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소녀를 만나다
“어?”
밀려오는 분함에 한참 동안 달리기만 하던 아시테르가 발걸음을 멈췄다.
돌아가는 골목에 못 보던 빛이 보였다.
“뭐지?”
아시테르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언가에 홀리듯 움직였다.
눈앞에 바로 있는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더 걸어가야 했다.
커브 길에 바로 돌아서니 환한 빛의 게이트가 보였다.
게이트를 처음 보는 아시테르가 그것을 만져보기 위해 손을 내민 순간, 빛은 순식간에 아시테르를 집어삼켰다.
시야를 뒤덮는 환한 빛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어지러움이 느껴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아…….”
짧은 신음성과 함께 아시테르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 외에 다른 별다른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였지?”
어안이 벙벙해진 아시테르가 두 눈을 꿈뻑였다.
그러다 곧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늘 보던 것들이 아니었다.
무성하게 펼쳐진 푸른 초목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던전에선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생명체들이 보였다.
“와아…….”
아름답게 핀 꽃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두 눈을 밝혔다.
입에선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들에 아시테르가 여기저기 걸어 다녀보았다.
“예쁘다…….”
아시테르는 주변의 풍경들에 시선을 빼앗기며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때 아시테르의 시선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었다.
붉은 머리칼에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작은 소녀였다.
인기척에 놀랐는지 소녀도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또래 여자 아이에 아시테르가 화들짝 놀랐다.
“아… 아앗!”
아시테르가 뒷걸음질을 치다 볼품없이 넘어지고 말았다.
그의 위로 흙탕물이 튀었다.
“넌 누구야?”
소녀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시테르도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는 넌 누구야?”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분명 우리 엄마아빠랑 할아버지가 분명 이 던전에는 우리밖에 없다고 했어.”
“던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모르는 척 하지마! 여기 던전에는…….”
“여긴 던전이 아니야.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건 너거든?”
소녀의 말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생각해보니 자신의 말보다 소녀의 말이 더 맞는 말 같았다.
이곳의 풍경이 지금까지 던전에서 봐왔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물론 아시테르가 어비스 던전 모든 곳을 돌아다녀본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마수들 때문에 유미르와 아레나는 아시테르가 너무 멀리 가지 못하도록 늘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아시테르는 자신이 늘 가던 혼자만의 장소에 가려했을 뿐이었다.
그곳에 있다 보면 늘 아버지인 유미르가 자신을 찾으러 와줬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낯선 장소에 흘러들어왔으니 머릿속에 혼동이 오고 있는 것은 아시테르였다.
“그럼 여긴 어디야?”
“여긴 말야…….”
자신 있게 설명하려던 소녀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리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곧 낭패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큰일이야. 여긴 마녀의 숲 영역이 아니잖아…….”
당황한 소녀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다.
갑작스런 그녀의 반응에 아시테르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다시 돌아가야 해.”
“어째서?”
“그야 나는…….”
자신에 대해 말하려던 소녀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샐쭉거리는 입술로 아시테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근데 그런 멍청한 얼굴로 자꾸 내게 말 걸지 말아줄래? 난 너랑 다르거든?”
“뭐가 다른데?”
“그게… 아씨 몰라!”
소녀가 아시테르를 두고 떠나려는 때, 세 명의 사내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길목을 지나가던 그들이 아시테르와 소녀를 발견했다.
“뭐야, 웬 꼬마들이 이곳에 있어?”
“그러게.”
“응? 가만…….”
그들 중 한 명의 시선이 소녀에게 머물렀다.
털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가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소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뭐야. 이거 진짠가?”
그는 우악스런 손으로 소녀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사내의 반응에 다른 일행들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아시테르는 상황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그는 부모님과 비체 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이 처음이라 이 상황이 낯설기도 했다.
“치워 이거.”
소녀가 사내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녀의 앙칼진 태도에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 설마 마녀인가?”
“…….”
“가끔 있거든. 뭣도 모르고 마녀의 숲을 빠져나오는 어린 마녀들이.”
사내는 소녀의 앞머리를 올렸다.
그녀의 이마 중앙엔 깃털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역시나.”
틀림없는 마녀를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이를 확인한 사내가 곧바로 음흉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거 아냐? 어린 마녀들은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말이야.”
이미 사내의 일행들이 소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소녀가 마녀임을 확인한 순간부터 이들의 생각은 같았다.
이들의 표정을 지켜보던 소녀가 이를 악물었다.
“당신들… 후회할거야. 내가 누군 줄 알고……!”
“후회? 아하하하!! 어린 것이 말하는 것 봐라.”
“후회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하게 될 걸? 여긴 마녀의 숲도 아니다. 널 보호해줄 마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겁도 없이 마녀의 숲 밖으로 기어 나오다니. 뭐 덕분에 우리들만 횡재했지만.”
소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 지팡이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호오… 마법을 사용하게?”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녀의 손끝에서 가시줄기가 뻗어 나왔다.
가시줄기는 빠르게 날아가 눈앞의 사내를 옭아매려 했다.
“어림없지!”
곁에 있던 다른 사내가 빠르게 검을 휘둘러 가시줄기를 베어내었다.
이어 곁에 있던 빼빼마른 사내가 전기마법을 펼쳤다.
찌릿―!
스파크가 튀며 전격이 소녀를 때렸다.
