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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0화 (20/424)

020화 가족 회의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해봐. 뭐라고?”

“던전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당돌하게 말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유미르가 곤란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곁에 있던 아레나도 조금은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흐음…….”

비체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무거운 침음성을 삼켰다.

세 사람의 반응에 어리둥절해진 것은 아시테르였다.

“혹시 제가 뭔가 잘못 말씀 드린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도 그렇고 비체 할아버지도 왜 그렇게 안 좋은 표정들을 하고 계신 거예요?”

“네가 갑자기 찾아와 이렇게 말을 하니까 당황스러워서 그렇지.”

유미르가 괜히 아시테르의 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레나는 연신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결국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좋아. 솔직히 말할게 아시테르. 우리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오히려 늘 해오고 있었단다. 언제까지고 너를 이곳 던전에만 머물게 할 생각은 우리도 없었거든.”

“아 그럼……!”

“하지만 현실적으로 몇 가지의 문제가 존재해.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아레나는 아시테르가 크게 실망할까 싶어 선뜻 다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마음을 헤아린 유미르가 말을 이어받았다.

“가장 큰 문제는 던전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의 존재다. 어비스 던전의 게이트는 언제 어디서 열릴지 몰라. 거기다 열리는 시간 또한 굉장히 짧다. 우연히 게이트를 발견한다고 해도 곧바로 나가지 않는 이상 금방 닫혀버리고 말거야.”

“아. 그거라면 괜찮아요.”

아시테르의 말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아시테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영문을 몰랐던 탓이다.

반면 아시테르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던전 밖으로 나가는 게이트는 제가 만들어낼 수 있어요.”

“뭐라고!?”

“뭐??”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

유미르와 아레나가 크게 놀랐고, 비체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아시테르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가 원하는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설마…….”

“말도 안 돼…….”

놀라움도 잠시 균열이 일어난 공간에서 칠흑빛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는 보란 듯이 게이트 안으로 먼저 발을 들였다.

유미르와 아레나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게이트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덕분에 비체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현기증이 찾아오고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광활한 대지였다.

“어라, 이번엔 또 다른 곳으로 나와 버렸네…….”

아시테르가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반면 아레나와 유미르는 작금의 상황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비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게 꿈인 듯싶었다.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는 그를 보며 아시테르가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꿈이 아니에요 할아버지. 이곳은 정말 던전 밖이라구요.”

“허어…….”

얼마 만에 밟아보는 세상 땅이던가.

그동안 던전 밖으로 나가볼 생각조차 않고 있었기에 더더욱 기대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비체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어비스 던전의 공기와 다르게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비체뿐만 아니라 아레나와 유미르도 오랜만에 마시는 바깥세상 공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시테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말씀드릴 걸 그랬나…….”

그는 유미르와 아레나, 비체가 좀 더 세상에 나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진짜 꿈만 같네요.”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어비스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다니.”

아레나와 유미르가 연신 대화를 나누는 사이 비체는 주변을 바라보며 홀로 상념에 잠겨있었다.

한참동안이나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바라보던 비체가 이만 아시테르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던전으로 돌아가는 게이트도 생성해 낼 수 있는 게냐?”

“물론이에요 할아버지.”

“그러면 이만 돌아가자꾸나. 내가 어비스 던전을 오래 비우면 봉인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아…….”

아시테르가 황급히 게이트 문을 열었다.

유미르와 아레나도 비체의 말을 들었기에 이만 게이트 앞으로 걸어왔다.

다시 한 번 하늘을 바라보던 비체가 게이트 안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

이어 유미르와 아레나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아시테르까지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니 게이트의 문이 빠르게 닫히기 시작했다.

다시 어비스 던전으로 돌아온 비체가 근처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았다.

“허어, 그 능력은 신수 덕분인건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그때 신수가 제게 부여해준 축복은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되지 않는 것이니…….”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비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잘 되었구나. 가장 큰 문제가 해결 되었으니 말이야.”

그의 말에 유미르와 아레나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가는 눈빛 속에서 무언의 대화가 오가는 듯 했다.

“설사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저는 이곳에 머물 겁니다.”

“뭐?”

비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유미르가 말을 받았다.

“저는 어차피 저쪽 세상에 없는 사람일 겁니다. 아마 아레나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게다가 제게 다른 삶을 부여해주신 분은 다름 아닌 스승님이십니다. 후계의 자리까지 물려주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 책임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 애써 가르쳐줬더니 던전 밖으로 날름 나갈 생각이었던 거냐?”

“아하하!! 그게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비체가 괜히 퉁명스런 목소리로 묻자 유미르가 호쾌하게 답해주었다.

그래도 조금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아레나가 슬쩍 아시테르를 안았다.

“그럼 두 분은 이곳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제가 아시테르를 데리고 왕국으로 가볼게요.”

“괜찮겠어?”

“물론이에요. 게다가 아버님께 잘 말씀드리면…….”

아레나가 뒷말을 흐렸다.

아버지께 잘 말씀드리면 아시테르도 귀족의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려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끝을 흐린 이유는 바로 유미르 때문이었다.

