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오랜만에 만난 인연
프로메테 가문을 나온 아레나와 아시테르는 잉그레시아 안에 숙소를 잡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는지 미리 안배를 해놓은 테레니스 덕분에 숙소를 잡는 것은 수월했다.
숙소에 도착한 아레나와 아시테르는 들고 있던 짐을 풀어놓았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
테레니스의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오긴 했지만 아레나라고 딱히 다른 방법들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그들이 머무는 곳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주인장의 말에 아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와 아시테르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누군가 찾아왔다고 하니 어리둥절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그새 다시 찾아오신 건가?”
그러나 이곳으로 찾아온 손님은 사내였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아레나를 보며 예를 차렸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아시테르님이 이곳에 계십니까?”
“아시테르요?”
아레나가 옆에 있는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누군지 알고 있느냐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시테르라고 그를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 또한 처음 보는 사내였던 것이다.
그러자 사내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시테르님이십니까?”
“네. 제가 아시테르인데요……?”
“제가 잘 찾아왔군요. 함께 가시겠습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네? 가다니요? 어디로요?”
“제 상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레나가 아시테르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례지만 그 상관이라는 분이 누구시죠?”
“아레나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사내가 아레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가 아레나의 앞에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를 본 아레나의 두 눈이 커졌다.
“이제 함께 가실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좋아요. 그렇지 않아도 찾아뵈러 가볼까 했는데.”
아레나가 순순히 사내를 따라나섰다.
아시테르도 자연스레 아레나와 함께했다.
사내와 아레나, 아시테르는 잉그레시아에서도 외진 곳으로 움직였다.
그곳에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었는데, 사내는 안으로 들어서라며 손짓했다.
아레나는 망설임 없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아시테르의 시선에 누군가가 보였다.
중년의 사내가 의자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레나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절로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레나가 사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너……!”
아시테르가 아레나를 따라 사내에게 예를 차리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곧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며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비체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내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옮겨졌다.
“네가 아시테르겠구나.”
“네, 네에…….”
아시테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사내가 그런 아시테르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낯설지 않았다.
어쩐지 누군가와 겹쳐 보였다.
사내의 시선이 다시 아레나에게로 향했다.
“아레나, 너의 아들이라고 들었다만?”
아레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어라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사내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넌 여전히 아름답구나.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겠어.”
“군단장님께서도 여전한 모습이시군요. 세월이 비껴가기라도 한 건가요.”
“후후, 늘 젊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세월이 그 정성을 알아주시는가 보지.”
사내, 테르세우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천천히 아레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말없이 아레나를 끌어안아주었다.
“정말 고맙다.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
“군단장님…….”
세상에 제 2의 아버지가 있다면, 아레나에게 그것은 군단장 테르세우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크리울로스와는 다른 의미로 많은 사랑을 전해준 사람이었다.
아레나에게 제 2의 삶을 부여해준 것이 바로 테르세우스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녀는 크리울로스를 만났을 때보다 더욱 감정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테르세우스는 아무 말 말라는 듯 아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을 지켜주겠다 맹세했거늘…….”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마법기사단의 단장이 되면서부터 저희들 모두 각오한 바에요.”
“알고 있는진 모르겠다만, 너와 유미르는 내게 특별한 존재들이었어.”
“저희도 잘 알고 있어요. 저와 유미르 모두 테르세우스님께는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인걸요.”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구나. 그래, 유미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테르세우스의 물음에 아레나가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그녀의 의중을 눈치챈 테르세우스가 주변의 사람들을 물리쳤다.
그들이 이곳에서 확실하게 멀어지고 나서야 아레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유미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자신을 살리려다 마력을 모두 잃었고, 또 좋은 스승을 만나 지금은 다른 막중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전했다.
아레나의 얘기를 듣는 내내 테르세우스의 표정은 계속해서 변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아레나의 얘기를 끊지 않고 여러 반응들을 더해주었다.
덕분에 아레나도 막힘없이 그동안의 얘기들을 풀어낼 수 있었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테르세우스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 일들이 있었구나… 그나저나 정말 천운이었어.”
테르세우스가 미소를 보이며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아시테르는 이제보니 테르세우스의 미소가 유미르와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네가 두 사람에게 찾아온 것이 가장 큰 행운이구나.”
“아…….”
“후후, 이 녀석. 유미르를 쏙 빼다 닮았어.”
테르세우스의 말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처음이에요.”
“뭐가 말이냐?”
