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화 동료가 될게요
“진짜 미안해요…….”
“그만 사과해. 네가 그렇게 사과할 일 아니야.”
“그치만 저 때문에…….”
“네가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나선 거잖아. 그나저나 그 녀석들은 뭐야?”
“아카데미 학생들이에요.”
“아카데미?”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단어에 아시테르가 양쪽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다쳐서 부어오른 그의 얼굴에 에스파가 안절부절 했다.
정작 본인도 성치 않은 몸이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아시테르부터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카데미라는 게 뭐야?”
“네? 아카데미가 정말 뭔지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응. 난 그런 것 잘 몰라.”
“아, 아아… 그렇죠. 아카데미에 관해 못 들어봤을 수도 있겠군요. 아카데미는 쉽게 말하면 이스트 왕국 마법기사를 뽑는 학교에요. 거기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마법기사단에 입단할 기회가 생기는 거죠. 가끔은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을 마법기사단에서 먼저 데려가려고 하기도 해요.”
“호오… 신기하네.”
아시테르가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피딱지가 내려앉은 탓에 입술에서도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근데 저 녀석들은 너한테 왜 그런 거야?”
“저 때문이에요. 제 잘못이거든요.”
“너 때문이라고?”
“네. 제가 중요한 팀미션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같은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어요.”
“흐음… 그랬었구나.”
“천민 출신인 제가 정말 운 좋게 마법 아카데미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제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저란 존재는 정말 쓸모없는 존재가 아닐까요…….”
에스파의 말에 아시테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에스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니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어. 우리 할아버지가 늘 말씀하셨거든.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고. 다만 그들을 쓸모없게 생각하는 존재들이 있을 뿐이라고 말이야.”
“아…….”
“그러니까 그런 생각 갖지 마. 너도 잘하는 것들이 있을 거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부분들이 있을 거야.”
“네… 정말 고마워요……!”
정말 기운을 얻은 것인지 에스파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아시테르는 옷에 묻은 흙먼지들을 털어내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도 너무하네.”
“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가 부족한 부분들이 있으면 자기들이 함께 채워줄 생각을 해야지. 그게 팀 아냐? 난 아버지한테 그게 동료고 팀이라고 배웠는데.”
유미르는 종종 과거의 얘기들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시테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유미르의 말을 경청했었다.
“그런데 저 녀석들은 단지 네가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폭력을 휘두른 것 아냐. 역시 조금 더 흠씬 두들겨 패줬어야 했어.”
아시테르가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에스파는 그런 아시테르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에스파의 콧잔등이 시큰해져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그냥 신기해서요.”
“근데 너 아까부터 왜 말을 그렇게 해?”
“뭐가요?”
“계속 말을 높이잖아. 척 봐도 우리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전 이게 더 편해요.”
“그럼 갑자기 말을 놓은 내가 이상해지는데…….”
“후후, 저는 그런 것 신경 안 써요. 거기다 절 도와줬잖아요. 얼마든지 편하게 대해주셔도 좋아요. 근데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정말 마녀는 아니죠?”
“아…….”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아시테르가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마녀 중에 남자가 없다는 것은 그도 오늘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에스파도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에스파라고 해요.”
“나는 아시테르야.”
“아시테르… 꼭 기억할게요.”
“나도 기억할게. 에스파라고 했지?”
“네. 맞아요.”
에스파가 수줍어하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반면 아시테르는 온몸에 전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저 녀석들 강하구나. 특히 뒤에 있던 그 여자애.”
“어? 에이브릴은 싸우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한눈에 봐도 알겠던걸? 거기다 잠깐이었지만…….”
한순간이었지만 에이브릴이 마법을 사용할 때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앞에 있던 체레드나 다른 녀석들과는 대번에 비교가 될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시테르가 질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맞아요. 에이브릴은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도 유명인사예요. 얼굴도 예쁘지만 마법 실력 또한 굉장해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두었어요.”
