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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65화 (65/424)

065화 루기아 가문의 젊은 선생 (1)

“흐음…….”

루기아 가문의 가주 프라울리가 눈매를 좁게 떴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사내 때문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몸도 탄탄해 보였지만 아직은 앳돼 보이는 외모.

거기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이라 왠지 성격이 다부져 보이진 않았다.

심지어 이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성세를 이룬 가문에서 추천해준 개인선생답지 않게 후줄근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프라울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사내의 표정이었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거지?”

“아,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요.”

사내, 아시테르가 둘러보고 있는 것은 여러 미술품들이었다.

유명한 조각 마법사가 조각해놓은 것들도 있었고, 그림 관련 마법을 익히고 있는 예술가가 그려놓은 풍경화들도 걸려 있었다.

그것들 모두 비싼 가격을 하는 예술품들인데, 마침 아시테르가 그것들에 시선을 빼앗겼다고 하니 프라울리의 입꼬리도 슬쩍 올라갔다.

“험험… 그래 좋다. 어쨌든 그대가 바로 프로메테 가문에서 추천한 개인선생이라고? 듣자하니 테오도라 그 친구가 추천했다고 하던데.”

“네, 맞습니다.”

“자네 앞이지만 내 솔직히 말하지. 나는 테오도라가 직접 오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워. 내 손자 녀석을 책임지고 가르칠만한 인재로는 그 녀석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 손자 녀석이 워낙 테오도라 그 친구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테오도라 형은 다른 바쁜 일이 있다고 해서 제가 대신 오게 되었습니다.”

아시테르의 답에 프라울리가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역시나 겉모습만으로는 썩 내키지 않는 타입이었다.

더군다나 눈앞의 사내는 출신도 천민 쪽인 데다 과거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본 이력도 없었다.

역시나 미덥지 못했는지 프라울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믿고 맡겨도 되는 건가?”

“저도 자신은 없지만 한번 해보겠습니다.”

프라울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감 넘치고 시원스럽게 대답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모호한 답이라니.

어쨌거나 주위로 소문이 나버린 바람에 더 이상 손자 녀석의 개인선생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프라울리로서도 믿고 맡겨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이대로 넘기기엔 손자 녀석의 재능도 아쉬웠다.

결국 낮게 한숨을 내쉰 프라울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미리 듣고 왔겠지만 내 손자 녀석은 감당하기 쉬운 녀석이 아니야. 그러니 마음 단단히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걸세.”

“예?”

금시초문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반응에 프라울리가 이마를 짚었다.

“설마 듣지 못한 건가?”

“네. 그게 무슨 이야기이신지…….”

결국 프라울리가 자초지종 설명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개인선생들을 여럿 구했었지만 그들 모두 손자 녀석의 횡포(?)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둔 얘기들을 말이다.

괴롭힘에 시달리다 정신병까지 걸린 개인선생들까지 있다고 말해주며 프라울리가 아시테르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아시테르의 얼굴이 점차 굳어지고 있었다.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했는지 프라울리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 참. 이런 중요한 것들을 말해주지 않았다니. 혹시 자네 프로메테 가문에 원한이라도 산건가?”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왜 이 사실들을 얘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 어쨌거나 이제라도 미리 알았으니 다행이네. 괜히 힘 빼기 싫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겠다고 말하게. 그러는 편이 이쪽에서도 다른 개인선생을 빨리 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아시테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우선 제게 그런 사실들을 말해주지 않은 것은 아마 깜빡 잊었거나 저를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닐 겁니다. 굳이 제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해서겠지요. 어차피 저 말고 다른 개인선생들을 구하기도 어렵다고 하셨으니 제가 해보겠습니다.”

강단 있게 말하는 아시테르의 모습을 보며 프라울리의 표정도 이전과는 살짝 달라졌다.

턱을 매만지던 그가 다시 입을 연다.

“정말 괜찮겠나? 쉽지 않을 거다만.”

“네. 저는 괜찮습니다.”

“좋아. 혹시나 겪어보고 힘들다거나 뭐 건의하거나 부탁할 사항이 있다면 여기 이 사람을 통해 말하게.”

프라울리가 오른쪽에 서 있는 중년의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년의 사내는 자신을 소개하며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시테르 선생님. 저는 편하게 로포 집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반갑습니다 로포 집사님.”

“그럼 곧바로 아시테르 선생님께서 머물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아시테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프라울리가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듯 턱짓으로 답했다.

“정말 식사는 무한 제공입니까?”

“아하하하!! 당연하지. 얼마든지 먹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말하게. 그 아이를 가르치는 동안에는 먹고 싶은 것들을 실컷 먹여주도록 할 테니.”

“감사합니다!”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의 순수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프라울리도 다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괜히 손자 녀석을 가르치는 것 때문에 저 순수한 청년이 나중에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아시테르가 떠나고 프라울리가 한 손으로 턱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순수하고 맹해 보이는 녀석이 우리 손자 놈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후후,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가주님. 게다가 현재는 당장 크로마제 도련님의 개인선생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으니 이렇게나마 개인선생을 도련님 곁에 둘 수 있다는 게 어디입니까.”

“후우… 그래도 왠지 신경 쓰이는데. 그거 다시 한번 가져와 보겠나.”

