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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4화 (14/424)

014화 성장하는 아시테르

“던전 밖을 다녀왔다고?”

“네. 환한 빛이 신기해서 만졌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니까 전혀 다른 세상이 보였어요. 그렇게 꽃이 많이 핀 곳은 처음이었어요. 거기다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엄청 많이 보이고 또…….”

“아아, 던전의 신수가 널 도왔구나…! 천만 다행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빠?”

“하마터면 널 잃어버릴 뻔했잖니. 어비스 던전의 게이트는 무작위로 열리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아시테르 너는 이 던전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 거고 우린 그런 널 찾기 위해 어비스 던전의 곳곳을 헤맸을 거야.”

“잘못했어요 아빠…….”

아시테르가 우울한 얼굴로 답했다.

잔뜩 기죽어 있는 아시테르를 보며 유미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네가 잘못해서 꾸짖는 게 아니야. 아까는 아빠도 네가 너무 걱정된 마음에 감정이 앞서고 말았어. 매번 있던 곳에 네가 없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오질 않으니 엄마아빠 입장에서는 얼마나 걱정되었겠니.”

“죄송해요.”

“아냐. 아빠가 더 미안해. 그리고 아들.”

“네?”

“이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아직도 많이 서툴러. 늘 우리 아들에게 잘 대해줘야지 아들을 위해줘야지 하면서도 서투른 실수들을 많이 하고 말아. 이게 최선이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더 잘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후회하기도 한단다.”

아시테르가 유미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순수한 눈망울에 유미르가 피식 웃어버렸다.

“후훗. 너는 아직 어려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네. 그치만 아빠가 절 엄청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래 맞아. 아빠도 그렇지만 엄마도 널 무척이나 사랑해. 비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

“알고 있어요.”

“음… 그러니까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아빠도 우리 아들에게 멋진 모습, 좋은 모습들만 보이고 싶지만 이 아빠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때도 있다는 거야. 그러니 아빠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조금 전 아빠가 감정에 앞서서 너를 너무 꾸짖듯 대했으니 지금 우리 아들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거고.”

유미르가 다정한 목소리로 아시테르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매일같이 검을 만지느라 굳은살이 박힌 그의 손이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시테르는 왈칵하는 마음에 다시 유미르의 품에 안겼다.

키가 조금 자라고 몸집도 살짝 커졌지만, 아시테르는 여전히 어린 아이였다.

“아빠.”

“응?”

“보고 싶었어요.”

“나도. 나도 보고 싶었다 아들.”

유미르의 코끝이 다시 찡해졌다.

이 맛에 자식을 키우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걱정으로 무너지고 있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그대로 아시테르를 번쩍 안아들었다.

또래보다 마력도 잘 다루고 다른 방면으로도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었지만, 아시테르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한창 필요한 아이 말이다.

그걸 새삼 깨달으며 유미르가 아시테르를 데리고 아레나와 비체에게 돌아갔다.

“아시테르!!”

먼발치서 아시테르의 모습이 보이자 아레나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달려 나왔다.

비체도 많이 걱정했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시테르……!”

아레나가 다가오자마자 아시테르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쏘옥 안기는 아시테르를 아레나는 말없이 손으로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걱정했잖니.”

“죄송해요 엄마.”

“그래도 이렇게 돌아와서 다행이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알겠니?”

“네! 조심할게요.”

“그런데 어디 있었던 거니? 길을 잃었던 거야?”

“아니요, 그게…….”

“갑자기 게이트가 나타나서 그쪽에 다가갔다가 던전 밖에 나갔었던 모양이야.”

아시테르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미르가 먼저 말해주었다.

아레나와 비체가 놀라서 눈을 끔뻑거렸다.

유미르와 아레나가 이곳에 온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그들은 단 한 번도 게이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게냐? 어비스 던전의 입구는 잘 열리지 않는데…….”

비체가 아시테르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고개를 저었다.

