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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59화 (59/424)

059화 형제의 대화

“그치만 전에 아시테르 오빠가 자기는 어비스 가문의 사람이라고 했어요.”

“맞아. 나도 일전에 들어본 적이 있어.”

라빈의 말에 에스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테오도라도 순순히 동의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여기까지. 형제의 대화를 위해 아시테르는 잠시 내가 빌려 갈게.”

테오도라가 아시테르를 이끌고 한쪽으로 빠졌다.

“아시테르.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뭐가?”

“내가 너를 몰라? 네 실력이라면 아까 그 노인도 그렇고 반키라스도 그렇고 충분히 제압할 수 있잖아?”

“아…….”

“거기다 3등급 내에서 평가가 아주 꽝이던데. 할아버지도 그 소식을 듣고 아닌척해도 상심이 크신 모양이야. 이제 이유를 말해봐. 어째서 네 실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패배하고 다닌 거야? 너라면 1등급까지 순식간에 올라설 수 있잖아?”

테오도라는 정말 궁금했는지 쉬지도 않고 물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조용히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테오도라의 시선에 반지가 들어왔다.

“이것 때문에.”

“반지?”

“응. 이 반지를 주신 게 테르세우스 영감님이거든.”

“여, 영감님……?”

테오도라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천하의 테르세우스를 아시테르는 영감님이라고 편하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반지가 왜?”

“이 반지가 내 마력을 엄청나게 제한 해. 덕분에 골치가 아플 정도야. 거기다 나는 테르세우스님과 따로 약속한 것도 있어.”

“무슨 약속을 했는데?”

“2등급에 올라설 때까지 절대 마력의 속성 변환을 하지 말 것.”

“아, 그래서…….”

화염 마법을 봉인한 데다 마력까지 제한했다는 것은 굉장한 제약이었다.

이제야 테오도라는 아시테르가 그동안 왜 그런 행보를 보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력 마법을 봉인 당하고 마력까지 제한되어 있는데 대체 너는 어떻게 3등급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야? 내 동생이지만 정말 기가 막힌 녀석이다 너도.”

“다 친구들 덕분이지 뭐.”

아시테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지 않아도 테오도라는 알 수 있었다.

아시테르는 엄청난 노력가였다.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적응력이 빠른 친구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불평불만을 내뱉을 동안 아시테르는 분명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다른 돌파구를 찾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큰 제약을 받고도 3등급까지 올라선 아시테르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이랑 그렇게 많은 대결을 펼친 거야?”

“뭐,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지. 내가 4등급에서 엄청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그 이유가 마력의 컨트롤 때문이거든.”

“그랬어? 하지만 마력 컨트롤이라면 네 실력도 상당하잖아?”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자만이었어. 알고 보니까 형편없는 수준이더라고. 어머니께 물려받은 좋은 재능을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수준이었다니까.”

아시테르의 말에 테오도라가 조금은 놀란 얼굴이었다.

곧 진지해진 태도로 테오도라가 물었다.

“어땠는데?”

“흐음… 예를 들면 10개의 마력이 있으면 내가 사용하는 것은 고작 5 정도?”

“그럼 나머지는?”

“그냥 의미 없이 흘러나가 버리는 마력들이었던 거지.”

“호오…….”

“마력이 부족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사용할 수 있는 마력량이 줄어들게 되니까 가장 먼저 느껴졌어.”

테오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수를 이룰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한두 방울 샌다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목이 마른 사람에게 작은 컵에 겨우 들어찰 정도로 적은 양의 물을 주었다면, 아마 쓸데없이 흘러내리는 한두 방울조차 굉장히 아까운 마음일 것이다.

“처음엔 조금 가혹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테르세우스님께서도 네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런 미션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치? 아무튼 대단한 영감님이라니까. 비체 할아버지 말고 그런 느낌을 받은 영감님은 그분이 처음이었어.”

