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41화 (41/424)

041화 시험의 끝

오우거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린 라빈이 뼈를 거두었다.

그녀의 시선이 수정체를 향해 다가가는 오크들에게로 향했다.

근처에 있던 베네피트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으니 마력이 바닥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긴 했다.

수정체에 가까워지는 오크들을 보며 베네피트가 두 주먹으로 땅을 쳤다.

“제기랄!”

오우거까지 잡아냈건만 다른 오크들을 막지 못해 수정체가 파괴될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노력한 게 억울해서라도 죽기 살기로 막아야 한다.

베네피트가 근처에 있는 무기라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그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고생했어요, 형.”

아시테르가 검을 들고 오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움직임을 본 라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멋지네.”

라빈도 오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는 단숨에 도약해 오크들의 중앙에 내려앉았다.

휘릭―!

뼈를 한껏 들어 올린 그녀가 대지에 힘차게 박아버렸다.

그 순간 뼈에서 자줏빛 마력이 거세게 몰아쳤다.

“죽음의 요람.”

파바바밧!! 파밧!

푸슈슉!!

대지에서 솟구쳐오른 수많은 뼈들이 가시처럼 올라와 주변 오크들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퀘에에―!!!”

“취리에!!!”

오크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손가락 굵기의 뼈들이 오크들의 몸을 뚫는 끔찍한 광경에 베네피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저게 뭐야… 웨엑!!”

한쪽에 속을 게워내고 있는 베네피트와 다르게 아시테르는 그녀의 마법을 온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간의 흐르고 수정체 가까이로 다가갔던 오크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절명(絶命)하고 말았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오크들의 몸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핏물이 대지를 흠뻑 적셨다.

“끝.”

라빈이 마력을 거두자 대지를 뚫고 나왔던 뼈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뼈에 몸이 꿰뚫렸던 오크들이 한꺼번에 대지에 쓰러졌다.

라빈이 잡고 있던 뼈가 스르륵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아남은 오크는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크들의 시체로 가득한 이곳에서 라빈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아시테르가 있는 쪽을 쉽게 바라볼 수 없었다.

“너…….”

“무슨 말을 할지 알아요. 끔찍하죠 내 마법…….”

라빈이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자신의 마법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 아시테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몸속의 뼈를 꺼내 매개체로 사용하는 마법.

이것이 라빈 고유의 마법이었다.

그녀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이한 마법이기도 했다.

레프레시아 가문에서도 라빈의 고유 마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뼈를 꺼내는 것부터 다시 집어넣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그로테스크하지 않은 장면이 없기에 가문의 사람들은 라빈의 마법을 숨기려했다.

혹시나 안 좋은 소문이 돌아다닐 것을 우려한 것이다.

겁에 질려하는 사람들 때문에 라빈 자신도 굳이 마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반응들 때문인지 라빈은 아시테르와 얼굴 마주보기를 주저했다.

혹시나 이제는 그가 자신을 피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탓이다.

“그… 알아요 나도 내 마법이 끔찍한 것… 혹시나 날 피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요. 어차피 난 늘 외톨이였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 지냈던 사람들도 내 마법을 보곤…….”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가려던 라빈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그녀의 앞에 아시테르가 다가와 있던 탓이다.

그는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라빈의 손을 붙잡았다.

“아…….”

라빈의 시선이 손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을 꽉 붙잡은 아시테르가 한껏 흥분한 모습으로 말했다.

“굉장해!!!”

“에……?”

예상했던 반응이 전혀 아니었다.

그녀가 당황해하든 말든 아시테르가 말을 이었다.

“어떻게 그런 마법이 가능한 거야!? 뭐지!?? 자기 몸의 뼈를 이용한 마법이라니! 그보다 그런 멋진 검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배운 건가? 너도 나처럼 여러 번 죽을 뻔하면서 배운 거냐?”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아시테르를 보며 라빈이 순간 멍한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반응이었다.

그녀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뒤늦게 정신 차린 아시테르가 멋쩍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 미안 미안. 너무 내 할 말만 했지. 너무 신기하고 멋진 마법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오빠는 내 마법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요……? 무섭다거나 징그러워서 보기 싫다거나…….”

“응 전혀! 오히려 오크들 사이에서 춤을 추듯이 검을 휘두를 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보여준 그 마법까지… 정말 엄청 대단했다고 생각해.”

가식이나 거짓된 말이 아니었다.

그건 아시테르의 눈과 표정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정말로 흥분해 이런 말들을 하고 있었다.

이에 라빈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야, 바보 같아.”

“아니 바보 같다니!? 말이 너무 심하네…….”

“오빠 말고 나요.”

“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나 혼자만 멍청하게 걱정한 것 같아서요. 정작 오빠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라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입가와 다르게 그녀의 눈에선 투명한 이슬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 눈물이 흘러내리는진 그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아시테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아시테르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러자 라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반대예요.”

그녀가 눈물을 닦아내며 밝게 웃었다.

아시테르가 그런 라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쨌거나 정말 고마워. 덕분에 수정체도 지킬 수 있었어. 근데 그런 굉장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야?”

“저기 안 보여요?”

라빈이 베네피트 쪽을 가리키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자연스레 베네피트 쪽으로 향했다.

