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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42화 (42/424)

042화 전례 없는 입학 (1)

거듭된 전투로 지쳐버린 탓에 휴식을 취하는 아시테르와 라빈, 베네피트의 시선에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몬스터가 아닌 시험관 복장의 사람들을 보며 베네피트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와… 다행이다. 이번엔 몬스터가 아니구나.”

“혹시 몰라요 베네피트씨. 인간의 모습을 한 몬스터일지도.”

“너 그런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라. 이제 몬스터라면 지긋지긋하니까. 더 이상 남아 있는 마력도 없다고.”

베네피트가 하소연하듯이 말하자 라빈이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그녀의 시선이 옆에 있는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오빠는 괜찮아요?”

“나? 난 멀쩡해.”

“에… 말도 안 돼. 베네피트씨는 마력만 소모했지, 오빠는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서 싸웠잖아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오빠가 더 지쳤을 텐데…….”

“이 정도쯤이야.”

아시테르가 일부러 웃어 보이며 말했다.

라빈은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지 아시테르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죠?”

“당연하지. 게다가 마지막엔 네가 나서서 다 정리했잖아. 난 한 것도 없는걸.”

“에이, 오빠가 한 게 왜 없어요. 고블린들과 혼자 싸울 때는 완전 멋있었어요.”

이를 지켜보던 베네피트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볼멘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쟤만 팀원이냐? 나도 좀 신경 써줘.”

“싫어요.”

“하! 너 그러다 후회한다. 귀족인 내게 더 잘 보여야 할 텐데 지금 너 줄을 잘못 서고 있는 거라고.”

“줄이 왜 필요해요?”

“이것 참 순진한 친구네. 요즘 세상에 줄을 잘 서야지. 그래야 너도 나중에 편해질걸? 나한테 잘 보여 봐라. 그러면 나를 포함해 다른 귀족친구들까지 나서서 널 도와줄 수도 있다고. 그러면 아카데미 졸업은 물론 마법기사가 되는 것까지 아주 탄탄대로일 텐데?”

“필요 없어요. 애초에 마법기사도 별로 관심도 없고.”

라빈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바로 답했다.

그녀의 답에 베네피트가 인상을 잔뜩 구겼다.

“뭐!? 그럴 거면 왜 여기로 왔어?”

“가문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요.”

“그게 무슨 말이야?”

“됐어요.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당신한테 알려줘야 해요?”

“아니, 이…….”

베네피트가 무어라 말하려는 때 시험관 복장의 사람들이 눈앞까지 다다랐다.

가장 선두에 선 사내가 이쪽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이것 참 대단하군요. 저는 당연히 기진맥진해서 얘기도 제대로 못 나누고 있을 줄 알았는데… 멀리서부터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아직도 체력적인 여유가 남아 있나 봅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이 정도면 우리 죽으라고 내놓은 미션 맞죠?”

라빈이 톡 쏘는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내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자랑스러워하셔도 돼요. 여러분은 당당히 이번 미션에서 통과하셨거든요. 그것도 아주 훌륭한 성적으로 말이죠.”

“그건 당연한 얘기죠.”

“아하하 역시 레프레시아 가문의 사람답군요. 이번 미션에서의 활약은 들었습니다.”

사내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베네피트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말았다.

레프레시아 가문이라면 이곳 이스트 왕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힘 있는 가문이었다.

변방의 귀족인 자신이 함부로 비벼볼 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라빈이 레프레시아 가문 사람인 줄도 모르고, 자신은 지금까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온 격이었다.

“히끅!”

이를 깨달은 베네피트가 갑자기 딸꾹질을 시작했다.

라빈이 그런 베네피트를 보며 한껏 웃어주었다.

좀 전과 달리 이번엔 베네피트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사내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그는 아시테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번에 아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습니다.”

“예?”

“보유한 마력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저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아주 훌륭한 전투를 치르셨다고요.”

“아, 아뇨 저는…….”

“정말 대단합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행동입니다.”

사내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모이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데미안이라고 합니다. 본래 여러분은 저를 통해 미션을 부여받았어야 했는데… 중간에 착오가 생겼는지 다른 시험관이 여러분들에게 미션을 부여했더군요.”

“네?”

“거기다 여러분들이 오늘 해낸 미션은… 결코 신입생들이 해낼 수 있는 미션의 난이도가 아니었습니다. 5등급의 학생들도 클리어해내기 힘든 미션이죠. 그래서 고생한 여러분들에게 이 정도의 보상을 드리려고 합니다.”

데미안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들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바로 4등급 학생이라는 증표입니다.”

세 사람 모두 얼떨떨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갑자기 4등급의 증표를 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던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눈치 챈 데미안이 말을 이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은 우리 시험관들이 사죄의 마음에서 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여러분들이 그만큼 어려운 미션을 통과해냈으니, 이 증표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5등급 학생들도 해내기 어려운 미션을 아주 훌륭히 수행해내셨으니까요.”

“…….”

“거기다 들어보니 각자의 활약들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권한으로 여러분들을 4등급으로 승급시켜드리려고 합니다.”

“와아…….”

“이럴 수가!!”

라빈의 감탄사가 흘러나오고 베네피트가 뛸 듯이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아시테르만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살핀 데미안이 입을 열었다.

“아시테르 학생은 혹시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겁니까?”

“5등급을 지나쳐서 바로 4등급이 된다면… 5등급 때 배우는 것들은 배우지 못하는 건가요?”

