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37화 (37/424)

037화 마지막 시험 (1)

푸근한 인상의 시험관이 아시테르와 라빈, 베네피트를 향해 돌아섰다.

“여기는 팀장이 누구지?”

그의 물음에 아시테르와 라빈이 동시에 베네피트를 가리켰다.

놀랍게도 베네피트 또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데다 그동안의 성적도 자신이 제일 좋았으니 자연스레 팀장은 자신이 맡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한 탓이다.

“좋아. 팀장을 미리 정해온 모양이군.”

그는 큼지막한 상자를 앞으로 내밀었다.

상자 안에 무언가가 들어가 있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안에는 마지막 시험의 미션 내용이 들어가 있다. 보다시피 자네들이 무엇을 뽑느냐에 따라 마지막 시험의 미션도 달라질 거다.”

“마지막 미션을 이렇게 정하는 겁니까……?”

“응. 그래야 공평하잖아?”

“그치만 운이 없으면 엄청 힘든 미션에 걸리는 것 아닙니까?”

“뭐… 미션마다 난이도 차이는 있겠지. 거기다 본인이 사용하는 마법과 미션의 내용이 상극이라면 난이도는 더욱 높게 느껴질 테고.”

“그렇겠죠… 그러니까 이건 다시…….”

베네피트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이려는 때 시험관이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뭐지?”

“그야 당연히 마법기사가 되기 위함이지요.”

“그렇지? 마법기사에게는 수많은 임무들이 주어진다. 그럼 묻지. 우리 왕국에서, 그리고 상부에서 과연 마법기사 한 명 한 명의 사정까지 다 들어가며 임무를 줄 것 같나? 또 어려운 임무가 주어지면 그때마다 포기할 건가?”

“그, 그건…….”

“사정이 어떻든 주어진 임무를 모두 완수해내려 하는 것이 바로 마법기사로서의 자질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면 더 이상의 사설은 덧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시험관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베네피트가 무어라 더 말하려는 때 라빈이 그를 잡아당겼다.

“네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았어요. 어쨌거나 여기서 미션을 뽑으면 된다는 얘기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상자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한차례 손을 휘젓던 라빈이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붉은색 스크롤을 본 시험관이 피식 웃었다.

“축하한다. 이번 시험 최고의 난이도에 걸렸구나.”

시험관의 말에 베네피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반면 아시테르와 라빈의 두 눈은 어느새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머리를 질끈 부여잡던 베네피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팀장은 난데 대체 왜 네가 미션을 뽑은 거야?”

“누가 뽑는 게 뭐 중요한가요?”

“하아… 내가 뽑았으면 가장 쉬운 미션을 골라줬을 것 아니야.”

“에이… 이것저것 불만만 말하느라 뽑을 생각도 없어 보이던걸요. 어쨌거나 잘됐어요. 그쵸?”

“야 이게 어떻게 잘된 일이야……!”

베네피트가 발끈하며 라빈의 멱살을 잡았다.

이에 아시테르가 나서며 베네피트를 진정시켰다.

“진정하세요.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베네피트의 짜증에 라빈이 그의 손을 풀며 말했다.

“이보세요. 아까의 그 패기는 어디 갔어요? 우리를 아카데미로 데려가 준다면서요…! 설마 지금 우리가 이깟 미션 하나 클리어하지 못하고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는 거예요?”

“아…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만…….”

“그럼 뭐가 문제예요?”

라빈의 말에 베네피트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왠지 라빈에게 말려버린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아시테르의 말대로 이미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이미 뽑은 미션을 번복할 수도 없는 일.

“하아… 하는 수 없지. 아이고 내 팔자야… 하급과 최하급이 팀원인 것도 모자라서 미션은 하필 최고로 어려운 걸로 걸렸구나…….”

그의 자조 어린 말에 라빈이 몰래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 향했다.

“오빠는 별로 긴장되지 않나 봐요?”

“나? 나도 긴장되지.”

“에이… 별로 그런 얼굴이 아닌걸요?”

“그래? 어떤 얼굴인데?”

“약간 기대된다는 표정 같아요. 아니면 지금 설레는 건가……?”

“아,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아시테르가 웃으며 답했다.

그의 반응에 라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작 좋은 성적들을 받은 베네피트씨는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빠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재미없네요.”

“그래?”

“네. 최고 난이도를 받았으니 좀 더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거나… 으음… 아니면 막 완전 난처한 얼굴을 한다거나 뭐 그래야 하는 것 아니에요?”

“실패한다고 죽는 건 아닐 거 아니야?”

“뭐… 그렇죠? 어쨌거나 입학시험이니까 설사 조금 위험한 임무더라도 주변에 늘 시험관들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요. 상황이 위험해지면 언제든지 미션에 개입하겠죠.”

“그럼 됐지 뭐.”

아시테르의 답에 라빈이 묘한 표정을 보였다.

어쨌거나 세 사람은 시험관의 안내에 따라 시험의 문 앞으로 안내되었다.

“자아… 이제 너희들의 미션을 공개하겠다.”

시험관이 스크롤을 펼쳐 들었다.

그러자 스크롤 위로 형상이 떠올랐다.

“너희들이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나의 수정체가 나올 거다.”

“수정체요?”

“그래. 커다란 수정체인데, 너희들의 임무는 바로 이 수정체를 지키는 거다. 어때 생각보다 임무 내용은 간단하지?”

“그렇네요.”

