심했다.

아시테르의 조막만한 손이 신수의 부리에 닿자 신수의 깃털 하나가 가볍게 날아 아시테르의 곁에 안착했다.

그리고 신수는 거짓말처럼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신수가 떠나자 비체가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태어나자마자 신수의 축복까지 받다니… 이 아이는 정말 하늘의 가호라도 받는 모양이구나!”

그의 두툼한 손가락이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레나와 유미르도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시테르는 어느새 곤히 잠들어 있었다.

* * *

시간은 모두의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아시테르는 유미르와 아레나, 비체의 보살핌 아래 건강하게 자랐다.

첫걸음마부터 시작해 쑥쑥 크는 아시테르를 보며 비체도 새삼 시간이 흐르는 것을 실감했다.

“나 혼자만 있을 때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는데, 아시테르를 보고 있으니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유미르와 비체가 뛰어놀고 있는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아시테르는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았다.

유미르와 아레나는 그 모든 것이 신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아프지 않고 잘 자라는 것 또한 커다란 축복이니 말이다.

게다가 비체는 3살 때부터 조금씩 마력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레나는 크게 기뻐했다.

“여보, 우리가 천재를 낳았나 봐요!”

“그러게! 아시테르의 재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 아닐까?”

아레나뿐만 아니라 유미르도 아시테르의 재능을 보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두 사람이 한창 기뻐하고 있을 때 아시테르는 보란 듯이 마력으로 작은 불씨를 일으켰다.

프로메테 가문의 불꽃이었다.

그것을 보며 아레나는 또다시 뭉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우리 아이라 그런지 천재가 분명해……!”

두 사람의 팔불출 같은 모습에 비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아시테르에겐 재능이 있어보였다.

비체가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몇 번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어비스 던전은 마력의 근간을 이루는 마소량이 바깥보다 낮은 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서 펼칠 때보다 마법의 위력이 줄어든다고 했다.

마력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어비스 던전이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평소대로의 힘을 내지 못하니 이곳에서 마주하는 마수들의 강함이 더욱 크게 느껴질 터였다.

특히나 어비스 던전 내에서도 지독하게 마소량이 희박한 ‘라레피아’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서 마법을 사용하기란 극한의 지대에서 불꽃을 만들어내는 일과 같았다.

아레나도 수련을 위해 그곳에서 몇 차례 마법을 펼쳐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푸른 불꽃은 얼마 못가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만큼 마소량이 희박한 지역은 마법을 펼치기 어려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시테르는 마력을 다루기 시작한지 2년째 되는 해에 벌써부터 그곳에서 마력을 다루고 있었다.

그만큼 마력을 다루는데 천부적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물론 아레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양의 마력이었다.

하지만 라레피아 지역에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이제 곧 아시테르의 5살 생일인가?”

“네, 그렇습니다.”

비체가 슬쩍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서서히 준비해봐야겠구나.”

“아, 전에 말씀하셨던 그것 말입니까?”

“그래.”

비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마침 무언가에 열중하던 아시테르가 비체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

“그래.”

“이거 진짜 맛있어요.”

아시테르가 들고 있는 것은 말린 고기과 잔이었다.

고기는 불에 익혀진 상태였고 잔에선 알싸한 향이 풍겨 나왔다.

“스승님?”

“후… 일 났구먼. 잘 숨겨 놨다 생각했는데.”

“또 아레나에게 혼나시겠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레나가 오기 전에 둘이서 다 털어버릴까?”

비체와 유미르가 좋은 생각이라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것도 잠시,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져 왔다.

“비체님? 제가 분명 술은 아시테르의 손에 닿지 않도록 잘 놓아달라고 부탁드리지 않.았.나.요?”

“아, 하하…….”

비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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