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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2화 (22/424)

022화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아시테르가 숨을 차분히 골랐다.

이후로 몇 번의 마법 공격을 가했지만 역시나 오르보어에겐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놈은 자신의 단단한 뿔을 이용해 아시테르의 마법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쿠웅!!

아시테르가 딛고 선 곳에 오르보어의 뿔이 박혔다.

균형을 잃은 아시테르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이런……!”

쾅!

오르보어의 발이 아슬하게 아시테르의 몸을 비껴갔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한 아시테르가 몸을 굴렀다.

그는 가볍게 몸을 도약하며 커다란 바위 위로 올랐다.

“하아… 이거 정말 위험했네.”

오르보어가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아시테르를 향해 또다시 돌진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시테르가 눈매를 좁히며 오르보어의 움직임을 쫓았다.

덩치가 집채 만한 데도 오르보어의 돌진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네. 내가 어지간해선 원거리 마법으로 널 어떻게든 해보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언제까지고 도전해볼 수도 없고.”

본래 아시테르는 1년 안에 모든 미션을 통과하려 했다.

하지만 유미르와 아레나, 비체가 준 미션들은 역시나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결국 3번째 미션까지 거의 2년이란 기간이 걸리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1년 반이었다.

아시테르는 1년 반째에 3번째 미션까지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었다.

그 방법까지도 알고 있었지만 아직 조금의 여유가 있다고 판단,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3번째 미션을 클리어 해내기 위해 같은 방법만을 고집해왔다.

그 결과 거의 2년이 다되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들일 수 없었다.

아시테르가 서서히 손발에 마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비체가 눈매를 좁혔다.

“드디어 고집을 내려놓는 모양이군.”

화르륵―!

아시테르의 두 주먹과 발에서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건……!”

놀란 유미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레나도 아시테르의 변화에 깜짝 놀란 눈치였다.

발끝에서부터 타오른 화염이 더욱 거세게 치솟아 오르자 아시테르의 몸이 빠르게 쏘아져나갔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속도였다.

놀란 것은 오르보어도 마찬가지였는지 녀석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파앙!!

그때 오르보어의 오른편으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쿠웨에―!?”

놀람도 잠시 오르보어의 몸체가 들어 올려졌다.

파아앙!!!

불꽃이 타오르며 오르보어의 배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고통이 느껴졌다.

이에 오르보어가 커다란 비명을 토해내었다.

“꿰에에에――!!!”

“마법 내성이 강할 뿐 생각보다 단단하거나 무겁진 않구나 너.”

어느새 오르보어의 앞쪽으로 다가온 아시테르가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의 주먹에서 거센 불꽃이 피어올랐다.

파콰앙!!

아시테르의 주먹이 오르보어의 정수리에 정확히 꽂혔다.

묵직한 타격에 오르보어가 휘청거렸다.

이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시테르가 또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의 불꽃이 그 열기를 더했다.

“첫 번째 미션은 열매를 터트리는 것.”

처음에는 마력의 양만 늘리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눈앞에서 아레나가 너무도 쉽게 열매를 터트린 탓이다.

아레나는 손에 열매를 올려놓고 그 어떤 물리적 행동도 가하지 않았었다.

그녀가 내건 힌트는 오직 ‘마력’이었다.

때문에 아시테르는 방향을 마력으로만 잡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마력이 늘어나도 열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시도해봤던 것이 바로 마력의 속성 변환.

불꽃의 마력을 사용하자 열매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모습이 울퉁불퉁하게 변한 것이다.

여기서 감을 잡은 아시테르가 불꽃에 마력을 더했다.

더욱 정밀하고, 더욱 세밀하게 마력을 응집시키기 시작하자 불꽃의 열기가 더욱 거세져갔다.

그때서야 비로소 열매를 터트릴 수 있었다.

“속성의 변환만 중요한 게 아니었어.”

아시테르의 주먹에 맺힌 불꽃이 다시 한 번 그 열기를 폭발시켰다.

파쾅!!

화르릉!

불꽃의 열기는 마법 내성이 강한 오르보어의 피부마저 그을리게 만들었다.

오르보어도 사력을 다해 아시테르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는 두 다리를 오르보어의 뿔에 단단히 걸어 잠갔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오르보어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오르보어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누가 먼저 지치는지 한 번 해보자고!”

더욱 기세가 오른 아시테르가 쉼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같은 곳에만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하니 오르보어의 마법 내성도 소용없었다.

푸슉!

피부가 갈라지며 안에 감춰져 있던 연한 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승리를 직감한 아시테르가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흐아아!!!”

생각보다 오르보어의 맷집은 굉장했다.

아시테르가 있는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오르보어는 견뎌내고 있었다.

“피부만 망가트리면 되는 게 아니었어!?”

거칠게 숨을 몰아쉰 아시테르가 핏물을 닦아내었다.

언제 다친 것인지 이마에서부터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흘러내린 핏물이 아시테르의 왼쪽 눈에 들어가고 말았다.

“앗……!”

잠깐의 방심이었다.

핏물이 눈에 들어간 그 짧은 순간 몸의 긴장을 늦추었고, 오르보어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역시나 한 무리의 우두머리답게 놈의 감각은 날카로웠다.

오르보어가 머리를 거세게 흔들며 근처 벽에 뿔을 들이받았다.

아시테르의 몸이 그대로 오르보어에게서 떨어져나가고 말았다.

퍼억!

바닥에 곤두박질친 아시테르의 몸이 몇 바퀴나 굴렀다.

“아아, 이런……!”