“다른 분들은 모두 제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씀해주신 분은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아하하하!! 그러냐. 본래 사람은 보고 싶은 것들을 가장 먼저 보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네게서 유미르를 가장 먼저 보았나 보구나.”
그의 귀여운 모습에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행동도 생각해보니 유미르가 자주 보여주던 모습이었다.
“아시테르. 정식으로 인사드리렴. 아버지와 어머니에겐 참된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시란다. 아버지가 자주 말한 적이 있을 거야. 비체님 이전에 늘 마음 깊이 따르던 분이 계셨다고.”
“아……!”
아시테르는 그때서야 기억 속의 이름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테르세우스 단장님!”
“호오… 나를 아는 거니?”
“네! 아버지께서 자주 말씀하셨어요. 가끔 그리워하시기도 하셨구요.”
“하하, 그 녀석이 그랬단 말이야?”
테르세우스가 눈시울을 붉히며 코를 쓱 훔쳤다.
이것마저도 유미르의 행동과 비슷했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어요.”
아시테르가 테르세우스에게 정식으로 예를 갖추며 말했다.
그의 태도에 테르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과 다르게 아들은 아주 훌륭한 모습이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아하하! 너희들에게선 이런 귀여운 모습이 없었잖아. 한 명은 늘 사고만 치고 다른 한 명은 인형처럼 무감각하게 서 있었으니까. 그래서 얼마나 골머리를 썩였는지.”
“테르세우스님! 아들 앞에서…….”
아레나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해댔다.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또 처음이라 아시테르도 신기해했다.
아레나를 아이 다루 듯하는 테르세우스의 모습에 아시테르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그 비체라는 분도 어떤 분인지 궁금하긴 하구나. 아레나의 목숨을 살려주고 못난 유미르 녀석을 제자로까지 받아주셨으니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하는데 말이야.”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시테르를 찬찬히 살폈다.
“얘기는 전해 들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싶다고?”
“네? 아, 네!”
“마법기사가 되고 싶은 거냐?”
“아, 그게… 그곳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아시테르의 표정을 읽은 테르세우스가 피식 웃었다.
“설마 그 보고 싶다는 사람이 여자니?”
“네, 네!?”
당황한 아시테르의 모습을 보며 테르세우스가 더욱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
그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아레나를 바라보았다.
“과연! 유미르의 아들이 맞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유미르도 예전에 내게 찾아와 부탁한 적이 있었거든. 아레나와 같은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이야. 흐흐흐.”
처음 듣는 얘기에 아레나의 볼이 화끈해졌다.
그녀가 두 손으로 자신의 볼을 가렸다.
“아하하하!! 솔직해서 좋구나! 하지만 아카데미는 미래 마법기사를 양성하는 곳이다. 단순히 그런 이유만이라면 허락해줄 수 없지.”
“네?”
아시테르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러자 테르세우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따라와라.”
“네.”
그는 아시테르를 데리고 뒤편의 넓은 공터를 찾았다.
아레나도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멈춰 선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를 향해 손짓해 보였다.
“어디 한 번 네 마법을 보여 봐라.”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네가 지금 이곳으로 왜 왔는지 모르고 있겠구나.”
“그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네 마법 실력을 보여라. 그러면 조금이라도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지금 내가 해줄 얘기는 이게 다야.”
“예……?”
아시테르가 아레나 쪽을 쳐다보았다.
아레나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시테르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어디 한 번 해보겠습니다!”
“잠깐.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최선을 다해 나를 공격해보겠나?”
“예에……?”
“눈앞에 상대가 있으면 좋잖나.”
테르세우스가 웃으며 아시테르의 맞은편에 섰다.
“혹시나 나를 걱정하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자네에게 당할 만큼 나는 무르지 않으니까.”
“네!”
아시테르가 힘찬 대답과 함께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의 흐름이 거세지자 테르세우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좋군.”
아시테르의 두 손 위로 주먹만한 화염구가 떠올랐다.
선명하게 타오르는 화염구를 보며 테르세우스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후웅―!
두 개의 화염구는 빠르게 날아가 테르세우스를 노렸다.
휙.
테르세우스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화염구는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자네는 아직… 앞에 있는 내가 누군지 아직 감이 안 잡히나보군.”
슈와아아아――!!
테르세우스가 작정하고 마력을 끌어올리자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전해져오는 엄청난 압박감에 아시테르도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테르세우스를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다.
테르세우스가 일전의 미소를 보이며 다시 한번 손짓했다.
“자 이제 내 말이 이해가 되었나? 이해가 되었다면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을 거야. 정말로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싶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