비체가 자신의 우문(愚問)을 깨달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사 아시테르라고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것도 신수의 축복인가. 으허허허!!”

비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아시테르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그런데 아시테르. 이게 다 뭐야?”

아레나는 아시테르의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을 보며 물었다.

유미르도 그때서야 아시테르의 상처들을 살폈다.

“어유, 아까 그 고블린들이 이렇게 만든 거야?”

“고블린?”

“아시테르를 발견했을 때 근처에 고블린들이 감히 우리 아들을 노리고 있더라구.”

“뭐라!? 내 이놈들을 그냥!!”

비체가 발끈해 소리쳤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처럼 검을 집어 들었다.

유미르가 재빨리 다가가 비체를 붙잡았다.

“놈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진정하세요 스승님.”

“그러냐? 크흠.”

비체가 헛기침을 하며 검을 놓았다.

아레나는 속상한 마음에 아시테르를 꼬옥 안았다.

“아야…….”

멍든 곳 때문에 아시테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비체가 상처에 바를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정말 고블린들이 이런 거야?”

“그게, 사실은…….”

아시테르는 던전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아레나와 유미르, 비체는 오만가지 표정들을 지었다.

“어쨌든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어요!”

아시테르가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유미르가 감격한 얼굴로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우리 아들도 다 컸구나. 이제 친구도 사귀고.”

“처음 사귄 친구가 여자라니. 나 참.”

아시테르는 세아츠리스가 마녀라는 사실은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마녀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으나 유미르와 아레나가 그리 반가워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이 날 이후로 아시테르도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 * *

그는 그 날의 일들을 떠올리며 마법 수련에 더욱 열과 성을 다했다.

스스로의 마법 실력을 발전시키는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우리 아들 요새 1년 동안 왜 이렇게 열심히 일까?”

아레나는 그런 아시테르를 대견스러워 했다.

“어머니,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아시테르가 불꽃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를 본 아레나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확실히 아시테르의 습득 능력은 빨랐다.

그녀는 아시테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흐음… 아시테르 잠깐 다시 한 번 그 마법을 펼쳐볼래?”

“네.”

아시테르가 다시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은 아시테르가 원하는 곳까지 날아가 폭발을 일으켰다.

아레나가 이번엔 아시테르의 손을 말아 쥐었다.

“이번엔 이렇게 해보자. 손에 마력을 집중시키는 거야. 그리고 불꽃을 말아 쥐듯 소중하게 다뤄볼래?”

“불꽃을 말아 쥐어요?”

“응. 이렇게 말이야.”

아레나가 몸소 시범을 보였다.

그녀의 손아귀에 불꽃이 일었다.

이어 아레나가 그 불꽃을 말아 쥐자 푸른 불꽃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와아…….”

처음 보는 광경에 아시테르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아레나가 다시 한 번 아시테르를 재촉했다.

“자, 너도 어서 해보렴.”

“네!”

아시테르가 자신 있게 불꽃을 일으켰다.

그가 불꽃을 말아 쥐려하자 마력이 흩어지며 불꽃이 꺼져버리고 말았다.

“어라?”

보기엔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려니 쉽지 않았다.

아시테르가 다시 한 번 불꽃을 일으켰다.

그대로 손아귀를 말아 쥐자 이번에도 역시 마력이 흩어지며 불꽃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흐음… 이쪽으로는 아닌가?”

아레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반응에 아시테르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가 멋쩍어 하자 아레나가 위로해주었다.

“엄마가 늘 말했잖아. 처음은 늘 어려운 법이라고.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해내는 사람은 없어.”

“좀 더 연습해 볼게요.”

“그래. 알겠다.”

아시테르가 다시 마법을 펼치는데 열중했다.

그가 마법을 배우는데 더욱 뜨거운 열정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아레나는 한편으로 아시테르가 너무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충분한 휴식도 하나의 수련이야.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해.”

