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52화 (52/424)

052화 특별 의뢰 (1)

“너희들 마법기사 아카데미 학생들이지?”

“네. 그렇습니다.”

섬광의 마법기사단 단원이 다가와 묻자 아시테르가 답해주었다.

그는 아시테르와 다른 일행들을 살폈다.

“등급은?”

“3등급입니다.”

“3등급이라… 애매하네…….”

사내가 묘한 표정을 보이며 턱을 매만졌다.

하지만 이내 고민을 끝낸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섬광 기사단의 미하엘이라고 한다. 너희들에게 특별 의뢰를 제안하고 싶은데.”

“특별 의뢰요?”

“혹시 특별 의뢰에 대해 모르고 있나?”

아시테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라빈이 황급히 아시테르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아니요! 잘 알고 있어요. 마법기사단원 분들이 아카데미의 허가 없이 긴급한 경우에 줄 수 있는 의뢰 아닌가요?”

“그래 맞아. 잘 알고 있구나. 지금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너희들에게 특별 의뢰를 부탁하고 싶다. 아마 랭크는 못해도 B+랭크. 어쩌면 A랭크 수준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사내의 말에 일행들 모두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동안 3등급 학생들이 볼 수 있는 게시판에서 접한 제일 높은 랭크의 난이도가 B랭크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두 개 정도만 올라오기 때문에 B랭크 의뢰를 받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할게요! 하겠습니다!”

“네, 맞아요! 의뢰가 무엇이든 해내겠습니다!”

에스파와 라빈이 황급히 손을 들며 외쳤다.

B+랭크 이상의 의뢰라면 부족한 점수를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승급전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이 상황에서 지금 같은 제안은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다른 것들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데미리우스도 이미 두 사람과 생각이 같은 듯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시테르였다.

이 팀의 실질적인 리더는 아시테르였기 때문에 라빈과 에스파, 데미리우스가 동시에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아시테르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돕겠습니다.”

“오오, 정말 고맙다!”

미하엘이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 한쪽에 위치한 마을을 가리켰다.

“나는 지금 이 마을로 가고 있어.”

“이 마을에는 왜요?”

“마을의 귀족에게서 도움 요청을 받았거든.”

“또 마수가 나타나서 마을에 피해를 입히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난폭한 마수들에게 마을이 위협 받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라빈과 에스파가 짐작하며 말했다.

그러나 미하엘이 고개를 저었다.

“마수 때문은 아니야. 아무튼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일단은 이동하면서 얘기를 하자.”

미하엘이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아시테르 일행도 미하엘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상태였다.

“뭐야,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해?”

라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미하엘이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너희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함부로 개별 행동에 나서진 마라.”

“네. 알겠습니다.”

“이곳으로 추가 인원도 올 테니 우리는 상황만 먼저 파악하고 있으면 돼.”

미하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마을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어 더욱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아시테르가 마을 중앙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인기척이…….”

“좋아. 이대로 다가가 본다!”

미하엘이 선두에 서고 나머지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마을의 중앙부로 다가갈 때까지도 마주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군데군데 시체들이 보였다.

몇몇 시체는 부패가 심해 형체를 못 알아 볼 지경이었다.

“윽… 여기 사람 사는 곳은 맞아요?”

“그러게… 정말 여기 있는 귀족이 도움을 요청했다구요?”

“그래. 틀림없어.”

“아무리 변방에 있는 마을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 상태인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데미리우스가 주변에 보이는 시체들을 좀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자연스레 미하엘이 그를 저지했다.

“개인행동 금지. 조금 전에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면서도 데미리우스의 시선은 시체들 쪽으로 향해 있었다.

마을 중앙부에 다다르자 커다란 나무 아래 누군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를 본 미하엘이 팔을 들어 올렸다.

멈추라는 수신호였다.

앳된 모습의 소년이 딱딱하게 얼어붙은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년의 바로 앞엔 나란히 손을 모은 여인이 두 눈을 감은 채로 누워있었다.

눈매를 좁히며 그곳을 바라보던 라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은 것 같은데……?”

그러자 에스파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뒤편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소년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싸늘하게 식은 그의 시선이 곧바로 미하엘을 찾았다.

하는 수 없이 미하엘이 앞으로 걸어 나가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일행들도 미하엘을 따라 감추고 있던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데미리우스만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했다.

“당신들도 나를 잡아가기 위해 온 사람들인가요?”

고개를 돌린 소년이 미하엘과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듣기에 오싹할 정도로 메마른 음성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그때 나무 위편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레 미하엘의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세상에…….”

위편을 확인한 에스파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뱉었다.

미하엘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중년의 남성이 미하엘을 발견했다.

“마, 마법기사단! 왜 이제야 온 거야!?”

“혹시 와트만님이십니까?”