“아하하, 아시테르. 테르세우스님을 영감님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젊지 않니?”

“그래? 그치만 비체 할아버지랑 얼마 차이 나지 않아 보였는걸.”

“너를 키워주고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다는 그분, 검술도 알려주셨다고 했나?”

테오도라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할아버지의 검술은 형도 직접 보게 되면 정말 놀랄 걸? 나는 지금까지 비체 할아버지만큼 깔끔하고 간결한 검술을 본 적이 없어. 우리 아버지도 아직 그 정도 수준에는 못 미치니까.”

“비체님은 몇 살이신데?”

아시테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이내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100살 넘어서부터는 안 세어 봤다고 하셨어.”

“……?”

놀라운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테오도라가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아시테르가 평소 엉뚱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쉽게 꺼내는 인물은 아니었다.

‘정말 100세가 넘으시는 건가? 근데 마녀들 말고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나? 아니지, 애초에 100살이 넘었는데 테르세우스님과 비슷하게 보일 정도면 사람이 아닌 것 아냐?’

참으로 알 수 없는 집안이 바로 아시테르의 집안이었다.

테오도라가 느끼기에 아레나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곳이었다.

“아무튼 이제야 네가 왜 그동안의 기이한 행보를 보였는지 알 것 같으니까 할아버지에게는 내가 잘 전달할게.”

“할아버지가 날 신경 쓰셨어?”

아시테르가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당연하지. 가문에서는 널 받아들이지 못 했어도 할아버지는 어딜 가도 네가 본인의 손자라고 하셨어. 혹시라도 네게 힘든 일이 생기거나 도와줄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고 하셨고.”

“그랬구나…….”

“할아버지도 마음은 편치 않으실 거야. 그러니까 너무 할아버지를 원망하진 마.”

“아냐. 내가 할아버지를 왜 원망해.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것은 난데.”

“역시 내 동생. 착하네.”

테오도라가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묘하게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목소리.

따뜻한 정이 묻어나는 그의 목소리에 아시테르의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사실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낯선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느낌을 때때로 받곤 했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어비스 던전과는 다르게 이스트 왕국은 아시테르에게 낯선 것들 투성이었다.

거기다 늘 함께하던 아레나와 유미르, 비체도 곁에 없으니 가끔 밀려드는 외로움은 아시테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라빈과 에스파, 데미리우스가 함께 있어 한편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지만 헛헛한 마음까지 모두 채울 순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테오도라의 말 한 마디에 외로웠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 나도 가봐야겠다. 조금 아쉽긴 하네. 나는 네가 아카데미에 들어오면 엄청난 파란을 일으킬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아카데미 안에서도 같은 등급으로 금방이라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테르세우스님이 내려주신 개인 미션 때문에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

“걱정 마. 형이 있는 곳으로 나도 올라갈 테니까.”

“호오… 꽤 자신감에 찬 얼굴인걸?”

“그동안 나도 쉬지 않고 노력했으니까.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고.”

“좋아. 그럼 위에서 보자 아시테르.”

“기다리고 있어 형.”

아시테르와 테오도라가 악수를 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테오도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알렌시아와의 관계는 어떻게 됐어? 조금 진전이 있었어?”

“아니. 사실 아직까지 제대로 얘기조차 나눠보질 못했어.”

“그래? 하긴. 그 친구가 쭉쭉 치고 올라오는 동안 너는 4등급에 머물러 있었으니.”

테오도라의 말에 아시테르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테오도라가 아시테르를 다독여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기회는 언젠가 오는 법이니까. 더군다나 같은 아카데미에 있으니 언젠가는 마주칠 수 있겠지.”

“그건 그래.”

“나는 내 동생의 연애도 응원한다!”

“고마워 형! 나도 형의 연애를 응원해!”

“나? 갑자기 난 왜?”

테오도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아시테르가 슬쩍 세밀리아 쪽을 가리켰다.

