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6화 (36/424)

036화 아카데미 입학시험 (3)

자비토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런 식의 대화가 돌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너무해……!”

반면 라빈은 잔뜩 서운하다는 얼굴로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친해진 것인지 그녀는 서슴없이 아시테르의 볼을 꼬집었다.

“아흐아… 안 데려가실 거예요?”

“아니 그게…….”

자비토도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것은 아닌지라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아시테르가 볼을 당기는 라빈의 손을 내렸다.

그러자 그녀는 반대 손으로 아시테르의 볼을 잡아당겼다.

“하… 하하…….”

어안이 벙벙해진 자비토가 더는 말을 붙이지 않고 이만 등을 돌려버렸다.

그가 순순히 등을 돌리자 오히려 아시테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뭐야? 웬일로 순순히 돌아서 버리네.”

“아는 사람이에요?”

“물론! 내 정혼자인걸요!”

“에…? 정혼자요……?”

라빈은 세상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면 아시테르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이러면 저 사람이 오해하잖아요.”

“오해하라고 해요. 상관없어요.”

“아니 정혼자라면서요.”

“어차피 가문의 어른들이 맺어준 인연이라. 거기다 나는 쟤한테 이성적으로 관심 없어요.”

“어째서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온 사이라. 그냥 친구 같아요.”

라빈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게 무슨 말인지 확 와닿은 것은 아니지만 문득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세아츠리스는 잘 지내려나…….”

“네?”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말이라 라빈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다.

그녀가 아시테르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물으려 할 때 자비토의 결과가 나왔다.

“합격!”

마석엔 큼지막하게 구멍이 나 있었다.

자비토가 라빈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떻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흥.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라빈이 샐쭉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두 사람의 묘한 관계에 아시테르도 두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며 라빈이 웃어 보였다.

“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녀가 슬쩍 팔짱을 끼려 하자 아시테르가 팔을 슬쩍 내뺐다.

그러자 라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아시테르가 라빈에게 말했다.

“시험관님이 부르시는데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엔 시험관들이 서 있었다.

라빈도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갑자기 왜 나부터 부르는 거야?”

“시험자 라빈! 빨리 올라오세요.”

“네에―”

라빈이 마석 앞에 섰다.

그녀는 마석에 천천히 다가가 손을 올렸다.

새하얗고 작은 손가락이 마석에 닿았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그래!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혹시나 결과가 안 좋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여기저기서 응원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것만 보아도 그녀가 다른 시험자들에게 얼마나 주목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라빈은 한 번 찡긋 웃어 보이곤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거친 소리와 함께 마석의 겉면이 긁혀 나갔다.

이를 본 시험관들이 바짝 다가서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호오… 이거 인재가 한 명 더 있었군요.”

“그러게요. 저 정도로 세밀한 마력 컨트롤이라니.”

시험관들이 아낌없는 칭찬을 보낼 때 ‘통과’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험자들도 라빈이 만들어낸 결과에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일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통과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라빈은 재빨리 몸을 돌려 아시테르를 찾았다.

아시테르가 라빈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주었다.

“헤에?”

라빈이 눈웃음을 지으며 재빨리 아시테르의 곁으로 달려왔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시테르는 그녀의 움직임을 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발걸음이 너무도 가벼웠던 탓이다.

마치 깃털이 수면 위로 내려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땠어요? 대단했죠?”

“네.”

“에… 그게 다예요?”

“정말 대단했어요.”

아시테르가 라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유미르가 자주 해준 행동이어서인지 아시테르도 생각보단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아시테르가 라빈의 머리를 쓰다듬자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반면 라빈은 멍해진 얼굴로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의 볼이 살짝 발그레해진 것도 같다.

“다녀올게요.”

그는 천천히 걸어서 마석 앞으로 향했다.

마침 베네피트의 차례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불꽃 마법으로 마석의 중심부를 파괴해 내는 데 성공했다.

“크하!”

성공의 기쁨을 맘껏 표현한 베네피트가 한껏 웃어 보였다.

그는 마주 오고 있는 아시테르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디 한번 힘내보라고.”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였다.

아시테르가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베네피트는 조용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마침내 아시테르가 마석 앞에 섰다.

“뭐야 저 사람 아까 마력량 측정에서 최하급 나온 사람 아냐?”

“크하하하!! 마력량 최하급 따위로 뭘 하겠다고!”

“컨트롤 할 마력은 있는 건가?”

“괜한 일 같은데…….”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와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들은 라빈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지만 정작 아시테르는 그들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시테르가 마석 앞에 우두커니 섰다.

그는 마석을 앞에 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시험자 아시테르. 서둘러 시작해주십시오.”

“아, 네.”

아시테르가 움직이지 않자 또다시 시험자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필이면 그의 순서가 마지막인 바람에 시험자들의 시선이 모두 아시테르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알렌시아도 미간을 찌푸렸다.

“뭐 때문에 저러는 걸까?”

“글쎄… 이제 와서 겁을 집어먹기라도 한 건가?”

“아냐… 그렇진 않은 것 같아. 근데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낯이 익은데…….”

알렌시아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때 마침내 아시테르가 움직였다.

그는 라빈처럼 마석 가까이로 손을 가져갔다.

“뭐야 포기한 건가?”

“아까 걔 따라 하려는 것 아냐?”