“호오… 어쩐지. 그러면 그 아카데미라는 곳에는 그 여자애처럼 강한 사람들이 많은 건가?”
“아무래도 그렇죠? 이스트 왕국 내에서도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그렇구나. 이제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걸.”
매일 거듭되는 칭찬에 아시테르가 우쭐해할 무렵, 언젠가 유미르와 아레나가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비체는 여기에 더해 그러니 항상 겸손해야 된다는 말을 남겼다.
아시테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에스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법은 아예 사용할 줄 모르는 거예요?”
“응?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치만 아까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잖아요.”
“아… 사용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야.”
“네? 왜요?”
“마력이 다 바닥났었거든. 아하하, 그것도 까맣게 잊은 채 달려들었지 뭐야. 이렇게 크게 당해도 할 말 없지 뭐.”
아시테르가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반응에 에스파가 오히려 묘한 표정을 보였다.
“마법을 할 줄 알았구나…….”
“근데 되게 신기하다. 세상엔 다양한 마법들이 존재하는구나.”
아시테르가 조금 전 수은 마법과 점액 마법, 카드 마법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에스파에게로 향했다.
“너는?”
“네?”
“너는 무슨 마법을 사용해? 그러고보니 네 마법은 보지 못한 것 같아서.”
“아… 저는 별 볼 일 없는 마법을 사용해요. 다른 학생들처럼 마력에 속성 변환도 못하는 걸요.”
“그래도 한 번 보여주라. 궁금해.”
아시테르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의 부탁에 에스파도 못이기는 척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보여드릴 테니까 제 마법이 초라하다고 비웃으면 안 돼요.”
“응! 걱정 마!”
에스파가 한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앞에 두고 섰다.
그가 영창을 외기 시작하자 손바닥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압!!”
우렁찬 기합과 함께 에스파의 마력탄이 빠르게 날아갔다.
콩!
마력탄은 나무기둥의 중앙에 정확히 꽂혔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저기 에스파. 혹시 저 위에 나뭇잎도 맞출 수 있어?”
“네? 가능할걸요?”
“그럼 한 번만 보여줄 수 있어?”
“네!”
에스파가 다시 마력탄을 준비했다.
그 순간 바람이 불며 아시테르가 가리킨 나뭇잎이 허공에 떨어졌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과녁을 바꾸려는 찰나 에스파가 먼저 마력탄을 발사했다.
그가 날린 마력탄은 빠르게 날아가 떨어지는 나뭇잎을 정확히 맞춰버렸다.
아시테르가 입을 떡하니 크게 벌렸다.
“방금 마력탄이 휘어서 나뭇잎을 맞춘 것 같은데……?”
“네? 아, 네에…….”
“뭐야… 대단하잖아……!”
진심으로 놀란 아시테르가 에스파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의 반응에 에스파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시테르가 또다시 다른 나뭇잎을 가리켰다.
“혹시 저것도 맞출 수 있어?”
이번엔 앞서 맞춘 나뭇잎보다 훨씬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에스파는 이번에도 별다른 고민 없이 마력탄을 쐈다.
피슉―!
빠르게 날아간 마력탄은 단번에 나뭇잎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단순히 맞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력탄은 중간의 장애물을 피하며 날아가 정확히 과녁을 맞췄다.
“진짜 대단해…….”
아시테르의 순수한 감탄에 에스파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봤자 저는 마력에 속성 변환도 못하는 걸요…….”
“굳이 마력의 속성을 변환 시켜야 해?”
“네?”
“너는 마력 컨트롤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솔직히 나도 어느 정도 자신 있는 편이긴 한데 이 정도 까지는 아니야. 너 정말 대단한 거라고!”
“아니, 너무 칭찬해주니까…….”
아시테르가 에스파의 두 어깨를 붙잡았다.
여기저기 멍들어 있는 모습인데도 그가 한껏 들떠있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의 문제는 다른 게 아니야! 자신감이야 자신감!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져!”