“꺄앗!”
온몸에 덮쳐온 고통에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가 빼빼마른 사내의 뒤통수를 때렸다.
“살살해. 상품에 흠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이건 그냥 전기충격 정도만 준거야.”
“그래도 조심해라. 성하게 데려가야 제값 받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고통을 당했음에도 그녀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가시채찍!”
소녀의 양팔에서 뻗어 나온 가시줄기가 양쪽의 사내들을 노렸다.
촤라라락!!
가시줄기들이 사내들을 휘감는데 성공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사내들이 허둥지둥하는 동안 날카로운 가시들이 그들의 몸에 파고들었다.
“역시 어려도 마녀는 마녀라는 건가……!”
아직 어려 보이는데 이런 마법을 펼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소녀의 마법에 놀란 것은 아시테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의 눈엔 소녀가 더 위태로워 보였다.
“크으…! 봐주지 않겠다!”
가시줄기 때문에 피를 흘린 사내들이 이를 갈았다.
그들은 분노한 얼굴로 소녀를 노려보았다.
얼음조각들이 허공에 나타나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가시덤불의 새장!”
소녀는 마법 이름을 외치며 두 팔을 들어올렸다.
이것은 아직 익숙지 않은 마법이라 영창이 필요했다.
세 갈래로 치솟은 가시줄기들이 소녀를 감싸며 보호했다.
촤라락!!
탁! 타닥!
빠른 속도로 날아오던 얼음조각들이 가시줄기에 막혔다.
그러나 어느새 소녀의 곁으로 다가온 갑옷을 입은 사내가 검을 들어올렸다.
“애교도 정도껏이다.”
스강―!
사내가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자 가시줄기가 힘없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당황한 소녀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 사내의 다리가 거칠게 소녀의 복부를 때렸다.
“아……!”
소녀가 고통에 몸을 웅크렸다.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내가 그녀의 머리채를 쥐어 잡았다.
“아무래도 교육이 좀 필요할 것 같구나.”
분노한 사내가 금방이라도 소녀를 때릴 것처럼 팔을 들어올렸다.
소녀의 두 눈에 두려운 감정이 스쳤다.
마법을 펼쳐야 한다고 머릿속에선 외치고 있었지만 두 팔은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가 밀려나버리고 말았다.
“뭐야!?”
갑작스런 충격에 갑옷을 입은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소녀의 곁엔 아시테르가 서 있었다.
그의 행동에 소녀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두 팔을 들어올렸다.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린 아시테르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를 보며 사내들이 비웃음을 흘렸다.
소녀야 마녀기 때문에 긴장했지만 옆에 있는 소년은 마녀일 리가 없었다.
마녀 중에 남자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긴장을 늦추고 앞으로 돌진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아시테르의 손끝에서 화염이 일었다.
화륵―!
사내들의 표정이 바뀐 것은 한순간이었다.
“뭐야? 화염 마법……?”
“어떻게 저 꼬마가 화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그러나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아시테르는 그들을 향해 화염구를 날렸다.
던전에서 펼쳤을 때보다 더 커다란 크기의 화염구였다.
이에 아시테르도 놀라고 말았다.
“뭐야……?”
아시테르는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그가 있던 어비스 던전은 마소량이 적은 곳이었다.
그러니 마력의 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던전 밖.
이제야 비로소 아시테르는 본인이 펼치는 마법이 어떤 위력을 갖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 할 수 있었다.
화르릉―!!
사내들이 급하게 화염구를 막아내었다.
“뭐하고 있어!? 도망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시테르가 소녀의 손을 붙잡고 내달렸다.
소녀도 얼떨결에 아시테르의 손을 붙잡고 달렸다.
“놈들을 쫓아!”
“붙잡아야 한다!! 놓칠 수 없다고!”
사내들이 급하게 아시테르와 소녀를 쫓았다.
아시테르는 어떻게 해서든 그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소녀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을 도와주는 아시테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날 도와주는 거야?”
“네가 위험해보이니까.”
“단지 그 이유야?”
“응.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위험에 처한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고.”
“너, 저 사람들이 하는 말 못 들었어? 난…….”
“네가 마녀건 뭐건 나한텐 중요하지 않아.”
“아…….”
아시테르의 말에 소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간들은 마녀를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늘 소녀가 들어온 말이었다.
게다가 그 말을 증명하듯 길을 지나가던 사내 세 명이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그런데 눈앞의 소년은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이 마녀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더군다나 자신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주는 것을 보며 소녀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테르와 소녀는 한쪽에 있는 작은 동굴로 몸을 숨겼다.
“앗.”
동굴의 축축함에 소녀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쉿.”
아시테르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조용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러자 소녀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테르는 숨죽이고 바깥의 상황을 살폈다.
그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소녀의 힘으로는 저 사내들을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저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혹시나 강한 마수를 마주쳤을 땐 무조건 도망치라는 아버지 유미르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사내들이 지나친 것을 확인한 아시테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상대가 마수는 아니었지만. 역시 엄마아빠 말을 잘 들어야 해.”
아시테르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온 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처음 겪는 상황에 사실 그도 많이 놀란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옆에 소녀도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지금 정말 놀란 것은 자신보다 저 소녀였을 것이다.
“정말… 고마워…….”
소녀가 아시테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