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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4화 (34/424)

034화 아카데미 입학시험 (1)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광장에 모여들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긴장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달칵.

중앙에 위치한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법기사 아카데미.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입구가 마침내 열린 것이다.

문이 열리자 곧바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하고 와!”

“힘내렴!!”

“해낼 수 있다!”

그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군중 속에서 아시테르가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아레나는 며칠 전 조용히 잉그레시아를 떠났다.

그녀는 아시테르가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을 배웅하지 못해 못내 미안해했다.

“괜찮아요 어머니.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기 곤란한 사정을 저도 잘 알고 있는걸요. 게다가 제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혼자 가도 충분해요.”

그렇게 씩씩하게 말하며 아레나를 보냈지만, 막상 주변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카데미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찹!

두 손으로 뺨을 살짝 때린 아시테르가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위해서도, 추천장을 써주신 테르세우스님을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지!”

그는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아카데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아카데미 교관들이 시험자들을 안내했다.

“모두 이쪽으로 오십시오.”

늙수그레한 음성이 먼발치서 들렸다.

시험자들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움직였다.

“첫 번째는 마력량 테스트입니다. 모두 보시면 이곳에 마력을 측정하는 마도구가 있습니다. 마도구에 손을 넣고 있으면 이렇게…….”

시험관이 직접 손을 집어넣어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는 공간으로 ‘중상급’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일반 귀족들이 중급 정도의 마력량을 갖고 있다고 하니 중상급이라면 상당한 마력량을 보유한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아카데미의 교관님이신가.”

“과연…….”

그들이 중상급이라고 나타난 문구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시험자들이 하나둘 단상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마도구에 손을 넣을 때마다 시험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중상급이라고 나타나는 시험자가 있는가 하면 하급이라고 나타나는 시험자도 있었다.

“와, 저기…….”

“예쁘다…….”

“진짜 아름다운 걸? 누구지?”

시험자들이 단상 위로 올라서는 여인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여인의 옆에 서 있던 사내가 함께 단상 위로 올라섰다.

사내가 위로 올라서자 이번엔 여성 시험자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짧은 금발에 조각 같은 얼굴의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올해는 시험자들이 많군.”

“떨어질까 봐 겁나?”

“내가 떨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렇게 자만하지마 칸.”

“흥. 여기서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할 수준이라면 애초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를 본 시험관이 눈매를 좁혔다.

“칸! 앞으로.”

시험관의 호명에 라테일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이름이 들리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칸이라면 오스카 가문의……?”

“5대 귀족 중 하나인 오스카 가문이라니…….”

“그런데 오스카 가문의 칸이라면 이미 아카데미에 시험 볼 수 있는 나이를 넘어서지 않았나? 설마 떨어졌을 리는 없고 왜 올해에 시험을 볼까?”

“옆에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누굴까?”

그들이 여러 질문을 낳고 있는 동안 칸이 마도구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마도구에서 환한 빛무리가 일었다.

시험관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상급!”

지금까지 많은 시험자들을 거쳐 갔지만 상급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시험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들었어? 상급이래!”

“이번 기수에 나온 첫 상급 아니야?”

“역시 오스카 가문인가…….”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칸은 무덤덤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다.

칸의 결과에 몇몇 시험관들은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앞에 있던 시험관의 시선이 옆에 있는 여인에게로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여인에 대해 궁금해하던 몇몇 시험자들이 말을 멈추고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알렌시아! 앞으로.”

그녀는 조용히 마도구 앞에 섰다.

그곳으로 손을 넣자 마도구가 또다시 환한 빛무리에 감싸였다.

키잉―!

옆에 나타난 결과를 보던 시험관이 이번에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두 번 연속 상급이 나왔던 것이다.

“상급……!”

알렌시아의 결과도 상급이 나오자 뒤에 있던 시험자들이 크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칸은 명문인 오스카 가문의 사람이었으니 그렇다 쳤지만 알렌시아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때 뒤편에 있던 곱슬머리의 소년이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섰다.

“역시 체르도네 가문의 자제답네요.”

소년의 말에 시험자들이 단번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오스카 가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가문이 바로 체르도네 가문이었다.

“체르도네 가문이었구나…….”

“그러면 상급인 것도 이해가 되네.”

“부럽구만.”

그들이 수군거리는 사이 곱슬머리의 소년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상당히 앳돼 보이는 인상이었다.

“네가 자비토인가?”

“네!”

“그렇군. 마도구 앞으로 가라.”

“알겠습니다!”

시험관의 말에 자비토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눈 밑에 있는 점이 아주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자비토가 새하얀 손을 마도구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마도구가 또다시 환한 빛무리로 물들기 시작했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상급이라는 문구가 나타난 것이다.

세 번 연속이나 상급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니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누구길래…….”

“잠깐. 자비토라면 설마 히스링 단장님의 아들인 그 자비토인가?”

“오르페 가문의 히스링 단장님? 하하… 그러면…….”

여기저기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아시테르 홀로 마른침을 삼켰다.

서서히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점점 긴장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내려다봤다.

이 반지를 준 사람은 테르세우스였다.