“참나… 똑같이 한다고 자기도 될 줄 아나…….”

“크흐흐, 내버려 둬. 뭐라도 해보게.”

시험자들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아시테르가 마석에 손을 가져갔다.

이어 그의 마력이 팔을 타고 흘러갔다.

아주 미세한 마력이었기에 이를 눈치챈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이곳의 총책임자인 가히트였다.

“호오… 저놈 보게.”

그의 입꼬리가 말아 올려졌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시테르가 손을 뗐다.

마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였다.

이를 본 몇몇 시험자들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따로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마석에 손만 댄 것 같으니 그들 눈에는 아시테르의 행동이 마냥 광대짓처럼 보였던 것이다.

심지어 아시테르는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는 멋쩍은 웃음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실패했네… 생각보다 어렵구나.”

“뭐야!? 저 돌덩이에 흠집 좀 못 낼 수도 있지 이렇게까지 비웃을 건 없잖아?”

라빈이 입술을 샐쭉 내밀며 말했다.

그 목소리가 커서 아시테르에게도 선명히 들려왔다.

그는 라빈을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나름 자신을 생각해 해준 말 같았다.

시험관이 다가와 마석을 살폈다.

“역시나로군… 시험자 아시테르는 불합…….”

“통과다.”

시험관이 불합격을 외치려는 때 가히트가 먼저 다가와 말했다.

지금까지 꿈쩍도 않던 가히트가 움직이자 시험관들도 놀란 얼굴들이었다.

한편 불합격을 말하려던 시험관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째서 통과입니까? 마석에는 아무런 흠집도 나 있질 않습니다.”

“네 눈은 장식이냐? 제대로 봐라. 저 녀석이 손을 올려놨던 곳을 말이야.”

“예?”

가히트의 말에 시험관이 다시 마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오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흠집이라고 하기가 애매할 정도로 작은 구멍이었다.

“설마 이걸…….”

“그래. 저 골 때리는 놈이 해놓은 거다.”

“하… 하하… 우연 아닐까요? 너무 오래된 마석이라 이미 구멍이 뚫려 있었다던지…….”

“그렇게 생각하나? 그러면 마석 뒤를 직접 살펴봐라.”

가히트의 말에 시험관 두 명이 동시에 움직였다.

“어……?”

“어어……?”

마석 뒤편을 확인한 시험관과 다른 시험자들이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곳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나 있었던 까닭이다.

“하… 합격!”

구멍을 확인한 시험관이 크게 외쳤다.

가히트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재밌는 놈일세. 마력을 흘려보내 마석 뒤편을 부술 생각을 하다니… 테르세우스님이 추천한 녀석이라더니 과연 평범한 놈은 아니라는 건가.”

아시테르보다 그의 합격을 라빈이 더 좋아했다.

그녀를 보며 가히트가 피식 웃었다.

“호오, 저 아이는… 운이 좋은 녀석이로군. 기분이다.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무조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마.”

가히트가 근처 시험관에게서 명단을 뺏다시피 가져갔다.

그리곤 라빈과 아시테르, 베네피트의 이름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마지막 시험에서 이렇게 세 명이 한 팀이다.”

“네……?”

“불만 있나?”

“아, 아닙니다.”

가히트는 다시 명단을 넘겨주고 훌쩍 떠나버렸다.

다음 시험은 필기시험이었다.

마력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시험이었다.

시험을 다 치르자마자 어느새 라빈이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건 쉬웠다 그쵸?”

“아… 음… 으음…….”

“에? 설마 하나도 못 적은 건 아니죠……?”

“그게… 아하하하…….”

아시테르가 또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보아하니 제대로 적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라빈이 미소를 보였다.

“이제 곧 마지막 시험이에요.”

“또… 있어요?”

“사실 앞에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마지막 시험이 제일 중요하지.”

“그렇군요.”

라빈의 말에 아시테르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그러자 라빈이 그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보다 잘 부탁드릴게요!”

“네? 왜요……?”

“아직 명단 못 봤어요?”

“명단이요? 무슨 명단을 말하는 건지…….”

아시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1,2차 시험 내내 곁에 있었던 베네피트가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둘 다 반갑다. 이번에 같이 팀을 이루게 된 베네피트라고 한다.”

장발을 묶은 메마른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라빈이 아시테르의 손을 번쩍 들어 베네피트와 손을 맞잡게 했다.

“네네에―!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얼떨결에 아시테르도 베네피트에게 인사를 전했다.

베네피트는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시테르와 라빈을 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하필이면 마력량 최하급과 하급이 같은 팀이라니… 내 팔자도 조금은 꼬인 모양이네…….”

그의 푸념에 라빈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녀의 웃음에 베네피트가 움찔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당연하지. 하지만 걱정 마라. 마지막 시험은 팀을 이루는 시험이니까 어떤 미션이 나오든 내가 너희들을 아카데미로 데려가 주도록 하마.”

베네피트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이에 라빈이 웃어 보였다.

“오오 정말 듬직해요!”

“당연하지! 귀족인 나만 믿으라고.”

“귀족이셨구나……!”

“당연! 그러니까 마력량도 자그마치 중급 수준으로 나오는 것 아니겠나 아하하!”

베네피트가 가슴을 한껏 활짝 피며 웃었다.

이에 라빈이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