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화 그동안의 성장
아시테르가 팔을 움직이자 불길이 그의 손길을 따라 움직였다.
이어 바닥에 맺힌 불길이 거세게 치솟아 올랐다.
화릉―!
콰라랑!!
테르세우스의 구체는 불길을 뚫고 아시테르에게로 날아왔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손아귀를 펼쳤다.
허공에 맺힌 불길이 방패처럼 펼쳐지며 구체를 막아섰다.
이를 본 테르세우스가 눈을 빛냈다.
“확실히 마력 컨트롤이 훨씬 늘었구나.”
테르세우스의 마력이 단숨에 아시테르의 불길을 빨아들였다.
놀란 아시테르가 두 눈을 꿈뻑였다.
“뭘 그러고 섰어? 네 건 다시 돌려주마.”
테르세우스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빨아들였던 불길이 다시금 아시테르를 향해 뻗어갔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마력을 발끝으로 보냈다.
충만한 마력이 발끝에 모이니 단숨에 두 발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팡!
힘껏 대지를 박차자 아시테르의 쏜살같이 튕겨져 나갔다.
이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였다.
놀란 것은 테르세우스만이 아니었다.
아시테르도 훨씬 빨라진 자신의 움직임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렇게 빨리 움직였는데도 몸에 부담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전이라면 통증이 일어났을 법 한데.”
“제법이구나. 방금은 나도 놀랄만큼 빠른 속도였다.”
테르세우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아시테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헤벌레 웃었다.
그를 바라보던 테르세우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 녀석은 지금 본인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 전혀 감을 잡질 못하고 있는 모양이구만…….’
혀를 찬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검게 그을린 땅 위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마법이 워낙 강력해져 불길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 테르세우스가 무언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
“어디 한 번 그때 보여주려 했던 마법을 다시 펼쳐봐라.”
“그때라고 하시면 어떤… 아!”
기억이 떠오른 아시테르가 곧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가 집중하기 시작하자 마력이 천천히 손끝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작은 마력의 알갱이들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 순간 마력이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장관스러운 광경에 테르세우스도 흐뭇하게 지켜봤다.
이윽고 하늘에 형성된 불꽃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공에 맺힌 불꽃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하자 아시테르도 감격에 벅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마법의 모습이었다.
하늘에 내리는 불꽃의 비.
허공을 메우는 붉은 꽃들을 바라보며 아시테르가 활짝 웃었다.
본인이 만들어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시테르의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의 눈빛은 무지개를 처음 본 순수한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동안 이를 지켜보던 테르세우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방대한 마력이 하늘을 뒤덮었다.
밤하늘처럼 어둡고도 촘촘히 빛나는 마력이 서서히 불꽃비를 빨아들였다.
“여기에 불이라도 옮겨 붙으면 나도 한 소리 들어서 말이다. 그래도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멋지고도 좋은 마법을 구경시켜줘서 정말 고맙구나.”
“아뇨,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해요.”
아시테르가 테르세우스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마법이었다.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한테 그리 고마워할 것 없다. 어쨌거나 이 미션들을 통과해낸 것은 너고. 네가 도중에 포기했다면 나는 기꺼이 네게서 이 반지를 가져왔을 거다. 결국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해낸 건 너다. 나는 그저 조금의 도움만 주었을 뿐.”
“그래도 감사합니다.”
아시테르의 거듭된 인사에 테르세우스가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그사이 아시테르의 손이 스르륵 올라왔다.
이를 본 테르세우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 손은 무슨 뜻이냐?”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 반지를 제게 선물해주실 수 있을까요?”
“뭐… 이건 너를 위해 맞춤 제작된 거니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다시 이 반지를 끼고 있는다 해서 이제는 네게 그리 득 될 것도 없을 거다.”
“제가 다른 친구들한테 굳이 영감님과의 미션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앞서 말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깜짝 놀래켜주고 싶은 것도 있었거든요.”
