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화 데미리우스의 마법
데미리우스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넘쳐흐르는 마력이 몸 전체를 감싸도 이전과 같은 불안함은 없었다.
게다가 죽을 날만 기다렸던 이전과 다르게 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이가 바로 아시테르였다.
데미리우스가 그를 향해 두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아시테르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말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을지도 몰라요.”
“아뇨, 제가 딱히 크게 한 일은…….”
데미리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아시테르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아시테르 덕분에 몸속의 독까지 함께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더욱 강력한 마력을 갖게 되었다.
“당신 덕분이에요.”
“맞아요. 우리 아시테르 오빠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여기서 혼자 죽을 뻔했다구요. 그러면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잠자코 있던 라빈이 끼어들며 말했다.
에스파도 라빈의 말에 동의했다.
데미리우스가 미소를 보이며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원하는 걸 이루어드릴게요. 이 은혜를 갚고 싶어요.”
“그런 건 됐어요. 저는 이제부터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돼요.”
“네……?”
아시테르의 답에 데미리우스가 멍한 표정을 보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데미리우스가 아시테르의 손을 잡았다.
“정말… 저한테 원하는 게 없어요?”
“네. 아…! 하나 있어요.”
“그게 뭐예요?”
역시나 하며 데미리우스가 아시테르를 올려다보았다.
라빈과 에스파는 당연히 아시테르가 그에게 함께 팀을 이루어줄 것을 부탁하려는 줄 알았다.
그것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데미리우스를 천천히 일으켜 세운 아시테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말이었다.
“저랑 대결해주세요!”
“네에……!?”
놀란 것은 데미리우스만이 아니었다.
라빈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고 에스파가 허허로운 미소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에유… 오빠 그게 아니잖아요.”
“내가 저런 친구를 믿고 나의 인생을 거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데미리우스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몸의 변화를 누구보다 느끼고 있는 데미리우스였다.
그러다 보니 한번 자신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좋아요.”
“역시!!”
데미리우스의 답에 아시테르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곧바로 데미리우스와 거리를 벌렸다.
“야 아시테르! 지금이 대결을 할 때야!? 그것보다 더 급한 게 있잖아!?”
보다 못한 에스파가 아시테르를 향해 외쳤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이미 앞으로 벌어질 대결에 집중하느라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시 한번 소리치려는 에스파를 라빈이 막았다.
이에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 너도 말려야지. 어차피 아시테르가 질 게 뻔한데.”
“아니요. 에스파 오빠 잘 봐봐요. 아시테르 오빠의 저 표정.”
“응?”
라빈의 말에 에스파가 아시테르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러고보니 아시테르의 표정이 이전에 보던 것과 사뭇 달랐다.
늘 웃음기 가득한 아시테르의 얼굴에 긴장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예요. 아시테르 오빠도 진지하게 임할 생각인가 봐요.”
“왜지?”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리며 데미리우스 쪽을 살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특별할 것 없어 보였다.
마주 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시테르였다.
“봐주지 않고 전력을 다해주세요.”
“정말 그래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잠깐 불안한 눈빛을 보이던 데미리우스가 이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눈빛을 달리한 그가 다시 아시테르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최선을 다해야겠네요. 당신에게 저의 쓸모를 증명해 보이려면.”
“에?”
“지금 그 테스트를 하려는 것 아닌가요?”
아시테르의 반응에 데미리우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당황한 낯빛으로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닌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최선을 다해서 제 능력을 보여드릴 거예요.”
“좋아요!”
데미리우스가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자줏빛 마력이 두 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치는 마력이었다.
라빈은 물론 에스파도 놀라 데미리우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할게요!”
힘껏 외친 데미리우스가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보랏빛 액체가 아시테르를 노렸다.
아시테르는 그것을 막지 않고 몸을 움직여 피했다.
촤락!
날카로운 소리가 아시테르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아시테르가 고개를 돌려 뒤쪽을 확인했다.
그의 시선에 잡초가 들어왔다.
“와아…….”
독액에 닿은 잡초는 곧 시꺼멓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킨 아시테르가 다시 데미리우스 쪽을 바라보았다.
맞으면 치명상을 면치 못할 무서운 마법이었다.
데미리우스는 쉬지 않고 여러 독방울을 쏘아대었다.
아시테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독방울들을 피했다.
그의 움직임은 한 마리의 짐승처럼 날렵했다.
이어 손가락 끝에 마력을 모은 아시테르가 곧바로 마력탄을 발사했다.
마력탄은 빠른 속도로 데미리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촤아악―
데미리우스의 발밑에서 올라온 보랏빛 액체가 아시테르의 마력탄을 막아내었다.
“워후…….”
놀란 아시테르가 두 눈을 깜빡였다.
데미리우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양팔에서 보랏빛 연무(煙霧)가 뿜어져 나왔다.
“야 라빈… 저건 좀 위험한 것 아냐?”
“저 사람… 강한 것 같은데요……?”
라빈이 에스파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도 처음이라 에스파도 불안한 시선을 보였다.
“얼마나 강해 보이는데?”
“제가 전력으로 부딪혀도 힘들 것 같아요…….”