아시테르가 가리킨 곳을 확인한 테오도로가 곧장 손사래 쳤다.

“아냐, 나랑 세밀리아는…….”

“그치만 라빈이 말했는걸. 세밀리아 누나는 척 봐도 형에게 마음이 있어 보인다고.”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보인다던데? 이곳에 와서도 저 누나의 시선은 줄곧 형한테만 머물러 있었대. 원래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다고 하던데.”

아시테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부끄러운 비밀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테오도라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그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크흠. 어쨌거나 이번 승급전에 너도 도전할 생각이지?”

“응. 당연하지.”

“점수는 다 모았나보네?”

“아! 그러고보니……!”

“왜?”

“아직 점수가 모자라.”

“어째서?”

아시테르를 향해 묻던 테오도라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시테르가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어휴 민폐다 민폐. 어쩌다 그런 짓을 해선…….”

“그치만 다른 학생들의 마법을 너무나도 구경해보고 싶었단 말이야. 그렇다고 갑자기 찾아가서 마법을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래서 대결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친구들의 마법을 구경했지. 그중에서도 신기한 것들은 연구해서 배우기도 하고.”

“너답다 정말. 근데 전부다 네가 패할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아무리 네가 화염 마법이랑 마력량이 제한되었다곤 해도 기본적인 신체능력은 일반인을 훨씬 상회하잖아? 거기다 신체 강화 마법은 마력량도 그다지 크게 들지 않는다면서? 아니면 그만큼 제약이 컸던 건가?”

역시나 테오도라였다.

그는 아시테르의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내 신체능력으로만 상대하면 재미없잖아. 테르세우스 영감님이 나한테 이런 미션을 따로 내어주신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기존의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로 승부하자 생각했어. 뭐, 결과는 보다시피 전패였지만. 근데 이제부턴 조금 다를 거야.”

“아하하―! 역시나 너답다. 하여간 엉뚱해. 그래도 덕분에 얻은 것들이 많은 것 같으니 다행이다.”

“응. 아마 형도 긴장해야할걸? 예전의 내가 아니야 이제.”

“호오… 그런 말도 자신 있게 할 줄 알고. 많이 컸다 우리 동생. 그래도 기대되긴 한다. 테르세우스님이 걸어둔 제약이 풀렸을 때의 네 모습이 말이야.”

“2등급부터야.”

“뭐가?”

“2등급부터는 이 반지를 뺄 수 있어. 당연히 화염 마법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고.”

“기대되네.”

테오도라는 정말로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아시테르도 테오도라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근데 형도 그동안 강해진 것은 마찬가지 아니야? 전보다 훨씬 더 마법이 정교해지고 위력적으로 바뀐 것 같아.”

“그걸 알아봤단 말이야?”

“당연하지. 보자마자 느꼈는걸.”

“역시 너한테는 숨길 수 없구나. 뭐, 나도 너한테 뒤쳐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형.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금방 따라잡을 테니까.”

서로를 향해 마주 웃는 형제를 보며 다른 사람들 모두 흐뭇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때 라빈이 슬쩍 다가와 테오도라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이번 미션은 어떻게 되나요?”

“미션?”

“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섬광의 마법기사단원 분에게서 따로 미션을 받았거든요.”

“아! 아마도 B+랭크 이상으로 난이도가 매겨질 거야. 내 생각엔 아마 A+랭크로 기록되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테오도라가 세밀리아와 다른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밀리아도 테오도라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마 그럴 거야. 네 동생이랑 동료들이 반키라스의 난동을 진압하는데 크게 기여 했으니까.”

“못해도 A랭크로 기록 될 거다.”

마르쿠드가 마지막으로 확인시켜주듯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 일행이 기쁨에 서로를 바라보며 부둥켜안았다.

“됐어요! 그럼 이제 우리 부족한 점수를 모두 채운 거예요! 안전하게 승급전을 치를 수 있다구요!”

라빈이 뛸 듯이 기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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