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화 윈더 교관과의 만남
“후우…….”
모든 뼛조각을 맞춰버린 에스파가 한시름 놓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움직임을 멈춘 라빈이 한달음에 가까이로 다가왔다.
“방금 그건 어떻게 한 거예요?”
“그냥… 조금이라도 더 빨리 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쏘려고 하다 보니…….”
“세상에! 그럼 나중에는 동시에 더 많은 화살을 쏠 수도 있겠네요?”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아. 다만 위력적인 측면이나… 정확성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꽤 대단한걸요?”
라빈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에스파를 칭찬했다.
아시테르도 라빈과 같은 마음이었다.
“진짜 완전 대단해! 여기에 화살의 속도가 빨라지고 위력까지 세진다면… 정말 어마무시한 마법이 될 것 같아.”
“아시테르 너까지… 그만해 쑥스럽잖아.”
에스파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라빈이 뼈를 들어 올리며 아시테르의 가까이로 가져갔다.
“나도 보여줄게 있어요.”
“그게 뭔데?”
“이번에 새로 만들어낸 마법이에요. 오빠를 보호해주기 위해 생각해내 봤어요.”
파밧!!
라빈이 뼈에 마력을 불어넣자 뼈가 손아귀처럼 뻗어나가며 아시테르를 감싸 안았다.
“뭐… 뭐야 이게……?”
“뼈로 아군을 보호해주는 마법이에요.”
“그… 라빈…? 이건 보호해 주기보다는…….”
아시테르가 안쪽으로 돋아나 있는 뼛조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날카롭게 돋아난 뼛조각들이 금방이라도 아시테르를 찌를 기세였다.
“어라?”
라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뼈를 거두었다.
그녀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후, 처음부터 다 잘할 순 없지. 그래도 이런 마법을 생각해낸 게 기특하네.”
아시테르가 그런 라빈을 위로해주며 말했다.
그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이고. 이곳에 있다고 해서 찾아와 봤더니…….”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자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돌렸다.
아시테르와 라빈이 인상을 찌푸리는 때 에스파가 먼저 그를 알아보았다.
“윈더 교관님!”
이곳으로 찾아온 이는 바로 에스파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윈더 교관이었다.
그는 밝게 웃으며 에스파에게 손인사를 건넸다.
에스파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 에스파! 어떠냐? 정들었던 5등급 건물을 떠나 4등급으로 오니까 살 만하냐?”
“예. 솔직히 공기가 다르네요, 교관님.”
“뭐어!? 녀석…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윈더가 에스파 뒤편의 아시테르와 라빈을 바라보았다.
“호오… 소문의 그 친구가 혹시 여자였냐? 짜식, 너도 남자였구나!”
“아뇨… 아니에요 교관님. 제가 기다린 아시테르라는 친구는 저기…….”
에스파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시테르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라빈이 아닌 아시테르에게로 향하자 윈더가 머쓱함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미안하다. 나는 여자 쪽인 줄 알았지. 그래 자네가 바로 아시테르로군!”
윈더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인사에 아시테르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교관님. 에스파에게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 녀석이 내 얘기를 했다고? 혹시 된통 욕이나 한 것 아냐?”
그는 호탕한 웃음소리로 에스파의 등을 툭툭 쳤다.
라빈이 그런 윈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와아… 엄청나게 강해.”
“뭐?”
“지금 우리 담당교관님보다 훨씬 더 강해 보여요.”
“호오… 지금 너희들의 교관이 누군데?”
“바네티 교관님이요.”
“아아 바네티로군! 그녀석 잘 지내고 있으려나. 우리들은 각자의 구역에서 벗어날 일이 없으니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어서 말이다.”
윈더의 반응에 라빈이 더 흥미롭다는 얼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살포시 윈더 쪽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바네티 교관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잘 알지. 예전엔 내 밑에서 일했던 녀석이니까.”
“오오……!”
라빈이 입모양을 동그랗게 만들며 격한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더 듣고 싶어 하는 눈치이자, 에스파가 잠깐 끼어들었다.
“윈더 교관님은 과거 마법기사단의 부단장까지 지내신 인물이야. 대단하신 분이라고.”
“어쩐지!! 마법기사단의 부단장이라면 진짜 대단한 거잖아요!?”
“으하하! 대단하긴 뭘. 누구나 노력하면 다 도달할 수 있는 위치야. 너희들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에이. 노력만으로 어떻게 부단장이 될 수 있어요?”
에스파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윈더가 피식 웃었다.
“내 말을 못 믿겠나 보구나. 뭐 그건 나중에 차차 알아 가면 될 테고. 그보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다만, 이곳으로 오다 보니 나도 보게 되었다. 이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거냐?”
“네?”
“아아…….”
에스파와 라빈이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결국 라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희는 마법동이 아닌 이곳에서 마법 수련을 하고 있어요.”
“호오… 그렇구나. 그런데 그쪽은 정말 특이한 마법을 사용하던데.”
“보셨나요? 이거 공짜로 보여주는 마법이 아닌데… 좋은 구경 하셨으니 돈이라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 어디 보자…….”
윈더가 품속을 뒤지며 돈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라빈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와아!! 이럴 줄 알았으면 5등급부터 시작할걸! 지금 만난 바네티 교관님보다 교관님이 더 재밌어서 잘 통할 것 같아요.”