“뭐야? 그런 짓을 왜 하려는 거냐?”
“그야… 재밌으니까요!”
아시테르의 단순한 대답에 테르세우스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는 품 안에 넣어두었던 반지를 꺼내 아시테르에게 건네주었다.
반지를 받아 든 아시테르가 곧바로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그래도 오랜 시간 꼈던 탓인지 없어지자마자 허전했는데 이제야 뭔가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반지를 끼자 놀랍게도 곧 마력량이 제한되며 마력의 흐름도 방해받기 시작했다.
아시테르가 몸 안의 상태를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자, 테르세우스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간 별난 놈… 결국 네 친구들을 속이기 위해 장난치겠다는 말 아니냐?”
“뭐… 그렇죠?”
“하기사 뭘 어떻게 하든 이제는 네 자유니 신경 쓰지 않겠다. 그저 나는 지금까지처럼 너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으마.”
“네!”
“녀석 대답 하나는 참 잘해.”
테르세우스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이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가 떠나고 아시테르 혼자 남았다.
이제 곧 방학이라 따로 할 것도 남아 있질 않았다.
“다른 애들은 모두 집에 간다는데 나도 집에나 가볼까.”
그러고보니 어비스 던전을 떠나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부모님과 비체 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지도 오래되었으니 이참에 어비스 던전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만있어 봐… 그곳으로 가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아시테르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헤아려보며 말했다.
그때 먼발치서 다른 인기척이 들려왔다.
“여기 있었구나 아시테르.”
“형?”
이번에 들려온 목소리는 테오도라였다.
먼발치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테오도라를 본 아시테르가 반가움에 그에게로 뛰쳐나갔다.
테오도라가 한껏 팔을 벌리며 뛰어오는 동생을 안으려 했다.
그러자 우뚝 멈춰선 아시테르가 동그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징그럽게 이게 무슨 짓이야?”
“징그럽다니… 너무 하잖아 동생…….”
“아무튼 형이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이쪽 동네로는 올 일이 없잖아.”
“마침 네게 전할 말이 있어서 직접 왔지.”
“흐음?”
아시테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꺾었다.
테오도라의 미소를 보고 있으니 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어림짐작한 아시테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떨어진 것 아니야. 합격이긴 한데, 보류래. 그러니까 떨어진 것 아냐.”
“누가 뭐래?”
“뭐야. 2등급으로 못 올라갔다고 놀리려고 온 것 아니었어?”
“아하하!! 내 동생인데 당연히 2등급으로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지. 혹시나 네가 못 올라왔다 하더라도 상심에 빠져있을 너를 내가 왜 놀려. 그럴수록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 줘야지.”
“흐음. 그러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혹시 누가 아프시다거나…….”
아시테르가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런 동생이 귀여웠는지 테오도라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런 일도 없어. 모두들 건강하셔.”
“그러면…….”
“너에 관한 일로 왔어.”
“나?”
“그래. 너 이번에 방학 때 따로 할 일 없지?”
“응. 딱히 따로 할 건 없는데…….”
“그러면 이번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그래.”
테오도라의 말에 아시테르가 고개부터 끄덕였다.
들어보지도 않고 시원하게 대답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오히려 테오도라가 맥빠진 얼굴을 했다.
그가 뺨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어떤 부탁인지 들어보진 않는 거야?”
“형이 부탁하는 건데 들어줘야지.”
“세상에…….”
감동에 뭉클 젖어든 테오도라의 얼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빛까지.
이 사내는 아시테르라도 뒤늦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대체 어쩔 뻔 했던가.
그동안 동생이 없었던 것이 얼마나 아쉬웠던 것인지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 아시테르를 아껴주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사이도 아니고 다 커서 이렇게 만났는데도 테오도라는 격의 없이, 사심 없이 아시테르를 대해주었다.
그러니만큼 아시테르도 테오도라의 이런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부탁이 뭐야?”