이를 눈치 챈 유미르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좋은 생각이야 아레나.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에겐 따로 아시테르를 부탁할 가족도 없고 말이야. 거기다 당신도 가족들이 그리울 것 아냐.”

어쩐지 씁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괜히 미안해진 아레나가 슬쩍 다가가 유미르의 품에 안겼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실까?”

“미안해요. 순간…….”

“후후,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귀족이니 천민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러니 난 아무렇지도 않아. 하지만 아시테르가 왕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려면 분명 그런 것들은 중요하게 여겨질 테지. 그러니 우리 아들을 위해서도 난 당신의 판단을 존중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유미르의 목소리에 아레나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렇게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당장 그런 것들부터 신경 쓰이는 현실이 너무도 불쾌했다.

“너무 신경 쓰지마세요 어머니 아버지! 제겐 천민이나 귀족 같은 신분은 그다지 중요치 않아요. 제가 세상 밖으로 나가보고 싶은 것은 좀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어서예요. 그 기회만 주어진다면 전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아시테르는 이어 일전에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에스파의 얘기를 꺼내고 마법 아카데미 학생들에 대해 얘기를 할 땐 비체와 유미르도 흥미진진하게 얘기를 들어주었다.

“진짜 신기한 마법들이었어요! 솔직히 이곳에 있으면 다양한 마법들을 구경할 기회가 없잖아요? 저는 좀 더 많은 마법들을 구경해보고 싶어요. 거기다 다양한 친구들도 사귀어보고 싶고 또 바깥의 세상은 어떤지 경험해보고 싶기도 해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얘기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아레나와 유미르도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저토록 원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부모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거기다 배움의 길을 자청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뿌듯함을 안기게 만들었다.

그때 비체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좋다. 아시테르 네가 어비스 던전 밖으로 나가는 것엔 이 할애비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가 허락할 때까지만 해도 냅다 좋은 표정을 짓고 있던 아시테르가 갑자기 반전되는 비체의 말투에 사뭇 긴장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널 마음 편히 던전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

“네…? 어째서요?”

“네놈은 너무 약해.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적어도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에에… 할아버지, 그래도 저 꽤 강해지지 않았나요? 이제 마수들도 상대할 줄 아는데.”

“시끄럽다! 강하다는 놈이 맨날 던전 밖으로 나갔다 하면 줘 터지고 오느냐?”

비체의 역정에 아시테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딱히 반박할 수 없는 얘기였다.

물론 애써 할 말을 찾고자 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나 비체는 과정만큼 결과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괜히 말을 덧붙였다간 더 혼만 날 수 있었다.

그래도 당장 던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기에 아시테르가 은근하게 아시테르와 아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도움요청에 응해주는 이가 없었다.

“엄마는 힘이 없단다.”

‘말도 안 돼. 천하에 비체 할아버지도 눈치 보게 만드는 게 어머니라구요!’

“아버지는 스승님의 말씀에 따를 뿐이다.”

‘네… 기대도 안 했습니다 아버지.’

시선을 피하는 아레나와 비체의 옆에 서는 유미르를 보며 아시테르도 이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마침내 비체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주 간단하다. 내가 주는 미션들을 통과하면 돼.”

“그게 무슨 미션들일까요?”

“총 세 개다.”

비체가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코를 쓱 훔쳤다.

쉽게 가면 그건 본인이 아는 비체가 아니었다.

“하나는 이것을 터트릴 것.”

비체가 푸른색 열매를 건네주며 말했다.

처음 보는 열매에 아시테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살폈다.

“이걸 터트리라구요? 쉬울 것 같은데.”

“후후, 글쎄. 과연 그럴까? 열매에는 어떠한 물리적 충격도 가해선 안 된다.”

“네에? 말도 안 돼…….”

비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참고로 첫 번째 미션을 제안한 것은 바로 네 어머니란다.”

“하하… 어머니께서… 그럼 다음은요?”

“그 다음은 바로 저 초월지대를 무사히 통과할 것!”

비체가 가리킨 곳은 바로 평소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길목이었다.

저곳에 뭐가 있는지는 아시테르도 잘 알지 못했다.

“단, 초월지대를 통과할 땐 마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오로지 너의 신체능력만으로 통과해야 할 것이야. 마찬가지로 이 두 번째 미션은 네 아버지인 유미르가 제안한 것이다.”

“이제 보니 이미 다 말씀들이 오가셨던 모양이군요.”

“후후, 그렇지. 마지막으로 나의 미션은 굉장히 간단하다.”

“말씀해주세요.”

“앞서 두 가지의 미션을 통과하고 나면 저 뒤쪽에 썩 괜찮은 수준의 마수가 하나 있다. 그 녀석을 처치하면 돼.”

“네? 그게 어떤 마수인데요?”

“마수의 이름은 오르보어(Oreboar). 네가 그 녀석을 죽일 수 있는 수준까지 된다면 아마 바깥세상에서도 네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게 될 거다.”

비체의 설명에 아시테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보어라는 마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비체가 미션에 포함할 정도라면 분명 심상치 않은 마수일 것이 분명했다.

“하아, 좋아요. 그러면 최대한 빠르게 세 가지 미션을 통과해 보일게요!”

아시테르가 각오를 다지며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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