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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5화 (25/424)

025화 왕도로 가는 길 (1)

아레나와 아시테르는 상단의 중단부로 안내되었다.

상단의 선두나 후미보다는 중단부가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나름대로 페르모의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상단 사람들도 아시테르와 아레나에게 다가와 갖고 있던 먹을 것들을 조금씩 나눠주었다.

“먹어봐요.”

주머니 속에서 감자를 내민 중년의 여인이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아시테르와 아레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녀가 내민 감자를 받아들었다.

“나한테도 저만한 나이의 딸이 있거든요. 딸 생각이 나서… 그나저나 아직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벌써부터 이만한 아들을 두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어.”

멋대로 아레나와 아시테르의 사정을 짐작한 여인이 안쓰럽다는 얼굴로 그들의 손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것이 값싼 동정이나 빈말이 아님을 안 아레나가 웃으며 여인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니에요. 우리 아들이 워낙 잘 커준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는걸요.”

“어머, 그래요? 세상에…….”

여인은 대견하다는 듯 아시테르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들의 대화에 다른 상단 사람들도 하나둘 껴들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상인 길드에 가입된 평범한 상인들이었다.

각자의 물품들을 가지고 왕도에서 거래를 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참이었던 것이다.

물품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마을의 용병단을 고용했는데 그들이 바로 하알로 용병단이었다.

“하필이면 고용할 수 있는 용병단이 하알로 용병단뿐이라니.”

“왜요? 저들에게 무슨 문제라도……?”

아레나가 하알로 용병단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불평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지 않았어요? 저들이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실력은 분명 있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면 몬스터들 때문이 아니라 하알로 용병단원들 때문에 불안해요.”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시시한 농담 따먹기나 하는데, 가끔은 불쾌한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구요.”

그들의 불만이 계속되는 와중에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렸다.

이를 들은 페르모가 행렬을 멈춰 세웠다.

“아아, 이번엔 어떤 놈들이려나.”

뒤편에서 걷고 있던 도우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하고 다른 용병단원들이 재빨리 진형을 갖추었다.

스슥!

스스슥!!

풀숲을 헤치며 나온 몬스터들은 ‘놀’이었다.

하이에나처럼 생긴 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서서히 다가왔다.

녀석들은 무리지어 인간이나 다른 사냥감들을 사냥하곤 했다.

그러니 잔뜩 굶주린 이에게 눈앞의 인간들은 더없이 좋은 만찬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이 사냥의 개시를 알리는 것처럼 동시에 몸을 낮추기 시작했다.

“아아…….”

“모두 이리로!”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던 듯 상인들은 능숙하게 한곳으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다른 몇몇 사람들이 아레나와 아시테르를 데리고 함께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손이 불쑥 튀어나와 아레나와 아시테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말했을 텐데? 너희 두 사람은 지키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그들의 행동에 발끈한 사내가 나서서 외쳤다.

“아니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사람의 목숨이 먼저 아닙니까? 거기다 여기는 힘없는 여인과 아이가 있는데…….”

“그럼 네가 돈을 대신 지불하던지.”

“아…….”

용병의 말에 사내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의 위험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알로 용병단에게 보호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까진 되지 못했다.

그가 조용해지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머리 용병단원이 웃음을 보였다.

“뭐야. 저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보호비라도 줄 것처럼 하더니?”

“그게…….”

“크흐흐, 뭐 됐다. 당신이 그럴 필요가 뭐 있겠어.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사람들한테.”

그는 잔뜩 비웃어줄 요량으로 아레나와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아레나와 아시테르는 잔뜩 표정을 굳히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웬 걸.

아레나와 아시테르는 평온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위협이나 위험을 느끼는 얼굴들은 아니었다.

“뭐야?”

그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보니 하알로 용병단원들이 능숙하게 놀들을 처치해내고 있었다.

놀들이 이곳까지 다가오질 못하니 아레나와 아시테르가 위험을 느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쯧, 멍청한 놈들. 이래서 일을 너무 잘하는 것도 문제라니까.”

사내가 혀를 차는 동안 상황은 금세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하알로 용병단이 허언뿐인 집단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상단의 그 누구도 다치지 않게 놀에게서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수북이 쌓인 놀들의 시체를 보며 상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보니까 어때?”

선두에서 가장 많은 수의 놀을 죽인 도우지가 아레나의 가까이로 다가오며 물었다.

그는 아레나와 아시테르처럼 불을 다루는 화염 마법사였다.

그가 만들어낸 화염탄 때문에 몇몇 놀들이 검게 그을린 채 죽어 있었다.

“대단하군요.”

“하하! 그렇지!? 이제야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용병단인지 새삼 실감이 나나?”

“…….”

아레나가 대답을 않자 도우지는 그녀가 본인들의 실력에 적잖이 놀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잘 생각해보라고. 이제라도 보호비를 낸다면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 보호비가 없으면 뭐 다른 방법이라도 좋아. 당신 정도의 외모라면.”

“돈이 그렇게나 중요한가요?”

“중요하지! 돈은 인생의 전부다!”

“그렇군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당신들에게 지불할 돈이 없어요.”

“뭐, 괜찮다니까. 그럼 다른 걸로라도…….”

“있다고 해도 당신들에게 돈을 지불할 것 같진 않군요. 애초에 저희는 당신들의 보호가 필요 없으니까요.”

아레나가 도우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에 도우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상당한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맘대로 해라.”

차갑게 말한 그가 떠나갔다.

그러자 다른 단원이 슬쩍 아레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잘 생각해봐요. 우리 도우지 단장은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 출신이라구요.”