“뭐…!? 라빈 네가……?”
에스파가 입을 떡하니 벌리며 다물 줄을 몰랐다.
라빈이 친절하게 그녀의 손으로 에스파의 입을 닫아주었다.
“입 다물어요. 독 들어가요.”
“아니 그런 상대를 아시테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에스파 오빠. 그동안 아시테르 오빠가 저렇게 격렬하게 움직인 적이 있던가요?”
“어? 아니… 그러고보니 그렇네. 아시테르가 그동안 대결을 하면서 저렇게 몸을 움직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쵸? 거기다 저 마법. 다른 사람들과 대결할 때는 결코 사용하지 않던 마법이에요.”
라빈이 아시테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시테르는 마력을 발끝에 집중시키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층 진지해진 그의 시선이 데미리우스의 마법을 쫓았다.
촤락! 촤라락!!
아시테르가 지나가는 곳으로 독방울이 터졌다.
계속해서 피해 다닐 수만은 없었기에 아시테르도 반격을 가하기 위해 데미리우스와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
그러자 데미리우스가 대지를 향해 손아귀를 펼쳤다.
“독지대.”
발밑으로 퍼진 자줏빛 마력이 순식간에 늪지를 형성했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대지를 박찼다.
“체크메이트에요.”
이 순간을 노린 것인지 데미리우스가 양쪽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늪지대를 형성하던 마력이 한데 뭉치며 아시테르를 향해 쏘아져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허공에 연무를 형성하고 있던 마력들도 물결치며 아시테르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아……!”
양쪽에서 가해오는 공격에 아시테르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공중에 몸이 떠 있어서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때 순간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슈웅―!
아시테르의 발끝에 다시 마력이 뭉쳤다.
마력으로 작은 벽을 형성시킨 아시테르가 솟구쳐 오르는 독과 충돌시켰다.
“말도 안 돼……!”
마력끼리 부딪히며 일어나는 반탄력으로 아시테르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자연스럽게 다른 공격까지 피해낸 아시테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다 따끔한 통증들이 몸에 전해져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뭐야……!?”
아시테르가 뒤늦게 자신의 몸을 살폈다.
완벽히 피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빨갛게 부어오른 몸을 보며 그가 허탈한 표정을 보였다.
이제보니 옷도 여기저기 찢겨 나가 핏물이 번지고 있었다.
그동안 대결에 집중하느라 전혀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그마아안―!!”
아시테르의 상태를 눈치챈 라빈이 재빠르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라빈이 난입하자마자 데미리우스가 마력을 거둬들였다.
아시테르가 라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난 더 할 수 있는데!”
“아뇨. 오빠의 패배예요.”
“쳇…….”
아시테르도 더는 고집 부리지 않았다.
사실 좀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라빈의 목소리가 워낙 낮게 깔려 있어 그만두기로 했다.
“음… 그러고보니…….”
“3등급에서 제대로 된 첫 패배죠?”
“눈치챘어?”
“그동안 마력으로만 다른 학생들과 대결해왔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마력의 운용만이 아닌 마법으로 싸웠는데도 졌구요.”
“쩝… 아쉽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데미리우스한테 닿을 수 없을 것 같네.”
“맞아요. 그러니까 쉬고 계세요.”
“이번엔 네가 해보게?”
“네. 이번엔 제 차례예요.”
라빈이 팔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웬일로 이런 일에 의지를 보이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저 사람이 아마 현 3등급 최강이 아닐까 싶네요.”
“내가 모든 3등급 학생들과 대결해봤잖아?”
“그렇죠?”
“장담하건대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거야.”
아시테르의 말에 라빈이 순순히 수긍했다.
데미리우스는 마력을 다루는 솜씨부터 다양한 마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순발력까지, 상당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때 에스파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냐? 원래 고인물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데미리우스는 초조해하며 아시테르를 살피고 있었다.
결국 그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기, 몸 상태는 괜찮으신가요?”
“아아, 아무 문제없어요! 이 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니에요.”
“그래도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저는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쳐도 살아남는 놈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보다 혹시 이 녀석과도 대결을 해주실 수 있겠어요?”
아시테르가 라빈을 가리키며 말했다.
데미리우스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아요. 아직 마력의 여유가 있거든요.”
“오 좋아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저는 라빈이라고 해요.”
라빈이 슬쩍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데미리우스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데미리우스입니다.”
“저는 아시테르 오빠처럼 만만하지 않을 거예요.”
“네?”
“저 오빠처럼 무르지 않을 거라구요.”
라빈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데미리우스도 라빈과 대결을 펼치기 위해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때 라빈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말했다.
“그리고 미리 사과드릴게요.”
“뭘요?”
“제 마법이 미관상 좀 그렇거든요. 그래도 이해해주세요.”
“저도 딱히 보기에 좋은 마법은 아닌걸요. 괜찮아요.”
“그럼 실례.”
두두둑―!
라빈이 허리춤으로 나오는 기다랗고 튼튼한 뼈를 손으로 뽑아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스파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말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니까… 근데 저거 진짜 뼈는 아니겠지?”
“전에 들은 적이 있어.”
“뭐라고?”
“진짜 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