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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43화 (43/424)

043화 전례 없는 입학 (2)

라빈과 에스파가 자신을 두고 심도(?)있는 얘기를 주고받는 줄도 모르고 아시테르의 시선은 줄곧 실오라기에 머물러 있었다.

마력의 컨트롤.

이 분야에 있어서 아시테르는 늘 자신 있어 했다.

마력이 희박한 어비스 던전에서 자란 덕분인지 그는 최소한의 마나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아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구하고 익히게 된 마법이 바로 신체 강화마법이었다.

신체 강화마법은 화염을 만드는 것보다, 쏘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마력을 요구했다.

너무 강하기만 한 마력은 신체에 커다란 부담만 느끼게 만들었기에 좀 더 정밀한 마력 컨트롤을 요구했다.

그래도 자연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신체 강화마법에 사용되는 마력을 높이려면 그만큼 아시테르의 신체도 단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나름대로 마력 컨트롤엔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자신의 신체에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 시험이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굉장히 어렵게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난 후 3년째 4등급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매번 달라지는 마력 컨트롤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지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에스파가 4등급으로 승급해 아시테르와 합류했고 다른 동기들은 꾸준히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있었다.

라빈도 몇 번씩이나 승급 기회가 있었으나 그녀는 아시테르를 따라 4등급에 머무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3명이 4등급에 오래 머물게 되면서 이른바 ‘떨거지 3인방’이라 조롱당하고 있었다.

라빈이 아시테르 곁으로 다가와 위로해주었다.

“괜찮아요. 그깟 마력 컨트롤쯤 조금 못할 수도 있지.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잘하게 될 거예요. 차라리 잘 된 것 아니에요? 마력 컨트롤에 관해 이렇게 오래 연구하다보면 혹시 모르잖아요. 다른 누구보다 뛰어난 이해도를 갖게 될지.”

“맞아. 너무 자책하지마 아시테르.”

에스파도 다가와 아시테르를 위로했다.

아시테르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곧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 한참 고민했더니 너무 배가 고파…….”

“좋아요!”

“그래 가자! 뭐든지 배부터 든든히 불리고 하는 거랬어.”

두 사람의 찬성에 아시테르가 금방 흥얼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 아카데미에 와서 가장 행복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식당이었다.

어비스 던전과 달리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뿐 아니라 식당의 밥은 상상 이상으로 맛까지 있었다.

“그거 알아요? 아시테르 오빠는 먹을 때가 진짜 제일 행복해 보여요.”

“당연하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

“여기 식당을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오빠밖에 없을걸요?”

라빈이 피식 웃으며 자신의 음식을 아시테르에게 덜어주었다.

이에 질세라 에스파도 아시테르에게 맛있는 음식을 양보했다.

“둘 다 뭐 하는 거야?”

“그냥. 더 많이 먹고 힘냈으면 싶어서.”

“아아. 그런 의미라면 사양 않고 받을게.”

눈앞에 놓아진 음식들을 맛있게 먹는 아시테르를 보며 라빈이 눈웃음을 지었다.

복스럽게 먹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신기해요.”

“뭐가?”

“보통 사람들이 오빠들 같은 상황에 놓이면 기가 죽거나 움츠러들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두 사람은 그런 게 전혀 없잖아요?”

“뭐 그야…….”

“그게…….”

아시테르와 에스파가 서로를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라빈이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셋을 가리켜 뭐라고 부르고 있는지는 둘 다 알고 있죠?”

“당연하지. 떨거지 3인방이라고 부르잖아?”

“잘 알고 있네요. 그런데도 정말 아무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날 뭐라고 부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내 할 일만 잘하면 돼.”

“오오, 역시 오빠의 그런 마인드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난.”

라빈이 또다시 고기를 아시테르에게 퍼주며 말했다.

에스파도 질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맞아.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든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우리지.”

“그렇죠, 그렇죠.”

라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에스파에게도 고기를 나눠주었다.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정말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거야? 이러지 말고 먼저 올라가는 것은 어때? 두 사람 다 3등급에 올라갈 실력은 이미 되잖아.”

“아니요. 거절할게요. 저는 이미 오빠랑 같이 올라가기로 결정했어요. 괜히 먼저 올라갔다가 오빠랑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이랑 팀을 이루는 것도 싫고요.”

“나도 거절할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이렇게 널 만났는데 또 떨어질 순 없지. 거기다 나는 라빈에게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서 솔직히 이곳에 머물러 있어도 크게 상관없어.”

에스파의 말에 라빈이 괜히 혀를 빼꼼 내밀었다.

그녀는 에스파가 아시테르의 친구라는 말을 듣자마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솔직히 놀랐어요. 그동안 그런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게.”

“나도 놀랐어. 너처럼 대단한 아이가 아시테르의 곁에 붙어 있을 줄은…….”

“그게 다 아시테르 오빠의 복 아니겠어요?”

라빈이 일부러 웃으며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았다.

아시테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말이야. 너희 둘은 대체 왜 내 곁에 있겠다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오빠를 무시해도 저만큼은 오빠를 응원하려구요.”

“나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날 처음으로 인정해준 사람이 너였어. 거기다 내 진가를 알아봐 준 사람도 너였고. 그러니까 나는 너와 함께 나아가고 싶다.”

에스파가 사뭇 진지해진 어투로 말했다.

두 사람의 말에 아시테르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아, 이거 내가 점점 부담 되는걸…….”

“아니 부담 갖지 마요.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맞아. 나도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나는 네가 마법기사가 된다면 함께 마법기사단에 들어가고 싶고, 다른 것들을 하겠다 말한다면 그것도 같이 따라갈까 생각 중이야.”