“잘 보여서 나쁠 것 없다고.”

하지만 아레나는 이 역시도 가볍게 무시할 뿐이었다.

먼발치서 지켜보기만 하던 상인들이 걱정 어린 얼굴로 그녀와 아시테르에게 다가왔다.

“대체 어쩌려고 그래요? 조금은 자존심을 굽혀도 될 텐데.”

“맞아. 아이도 생각해야죠.”

“다들 지금 뭐라는 거야? 이 여인에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저 하알로 용병단 놈들에게 뭐라고 해야지!”

그들의 말에 아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말이 거칠긴 해도 저들의 말에 틀린 것은 없어요.”

아레나가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아시테르도 무언가를 느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놔둬 볼까?”

“네.”

아레나의 말에 아시테르가 짧게 답했다.

이어 그가 고개를 돌려 하알로 용병단원들을 살폈다.

몇몇 단원들이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놀과의 전투에선 그들의 검술을 구경할 순 없었다.

아시테르의 생각을 눈치 챈 아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들. 네가 기대하는 그런 것은 없을 거야.”

“네?”

“이스트 왕국은 검술보다 마법을 중요시하는 곳이란다. 이에 따라 검술을 익히는 사람들은 점차 사라져갔고. 대부분 검술보다 마법이 더 뛰어나다는 인식들을 갖고 있단다.”

“말도 안 돼…….”

“너는 비체님의 검술을 보았으니 전혀 그런 것들을 못 느끼겠지만 사실이야. 그러니 이곳에서 네가 흥미를 느낄만한 검술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손가락에 꼽을 거란다.”

“알겠어요…….”

시무룩해진 아시테르가 고개를 떨구며 답했다.

그래도 용병들 중 제법 재밌는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쿠웅!!

그들이 산을 다 넘기도 전에 또다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의 습격임을 눈치 챈 상인들이 재빨리 중앙 쪽으로 모여들었다.

하알로 용병단원들은 이번에도 아레나와 아시테르는 중앙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어, 어어……?”

“이럴 수가!”

“그레이베어들!”

회색빛깔의 털을 지닌 곰들이 그들을 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하알로 용병단 단원들이 처음으로 긴장한 빛을 보이며 움직였다.

그레이베어라면 놀보다 훨씬 더 위험한 몬스터들이었다.

“모두 대형을 갖춰라!”

“연습한 대로 공격해!”

하알로 용병단이 그레이베어들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아시테르와 아레나도 상황을 주시했다.

이들은 이미 그레이 베어들의 습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흐음.”

하알로 용병단원들의 실력을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레이베어들의 가죽에 마법내성이 있어서인지 용병들의 공격이 잘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들을 사용해야 하는데 용병단원들은 그저 같은 방식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필사적으로 상인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파콱!

그레이베어의 날카로운 발톱이 용병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갑옷도 저 괴력 앞에선 별 수 없었다.

갑옷까지 찌그러트리는 공격에 용병단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제기랄!! 모두 상인들을 데리고 피해라!”

“분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있는 놈들이 아니야!”

그레이베어가 한두 마리면 모를까.

이곳에 나타난 그레이베어는 모두 일곱 마리나 되었다.

현재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그레이베어는 총 다섯 마리.

다른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도우지가 혼자 처리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단원들이 힘을 합쳐 처리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다섯 마리가 문제였다.

“한 마리는 내가 어떻게 한다 쳐도 나머지는…….”

그레이베어 한 마리를 죽이는데도 상당한 마력을 소모한 도우지가 상황을 살폈다.

다른 용병단원들이 어찌어찌 다른 그레이베어들이 상인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고 있다곤 하나 그것도 잠시일 터였다.

그레이베어들에게 당한 용병단원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마리가 어느새 상인들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

놈은 커다란 발톱으로 상인들을 공격하려 했다.

“모두 조심해!!”

화염탄을 쏜 도우지가 황급히 놈들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레이베어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화염탄 때문에 녀석의 배 부분이 검게 그을렸다.

“쳇, 이 정도로는 소용이 없나……!”

도우지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한쪽에 서 있는 아시테르와 아레나를 발견했다.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죽고 싶어!?”

그는 아시테르와 아레나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다른 용병단원들에게 맡겼다.

그 모습을 본 아레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못난 사람들은 아닌가보네.”

“그쵸? 그래도 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이야.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라서.”

아레나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아시테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직접 나서시게요? 제가 나서도 되는데.”

“잊었니? 엄마도 전엔 국민들을 지키는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였단다. 그 마음만은 아직도 여전해.”

후우웅――

아레나의 손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력은 곧 커다란 불꽃을 피워냈다.

화륵!!

그녀의 손에서 뻗어나간 화염구가 순식간에 몸집을 키우며 그레이베어 한 마리를 집어삼켰다.

이를 본 도우지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레이베어를 한 번에 집어삼킬 정도의 위력.

도우지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레나가 연속으로 화염구를 날렸다.

화염구는 정확히 그레이베어들에 명중했다.

어찌나 위력이 강한지 화염구에 맞은 그레이베어들이 뒤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때 빈틈을 노린 그레이베어 한 마리가 아레나의 뒤에 섰다.

“이런!! 한 마리가 더 있었어!”

놈의 존재에 놀란 상인들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레나는 당황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다.

파아앙!!!

그레이베어의 발밑에서 시작된 불기둥이 순식간에 하늘높이 치솟아 올랐다.

불기둥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레이베어는 울음한번 토해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압도적인 위력의 마법 앞에서 도우지를 비롯한 다른 하알로 용병단원들이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도우지가 아레나를 향해 고개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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