아시테르가 아카데미로 오기 전, 테르세우스는 반지를 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반지를 차고 있는 동안엔 마력의 속성 변환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내 수하들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말이다. 마력량을 제한하기까지 했다더군. 네게 조금 가혹한가 싶기도 하지만……. ”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아요.”

“호오…….”

아시테르의 반응에 테르세우스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어쨌거나 반지를 끼고 나니 확실히 마력의 흐름이 크게 방해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마력이 흐르는 통로가 평소보다 훨씬 좁아진 기분이었다.

어비스 던전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하지만 아시테르는 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도 수련의 일환이니까.”

작게 중얼거리며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아시테르 곁에 누군가 섰다.

“많이 긴장되나 봐요?”

“네? 아, 네에…….”

“저도 지금 긴장돼 죽겠어요. 어쨌든 우리 같이 힘내 봐요.”

어깨선까지 오는 은색 단발.

커다란 눈에 길게 뻗은 속눈썹이 아시테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의 여인이 아시테르를 보며 웃었다.

눈웃음을 짓는 그녀를 보며 아시테르가 괜히 시선을 피했다.

예쁘장한 외모에 눈웃음까지 매력적이라 주위에서도 은근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사내들이 있었다.

“저놈은 뭐야?”

“아는 사람인가?”

“그나저나 이번엔 예쁘고 잘생긴 시험자들이 많네.”

그들의 관심이 서서히 멀어질 때쯤 시험관이 앞으로 나왔다.

“아시테르! 라빈! 베네피트!”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아시테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옆에 있던 은발의 여인도 함께 움직였다.

생각보다 작은 체구의 여인에 아시테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크네요 당신.”

은발의 여인도 마침 아시테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아시테르와 직접 키를 재보았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시험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둘이 지금 뭐하나? 서둘러 올라와라.”

“아, 네!”

“네에―!”

아시테르가 오른쪽 끝에 서고 은발의 여인이 중앙에 섰다.

그리고 베네피트라 불린 사내가 왼쪽 끝에 자리했다.

“이제 마지막 조다! 가장 먼저 아시테르. 앞으로!”

시험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시테르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은발의 여인이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힘내세요!”

“네? 네.”

“잘하고 와요오!”

잘하고 올게 뭐가 있을까마는 아시테르는 은발의 여인을 향해 화답해주었다.

그녀는 아시테르가 뒤돌아선 이후에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순서였기에 시험자들도, 시험관들도 상당히 지친 때였다.

아시테르가 마도구 앞에서 숨을 한 차례 골랐다.

그리곤 손을 가져가 마도구 안으로 집어넣었다.

키잉―!

마도구가 옅은 푸른빛을 띠었다.

그것만 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었기에 시험관들도 피식 웃었다.

푸른빛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이어 옆에 등장한 문구는.

“최하급!”

그 말을 듣자마자 아시테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마력량을 제한했다곤 하나 최하급이 나올 거란 생각은 전혀 못해본 탓이다.

그런데 자신을 놀리기라도 하듯 ‘최하급’이라는 글자는 두 번씩이나 깜빡거리고 있었다.

놀란 것은 아시테르만이 아니었다.

“처음이로군. 이번 시험장에서 최하급은…….”

“최하급이면 뭐야? 마법을 한 번 정도는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시험관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은 그나마 나은 반응이었다.

다른 시험자들 중엔 아시테르를 대놓고 비웃는 자들도 있었다.

“아하하!! 최하급 정도인데 무슨 염치로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가겠다고 온 거야!?”

“나 참. 어이가 없는 수준인데.”

“크큭, 아무리 왕국민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지만 저건 너무한 것 아니야?”

그들이 비아냥거릴 때 아시테르는 무안함에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조용히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와, 이건 좀 심했는데요……?”

마력량을 제한한다는 게 이 정도 수준일지는 몰랐다.

그때 누군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마력량 정도야 금방 늘릴 수 있어요!”

옆에 있던 은발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밝게 미소 지으며 아시테르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다음은 라빈!”

“네에!”

시험관의 호명에 은발의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단상 위로 올라서자, 시험자들도 조금 전 아시테르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듯 했다.

그들은 저마다 라빈의 모습에 감탄하기 바빴다.

“저 애가 라빈…….”

“아는 사람이야?”

“레프레시아 가문의 여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천재로 불린 아이라던데 과연 어느 정도일지.”

칸의 소개에 알렌시아도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조용히 라빈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한편 라빈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마도구 앞에 섰다.

그때 그녀는 앞에 놓아진 마도구가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시험자들이 마도구에 손을 넣었을 때, 마도구는 늘 푸른빛을 띠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으로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에? 이게 뭐람?”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옆으로 향하자 곧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서서히 글자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희미하게 드러난 글자는 가까이 있는 라빈만 읽을 수 있었다.

“뭐야…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래.”

글자를 읽은 라빈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그것은 마치 라빈의 시선을 의식하기라도 하듯 곧바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결국 이 글자를 본 것은 라빈뿐이었다.

“재밌네.”

그녀는 천천히 새하얀 손을 마도구 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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