베네피트는 한쪽에서 계속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베네피트 형, 속은 괜찮아요?”

“으아… 말도 마…….”

“갑자기 왜 그런 거예요?”

“그야…….”

베네피트의 시선이 라빈에게로 향했다.

조금 전 광경 때문에 다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우웁……!”

그가 헛구역질을 시작하자 라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봐요. 숙녀를 보고 그렇게 헛구역질 해대는 건 굉장한 실례라구요.”

“아으… 놀라서 그래 놀라서. 그나저나 너… 왜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네가 진작에 나섰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개고생 안 해도 됐잖아…….”

“그냥요.”

“너 이 진짜……!”

베네피트가 인상을 쓰며 라빈을 바라보았다.

라빈은 혀를 빼꼼히 내밀며 그를 놀렸다.

“어쨌거나 다행이다. 수정체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어.”

“여기서 끝난다면 말이죠.”

“야 너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두두두두…….

베네피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먼 곳에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베네피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게 다 네 탓이야.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보란 듯이 적들이 달려오잖아.”

“이게 어떻게 아시테르 오빠 탓이에요? 나약한 당신 탓이지.”

“뭐야!?”

베네피트가 한마디 하기 전에 라빈이 몸을 돌렸다.

아시테르가 무기를 챙기며 움직이려 하자 그녀가 그를 말렸다.

“됐어요. 저 정도는 저 혼자서도 충분해요.”

“하지만…….”

“놀다 올게요.”

라빈은 제 할 말만 끝내고 훌쩍 떠나버렸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베네피트가 그 소리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야, 너.”

“네.”

“넌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거냐.”

“뭐가요?”

“저 여자애가 사용하는 마법 못 봤어? 너도 봤을 것 아냐?”

“봤죠.”

“근데도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냐고. 난 차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속까지 게워냈는데.”

베네피트의 말에 아시테르가 말없이 웃어 보였다.

물론 자신의 뼈를 사용한다는 점에선 아시테르도 놀람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가 살아온 곳은 어비스 던전이었다.

그곳은 이것보다 더한 장면도 숱하게 볼 수밖에 없는 곳.

유미르와 아레나는 아시테르에게 좋은 것들만 보여주려 애썼지만, 살아온 환경이 그러했던 터라 아시테르도 자연스레 눈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경험들 때문에 아시테르는 라빈의 마법을 보고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기겁하지 않았다.

아시테르가 베네피트의 곁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저건 라빈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잖아요. 그런 마법을 갖고 있다는 게 사실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거기다 라빈은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마법까지 사용하며 우릴 지켜주고 미션을 위해 저렇게 애써주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라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그녀의 마법을 두려워하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 것은.”

“쳇… 아무 생각 없는 놈인 줄 알았더니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나도 알고 있어. 나도 라빈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다만…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걸 어떡하냐…….”

베네피트가 괜히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시테르가 몸을 일으키며 바깥을 살피려는 때 벌써 라빈이 이곳으로 돌아왔다.

“벌써 왔어?”

“별거 없던데요?”

몬스터들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라빈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말없이 다가가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고생 많았어.”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나저나 아카데미 측도 너무하네요. 일반 입학 시험자가 이런 난이도의 시험을 어떻게 통과해요?”

라빈이 입술을 대빨 내밀며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런 라빈의 곁으로 베네피트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차마 라빈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아까는 미안했다. 널 보고 놀란 것도 맞지만… 저런 광경들도 처음 봐서…….”

“괜찮아요. 이해해요. 다들 그랬는걸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라빈의 목소리엔 어쩐지 쓸쓸함이 묻어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라빈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 향했을 땐, 그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 * *

척.

수정체가 멀리 보이는 곳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몬스터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입학 시험자들이 이 많은 몬스터들을 모두 죽였다고?”

사내의 시선이 수정체 가까이에 있는 세 명에게로 향했다.

그의 곁으로 다른 한 명이 다가왔다.

“네. 고작 세 명의 힘으로 수정체까지 완벽히 지켜냈습니다.”

“대체 누가 이 미션을 부활시킨 것인지 모르겠군.”

“자세한 것은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이번 미션에 남아 있던 몬스터들이 ‘모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네. 우리에 갇혀 있던 몬스터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행한 일이군.”

사내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간도 크구나. 왕국의 수많은 인사들이 주목하고 있는 이 아카데미에서 감히 그딴 일을 벌이다니……!”

“그나저나 대체 누구일까요? 그동안 입학시험에 입김을 불어넣은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손을 쓴 곳은 처음입니다.”

“뭐 뻔하지. 이렇게 아카데미 입학시험까지 직접적으로 손을 쓸 수 있는 곳은 군단장급이나 왕국의 5대 가문 정도 아니겠나.”

말을 마친 그가 수정체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여인도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몬스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투입이 되었다는 것은 미션의 난이도가 크게 올라갔다는 건데… 용케도 수정체를 지켜냈군.”

“네. 거기다 뒤늦게 달려온 저희들이 나설 일도 없었습니다.”

“너희들이 나설 일이 없었다고? 그만큼 완벽하게 미션을 수행해냈다는 말이냐?”

“예. 놀라울 정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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