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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7화 (27/424)

027화 눈물의 재회

프로메테 가문의 가주 크리울로스는 평소처럼 정원에 나와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그런 크리울로스의 곁엔 아내인 테레니스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져온 책을 꺼내며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크리울로스도 말없이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자리했다.

그도 가져온 책을 꺼내려는 때 누군가 허겁지겁 이곳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데 저리도 급할까요?”

“글쎄…….”

이를 먼저 발견한 테레니스가 물었고 크리울로스는 딱히 짐작되는 바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온 사람은 비서 푸글이었다.

“크리울로스님!!”

“푸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자네답지 못하게 너무나도 급한 모습이로군.”

“그 반대입니다! 그보다 빨리 회랑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소리치는 푸글을 보며 크리울로스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조용한 가운데 독서와 사색을 즐기려 했는데 잔뜩 방해받은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아가씨께서…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아가씨? 아가씨라니 대체 누구를…….”

말을 하던 크리울로스가 벌떡 일어나며 의자를 뒤로 밀었다.

쨍그랑!

연이어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테레니스가 들고 있던 찻잔을 그만 놓쳐버린 것이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두 손을 가슴에 가져갔다.

푸글은 오랫동안 크리울로스 곁에서만 일해 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크리울로스 앞에서 아가씨라 부를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두 눈을 부릅뜬 크리울로스가 푸글의 양쪽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았다.

“정말인가!!? 틀림없냐는 말이다!!”

“물론입니다 크리울로스님! 이 푸글이 아가씨를 못 알아 볼 리 없지 않습니까!”

푸글의 말에 크리울로스가 휘청거리며 한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돌연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그것 봐라!! 그것 보아라!!! 내가 늘 말하지 않았나!! 나의 딸이 그리 허무하게 죽었을 리가 없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질 않았나!!!”

실성한 듯이 웃기만 하던 크리울로스의 몸에서 마력이 폭발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흘러나온 방대한 마력이었다.

그 속에서 테레니스는 아무렇지 않게 푸글까지 보호해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이는 아직까지도…….”

눈물을 훔치던 테레니스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크리울로스도 푸글과 함께 회랑으로 향했다.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돌아온 거란 말이냐……!”

크리울로스도 좀처럼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가 회랑 쪽에 도착했을 땐 꿈에서도 그리던 딸, 아레나가 먼발치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도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레… 으응?”

아레나의 이름을 외치려던 크리울로스가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은 멀뚱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대놓고 아레나와 닮아 있었다.

“설마… 서얼마!!!”

크리울로스가 크게 소리치며 대지를 박찼다.

화르릉!!

그의 몸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아레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크리울로스 쪽으로 향했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크리울로스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화염이 모습을 감추었다.

“오오, 나의 딸!!!”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크리울로스가 한달음에 달려와 아레나를 안아주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딸의 모습을 못 알아 볼 리 없었다.

아레나 또한 오랜만에 만나는 크리울로스를 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버지…….”

“다행이다… 아주 다행이야!!! 이렇게 살아 있어 주어 너무나도 고맙구나!!!”

그녀를 힘껏 껴안은 크리울로스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꿈이라도 좋으니 당장 이 상황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따뜻한 감촉이 결코 꿈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왜 이렇게…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이야! 우리는 네가 꼼짝없이 당한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장례까지 치렀는데…….”

오랜만에 보는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크리울로스가 옆에 있는 아시테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 아이는…….”

“아, 소개드릴게요. 제 아들인 아시테르예요.”

“아들…이라고?”

크리울로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놀라고 있는 사이 테레니스도 어느새 아레나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녀는 말없이 아레나를 안아주었다.

“어머니…….”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우리 딸…….”

“죄송해요.”

“아니란다. 네가 죄송할 것이 무어 있니. 이렇게 살아 있어준 것만으로도 이 어미는 하늘에 감사하다.”

테레니스가 아레나의 등을 토닥이며 울먹였다.

그녀의 두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테레니스가 흐느끼기 시작하자 아레나도 곧 눈물을 터트렸다.

두 모녀가 흐느끼며 우는 사이 크리울로스가 아시테르의 앞에 섰다.

아시테르는 우두커니 서서 크리울로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크리울로스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깔끔하게 빗어 올린 외모와 짙은 일자 눈썹.

부리부리한 눈매에 다부진 입술은 그가 어떤 인물일지 능히 짐작케 만들었다.

“네가 내 딸의 아들이라고!”

“네,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라는 단어에 크리울로스가 움찔했다.

그 단어가 지금 이 순간 그토록 낯설 수 없었다.

그는 당돌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시테르를 마주 내려다보았다.

아시테르도 180센티가 넘는 큰 키를 갖고 있었지만, 그런 아시테르조차 고개를 들어 봐야 할 정도로 크리울로스는 장신이었다.

“흐음…….”

크리울로스가 자신의 얼굴을 아시테르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의 눈매가 점점 좁아졌다.

워낙 불같이 느껴지는 시선에 아시테르도 긴장된 낯빛을 했다.

그가 마른 침을 삼키는 그때 크리울로스가 손을 들어올렸다.

아시테르의 눈동자도 크리울로스의 손을 따라갔다.

텁썩!