“아아. 아주 간단해! 이건 아마 너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거야.”
“뭔데?”
“루기아 가문이라는 곳이 있어. 그곳 가주님의 손자를 가르쳐주면 될 것 같아. 이른바 개인선생이라고 부르지.”
“개인선생?”
“응. 개인적으로 마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을 말해. 본래는 가문의 사람들을 개인선생으로 고용하지만 이번에 루기아 가문에서도 크게 결심한 모양이야. 우리 가문에 특별히 부탁했더라고.”
테오도라가 일부러 다른 사실들을 빼놓고 말했다.
루기아 가문에서 이미 몇 차례 개인선생들을 구했었고 그들 모두 도망치듯 그만두었다는 얘기들을 말이다.
잠시 생각하던 아시테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본 적이 없어서 잘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러니까 이번에 경험해 봐야 돼.”
“왜? 어째서?”
“못하니까 해봐야지. 그래야 늘잖아.”
“그건 그렇지만…….”
“거기다 한 가지 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함께 배우게 되어 있어. 거기다 아는 사실들까지도 하나둘 상기시키며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는 효과도 있지. 그러니까 너에게 이번 기회는 정말 필요한 기회라고 할 수 있어.”
테오도라가 차분하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그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땐 아시테르도 별말 보태지 않는다.
아시테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테오도라의 부탁을 수락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할게. 그 개인선생이라는 거.”
“오 좋아!! 잘 생각했어 동생. 게다가 개인선생을 무사히 마치면 아마 아카데미에서도 특별점수를 부여해줄 거야. 이게 생각보다 의외로 쏠쏠하다?”
“그건 좋네. 근데 애초에 이거 내가 거부할 수는 있는 거였어?”
“아니. 무조건 시킬 생각이었어. 아하하하!!”
“가만 보면 은근히 형도 할아버지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니까.”
“알아. 같은 핏줄인데 닮았을 수도 있지. 안 그래?”
테오도라의 말에 아시테르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시원시원한 아시테르의 대답에 한층 기분이 좋아졌는지 테오도라가 한껏 웃었다.
“그런데 루기아 가문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
“그건 걱정 마. 루기아 가문에 미리 부탁해 두었으니까. 네가 흔쾌히 허락하면 본인들도 마땅히 데리러 올 거라 했어.”
“루기아 가문은 어떤 가문인데?”
“우리 가문만큼은 아니지만 왕국에서 나름 힘있는 가문으로 유명하지. 거기다 그곳 가주님은 우리 할아버지와 형동생 할 만큼 친한 사이시고.”
테오도라의 설명에 아시테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중요한 곳이면 형이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아? 나보다 잘 가르치는 데다 이미 1등급에 마법기사단까지 들어갈 수 있는 형이 가는 게 여러모로 더 그 가문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냐. 나도 누굴 가르치는 것은 잘 못해. 나 혼자 헤쳐 나가는 것만 잘하지. 그리고 나는 그때쯤 다른 볼일이 있어서 아쉽지만 루기아 가문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랬구만… 그래서 내게 떠넘기는 것이었구만?”
“아하하, 들켰네. 그래서 말인데. 잘 좀 부탁할게 동생.”
“형이니까 특별히 들어주는 거야.”
“고오맙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면 식사는 물론이고 돈도 꽤 줄 거야.”
식사와 돈이라는 말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는 그의 모습을 보며 테오도라가 한바탕 웃었다.
“정말 밥과 돈까지 주는 거야?”
“그럼! 정당한 노동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그 친구를 가르치는 것도 하나의 귀중한 노동이니까 돈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 마침 루기아 가문은 재력도 상당한 것으로 유명하니까 제법 쏠쏠할 거야. 제발 그걸로 먹을 것만 사 먹지 말고 괜찮은 옷도 골라 입고 좋은 물건들도 사고 그래. 알겠지?”
테오도라가 아시테르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