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61화 (61/424)

061화 승급전

“호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할아버지.”

“크핫핫!! 녀석. 그럼 그렇지! 아레나의 아들이 그 정도밖에 안 될 리가 없지! 그나저나 테르세우스 이놈… 그 사이에 내 손자한테 그런 제약을 걸어 놓다니!! 그 성정은 여전하구만.”

“네?”

“아니다 아니야.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던 거로군. 그러면 지금 아시테르는? 승급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냐?”

“네. 이제 2등급으로 올라가는 승급전을 치르고 있는 중일 겁니다.”

잠시 자신의 턱을 매만지던 크리울로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두 눈동자는 흥미로움과 호기심이 가득해져 있었다.

세월에 익숙해지며 무뎌져 가는 다른 가주들에게선 쉽게 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런 눈빛을 가진 자가 바로 크리울로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트 왕국의 내로라하는 가문의 가주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흐음… 그래. 어떠냐, 테오도라. 네가 보기엔 아시테르도 충분히 2등급에 올라설 것 같으냐?”

“물론이에요 할아버지.”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나저나 너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크리울로스가 테오도라와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이미 크리울로스가 이런 질문을 해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테오도라도 미리 생각해둔 답을 내놓았다.

“할아버지 저는 ‘트라이포스’에 지원하려고 합니다.”

“뭐? 트라이포스에?”

의외의 답에 크리울로스도 놀란 눈치였다.

하기사 지금까지 크리울로스는 테오도라가 마법기사단장이 되려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무리도 아니었다.

그가 곧 무거운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테오도라… 나는 네가 마법기사단장이 되려는 거라 생각했다만…….”

“네. 저도 처음에는 마법기사단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생각이 바뀐 거냐?”

“가장 무서운 적은 보이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숨어 있는 내부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을 주목할 겁니다.”

크리울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발할라 놈들을 두고 하는 얘기냐?”

“네. 요즘 발할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지만 테오도라. 그 임무는 마법기사단도 맡을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굳이 집행부의 직속부대인 트라이포스로 가려는 거냐?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자신을 지우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크리울로스의 말에 테오도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동안 오랫동안 생각해왔기에 크리울로스를 설득해낼 자신도 있었다.

테오도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크리울로스가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 네 자신을 지우고 살아가도 말이야.”

“네. 괜찮습니다.”

“트라이포스의 일은 굉장히 고되고 힘들다. 마법기사단도 마찬가지지만 가끔 그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극악의 임무들이 맡겨지는 곳이 트라이포스야. 거기다 트라이포스는 마법기사단과 다르게 단 7명의 인원밖에 선출하지 않아. 그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굉장한 고난일거다. 어지간한 각오로는 트라이포스에 지원할 생각조차 않는 게 좋아.”

“각오는 이미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테오도라를 유심히 바라보던 크리울로스가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굳건한 눈빛은 무언가 단단히 결심했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테오도라는 제 아비보다 크리울로스 자신을 빼다 박은 녀석이었다.

저 쇠심줄 같은 고집만큼은 말이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가고자 하는 길로 가거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쯧… 네가 선택한 길이니 그 책임도 온전히 네 몫일 것이다. 나중 가서 할아버지가 뜯어말리지 않았다는 등 이상한 헛소리를 하려거든 집어치우거라.”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 어떠한 것이든 제 선택이니 제 스스로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합니다 할아버지.”

“뭐가 말이냐?”

“할아버지와 가문의 어르신들께선 제가 마법기사단장이 되어 가문의 이름을 더욱 널리 떨치길 바라셨을 텐데…….”

“그것 참 건방진 생각이로구나. 너 하나 마법기사단장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가문의 이름에 흠이라도 생길 것 같으냐? 아니면 프로메테 가문의 위상이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크리울로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테오도라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 그런 알량한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말아라. 너는 그저 네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면 돼. 네 아비 때처럼 가문에 얽매이는 삶은 살지 않아도 된다.”

말을 마치는 크리울로스의 얼굴이 어쩐지 조금은 씁쓸해 보였다.

테오도라도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아무튼 너와 아시테르. 너희 두 사람은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라. 이 할애비는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도록 하마. 거기다 어디 가서 말만 못할 뿐이지 가문의 일원이 트라이포스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자랑거리다.”

크리울로스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못하는 사실을 어떻게 자랑거리로 여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크리울로스가 이내 그 큼지막한 손을 테오도라의 어깨에 올렸다.

“마법기사단장이든 트라이포스든 모두 똑같을 거다. 우리 왕국을 위한 마음과 자세는 말이다. 내가 걱정한 것은 단지 너의 삶이 없어질까 두려워서였다. 그것은 걸어본 자만이 아는 고독한 걸음이다. 어느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삶은 말이다.”

크리울로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테오도라도 잘 알 수 있었다.

테오도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크리울로스가 잔잔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오랜만에 나와 밥이나 한 끼 먹자꾸나. 이 소식들을 전하기 위해 직접 먼 걸음을 한 것일 테니.”

“네, 좋아요 할아버지.”

“그나저나 아시테르 이놈. 잘하고 있겠지? 또 2등급에 못 오르고 떨어졌다는 소리만 들려 봐라 아주 그냥…….”

“후후, 벌써 곁에 좋은 동료들을 두었더라구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할아버지.”

“그러냐? 아, 그러고보니 그게 있었군.”

갑자기 생각났다는 얼굴로 크리울로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테오도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시죠?”

“테오도라. 너 이번 방학 때 할 일 없지?”

