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화 3등급의 지박령 (2)
면벽동은 아카데미 내에서 죄를 지은 학생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커다란 산 하나가 면벽동 전체를 이룰 만큼 넓은 면적을 자랑했으며, 아카데미에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이 처벌을 받을 때 면벽동의 동굴에 보내지게 되었다.
이는 한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해 동료들을 다치게 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마법서를 탐낸 나머지 도둑질을 하는 등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이 스스로 참회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혼자만의 마법 수련을 위해 스스로 면벽동에 갇힐 것을 자청하기도 했다.
면벽동 입구에 도착한 아시테르 일행을 보며 그곳을 지키고 있던 교관이 눈을 떴다.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거냐?”
“누구를 좀 찾아왔습니다.”
“면회증은 가지고 있고?”
“잘못을 저지르고 보내진 학생이 아니라 면회증은 없어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아시테르의 답에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경계심 가득했던 그의 눈빛이 한층 사그라들었다.
“어디로 가고 싶은데?”
“C동의 12―1번입니다.”
“응? 무슨 말이냐. C동 12―1번은 비어 있는 곳이다만.”
“네? 그럴 리 없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겠습니까?”
아시테르의 요청에 교관이 귀찮음 가득한 얼굴로 명부를 꺼내 들었다.
C동이라 적혀 있는 명부를 들춰 올리던 교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정말 있었잖아? 가만, C동 12―1… ‘데미리우스’라는 학생이 있는 곳이구나.”
“오! 그 이름이었던 것 같아요. 3등급 학생이 맞지 않습니까?”
“그래. 10년이 넘게 3등급에 머물고 있군.”
“와아… 3등급의 지박령이라고 불릴 만하네요.”
“뭐, 3등급부터는 승급이 개인의 선택에 맡겨지는 자유니까. 흐음… 그나저나 이 친구가 과연 면회를 승낙할까 의문인데. 보니까 대부분 면회를 거절했다고 써져 있거든. 심지어 본인 가문 사람조차…….”
“그래도 한번 물어봐 주실 수 있을까요?”
아시테르가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교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교관이 살짝 시선을 피하려 하자 이번엔 라빈이 그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그러자 교관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마무리로 에스파의 차례였다.
에스파가 최대한의 미소를 보이며 교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간 교관의 얼굴에 짜증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왜 저만…….”
에스파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툭 떨궜다.
결국 세 사람의 부탁에 못 이긴 교관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커험… 좋다. 그럼 한번 전해보도록 하마.”
교관은 곧장 면벽동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교관이 돌아왔다.
그는 아시테르 일행을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구나.”
“아… 그런가요.”
“에… 아쉬워라.”
“휴, 다행이다.”
아시테르와 라빈이 실망을 금치 못할 때 에스파 혼자만 가슴을 쓸어내렸다.
문제는 속마음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을 밖으로 말해버리고 만 것이다.
놀란 에스파가 라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다행이다라고 했어요. 그것도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다.행.이.다. 에스파 오빠 혹시 겁먹었던 거예요?”
“아니? 그럴 리가. 나는 너희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겁나지 않아.”
“피… 거짓말은. 그 덜덜 떨리는 손부터 어떻게 해봐요.”
라빈이 에스파의 손을 가리키며 웃음을 터트렸다.
에스파가 황급히 손을 등허리로 감췄다.
아시테르는 여전히 면벽동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뚱히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시테르를 보며 라빈과 에스파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아시테르랑 있으면서 점점 한숨이 느는 듯 했다.
“아무래도 또 그럴 것 같죠?”
“쟤도 고집이 은근 세다니까… 오크 심줄보다 질겨.”
“에이, 그건 오크가 기분 나빠하겠다.”
“뭐라고? 반대 아니고?”
라빈과 에스파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시테르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절로 휘둥그레졌다.
“어어? 이렇게 깔끔하게 포기하는 거예요?”
“말도 안 돼. 그냥 돌아가려고?”
“그럼 별다른 방법이 있어?”
아시테르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에 라빈과 에스파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시테르가 이렇게 깔끔하게 포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면벽동을 내려오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너희들 들었어?”
“무슨 소리요?”
“2등급으로 올라가는 승급전 말이야.”
“네.”
“그거 네 명이 팀을 이루어야 한대.”
아시테르의 말에 라빈과 에스파가 움직임을 우뚝 멈췄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셋.
한 명이 모자랐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에스파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우리랑 팀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게요. 우리는 4등급 때부터 소문이 자자해서 다들 피해 가기 바쁜데.”
“아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이러다 승급전 자체를 도전 못 해보는 것 아냐?”
“뭐 한 명쯤은 우리랑 같이 팀을 이뤄주지 않을까요?”
아시테르와 라빈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에스파가 어쩐지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다 그가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내일부터 사람을 모집해보는 것은 어때?”
“좋아요!”
“그래야지!”
해맑게 대답하는 두 사람을 보며 에스파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두 명에 반해 에스파 혼자서만 불안해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곧 적중해버리고 말았다.
한 달을 넘게 돌아다녀 봤지만 3등급 학생 중 그 누구도 아시테르 일행과 팀을 이루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이미 팀을 이루었거나 아직 승급전에 도전할 마음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아시테르와 라빈, 에스파는 따로 모여 비상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이게 다 에스파가 소심한 탓이야.”
“맞아요. 에스파 오빠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했더라면…….”