“흐흐, 내가 좀 재밌는 인물이긴 하지. 어차피 너희가 5등급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날 만났을지는 미지수지만. 5등급 건물에 교관들만 몇 명인데. 거기다 바네티 교관도 알고 보면 훌륭한 인물이다. 분명 너희가 배울 점이 있을 거야.”
“에… 그 사람은 그저 돈만 밝히고 또 읍…….”
에스파가 라빈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아하하… 네 그렇죠.”
세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아시테르는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표정을 살핀 윈더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보아하니 고민이 있는 모양이구나.”
“네? 아 네…….”
“너희들에 대한 소문은 나도 들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세 사람, 엄청 유명하더구나.”
“소문이라하면…….”
“너희 모두 오랫동안 4등급에 머물고 있다면서?”
윈더의 질문에 라빈과 에스파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곧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라빈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아시테르 오빠 혼자 마력 컨트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진짜 이상하단 말이죠.”
“뭐가 말이냐?”
“입학시험 때부터 지금까지 아시테르 오빠의 마력 컨트롤을 지켜봤는데 분명 얕은 수준이 아니었어요. 그 정도 수준이라면 분명 통과하고도 남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력 컨트롤 시험 때만 되면 개판날판이란 말이죠.”
라빈이 단어의 여과 없이 대놓고 말해버렸다.
아시테르가 일부러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라빈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서야 말실수를 깨달은 라빈이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 그렇다고 아시테르 오빠가 한심하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갑자기 그런 쉬운 걸 못하니까 조금 지켜보기 답답하다고 해야 하나… 에스파 오빠도 곧잘 해내는 걸…….”
라빈이 손가락을 배배 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후후, 장난이야. 그나저나 하아… 나도 모르겠다.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아시테르의 고민에 윈더가 그의 가까이로 성큼 다가갔다.
“잠깐 살펴봐도 되겠니?”
“네?”
“너의 몸에 마력이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그걸 파악해 본다면 네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 네 알겠습니다.”
윈더가 손을 성큼 내밀어 아시테르의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맥을 짚듯이 두 손가락을 아시테르의 손목에 얹었다.
이어 윈더의 마력이 천천히 흘러나오며 아시테르의 몸을 감싸 안았다.
윈더의 마력이 아시테르를 감싸자 지켜보던 라빈과 에스파가 괜히 마른침을 삼켰다.
시간이 흐를수록 윈더의 표정이 점차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윈더의 마력이 서서히 가라앉고 마침내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 대체 몸에 무슨 짓을 한 건가?”
“예……?”
“몸 안에 마력의 흐름이… 지나치게 이상해. 윤곽조차 안 잡힐 정도로 몸 안의 마력이 특이하게 흐르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언가가 마력의 흐름을 크게 방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구만. 마치 몸속에 또 다른 마력이 잠들어 있는 느낌이야.”
윈더가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몸속에 자리 잡은 영기 때문에 마력이 다른 길로 흘러가는 것을 말하는 듯했다.
어쨌거나 윈더가 난처한 기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에스파의 친구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 했는데… 이거 별 도움이 못 될 것 같아 미안하구만… 명색이 교관인데 자네 같은 몸은 정말 처음이야… 파악이 제대로 되질 않으니 마력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조언을 주긴 어려울 것 같다.”
아시테르가 고개를 저었다.
윈더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시테르 스스로도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거기다 테르세우스가 끼워준 마력 제어 반지까지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괴상한 몸 상태일 것이 뻔했다.
이러한 것들을 윈더에게 다 밝히지 못해 오히려 아시테르가 미안할 따름이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후우… 그래도 내겐 그동안의 경험이 있으니, 다른 쪽으로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괜찮다면 자네가 어려워하는 마력 컨트롤이 무엇인지 내게 보여줄 수 있겠나?”
“아, 그럼 잠시만요.”
아시테르가 주변의 풀들을 가져왔다.
가끔 마력 컨트롤 연습에 쓰이는 풀들이었다.
그리곤 곧바로 마력을 사용하며 풀들을 움직이려 했다.
마력을 전해 받은 풀들이 살랑거리며 움직였다.
천천히 곡선을 그리던 풀들이 곧 각기 방향으로 고개를 꺾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던 윈더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문제일까요?”
곁에 있던 에스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빈도 궁금했는지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윈더는 아시테르 쪽을 바라보며 오히려 웃고 있었다.
“정말 놀라울 정도의 마력 컨트롤이로군.”
“예?”
“솔직히 지켜보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어.”
“그게 무슨 말씀인지…….”
“지금 자네의 몸 상태는 혼돈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상태로 마력조차 제대로 쥐어 짜내질 못할 거야. 그런데도 자네는 마력을 곧잘 사용함은 물론 정밀하게 컨트롤까지 하고 있어. 그야말로 엄청난 거지…….”
윈더가 진심으로 감탄해 마지않으며 말했다.
그가 아시테르를 칭찬하자 라빈과 에스파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괜히 뿌듯해했다.
잠시 고민하던 윈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도 자네의 몸 상태를 살펴보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수준의 마력 컨트롤 정도로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자네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 지금, 조금 전에 보여준 그 마법 컨트롤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라고 생각하네. 내 조언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한번 들어보겠나?”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시테르가 정중한 태도로 부탁했다.
이에 윈더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네. 마력은 물과 같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