“고마워요…….”
“속성 변환 정도는 못해도 돼. 이렇게 네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되잖아?”
“아, 그런가요……?”
아시테르의 진심어린 말에 에스파는 머리가 띵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사실 에스파는 다른 학생들을 남몰래 부러워했었다.
귀족 가문의 학생들은 고유 마력 덕분에 마력의 속성 변환은 기본으로 해냈다.
뒤이어 들어온 몇몇 평민, 천민 출신 학생들도 결국 마력의 속성 변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자신은 수백, 수천 번을 노력해도 마력의 속성 변환을 이루어낼 수 없었다.
그러니 자신감은 점차 하락되고 급기야는 의기소침해지고 소심해지기까지 했다.
다른 학생들과 교관들도 그런 에스파를 점점 무시하기 시작했다.
헌데 이곳에서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진짜 고마워요. 여기서 이렇게 인정을 받게 되네요.”
“그럼 우리 게임 한 번 할까?”
“네? 무슨 게임이요?”
“나뭇잎 맞추기 게임.”
아시테르가 다른 쪽의 나뭇잎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에스파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법… 사용할 수 있겠어요?”
“응. 이제 조금은 마력을 회복했거든.”
아시테르가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로 마력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에스파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어진 광경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리고 말았다.
화륵―!
아시테르의 손아귀에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새빨간 불꽃을 보며 에스파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속성변환까지… 지금까지 한 말 다 기만이었죠……?”
“기만? 그게 무슨 뜻이야?”
아시테르의 반문에 에스파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아귀에 피어난 불꽃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아… 그럼 나부터 간다?”
아시테르는 작은 화염탄을 먼발치 나뭇잎을 향해 날렸다.
에스파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마력탄을 쏘아냈다.
그렇게 아시테르와 에스파는 몇 번을 반복하며 나뭇잎을 맞췄다.
게임의 결과는 아시테르의 참패.
모두 맞춰낸 에스파와 다르게 아시테르의 화염탄은 중간 중간 장애물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며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진짜 져버렸다…….”
“헤헤, 제가 이겨버렸네요 아시테르.”
그래도 패배는 깔끔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에스파가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서서히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전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래. 그러고보니 나도 돌아가 봐야겠다.”
에스파는 떠나기 전 아시테르의 앞에 섰다.
“아시테르.”
“응?”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아냐 나도 덕분에 재밌었어.”
“오늘의 은혜는 꼭 잊지 않을게요. 덕분에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이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용기내고 자신감을 가져.”
아시테르와 에스파가 자연스레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시테르. 저는 이 아카데미를 졸업해서 마법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오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과거에 천민 출신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마법기사단의 단장까지 오르신 분이 계신다고. 저도 그분처럼 마법기사단의 단장이 될 겁니다.”
“좋아! 응원할게!”
“아시테르 당신도 마법기사가 꿈이죠? 그럼 어쩌면 우린 아카데미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군요.”
“음…….”
“내년에 시험이 있으니까 꼭 시험에 합격해서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 되어주세요. 그 후엔 저를 아시테르 당신의 동료로 받아주셨으면 해요.”
“뭐? 얘기가 왜 그렇게 돼?”
“당신이 아까 말했잖아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진짜 동료라고. 저도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처음으로 인정해준 사람이 당신이거든요.”
“아… 그래 좋아. 내가 그 아카데미란 곳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면서 저도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을게요! 다음에 만날 땐 진짜 놀래켜 줄 거예요. 오늘처럼 못난 모습은 보이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바뀌어 있는 제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 꼭 아카데미로 와주세요.”
“후후, 알겠어. 나도 기대할게.”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스파도 덩달아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었는지 에스파도 이만 자리를 떠났다.
한참동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시테르도 이만 몸을 돌렸다.
곧 그의 앞으로 칠흑빛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