어지러움에 고개를 세차게 흔든 아시테르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쓰러져 있으면 큰일 난다고 그의 본능이 거세게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뜨거운 숨을 내뱉은 아시테르가 오르보어를 찾았다.

녀석은 무서운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나가야만 한단 말이다……!”

아시테르는 피하기보다 오히려 오르보어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그의 행동을 본 유미르가 몸을 움찔거렸다.

아레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만 둬라. 아시테르가 지금보다 더욱 강인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면!”

비체의 만류에 두 사람이 멈칫했다.

다행히 아시테르는 오르보어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레나. 유미르. 너희는 아시테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뭔 줄 아느냐?”

아시테르를 유심히 바라보던 비체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비체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유미르가 곰곰이 생각해보다 말했다.

“이거 어떻게 하지? 아니면…….”

“밥 주세요.”

아레나가 이어서 답했다.

당장 떠오르는 말들이 그것이었다.

그러자 비체가 유쾌하게 웃었다.

“뭐, 그것도 맞지만 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이 하나 있더구나.”

“그게 뭡니까?”

“한 발자국 더 나아가자.”

비체의 말에 유미르와 아레나는 무언가가 머리를 한 대 때린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아시테르가 종종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두 사람도 알다시피 던전에는 우리밖에 없다. 그 때문에 아시테르는 다른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할 수 없었어.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셋 정도인데… 나와 유미르는 사용하는 힘이 아예 다르고, 아레나 너는 아시테르의 입장에서 비교가 아닌 동경의 대상이었을 거다. 그러니 아시테르는 늘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견주더구나.”

유미르와 아레나의 시선이 복잡해졌다.

이에 비체가 더욱 진한 미소를 보였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다.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아니,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지.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것은 끝없는 절망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때로 큰 성장을 불러오니까.”

“…….”

“그러나 우리들은 저마다의 다른 삶을 산다. 상대가 먼저 치고 나간다 해서 조급해할 필요 없고, 저 사람이 나보다 뒤쳐진다 해서 자만해할 필요도 없다. 그들도 결국 멈춰서는 시간이 있을 터고 급격하게 나아가는 시간이 있을 터니까. 어쨌거나 결국 그들의 삶은 그들의 삶일 뿐이야.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앞으로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느냐다. 이 얘기를 아시테르에게 해준 직후부터였다. 아시테르가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산 것이.”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시테르…….”

“두 사람의 마음은 잘 알지만 이제 아시테르가 어떻게 나아가는지 지켜봐주었으면 좋겠구나. 지금 같은 순간이야말로 녀석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 때가 아니겠느냐.”

비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오르보어의 공격에 당해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저기 난 상처들 때문에 아시테르의 몸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는 오르보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진 모습으로 아시테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쿠웨에에!!”

먼저 움직인 것은 오르보어였다.

녀석은 사력을 다해 돌진했다.

바로 눈앞에서 오르보어가 육중한 몸으로 매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오금이 저려 움직이지도 못했을 텐데 아시테르는 웃고 있었다.

“드디어 널 확실하게 죽일 방법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생각.

아시테르는 오르보어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놈의 눈동자와 아시테르의 눈동자가 마주했다.

오르보어는 마침내 저 건방진 인간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녀석의 단단한 뿔이 아시테르의 상체를 들이받으려는 순간 아시테르가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꾸에!?”

놀란 오르보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쿠우웅!!!

이어 놈의 뿔이 커다란 벽을 들이받았다.

높이 뛰어오른 아시테르가 공중제비를 돌며 주먹에 마력을 끌어 모았다.

“흐아아압――!!”

크게 기합성을 터트린 아시테르가 높은 곳에서부터 강하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주먹은 정확히 오르보어의 미간에 꽂혔다.

그곳은 아까부터 아시테르가 집요하게 노린 부분이었다.

때문에 피부가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강하게 내리찍은 충격에 오르보어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아시테르가 마력을 한층 폭발시켰다.

그러자 불꽂에서 더욱 강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강렬한 불꽃이 오르보어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아시테르는 속성 변환한 마력을 손끝으로 힘차게 밀었다.

화라랑――!!

불꽃이 오르보어의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아시테르가 손끝으로 이동해 맺힌 마력을 거세게 퍼트렸다.

그러자 오르보어의 몸속까지 침투한 불꽃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꾸에에에에―――!!!”

거친 비명과 함께 불꽃이 오르보어의 피부를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몸부림치던 오르보어가 마침내 움직임을 멈췄다.

쿠웅!!

마지막으로 한 차례 크게 경련하던 오르보어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끄, 끝난 건가?”

숨을 쉬지 않는 오르보어를 보며 아시테르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쭉 빠져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무식하리만치 단단하고 강한 마수였다.

근래에 이렇게까지 힘겹게 상대해본 마수는 없었다.

그것도 단 한 마리의 마수를 상대로 말이다.

“이걸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거겠지.”

마지막에 성공한 일격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격이었다.

마나를 이렇게 응용해본 적도 처음이라 아시테르는 이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곧바로 조금 전의 기억을 상기했다.

그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어느새 비체가 그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축하한다 아시테르.”

“할아버지.”

눈을 뜬 아시테르가 비체를 올려다보았다.

비체는 흐뭇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 마지막에 보여준 건 뭐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법이었는데? 이 녀석, 언제 그런 멋진 마법을 익힌 거야!?”

유미르가 아시테르의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군데군데 안 아픈 구석이 없어 아시테르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레나도 말없이 아시테르를 안아주었다.

“장하다 우리 아들.”

그녀는 어느새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아레나의 반응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아시테르가 이내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제가 해냈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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