“그러니까 그게 부담되는 거라고…….”

아시테르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평소대로 뒤뜰에나 가자.”

“좋아요!”

“좋지!”

아시테르가 말하는 뒤뜰은 아카데미 뒤편에 위치한 산 쪽이었다.

본래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마법동에서 얼마든지 자율 수련이 가능했으나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의 텃세가 유독 심했던 데다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시테르와 함께 산 중턱으로 이동한 라빈이 가장 먼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럼 이번엔 내가 먼저 하는 거예요?”

“좋아.”

“그래.”

두 사람의 대답에 라빈이 손가락에서 뼛조각을 하나 뽑았다.

그녀는 멀리 있는 나뭇가지를 향해 뼛조각을 쏘아 맞혀버렸다.

그 모습을 본 에스파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진짜 언제 봐도 그 마법은 적응이 되질 않는다니까.”

“훗. 어때요?”

“하지만 나도 질 수 없지. 미래의 아시테르 오른팔은 나다.”

에스파가 피식 웃어 보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활과 화살이 등장했다.

슝―!

팡!

짧고 간결한 움직임이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은 라빈의 뼛조각보다 더 멀리 날아가 뒤편에 있는 나뭇잎을 깔끔하게 관통하고 지나갔다.

“아으!”

그것을 확인한 라빈이 아쉽다는 얼굴로 주먹을 확 내리쳤다.

뒤이어 아시테르가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의 손가락 끝에 엄지손가락만 한 마력탄이 형성되었다.

“자아. 이번엔 내 차례!”

아시테르가 마법탄을 쐈다.

마법탄은 나무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며 라빈보다는 먼, 에스파보다는 가까운 나뭇잎을 맞혔다.

“이번에도 내 승리다!”

에스파가 한껏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라빈이 볼에 바람을 집어넣으며 땅을 툭툭 찼다.

“와… 어떻게 한 번을 못 이기지…….”

“내가 말했잖아.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거라고.”

“쳇, 좋아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해 봐요.”

“그래. 난 이미 준비가 되었어.”

에스파가 마력활의 시위를 당기며 말했다.

허공에 마력이 뭉치며 곧 화살이 형성되었다.

에스파의 눈빛이 진지해지자 라빈도 입가에 머금던 미소를 지웠다.

그녀는 에스파에게서 멀리 떨어지며 전신에 마력을 두르기 시작했다.

“후웁…….”

뚜두둑―!

손에서 뼈를 꺼낸 라빈이 곧바로 몸을 회전했다.

그녀를 향해 날아온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나무에 박혔다.

라빈이 팔에 든 뼈를 휘둘렀다.

팡! 파방!

빠르게 날아오던 마법 화살들이 뼈에 막히며 소멸되어버렸다.

그러자 보란 듯이 더 많은 화살들이 라빈을 향해 날아왔다.

라빈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화살들을 모두 피해내거나 막아내었다.

잠깐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화살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라빈은 웃음기 하나 없이 날아오는 화살들에 집중했다.

에스파도 라빈에게 단 한 번이라도 유효타를 먹이고 싶어 더욱더 빠르게 화살을 쏘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을 빛냈다.

그동안 에스파도 그렇고 라빈도 그렇고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어내었다.

에스파의 경우 화살을 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고, 그 횟수도 상당히 늘어났다.

과거 오십 발만 쏴도 지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면, 지금은 백 발이 넘는 마력 화살을 쏘고도 끄떡없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속사(速射) 수준도 높아져서 백발을 쏘는 데 과거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이면 충분했다.

라빈도 성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마법으로 다루는 뼈는 3년 전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단단해졌다.

아마 마력으로 뼈의 경도를 높인 듯 보였다.

거기다 움직임도 아시테르가 도와주면서 훨씬 더 부드럽고 정교해졌다.

무엇보다 더욱 무서워진 점은 라빈에게도 장거리 마법이 생겼다는 부분이었다.

슈슉! 슉!

라빈이 기다란 뼈를 휘두르자 뼈에서 작은 조각들이 쏘아져 나갔다.

“으아아―!”

놀란 에스파가 뼛조각들을 피하며 소리쳤다.

라빈은 봐줄 생각이 없었는지 연신 뼛조각을 날렸다.

“잠깐 잠깐!!”

다급해진 에스파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손을 들어 올렸다.

볼썽사나운 그의 모습에 아시테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위치를 잡은 에스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어디 한번 다 피해보시라구요!”

“피하긴 뭘 피해!? 아주 제대로 보여주겠어.”

에스파가 라빈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그의 손에 마력이 뭉치며 화살이 형성되었는데 이번엔 전과 다르게 두 개의 화살이 형성되었다.

“오오오!!”

아시테르가 커다래진 눈으로 에스파 쪽을 쳐다보았다.

두 개의 화살이 에스파의 손에 위치한 것을 본 라빈도 눈매를 좁혔다.

슈슉!

그녀가 쏘아낸 뼛조각들이 빠른 속도로 에스파를 노렸다.

그러자 한쪽 눈을 감은 에스파가 뼛조각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두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나가고 곧바로 하나의 화살이 연달아 쏘아져 나갔다.

에스파의 손을 떠나간 화살들은 허공에 날아오는 뼛조각들을 정확히 맞혀버렸다.

“말도 안 돼!”

순식간에 세 발의 화살을 쏜 것도 모자라 뼛조각까지 다 맞혀버리는 에스파를 보며 라빈이 기함을 토했다.

곁에서 놀라기는 아시테르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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