크리울로스의 손아귀가 아시테르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어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잘 왔다! 이렇게 멋진 손자라니. 어미를 똑 닮아 잘생겼구나!”

크리울로스의 웃음에 아시테르도 덩달아 긴장이 풀려버렸다.

잠깐이었지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줄 알았던 것이다.

다행이 크리울로스는 아시테르를 보며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있었다.

“남은 얘기는 들어가서 하자꾸나!”

하고 싶은 얘기가 차고 넘쳤다.

당장 이곳에서부터 많은 것들을 듣고 싶었으나 그 행복과 기쁨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거기다 아레나와 아시테르의 행색도 크리울로스의 마음에 걸렸다.

누더기 같은 그들의 옷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

듣지 않아도 그간 아레나와 아시테르가 했을 고생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우선 씻고 오너라. 옷도 새로 준비해주마.”

크리울로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푸글이 아레나와 아시테르를 안내했다.

아레나가 그런 푸글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푸글 아저씨.”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행복한 마음입니다 아레나 아가씨.”

“못 보던 사이 아저씨도…….”

“이제 많이 늙었지요? 후후, 마지막으로 보고 세월이 많이 흘렀지 않습니까. 그동안 아가씨께서는 더 성숙해지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멋진 도련님이 생겨서 일까요.”

푸글이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테르가 쑥스러운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아, 아가씨께서는 이쪽으로. 그리고 작은 도련님께서는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그는 능숙한 솜씨로 아레나와 아시테르를 안내해주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자신의 방을 보며 아레나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아가씨가 그리울 때면 가주님께선 언제나 이방에 들어와 계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가씨의 물건들을 버릴 수 없었구요.”

푸글이 담담하게 말하곤 몸을 돌렸다.

물건들이 다 온전히 있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바닥과 물건들엔 먼지 하나 앉아 있지 않았다.

그 말은 늘 이 방을 쓸고 닦으며 관리해주었다는 얘기였다.

“나 참…….”

아레나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졌다.

한편 푸글은 아시테르를 이끌고 작은 방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옷들을 꺼내 아시테르에게 보여주었다.

“어떠십니까?”

아시테르는 무어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묻는지 선뜻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시테르는 어떻게 해서든 대답을 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움직이기에 불편할 것 같아요. 마수들의 공격을 피하려면 여기를 좀 더 찢고…….”

아시테르가 진지한 낯빛으로 말하는데 그만 푸글이 웃음을 터트려버리고 말았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옷을 바꿔주었다.

“그렇군요. 이런 옷은 아시테르님께 익숙지 않으니 충분히 불편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면 이쪽 옷은 어떻습니까? 아, 마수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수가 이곳에 나타날 리는 없으니까요.”

“네? 왜요?”

“그야 왕국의 마법기사님들께서 이곳을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와, 마법기사들이 그런 역할도 하나요?”

아시테르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런 아시테르가 귀여웠는지 푸글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시테르를 통해 과거 어린 시절의 아레나를 떠올렸다.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인형 같기만 하던 아레나와 달리 아시테르는 다양한 표정 변화가 있었다.

이런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참, 어머니인 아레나님께서도 마법기사셨던 것은 알고 계신가요?”

“네. 전에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군요. 이제 다른 것들은 이쪽에 있는 분들이 도와줄 겁니다.”

푸글의 지시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움직였다.

아시테르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깨끗이 씻고 옷까지 정갈한 차림으로 입었다.

거기다 덥수룩했던 그의 머리칼도 제법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단정하게 모습을 꾸미니, 꾀죄죄함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수려한 외모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호오……!”

크리울로스가 그런 아시테르의 모습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세히보니 그가 아는 누군가의 모습이 아시테르에게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는 푸글의 안내에 따라 식사 자리에 앉았다.

미리부터 와있던 테레니스도 그런 아시테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외할머니라고 한 번 불러주겠니?”

“외할머니?”

“어머, 어머머…….”

테레니스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동안 단장을 마친 아레나가 식사자리에 왔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녀를 보며 크리울로스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아아… 내 딸이 정말 돌아오다니…….”

이제 가족들이 다 모였으니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가 시작되었다.

크리울로스가 식사를 하기 전 아시테르 쪽을 쳐다보았다.

“설마 손으로 먹는다거나 하진 않겠지……?”

야생에서 자란 것만 같은 손자의 모습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판단되었다.

하지만 크리울로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시테르는 준비된 식기들을 하나씩 사용하며 음식을 먹었다.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는 그의 행동에 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아시테르는 비체에게서 식사 예절을 혹독하게 배운 적이 있었다.

나름 왕족이었던 비체가 아시테르에게 여러 예절들을 가르쳐준 것이다.

정말 아시테르를 어비스 던전에만 머무르게 할 생각이었다면 그럴 필요 없었지만, 비체는 언젠가 아시테르가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예절을 가르치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 비체의 안배가 이곳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크흠!”

아시테르의 행동에 만족스런 미소를 보인 크리울로스가 본인도 마저 식사했다.

이를 잠자코 지켜보던 테레니스도 슬쩍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아레나.”

“네, 아버지.”

“아직 내게 우리 손자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구나. 너의 마음을 훔친 녀석이 대체 누구냐? 그 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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