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화 던전으로 돌아오다
마녀는 우두커니 서서 세아츠리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온 몸이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시테르도 좀 전의 충격적인 상황에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하얀 비늘의 뱀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덮칠 것처럼 위협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몸은 더더욱 공포에 떨어야 했다.
“무슨 말이냐 세아츠리스.”
“이 아이는 절 구해줬어요.”
“구해줬다고?”
“네. 제 목숨을 구해준 아이에요.”
“저놈들이 비록 별 볼일 없는 실력들을 지녔다곤 하나 이 아이가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네 목숨을 구했다는 거지?”
마녀의 물음에 세아츠리스가 자초지종 설명 해주었다.
아시테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곳까지 어떻게 도망쳐올 수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히 말해주었다.
마녀는 그런 세아츠리스의 설명을 잠자코 들었다.
“그랬었구나.”
모든 설명을 들은 후에야 마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옮겨갔다.
“저놈들은 세아츠리스에게 위협을 가하려 했던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죽인 거다. 하지만 너는 세아츠리스가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니 살려주겠다. 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마녀의 숲을 나가라.”
“아… 네.”
아시테르가 주변을 살폈다.
저들을 피해 이곳까지 정신없이 도망쳐온 터라 돌아가는 길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이를 눈치 챈 세아츠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베아릴.”
“왜 부르지?”
“내가 이 아이를 데려다주고 와도 될까?”
“…….”
“돌아가는 길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알겠다. 그럼 그렇게 해라.”
베아릴이라 불린 마녀는 순순히 세아츠리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아시테르와 세아츠리스가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 베아릴은 마법으로 주변을 정리했다.
아시테르는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걷기만 했다.
“하아, 하아…….”
베아릴로부터 멀리 벗어나자 그때서야 아시테르가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아직까지도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눈물까지 핑 도는 탓에 시야가 흐려졌다.
“미안해. 저래보여도 착한 마녀야.”
“아, 아냐… 저 사람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처음 봐서…….”
“뭘?”
“사람이 죽는 것…….”
아시테르의 말에 세아츠리스가 그때서야 아시테르가 왜 그렇게 사색이 된 얼굴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지켜줄 때의 듬직한 모습은 어디가고 이제야 어린 소년다운 모습이 보였다.
세아츠리스가 떨고 있는 아시테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놀란 눈으로 세아츠리스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단 한 마디였다.
겨우 이 한 마디였을 뿐인데 아시테르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세아츠리스는 그대로 아시테르를 안아주었다.
아시테르도 얼떨결에 세아츠리스를 안았다.
세아츠리스는 아시테르가 좀 전의 일들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화제를 돌렸다.
“꿈이 뭐야?”
갑작스레 묻는 세아츠리스의 질문에 아시테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반응에 세아츠리스가 고운 인상을 찌푸렸다.
“나중에 하고 싶은 게 뭐냐구.”
“하고 싶은 거? 아직 그런 건 생각 못해봤는데…….”
“그럼 지금부터 생각해봐.”
“왜?”
아시테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세아츠리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왜긴. 내가 오빠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어서지. 그러니까 꼭 멋진 꿈을 가졌으면 좋겠어.”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시테르도 엉겁결에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아시테르 오빠. 오늘 일은 정말 고마워.”
“어? 으응…….”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나도.”
“우리 마녀들은 은혜를 잊지 않아. 그러니까 나중에 꼭 오빠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마녀가 되어 있을게. 오빠가 뭘 하고 싶어하든!”
“그래? 그럼 기대할게.”
“아쉽지만 나는 여기까지야. 더 이상은 갈 수 없어. 마녀의 영역을 벗어나게 되거든.”
“그렇구나…….”
“저쪽에 보이는 길을 쭉 따라가면 아까 우리가 만난 곳이 보일거야.”
“응. 알겠어.”
머뭇거리던 세아츠리스가 아쉬움에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는 이제 던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응. 나중에 너도 나랑 같이 가볼래? 아니면 지금 잠깐이라도?”
“아하하, 말이라도 고마워. 하지만 난 아직 마녀의 숲을 벗어날 수 없어.”
“그렇구나.”
“다음에. 다음에 다시 한 번 꼭 초대해줘. 나도 오빠네 엄마아빠한테 인사드리고 싶어.”
“그래! 약속할게. 다음엔 우리 엄마아빠도 소개시켜줄게! 내가 처음 사귄 친구라고!”
“응!”
아시테르가 이만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해가 지고 있었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또다시 눈을 깜빡였다.
“누가 불을 끄기 시작했나봐.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어.”
“뭐? 풉……!”
마지막까지 아시테르다운 말에 세아츠리스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아시테르가 안보일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녀의 곁으로 베아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 아이가 마음에 들었니?”
“응.”
“그렇구나.”
베아릴은 다음 말을 삼켰다.
마녀가 인간 남자를 마음에 두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녀들의 사랑은 보통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마녀들과 인간은 서로 수명조차 달랐다.
“그럼 세아츠리스. 저 아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알아. 더 멋진 마녀가 되어 있을 거야. 더욱 강해져서 그때는 내가 아시테르 오빠를 지켜줄래.”
“…….”
베아릴의 말을 끊으며 세아츠리스가 의지를 불태웠다.
어쨌거나 그런 모습 자체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베아릴은 애써 그녀의 기분을 망치진 않았다.
