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29화 (29/424)

029화 한 밤의 밀회

하지만 테오도라는 이런 일에 먼저 앞으로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다른 친구들에게 이 귀한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테오도라가 그렇게 나오니 마르쿠드나 자토, 세밀리아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사내가 조금 당황한 눈치를 보였다.

그러자 세밀리아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제가 아끼는 동생이 이번에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거든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인지 여러분들이 지켜봐주시겠어요?”

세밀리아의 소개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곳엔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동자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여인은 천천히 연회장 중심으로 걸어 나갔다.

“미안해. 따로 부탁할만한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세밀리아가 두 손을 맞대며 말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아요.”

그녀를 지나친 금발의 여인이 양쪽 손으로 원을 그렸다.

여인의 손이 지나가는 곳으로 푸른 비단 같은 마력이 허공에 넘실거렸다.

“오오―!”

“저것은……!”

마력은 곧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감탄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한쪽 손가락을 내밀자 그곳에 빛이 일었다.

파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작은 전격이 날아가 멀리 있는 사과를 깔끔하게 맞췄다.

“오오! 전격을 다루는 마법사인가!”

“어디서 봤나 했더니 체르도네 가문의 아가씨였구만!”

“크으… 체르도네 가문이라면 여러 훌륭한 마법기사들을 배출해낸 명문가가 아닌가!”

귀족들이 그녀의 가문을 알아보며 아는 체 했다.

그들이 찬사를 보내며 박수를 아끼지 않자 여인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답례를 전했다.

“와아…….”

아시테르도 순간 먹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그 아름다운 미모에 빠져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훌륭한 마법까지 보고 있으니 더없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테르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여인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시테르가 손을 들며 다가서려 할 때 푸글이 그를 막아섰다.

“이제 그만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벌써요?”

“예.”

짧은 대답과 함께 푸글이 아시테르를 데리고 사라졌다.

아시테르는 연신 고개를 돌리며 여인을 찾았다.

한번이라도 더 여인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여인은 아시테르에 대한 관심이 식었는지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테오도라가 여인과 아시테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마법 솜씨는 잘 봤어요. 이름이 뭐예요?”

“알렌시아입니다.”

“알렌시아라… 기억해둘게요. 꼭 함께 마법기사가 돼요.”

테오도라가 은근슬쩍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며 눈짓했다.

아시테르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그는 알렌시아라는 이름을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후후, 아까 그 아가씨가 꽤나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아시테르를 살피던 푸글이 슬쩍 물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그를 쳐다보았다.

“저도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그럼 저도 마법기사 아카데미로 갈래요.”

“왠지 다른 것보다 알렌시아 아가씨를 보기 위해서 가는 것 같군요.”

푸글의 말에 아시테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그렇지요? 저도 놀랐습니다. 우리 아레나 아가씨께서도 어렸을 적 저렇게 아름다우셨었는데…….”

푸글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가 또 주책맞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자 아시테르가 들고 있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필요도 없는 것을 왜 자꾸 옷 한쪽에 넣어주는가 했는데 이제보니 이런 용도였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레나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반겨주는 푸글에게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시테르는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숙소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그동안 테오도라가 그를 보기 위해 몇 번씩 찾아왔었다.

“솔직히 말해봐라 아시테르. 너 얼마 전 연회에서 봤던 알렌시아가 마음에 들었지?”

“네?”

“나도 눈치가 좀 있는 편이야. 너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서 떨어지질 않고 있던걸?”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아하하하! 이 녀석 생각보다 여자 보는 눈이 높잖아?”

테오도라가 재밌어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요 며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시테르도 서서히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테오도라는 그가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아시테르에게 구김살 없이 먼저 다가와 주었다.

게다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진짜 친형제라도 생긴 것 같아 즐거운 감정이 들었다.

“진짜 친형 같아요.”

“뭐?”

속마음이 저도 모르게 나온 아시테르가 황급히 입을 가렸다.

그러자 테오도라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이미 널 친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어. 솔직히 이 넓은 가문에서 나 혼자 너무 외로웠거든?

근데 네가 오고 나니까 좀 더 분위기가 밝아진 것 같아. 이상하게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가 한 번에 쓸려나간 느낌이랄까.”

그가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입을 삐죽거렸다.

“솔직히 방학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면 너랑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처음으로 내가 아카데미에 가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

“저도 형이랑 좀 더 놀고 싶어요.”

아시테르의 말에 테오도라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미소를 보였다.

작은 바람이 불자 그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테오도라가 슬쩍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시테르.”

“말씀하세요 형.”

“이제 그만 말을 낮춰. 우린 친형제 사이 아냐? 자꾸 말을 높이면 거리두려는 것 같아 나 서운해.”

“아… 알겠어. 노력해볼게… 형.”

아시테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이를 보던 테오도라가 손뼉을 쳤다.

“좋아좋아!! 너도 우리 가문의 핏줄을 이었다면 마법은 사용할 줄 알겠지?”

“어느 정도는.”

“푸글 아저씨한테 들어보니까 너도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싶다 했다면서?”

“응.”

“역시 알렌시아 때문이야?”