“최고 난이도 임무가 총 두 개인데 그중 하나는 토벌이고 다른 하나는 수비거든. 너희들은 수비에 당첨된 거다. 난이도가 난이도인 만큼 훌륭하게 미션을 클리어 해낸다면 어느 정도의 이점이 돌아갈 거야.”

설명을 마친 시험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시험에 통과했을 때 얘기지만 말이야. 참고로 이 미션이 클리어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와아… 그 정도인가요?”

라빈이 놀란 눈을 하며 물었다.

반면 베네피트의 표정은 여전히 죽을 맛이었다.

그는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만큼 어려운 미션이니까 힘내보라고.”

시험관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문을 열어주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고 나니 그 안으로 좁은 길이 드러났다.

“자아―! 그럼 가볼까요!”

라빈이 당찬 걸음으로 앞장섰다.

아시테르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그 뒤를 따랐으며 마지막으로 베네피트가 안으로 들어섰다.

세 사람 모두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쿵!

문이 모두 닫혔을 때 시험관이 한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러면 된 겁니까?”

“훌륭하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겁니까……?”

“그야… 저 아이를 떨어트리기 위해서지.”

어둠 속에 있던 중년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시험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도 전 교관 출신이니 아시겠지만… 이 미션은 말 그대로 단 한 팀밖에 통과하지 못했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고 위험하기 때문에 중간에 사라진 미션입니다. 그런데 이 미션을 몰래 부활시키고 말았으니 이 일이 알려지면 저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게. 알아서 잘 조치를 취해 두었으니.”

“…좋습니다. 그럼 당신만 믿겠습니다.”

모든 할일을 마친 시험관이 이만 자리를 벗어났다.

닫혀진 문 쪽을 바라보며 중년의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후후, 잠시간의 자유는 끝입니다. 이제 다시 새장 속으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혼잣말을 중얼거린 사내가 곧 모습을 감추었다.

한편 문 안으로 들어선 아시테르와 라빈, 베네피트는 밝혀진 불을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그들의 눈에 커다란 수정체가 하나 들어왔다.

수정체를 본 베네피트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걸… 지키란 말이야?”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가까이 와보니 5미터는 되어 보일 정도로 커다란 크기였다.

넓이도 보통 성인 네 명 정도가 양팔을 넓게 벌려야 간신히 끌어안을 수 있는 정도였다.

베네피트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난이도가 높은지 알겠네… 목표가 이렇게 크면 부수기 쉽잖아.”

막상 수정체 가까이로 와 보니 엄청난 크기에 헛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최대한 지켜봐야죠!”

아시테르가 양팔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그의 기운찬 모습에 라빈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걱정 없는 두 사람을 보며 베네피트가 다시 한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좋겠다 너희들은 아무 생각 없어 보여서…….”

베네피트가 푸념을 늘어놓는 동안 아시테르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았더니 먼발치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들도 눈에 띄었다.

이어 바닥을 툭툭 친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이를 본 라빈이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왜 그렇게 혼자 웃어요? 무섭게…….”

“토양이 그리 단단하진 않네. 미션은 이 수정체를 지키는 거라고 했으니까, 결국 수정체를 파괴하려고 하는 적이 있다는 소리잖아?”

“그렇죠?”

“아직까지 시간이 있는 것 같으니… 그럼 빠르게 준비를 해볼까?”

“엥? 시간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아요?”

급속도로 친해진 아시테르와 라빈은 벌써 편하게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저도 모르게 라빈에게 말을 낮추고 있었고 라빈은 편안하게 아시테르를 오빠라 부르며 따르고 있었다.

라빈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 덕분인지 아니면, 그녀가 아시테르에게 살갑게 다가오는 덕분인지 아시테르도 이제는 라빈을 대하는 데 한결 편해져 있었다.

“여기 보면 시간이 적혀 있는데?”

아시테르가 수정체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선 마법 도구가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다.

24시간이라 적혀 있던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보니 24시간 후 미션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이를 가장 먼저 확인한 베네피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쨌든 조금은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거로구만.”

“아뇨 쉴 시간이 없어요.”

“뭐? 어째서?”

“어떤 적들이 나타날지 모르잖아요.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두어야죠.”

“하!? 지금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차라리 지금 푹 쉬어 두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너희처럼 마력량이 하급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중급쯤 되면 마력 회복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해줘야 해.”

베네피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말에 라빈이 혀를 빼꼼 내밀었다.

아시테르는 베네피트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러면 여기서 푹 쉬고 계세요. 저는 따로 다른 것들을 준비해 볼게요.”

“뭐? 너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앉아서 쉬지 그래? 어차피 별 도움도 안 될 텐데…….”

베네피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시테르는 저 할 것을 찾아 움직였다.

라빈이 웬일로 아시테르의 곁으로 안 가고 베네피트의 곁에 남아 있었다.

“너도 좀 쉬어라.”

“아니에요. 저는 휴식 같은 거 필요 없어요.”

“나 참…….”

“그보다 귀족이라고 하셨죠? 어디 가문인지 물어봐도 돼요?”

“나는 코빈느 지역에 있는 안데르아스 가문 사람이다. 들어는 봤겠지?”

베네피트의 물음에 라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며 베네피트가 조금은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귀족인 내가 책임지고 너희들을 아카데미에 데려가 주마. 그러니까 내 휴식을 더 이상 방해하진 마라. 너희가 뭘 하든 나도 신경 안 쓸 테니까.”

“후후, 알겠어요. 기대할게요.”

라빈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녀는 곧바로 아시테르를 찾았다.

“에엥……?”

아시테르를 본 라빈의 두 눈이 곧 동그래졌다.

“저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