세아츠리스가 먼저 몸을 돌렸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먼저 가있어 세아츠리스. 나는 남아서 할 일을 좀 하고 가마.”
“알겠어. 빨리 와 베아릴.”
“그래.”
세아츠리스가 떠나고, 베아릴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마녀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아이를 죽여라.”
“네?”
“하지만 세아츠리스님이 이 사실을 알면 괴로워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훗날의 일을 어찌 감당하시려고.”
그녀들의 말에 베아릴이 고개를 저었다.
“세아츠리스는 여왕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 그러니 더더욱 사랑 같은 하찮은 감정에 빠져선 안 돼. 다행히 아직은 어려서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를 거다. 그러니 미리 그 싹을 제거해놔야 해.”
“흐음…….”
“저 아이를 죽이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괜히 마음에 걸리는군요.”
그들이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베아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결국 베아릴의 명령에 의해 그녀들이 움직였다.
마녀들은 아시테르가 지나간 곳을 쫓았다.
다행히 아시테르는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뜻 나서기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죽여야 하나…….”
“이제 와서 뭘.”
“하지만 난 세아츠리스님이 그렇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어.”
“그건 나도 그런데…….”
“게다가 세아츠리스님의 목숨을 구해준 아이라며?”
“하아… 이번만은 베아릴님의 명령을 듣고 싶지 않은데.”
그녀들이 머뭇거리며 아무것도 안하는 동안 아시테르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작금의 상황에 난처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이제 비는 그쳤지만 문제는 던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이트였다.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하지?”
그가 한참을 고민하던 때 근처 고블린들이 아시테르를 노리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녀석들은 작은 인간 아이를 사냥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
고블린들은 몸을 낮추며 아시테르를 향해 서서히 접근했다.
이를 본 마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우리가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어.”
“고블린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놈들이네.”
“작은 인간 아이가 저 많은 수의 고블린들을 당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우리는 나중에 보고만 잘하면 될 것 같아. 우리가 아이를 발견했을 땐 이미 고블린들에게 당해버린 뒤였다고 말이야.”
“그거 깔끔하네.”
그녀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고블린들이 사냥을 개시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먼저 움직인 것은 아시테르였다.
갑자기 그가 어디론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란 고블린들도 서둘러 달려 나갔다.
놈들이 커다란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데도 아시테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찾았다!”
아시테르의 앞에 환한 빛이 일기 시작했다.
던전 게이트였다.
이를 확인한 아시테르가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를 붙잡으려 뛰어든 고블린 몇 마리도 얼떨결에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놀란 다른 고블린들이 황급히 발을 멈췄다.
슈와아―!
던전 게이트는 자신의 할 일을 마쳤다는 듯 곧바로 소멸해버렸다.
덕분에 남은 고블린들만 멍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주변만 서성거렸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마녀들이 자리를 떠났다.
“방금 그건 던전 게이트가 맞지?”
“응. 꼬마도 대단하네. 겁도 없이 던전 안으로 발을 들이다니.”
“근데 그런 게이트는 처음 봤어. 보통 게이트 색깔은 하얗거나 푸르지 않나?”
“그러게… 던전 게이트가 검은색인건 처음 보네.”
“어쨌거나 저 아이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그래. 던전 안에서 저런 꼬마 아이가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어쨌거나 우린 아이가 죽은 것으로 보고를 올리면 되겠네.”
다른 마녀들이 모두 동의했다.
그녀들은 미련 없이 마녀의 숲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한편 던전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던 아시테르는 어지러움에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익숙한 것들이 눈에 보였다.
“아… 돌아왔나 보다.”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던전 게이트가 열렸다.
심지어 아시테르는 본능적으로 게이트가 어디에 열렸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이 가능했는지 생각할 기운은 없었다.
아시테르에게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피곤한 하루였다.
던전에 다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시테르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를 따라왔던 고블린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녀석들은 괴성과 함께 들고 있던 무기들을 휘둘렀다.
슈콰앙!!
어디선가 날아온 빛무리가 고블린 한 마리를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감히 누구 아들을!”
두 눈을 치켜 뜬 유미르가 단숨에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서슬 퍼런 기세에 고블린들이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인간은 자신들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였다.
무기를 내던진 고블린들이 제각각의 방향으로 도망쳤다.
“놓치지 않는다.”
유미르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달빛검기가 초승달 모양으로 휘며 달아나는 고블린들을 가격했다.
파바방!!!
폭발음과 함께 고블린들의 비명이 들렸다.
유미르를 보자마자 아시테르가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너 이 녀석 아시테르!!”
유미르가 아시테르를 보며 소리쳤다.
아시테르는 영문을 몰라 토끼눈이 되었다.
유미르의 얼굴엔 아시테르가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아빠…….”
“대체 어디 갔었어!? 이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죄, 죄송해요.”
“이 아빠는… 이 아빠가…….”
유미르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졌다.
그는 아시테르를 꼭 껴안았다.
유미르가 눈물을 보이자 아시테르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죄송해요 아빠…….”
“약속해라. 다시는 걱정시키지 않겠다고!”
“히끅…! 네… 약속할게요……!”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널 찾아다녔는지 아니? 대체 어디 갔었던 거야?”
“저, 던전 밖에 나갔다 왔어요.”
“뭐?”
아시테르의 말에 유미르가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