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5화 (35/424)

035화 아카데미 입학시험 (2)

“하급!”

시험관이 옆에 나타난 결과를 보며 외쳤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라빈의 결과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었다.

칸이 놀라서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 칸을 보며 알렌시아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 레프레시아 가문의 천재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다면 저 여자의 풀네임은 레프레시아 진 라빈. 위로 언니가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은 지금 마법기사 아카데미의 3등급에 오른 학생일 거다. 레프레시아 가문의 자매임은 틀림없어.”

“그래……?”

“대외적으로 언니가 더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건 사실과 달라. 레프레시아 가문에서 라빈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소문이라고 하더군.”

“왜?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버님의 말씀에 따르면 저 아이가 사용하는 마법 때문이라는데.”

“마법 때문이라니…….”

칸과 알렌시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연스럽게 자비토가 끼어들었다.

“저 여자와는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걸요.”

“네?”

“그게 무슨 말이지?”

“보기와 다르게 진짜 무서운 여자거든요.”

자비토가 일부러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이어 그는 라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도 장난치고 있는 거예요. 마력량 하급? 저 여자가?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얘기죠.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속을 알 수 없는 여자라니까.”

“라빈에 대해 잘 아나 봐요?”

“당연히 알죠. 저 여자 때문에 죽을 뻔한 적도 있는걸요.”

살벌한 말과 다르게 자비토는 여유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빈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쩐지 복잡해 보였다.

한편 결과를 들은 라빈이 볼에 바람을 넣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다른 몇몇 사람들이 다가와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위로의 말을 듣고 있음에도 그녀의 시선은 아시테르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다시피 지나치고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도 하급이 나와버렸어요.”

“그렇네요.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아직 충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아시테르가 허탈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라빈의 일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아시테르의 얼굴이 재밌었는지 라빈이 웃음을 터트렸다.

“좀 더 ‘낭패다!’ 하는 얼굴로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지금도 충분히 낭패라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아하하하!! 사실 그래 보여요. 표정이 딱 그렇거든요. 최하급은 나도 처음 봐요!”

“그렇게 웃지 말아주세요. 저 지금 되게 심각하다고요.”

“에이 괜찮아요. 그깟 마력량이 뭐 중요한가요.”

라빈의 토끼 같은 두 눈이 아시테르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녀가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아시테르는 허허로운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반응들이 재밌는 건지 라빈은 아시테르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재잘거렸다.

“어디 가문 사람이에요?”

“몰라요 나도.”

“에? 그런 게 어딨어요? 자기 가문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지 말고 얘기해줘요.”

“음… 굳이 말하자면 어비스 가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시테르가 잠시 생각해보다 답했다.

아버지인 유미르는 본인이 이름 없는 가문의 아들이라며 따로 가문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어머니쪽인 프로메테 가문은 아시테르를 받아들일 수 없다 했으니 떠오를 만한 사람은 비체뿐이었다.

비체는 ‘어비스’라는 이름 아래 비체, 유미르, 아레나, 아시테르 모두 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했으니, 따지고 보면 어비스 자체가 가문의 이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어비스 가문? 들어본 적 없는 가문인데… 흐음…….”

반면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가문의 이름에 라빈이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아시테르에게 좀 더 가까이 밀착했다.

“아시테르라고 했죠? 난 어디 가문일지 궁금하지 않아요?”

“네 별로 안 궁금해요.”

“에…? 다른 사람들은 다 제 가문부터 궁금해하던데.”

“굳이 알아야 하나요?”

아시테르가 오히려 라빈 쪽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그러자 라빈은 신선한 충격에 두 눈을 끔뻑였다.

“맞아요…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죠……?”

“그렇죠?”

라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다른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외모만 보고 다가온다거나, 가문의 이름을 듣고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아시테르는 자신에게 전혀 관심조차 두질 않고 있었다.

뭐가 그리 생각이 많은지 그는 조금 전부터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진짜 신기한 사람이네…….”

처음엔 아시테르의 반반한 외모에 이끌려 다가갔었다.

마침 자신의 순서도 후순위로 밀린 덕분에 말도 걸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시테르의 외모보다 그의 묘한 분위기에 더 이끌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켜보면 아시테르는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해낼 길이 없었다.

거기다 그녀를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달랐으니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중급!”

그때 베네피트의 결과가 울려 퍼졌다.

베네피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쁨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카데미 시험관들은 빠르게 2차 시험을 준비했다.

“첫 번째가 여러분들의 마력량을 측정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마력의 컨트롤을 볼 것입니다.”

시험관이 반대편에 있는 3m 정도 크기의 마석을 가리켰다.

두께도 상당한 편인데다 넓이도 보통 성인이 두 팔을 넓게 벌려야 간신히 끝에 닿을 수 있는 정도였다.

시험관 한 명이 마석 앞으로 걸어갔다.

“간단하게 시범을 먼저 보이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험관이 손끝으로 마력을 흘려보냈다.

휘웅―!

파콱!!

시험관이 팔을 휘두르자 마력이 뻗어나가며 마석의 겉면에 커다란 상처를 내었다.

“자아. 모두 보셨죠? 이 마석은 일정 수준 이상의 컨트롤이 아니라면 흠집조차 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무리 많은 마력량이 있다고 해도…….”