아시테르와 라빈의 시선이 에스파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에스파가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미안해… 이게 다 내 탓… 이라고 할 줄 알았냐!?”
목소리를 크게 키운 에스파가 두 눈을 부릅뜨며 아시테르와 에스파를 쳐다보았다.
에스파의 시선에 두 사람이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돌렸다.
“이게 어떻게 내 탓이야!? 한 녀석은 매일같이 대결 신청이나 해서 다 져버리는 바람에 3등급 최약체 소리나 듣고 있고! 다른 한 녀석은 자기 마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다며 똑같이 아시테르의 방법을 따라 하고 있는데! 지금 이게 내 탓이라고 할 상황이야!?”
에스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아시테르와 라빈이 넙죽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에스파님.”
“저도 잘못했습니다, 에스파 오빠님.”
에스파가 씩씩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라빈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뭔데. 해봐.”
“그러는 에스파 오빠도 대결 때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잖아요?”
“당연하지!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뿐인데. 그걸 벌써부터 대놓고 보이고 다니면 나중에 다른 녀석들이 파훼법을 생각해서 올 것 아니야. 그러니 내 마법은 아껴둬야 해.”
“에에… 뭐가 이리 당당하담.”
“우우―! 나쁘다 에스파아!”
아시테르가 일부러 라빈의 뒤에 숨어서 야유했다.
의기양양해진 라빈이 에스파의 앞에서 가슴을 당당히 펴며 고개를 한껏 치켜들었다.
그러자 에스파가 슬쩍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를 본 라빈이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
“어디 한 번 해보자는 겁니까아!”
아시테르도 함께 마력을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폭력 반대!”
파방!!
아시테르가 있는 곳으로 곧장 마력의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을 곧바로 피해낸 아시테르가 우스꽝스런 자세로 에스파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대지에 돋아난 뼈들이 에스파가 있는 곳을 노렸다.
파밧!
전보다 훨씬 더 능숙한 움직임으로 뼈들을 피해낸 에스파가 빠르게 화살을 날렸다.
“그 사이에 더 빨라졌잖아 저 녀석…….”
에스파의 속사 속도를 본 아시테르가 새삼 놀라서 말했다.
라빈도 아시테르처럼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손아귀의 뼈를 휘둘러 에스파의 화살을 모두 막아내었다.
“위력도 그 사이에 더 세졌네요?”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라빈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빛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파밧!
슈콰아아!!
라빈의 뼈가 대지에 꽂히자 여기저기서 솟아오른 뼈들이 사방에서 에스파를 덮쳤다.
에스파가 빠르게 다리를 움직이며 뼈들의 사이를 통과했다.
그러면서도 피해내기 힘든 뼈들은 화살로 맞춰 방향을 바꿔버렸다.
“후웁…….”
뜨거운 숨을 내뱉은 라빈이 뼈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그러자 에스파와 아시테르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야야, 그렇게 진심으로 하면…….”
“라빈 흥분을 가라앉혀!”
콰가각!!!
빠르게 거리를 좁힌 라빈이 양손의 뼈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뼈대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아나며 에스파를 위협했다.
에스파의 화살들을 피하던 아시테르도 이제는 사방으로 뻗쳐오는 라빈의 뼈를 피하는데 바빴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라빈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웃고 있었다.
“야단났네…….”
라빈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법을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마법이 기괴한 탓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번씩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폭주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엔 꽤 오랜만에 폭주하네.”
아시테르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몸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는 곧 에스파를 향해 소리쳤다.
“에스파! 계속해서 라빈을 향해 화살을 날려!”
“알았어!”
아시테르의 말에 에스파가 어떻게든 자세를 고쳐 잡으며 화살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라빈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통에 제대로 겨냥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여간 진짜 괴물 같은 녀석이라니까.”
이렇게 라빈을 마주하고 있으면, 다가오는 공포에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폭주할 때의 라빈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치 이쪽이 진짜 라빈의 모습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줄곧 스산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공격을 쏟아낼 때마다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정말 성가신 팀원이라니까……!”
에스파가 여기저기 짓쳐오는 뼈들을 피해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몸의 밸런스가 갖춰지자마자 그는 빠르게 화살을 쐈다.
파바방!!
마력 화살이 라빈의 바로 앞에서 폭발했다.
라빈의 앞에 나타난 뼈방패가 화살을 모두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뒤쪽이었다.
어느새 뒤를 점한 아시테르가 라빈을 향해 마력탄을 쏘았다.
그때 그녀의 등에서 길쭉한 뼈가 튀어나왔다.
“헙!”
헛바람을 집어삼킨 아시테르가 황급히 몸을 뒤로 내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었다.
식은땀까지 흘린 그의 앞에 라빈이 섰다.
그녀는 곧 눈웃음을 보이며 혀를 빼꼼 내밀었다.
“어때요, 솔직히 방금 건 놀랐죠?”
“그럼 이런 공격을 받고 어떻게 안 놀라냐?”
“호오, 그럼 성공이에요!”
라빈이 팔을 들어 올리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라빈을 보며 아시테르와 에스파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야… 너 폭주한 것 아니었어?”
“응? 내가 왜? 나는 이제 내 마법을 사랑하기로 했어요.”
“하아……?”
“게다가 폭주했을 때의 모습도 원래 내 모습인걸. 근데 어땠어요? 조금은 무서웠어요?”
“엄청…….”
“잠시만. 나 혹시 실례했나 확인 좀…….”
에스파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답했고 아시테르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옷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