“그래! 내가 바로 와트만이다! 그렇게 우두커니 있지 말고 빨리 우릴 구하고 저놈 새끼를 잡아!! 미천한 천민 주제에 감히 겁도 없이 귀족을 건드려!? 여기서 내려가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잔뜩 흥분한 와트만이 미하엘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와트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무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살려줘요… 제발…….”

그때 다시 한 번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트만의 곁에 묶여 있던 소녀의 목소리였다.

일전에 들려왔던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저 소녀인 듯했다.

소년의 시선이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와트만이 발끈했다.

“너…! 너 이놈 새끼 내 딸에게 조금이라도 손대기만 해봐! 당장 죽여버릴 거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와트만은 지치지도 않는지 연신 소리쳤다.

그러나 소년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그렇게나 딸의 목숨이 중요해요?”

“뭐!? 그럼 당연하지!! 너희 같은 것들 100명을 데려와도 내 딸 목숨의 발가락 끝에도 미치지 못할 거다!”

바락바락 소리치는 와트만을 조용히 지켜보던 소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인간의 목숨은 누구나 소중해요. 당신의 딸만 소중한 게 아니라구요.”

“시끄럽다! 귀족인 우리들의 목숨이 천민인 너희들의 목숨보다 훨씬 더 고귀한 것은 당연한 거다!”

“그럼 어디 당신이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는 딸이 죽는 걸 눈앞에서 지켜보시겠어요?”

소년의 손끝에 마력이 맺히기 시작했다.

“멈춰라!”

이를 본 미하엘이 빠르게 마법을 펼쳤다.

쏘아져 나간 작은 섬광이 소년의 팔을 노렸다.

그러나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순식간에 섬광을 먹어 치워 버렸다.

소년의 시선이 미하엘에게로 향했다.

미하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멈추고 순순히 펜레레 가문의 사람들을 풀어줘.”

“싫다면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엔 없다.”

미하엘의 두 손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년은 이렇다 할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당신들이 저를 막는 게 더 빠를까요. 아니면 내가 이 사람들을 죽이는 게 더 빠를까요?”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미하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미하엘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조금 전 자신의 공격도 손쉽게 막아낸 것으로 보아, 아무리 빠르게 공격 마법을 날려도 자신보다 소년이 더 빠를 것은 분명했다.

그때 와트만이 한 번 더 소리쳤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저 새끼 처리 안 해!? 그놈들까지 이곳으로 오면…….”

“죄송합니다만 와트만님. 지금은…….”

미하엘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섬뜩한 눈빛으로 미하엘과 아시테르 일행을 바라보았다.

“호오… 그 사이에 손님들이 왔었군요.”

늙수그레한 음성의 노인이 음산한 미소를 보였다.

미하엘의 시선이 노인에게 머물렀다.

“역시 조력자가 있었나… 저 어린 소년이 혼자서 일을 벌였다기엔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니…….”

미하엘을 마주보던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소년에게로 다가간 그가 입을 열었다.

“반키라스님. 아직도 결정하지 못한 겁니까?”

“…….”

반키라스라고 불린 소년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소녀에게로 향했다.

소녀는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반키라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 소녀가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저 소녀가 아니었다면… 귀족 와트만의 이기심만 아니었다면 당신의 어머니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노인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자 입가에 피어난 검버섯이 함께 늘어났다.

노인의 말이 자극제가 되었는지 반키라스의 시선이 와트만에게로 향했다.

“당신도 똑같이 느껴봐야 해. 눈앞에서 가족을 잃는 슬픔을.”

그의 두 눈동자에 점차 살기가 어렸다.

그러자 노인이 곧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보였다.

반키라스가 움직이기 전에 미하엘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을 거다. 더 이상의 살인은 용납하지 않아.”

“살인?”

“시치미 떼지 마. 네가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였다는 보고를 들었다.”

“…누가 그러던가요? 펜레레 가문에서 그러던가요?”

“그래. 지금도 충분히 죄가 무겁지만… 더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지 마라.”

미하엘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는 여차하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제가 죽이지 않았다면요?”

“이제 와서 발뺌할 생각 하지 마. 그럼 펜레레 가문에서 우리들에게 거짓 보고를 했단 말이냐?”

“그럴 수도 있잖아요?”

“아니. 그보다 우리로선 네가 더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범죄자의 아들이라며? 너.”

미하엘의 말에 반키라스가 움찔했다.

그의 시선이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죠?”

“피는 못 속인다는 얘기지.”

반키라스의 전신에 형체화된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력은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반키라스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를 본 노인이 곧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다.

“오오… 이것이 바로…….”

그러나 이내 노인이 반키라스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잿빛 지팡이를 바닥에 짚으며 미하엘과 마주 섰다.

“반키라스님의 실력을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섬광의 마법기사단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지? 보고에는 없던 인물인데.”

“글쎄… 내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네가 내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것 아니겠나?”

노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때리자 바닥에서 해골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미하엘이 인상을 굳혔다.

“이거 낭패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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