테오도라가 익살스런 미소를 지으며 아시테르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시테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있지만 예전에 그곳에서 보자고 약속한 친구도 있어서.”

“친구?”

“응. 옛날에 만난 친구인데 아카데미에서 보기로 했어.”

“호오… 그거 멋진 걸?”

테오도라가 씨익 웃었다.

이럴게 아니라 그는 곧장 아시테르를 데리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엉겁결에 테오도라를 따라온 아시테르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보여줄 수 있겠어? 나도 내 동생의 마법 실력이 어떤지 궁금하니까.”

“아…….”

아시테르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 아레나는 아시테르에게 함부로 마법 실력을 보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것 때문에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었을 때에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시테르로선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인 아레나가 신신당부하듯 말했으니 그 말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아시테르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인지 테오도라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나는 그저 순수하게 네 마법 실력이 궁금한 것뿐이야. 부족한 실력이어도 괜찮으니까 한 번 보여주지 않겠어? 보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말은 안했지만 나도 고모에게 벌써 도움을 받았는걸. 그 은혜를 갚고 싶어서 그래.”

테오도라가 슬쩍 지난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가 어렸을 적부터 실종되었던 고모 아레나.

그녀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왔다.

거기다 테오도라가 목표로 하는 마법기사의 단장 자리에 아레나는 일찍부터 자리해 있던 인물이었다.

마법 실력도 뛰어났다고 하니 테오도라는 마음 깊숙이 그녀를 존경해오고 있었다.

가문 내에서도 아레나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극비로 처리되고 있었기에 테오도라조차 가문에 돌아와 있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뻔했다.

때마침 방학이라 가문에 돌아와 있었던 것이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어쨌거나 테오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아레나에게 가르침을 부탁드렸었다.

처음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으나 그녀의 오빠이자, 테오도라의 아버지였던 트라클더스의 연이은 부탁에 아레나도 결국 승낙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테오도라가 겪은 것은 엄청나게 거대한 벽이었다.

그녀의 화염 마법을 보자마자 테오도라는 현기증을 느끼고 말았다.

그동안 어느 정도 많은 성장을 이룩하며 강해져왔다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레나의 앞에서 자만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아레나가 테오도라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으니 자신도 아시테르에게 조언을 해주며 은혜를 갚고 싶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시테르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금만.”

아시테르가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속에서 천천히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와아―

그 모습에 테오도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화륵.

아시테르의 마력이 아름다운 불꽃으로 피어났다.

두 손을 들어 올리자 불꽃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화르릉―

하늘을 수놓은 불꽃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테오도라도 입을 떡하니 벌렸다.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 수준의 마법이라니 테오도라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엄청난 마법 실력을 갖고 있었잖아……?”

테오도라뿐만 아니라 아시테르도 본인의 마법에 놀라고 있었다.

가랑비처럼 흘러내리던 불꽃이 이곳에선 제법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와아…….”

자신의 두 손을 들여다본 아시테르가 스스로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그 모습을 허투루 넘겨볼 테오도라가 아니었다.

“뭐야, 너도 네가 이 정도 실력을 갖고 있는 줄 몰랐던 거야?”

한껏 기분이 업된 테오도라가 아시테르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흥분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기만 하던 아시테르였다.

그런데 이런 멋진 마법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혹시 다른 건? 다른 마법도 보여줄 수 있어?”

테오도라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체 할아버지나 아레나에게 어비스 던전 밖으로 나오면 본래보다 더 강력한 마법을 펼칠 수 있을 거란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제대로 마법을 펼쳐보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시테르가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대지에서 소용돌이치던 불꽃이 선명한 불기둥을 이루며 솟구쳤다.

“이건… 고모님의 마법……!”

눈을 부릅뜬 테오도라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아시테르를 끌어안았다.

“너 진짜 대단하다!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대단해!”

“그래요?”

“그럼! 내가 봤을 때 넌 이미 2등급, 아니 1등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 그건 좀 아닌가? 아무튼 정말 대단해!”

테오도라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있었다.

그가 이렇게 순수하게 기뻐하자 아시테르도 덩달아 신나는 기분이었다.

“좋아! 나도 너에게 지지 않겠다!”

“에이. 푸글 아저씨가 그랬어. 형은 정말 대단하다고…….”

“아냐. 너에 비하면 나도 부족한 수준이 아닐까? 대체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그런 마법실력을 가질 수 있지? 내가 봤을 땐 분명 나보다 네가 훨씬 더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을 거다.”

“그러면 형도 한 번 보여주면 안 돼?”

“나 말이야? 좋아, 어디 그럼…….”

아시테르의 요청에 테오도라가 몸을 일으켰다.

살짝 미소 지은 그의 모습엔 자신감이 충만했다.

화륵―!

테오도라가 두 팔을 벌리자 불꽃이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원반 모양으로 생긴 불꽃이 테오도라의 주변을 머물렀다.

“오오…!!!”

그의 대단한 마법에 아시테르가 감탄을 아까지 않았다.

이어 테오도라가 두 팔을 모아 손뼉을 쳤다.

불꽃이 팔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며 커다란 염호(炎虎)를 만들어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