설명하던 시험관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마석 앞에 있던 시험관이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모았다.

상당한 마력이 시험관의 손끝에 모였다.

그가 손을 뻗자 뭉쳐 있던 마력이 마석을 강하게 때렸다.

충격에 흔들림만 있을 뿐 마석 겉면엔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을 컨트롤 해내지 못한다면 이렇게 마석에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설명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시험관들은 처음과 같은 순서대로 시험자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시험자들은 하나둘씩 나와 자신 있는 공격 마법들을 펼쳤다.

그때 누군가 살며시 손을 들었다.

“응? 왜 그러죠?”

“저어… 저는 회복계 마법이라 마석에 흠집을 낼 자신이 없습니다…….”

“아, 후후, 제 설명이 부족했던 모양이군요.”

시험관이 웃으며 마석 쪽을 가리켰다.

“마석에 손을 대고 평소 마법을 사용하듯 마력을 컨트롤 해보세요. 그럼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겁니다.”

시험관의 설명에 자신을 회복계 마도사라 밝힌 청년이 마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반신반의하며 마석에 손을 가져간 뒤 회복 마법을 사용해보았다.

그러자 마석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오오――!”

“와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시험자들의 결과들과 한눈에 비교가 될 정도로 커다란 금이 마석에 그어졌기 때문이다.

“아…….”

자신이 해놓고도 믿을 수 없었는지 청년이 뒷걸음질 치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시험관이 그런 청년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아주 훌륭하군요. 잘하셨습니다.”

그의 칭찬에 청년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후로도 몇몇 시험자들이 마석에 공격 마법을 펼쳤다.

어떤 이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를 만들어내는 반면, 어떤 이들은 작은 흠집조차도 내지 못하고 고배(苦杯)를 마셔야 했다.

그렇게 지루한 시험을 이어갈 때, 마침내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는 인물이 마석 앞에 섰다.

“마력량 측정에서 상급을 받은 칸이다.”

“칸이라니… 어떤 마법을 보여줄까.”

“기대되는군.”

칸은 조용히 커다란 마석 앞에 섰다.

그는 한차례 호흡을 고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후우웅―!

그의 손아귀로 푸른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칸에게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쩌저적―!

이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마석이 한순간에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통과.”

이를 지켜보던 시험관이 말했다.

그는 내심 칸이 만들어낸 결과에 놀라고 있었다.

반면 몇몇 시험자들은 칸의 결과에 불만을 드러내었다.

“저게 어째서 통과입니까?”

“맞습니다. 마석을 얼어붙게 만든 것 아닙니까.”

“그럼 불 마법을 쓰는 사람은 불로 마석을 데우기만 해도 되는 겁니까?”

그들의 불만에 시험관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왜 통과인지 모르겠다면 직접 보여주도록 하지.”

시험관이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조수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다음 시험을 위해 마석을 치우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손을 대는 순간 마석은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 광경에 불만을 제기했던 시험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알겠나? 칸은 마석 자체를 모두 부숴버렸다. 이 정도의 결과를 낸 시험자가 통과하지 못한다면 누가 합격할 수 있다는 거지?”

시험관의 말에 시험자들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시험관은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다른 결과들에 있어서도 시험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마석 자체를 부숴 버리다니… 하여간 어마어마한 녀석이 들어왔구먼.”

시험관이 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엔 칸과 함께 있던 알렌시아가 마석 앞에 섰다.

그녀가 올라오자 아시테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시험장을 쳐다보았다.

“에에?”

그의 반응에 라빈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시테르는 알렌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리시아가 마석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영창을 외웠다.

그녀의 손이 마석을 가리키자 작은 번개가 마석을 내리쳤다.

쩌정!!

“전격계 마법……?”

다른 시험관들도 놀라서 이쪽을 쳐다보았다.

뿌연 먼지가 마석을 감싸 안았다.

알렌시아가 눈매를 좁히며 마석 쪽을 바라보았다.

마석의 상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버렸다.

남아 있는 하단은 전격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합격!”

시험관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력의 속성 변환을 하더라도 마석에 흠집을 겨우겨우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저 단단한 마석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니 그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 두 사람은 이미 2~3등급은 갈 수 있는 것 아냐?”

“그거보다 더 높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뭘 모르는 소리. 저 두 사람이 대단한 건 맞지만 아카데미에는 숨겨진 괴물들이 많다고. 그리 쉽진 않을걸.”

“하긴…….”

앞서 두 사람이 마석을 완전히 부숴놓은 탓에 마석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동안 자비토는 두 팔을 머리 뒤로 가져가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라빈에게서 멈췄다.

그는 아시테르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라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한 거야?”

“뭘?”

“마력량 말이야. 어떻게 하급이 나올 수 있었던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치미 떼지 마.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근데 애초에 마력량을 숨길 필요가 있나? 높게 받으면 높게 받을수록 좋은 거잖아?”

“헤에… 내가 그걸 너한테 얘기해줘야 할 필요가 있나?”

“뭐 그건 아니지만…….”

자비토의 시선이 이번엔 옆에 있는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는 심각한 얼굴로 마석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마력량 측정에서 유일하게 최하급을 받은 사람이라 자비토도 아시테르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요? 얘는 당신 따위가 함부로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자비토의 말을 들은 아시테르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좀 데려가시겠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