“네. 그런데 어머니.”

“응?”

“어머니는 꿈이 뭐였어요?”

아시테르의 갑작스런 질문에 아레나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오랜만에 들어본 이 ‘꿈’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니?”

“세아츠리스가 그랬어요. 꿈이 있으면 좋은 거라고. 그리고 얼마 전에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꿈은 곧 제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요. 그래서 더욱 모르겠어요 꿈이라는 것을.”

“호오… 우리 아들이 다 컸구나. 벌써부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아레나가 아시테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녀가 갖고 있던 꿈.

그것은 이미 이룬지 오래였다.

“그치만 지금부터 모든 것들을 다 정할 필요는 없어. 나중에 아시테르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을 때. 그때 꿈을 정해도 된단다. 물론 한 가지는 확실해.”

“그게 뭐예요?”

“지금 우리 아들이 잘하고 있다는 것?”

아레나의 칭찬에 아시테르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멀리서 유미르가 아시테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보렴. 아빠가 부르시는 구나.”

“네!”

아시테르는 유미르가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유미르는 한껏 기른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다 아시테르에게 기습 공격을 가했다.

“흐익!”

땅을 박찬 아시테르가 곧바로 몸을 피했다.

유미르는 멈추지 않고 검끝을 돌렸다.

휘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날이 허공을 지나갔다.

검격을 피한 아시테르가 슬쩍 손끝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작은 불씨들이 산발하며 유미르의 주변을 덮쳤다.

파바바방!!

불꽃들이 시야를 가린 틈에 아시테르가 몸을 날렸다.

유미르의 빈틈을 노린 것이다.

그렇지만 유미르의 반응이 한발 더 빨랐다.

콩!

그의 손이 아시테르의 몸을 바닥까지 짓눌렀다.

“악!”

아시테르가 고통에 소릴 내뱉자 유미르가 아차 싶어 손을 뗐다.

그는 등줄기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미르?”

“아, 아하하하… 여보, 이게 살짝 힘을 준다는 게 그만…….”

푸른 불꽃이 금방이라도 날아들 것처럼 유미르의 주변을 감쌌다.

유미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푸른 불꽃을 살폈다.

어째 전보다 불꽃의 분위기가 더욱 살벌해진 기분이었다.

“전 괜찮아요!”

아시테르가 뒤늦게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의 은근한 타이밍에 유미르가 슬쩍 아시테르를 째려봤다.

이건 노린 거였다.

“너어…….”

“헤헷. 아버지 전 멀쩡합니다!”

“여보? 들었지? 우리 아들 멀쩡하대! 아하하!!”

푸른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유미르가 아시테르의 어깨를 툭 쳤다.

“근데 우리 아들 많이 늘었다?”

“정말요?”

“응. 이제 슬슬 마수 사냥에 나서도 되겠어. 그렇지 않아도 스승님께서 우리 아들 데리고 마수 사냥에 나서자고 얘기하셨는데.”

“어!? 진짜요!? 진짜 마수들 사냥하러 가보는 거예요?”

아시테르가 놀라 물었다.

그러자 유미르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쉿! 아직 엄마가 알면 안 돼. 약속했단 말이다 네가 적어도 10살은 넘었을 때 데려가기로. 근데 아직 10살이 안되었잖아.”

“아…! 알겠어요 조용히 할게요.”

아시테르가 금세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런 아들이 귀여워 유미르가 아시테르의 볼을 꼬집었다.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요?”

아레나의 물음에 유미르가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은근하고도 농밀한 이야기를 했지.”

“흐음?”

“어쨌거나 오늘은 내가 아시테르를 데려갈게! 스승님도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유미르가 아시테르를 데리고 서둘러 떠났다.

사실 모든 얘기를 들었지만 아레나도 말없이 두 사람을 보내주었다.

유미르뿐만 아니라 비체도 있으니 아시테르에게 별 일은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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