“아하하!!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5등급 때 배우는 것들을 다시 배울 수도 있습니다. 복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보통 4등급 수준의 학생이라면 5등급 때 배우는 것들은 이미 깨우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죠. 저 역시도 여러분들은 이미 그것들을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훌륭한 수준들을 갖추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에 4등급으로 승급시켜 드리려는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모두 동의하시는 겁니까?”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베네피트와 아시테르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기 때문에 4등급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상황이었다.

라빈으로서도 아시테르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 모두 결과에 동의하며 그렇게 입학시험이 마무리되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보고를 듣고 데미안이 세 사람을 향해 말해주었다.

“축하합니다. 우리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4등급으로 입학하신 것은 여러분들이 처음일 겁니다.”

* * *

후웅.

허공에 떠오른 실오라기들이 한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다.

실오라기들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커다란 원을 만드는 듯 보였다.

“됐어요! 이제 조금만 더 집중하면 돼요!”

멀리서 라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시테르는 팔에 흘러나가는 마력의 양을 조절했다.

‘마력의 모든 부분들을 내가 제어할 수 있도록……!’

마력의 작은 부분도 허투루 흘러가지 않게 아시테르는 마력의 컨트롤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어느덧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런데 아시테르의 마력을 머금은 실오라기들이 원을 만들다 점차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실오라기의 선이 지그재그로 뻗어나가며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버렸다.

“또 실패로군 아시테르.”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시험관 바네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실오라기들이 흐트러져버리자 아시테르도 마력을 거두었다.

그는 곧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집중하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결과는 이번에도 실패였다.

벌써 몇 번째 도전인지 몰랐다.

바네티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아시테르에게 다가와 말했다.

“역시 천민은 별수 없는 건가. 그거 아나? 3년 전 자네가 입학했을 때 수많은 교관들이 자네와 베네피트, 라빈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는 것. 노블레스 3인방과 함께 제일 기대를 많이 받은 것이 자네들이라고.”

“…….”

“그런데 지금 이게 뭔가. 자네는 3년째 4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 이쯤 되니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하고 있네. 3년 전 그날 데미안님이 개인의 권한으로 자네를 4등급으로 올린 것은 최대의 실수라고. 뿐만 아니라 자네도 그날 엄청나게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의 싸늘한 말에도 아시테르는 묵묵히 실오라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음을 인지한 바네티가 혀를 찼다.

“쯧쯧. 자네 때문에 이게 뭔가. 벌써 두 명의 학생이나 자네에게 물들어 제자리에 머물러 있네. 그런 두 사람을 위해서도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나? 자네가 아카데미에 없다면 저 두 사람도 좀 더 위로 향할 수 있을지 몰라.”

“죄송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바네티 교관님. 아시테르 오빠가 아카데미를 나간다면 저도 나갈 거예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라빈과 에스파가 나서서 말했다.

그러자 곁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비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떨거지 3인방은 오늘도 조용하질 않구나.”

“아시테르랑 라빈은 대체 어떻게 그 극악의 난이도를 통과한 거지?”

“보나마나 뻔하지. 베네피트 혼자 다 고생하고 나머지 저 둘은 가만히 앉아서 결과나 받아먹었겠지.”

“그래도 라빈은 레프레시아 가문의 사람이잖아?”

“레프레시아 가문에서도 내놓은 자식이라고 하잖아. 얼굴 예쁘고 귀여우면 뭐해. 그게 다라고 하는 걸. 거기다 성격도 조금 이상하다던데…….”

학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그래도 라빈의 경우 레프레시아 가문의 힘이 신경 쓰여 대놓고 비아냥거리진 못했다.

참다못한 에스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너희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했나?”

“뭐야 저 사람은 또.”

“몰라? 유명하잖아. 아카데미 만년 꼴찌. 그동안 제대로 승급도 못 했다던데 이번에 아주 운 좋게 승급했다나 봐. 그래서 4등급에 있다던데?”

“아는 형한테 들었는데 저 사람 마력의 속성 변환도 못 하는 쓰레기래. 평민 출신의 한계인거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수군거렸다.

더욱 문제는 바네티 교관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말리긴커녕 오히려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었다.

바네티 교관의 목적이 바로 아시테르의 아카데미 퇴교였다.

‘네놈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비릿한 미소를 지은 바네티가 이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네.”

그가 수업을 마치자 학생들 모두 자리를 떠나버렸다.

아시테르는 그 자리에 남아 실오라기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라빈과 에스파는 말없이 그의 곁에 남아주었다.

문득 지루해진 라빈이 에스파 쪽을 바라보았다.

“아시테르 오빠와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라구요?”

“아시테르와는 정말 우연히 만났어. 그때 날 괴롭히던 무리가 있었는데 아시테르가 나서서 날 도와줬거든.”

“그래요? 역시 아시테르 오빠네.”

라빈이 피식 웃으며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까지도 자리에 앉아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이상해.”

“뭐가요?”

“아시테르 말이야. 과거에 만났을 때는 속성 변환도 할 줄 알았었단 말이야.”

“에? 속성 변환을요?”

“그래. 그것도 화염계 마도사였어.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온 뒤로 단 한 번도 마력의 속성 변환을 하지 않는 걸까?”

에스파가 의문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러자 라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에요? 입학시험 때도 화염 마법은 베네피트가 다 사용했는데… 아시테르 오빠는 검을 들고 몬스터들과 싸웠는걸요.”

“정말? 아시테르가 검을 들고 싸웠다고?”

“몰랐어요? 저 오빠 검술 되게 잘해요.”

라빈의 말에 이번엔 에스파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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