“이번 방학 기간이라면 1등급 학생들 드래프트가 있기 전 트라이포스 선발 시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흐음, 그게 말이다. 아는 동생 녀석이 부탁을 해 와서 말이다.”

“할아버지의 아는 동생이시라면…….”

“루기아 가문의 가주 녀석 말이다.”

루기아 가문이라면 5대 가문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상위권에 속하는 권위 있는 가문 중 한 곳이었다.

대대로 마법기사들을 배출해내고 있으며 단장을 역임한 자들도 몇 있을 정도였다.

“무슨 부탁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응? 아아 별 건 아니다. 지 손주놈 개인선생을 찾는 일이었어. 네게 부탁하고 싶다더구나.”

“저를요?”

“그래. 손주놈이 워낙 한 성질 하는 모양이야. 그동안의 개인선생들은 모두 버티질 못하고 도망갔다고 하더구나.”

“아아…….”

“그래서 너를 찾았던 모양인데… 너라면 녀석을 잘 교육시켜줄 거라 생각하고 말이야. 하지만 네가 바쁘다니 네게 부탁할 순 없겠구나. 아쉽지만 거절을…….”

“잠시만요, 할아버지.”

테오도라가 갑자기 미소를 보였다.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저는 못 해도 다른 녀석이 한 명 더 있잖아요?”

“너… 설마 아시테르를 추천하려는 거냐?”

“네!”

“아서라. 2등급도 안 된 녀석을 어떻게 보내? 거기도 최소한의…….”

“2등급으로 곧 올라설 거니 문제없을 겁니다. 거기다 아시테르의 마법 실력도 뛰어나요. 그건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테오도라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의 태도에 크리울로스도 미간을 좁혔다.

아시테르를 향한 테오도라의 이 무한한 신뢰는 가끔 할아버지인 자신보다도 더 엄청났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테오도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시테르에게 한번 기회를 주셨으면 해요. 그 녀석이라면 분명 잘 해낼 거니까요. 거기다 개인선생이면 보수도 받을 것 아니에요? 그 핑계로 할아버지께서 아시테르에게 따로 금전적인 도움도 주실 수 있을 거구요.”

“흐음, 그건 참 쓸데없구나. 그 녀석이 언제 돈 밝히는 것 봤느냐?”

“아… 그건 그렇군요.”

“하지만 좋은 경험은 되겠어. 그래도 나 또한 보험을 안 들어둘 순 없다. 너의 말대로 아시테르를 루기아 가문에 추천하도록 하마. 하지만 만약 아시테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때는 네가 가서 그 녀석의 개인선생을 해줘야 할 거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아버지.”

테오도라의 시원한 대답에 크리울로스도 만족스런 표정을 보였다.

* * *

파바방!

파밧―!

마력 화살들이 나무 기둥들에 박혔다.

마력 화살을 피한 몇몇 학생들이 나무 사이로 빠르게 움직였다.

“쳇, 나무들이 너무 많아서 이쪽은 나한테 불리해.”

“괜찮아요. 이미 데미리우스 오빠가 나섰으니까.”

에스파가 혀를 차며 마력 화살을 거두는 동안 데미리우스가 두 팔을 뻗었다.

그러자 팔에서 흘러나간 보랏빛 안개가 아시테르 일행을 감쌌다.

“멈춰!”

보랏빛 안개를 확인한 학생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한번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 안개는 순식간에 그들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이건 무슨 마법이야!?”

“나도 모르겠어. 아니 근데 3등급 중에 저런 사람이 있었던가?”

“처음 보는 인물이야. 어디서 나타난 거지?”

“지금 그게 중요해?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고 보…….”

사내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팔다리가 부들거리며 말을 듣질 않았던 것이다.

“제길!!”

곁에 있던 여인이 마법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커다란 비눗방울이 생기며 일행들을 감싸 안았다.

“우선은 이렇게 버텨내는 수밖에 없어.”

“독이야. 이 연기를 마시면 안 돼. 연기를 마시고나서부터 몸이…….”

“참, 빨리도 알아차린다. 딱 봐도 수상한 색깔의 안개잖아.”

그들끼리 말다툼을 벌이는 동안 가까이로 접근한 라빈이 뼈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비눗방울을 찢어버렸다.

쫘아압.

한 번에 찢겨나간 비눗방울이 힘없이 흩어져 버렸다.

이어 빠른 속도로 날아온 마력 화살들이 안에 있던 학생들을 정확히 맞춰 버렸다.

“나이스 에스파 오빠.”

라빈이 일부러 에스파 쪽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들어 보였다.

그런 라빈의 곁으로 아시테르가 뛰어들었다.

아시테르의 손에서 얇은 마력 장막이 펼쳐졌다.

파박!

라빈을 향해 날아오던 날카로운 마력의 파편들이 장막에 박혔다.

“아……?”

“로므리오의 주특기 마법이야.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력 파편들이 시간차를 두고 날아오게 하는 것.”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로므리오와는 두 번이나 겨뤄 봤는걸.”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이에 라빈이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아시테르가 아니었다면 위험한 순간이었을지 몰랐다.

“자아, 그럼 어디…….”

데미리우스의 독에 중독된 학생들의 품을 에스파가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찾아낸 붉은 구슬을 꺼낸 에스파가 한껏 웃었다.

“역시 있다!”

“이로써 구슬이 몇 개죠?”

“3개. 아직 2개 더 부족해.”

“아, 무슨 구슬이 5개씩이나 필요하담.”

라빈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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