“네.”

곁에 대기하고 있던 사내가 프라울리에게 다가와 종이를 전해주었다.

종이에 적힌 것은 아시테르에 관한 것들이었다.

“마법기사 아카데미 학생인데 아직 2등급에 올라서지도 못했어. 거기다 기록을 보니 마력의 속성 변환도 못 하고 마력량도 극히 소량… 그러고보니 정말 특별할 것 없는데. 지나치게 평범하다 못해 오히려 모자라 보이지 않나?”

“반대로 말하면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학생이 2등급 언저리에 있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도련님께서는 뛰어난 학생들이 개인학생으로 오면 보란 듯이 그들을 뭉개버릴 생각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선생이 왔으니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말해 뭐 하겠나. 보나마나겠지. 그래도 프로메테 가문에서 추천한 이유가 있을 테니 지켜봐야겠어.”

프라울리의 걱정은 정확했다.

다음 날 프라울리의 손자이자 아시테르에게 배울 학생인 크로마제는 아시테르를 만나자마자 대놓고 그를 무시했다.

“2등급에도 못 올랐는데 내 개인선생을 한다고?”

금색의 짧은 머리를 힘있게 올린.

아시테르와 달리 샤프한 외모의 크로마제가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동자로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서를 덮은 그가 아시테르를 보며 턱을 치켜 올렸다.

“당신. 할 줄 아는 마법은 있어?”

“마도사니까 당연히 할 줄 아는 마법들은 있지 않을까?”

아시테르가 근처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인상을 찌푸린다.

“거긴 내 자리인데.”

“의자도 많은데 앉으면 좀 어때?”

“나는 내 자리를 빼앗는 걸 굉장히 싫어해. 그러니까 다른 곳에 앉아.”

“싫어.”

아시테르의 단호한 대답에 크로마제가 마침내 얼굴을 구겼다.

뒤편에 있는 로포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한 차례 표정을 관리한 크로마제가 하는 수 없이 아시테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이 짧으실까?”

“그러는 너는 왜 말이 짧을까?”

“하… 이 건방진 천민 따위가!”

크로마제의 언성이 결국 높아지고 말았다.

그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들어 올리자 아시테르의 뒤편에 서 있던 로포가 슬쩍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크로마제의 손에 모이던 마력이 흩어졌다.

“쳇!”

혀를 한 번 찬 크로마제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눈앞에 있는 선생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뒤에 서 있는 로포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의 행동을 주로 말리는 것이 로프였으며, 크로마제의 또 다른 보호자이기도 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로포 아저씨. 아무리 급하다지만 이건 아니지 않아? 겨우 아카데미 2등급에도 오르지 못한, 그것도 출신도 천민 출신인 선생한테 나를 맡긴다는 게? 오히려 내가 이 사람을 가르쳐야 할 것 같은데?”

크로마제가 일부러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표정은 편안하기만 하다.

그는 다른 것보다 눈앞에서 향긋한 향을 풍기고 있는 컵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거 마셔도 되는 건가요?”

아시테르가 뒤를 돌아보며 공손하게 물었다.

그러자 로포가 환하게 웃었다.

“네. 얼마든지요. 부족하시다면 한 잔 더 내어오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벌써부터! 감사합니다.”

해맑게 기뻐하는 아시테르를 보며 크로마제는 어이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개인선생들은 보통 두 가지 표정을 보였다.

하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오만한 표정.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긴장 가득한 표정.

이 두 가지의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아시테르는 지금까지 개인선생들에게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반응이었다.

“당신 나 가르치러 온 것 아냐?”

“맞아.”

아시테르가 그런 크로마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의 미소에 크로마제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는 로포 때문에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조만간이었다.

로포가 자리를 비우면 그때부터 시작하면 되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버티려나.”

작게 중얼거린 크로마제가 피식 웃었다.

그때까지 저런 태도를 보여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시테르가 돌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놀란 로포가 화들짝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뇨. 오늘은 이것으로 됐습니다.”

아시테르는 훌쩍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 버리자 당황한 것은 로포만이 아니었다.

“뭐, 뭐 저런 선생이 다 있어?”

깔끔하게 비워진 컵을 바라보며 크로마제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시테르는 정말 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크로마제가 마법서를 제자리에 꽂아 넣으며 입가를 실룩거렸다.

“이거 정말 재밌는 선생이 들어왔네…….”

그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며 로포가 고개를 저었다.

크로마제가 선생들을 괴롭히기 전 항상 보이는 눈빛이었다.

문을 닫고 나선 로포가 고개를 숙였다.

“또 시작되겠군요. 그나저나 이번 선생님께서는 어쩌자고 이런 행동을…….”

그의 시선이 아시테르가 멀어진 쪽으로 향했다.

대체 저 청년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으로 찾아와 크로마제를 보고 간 것일까.

궁금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로포의 마음을 조금 놓이게 한 점이 있었다.

아시테르가 크로마제를 눈앞에 두고도 전혀 움츠러들거나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선은 합격점이라 할 수 있었다.

로포는 곧바로 프라울리에게 보고를 올렸다.

“가주님의 걱정과 다르게 아시테르 선생님은 크로마제 도련님을 눈앞에 두고도 생각보다 의연하셨습니다.”

“그으래……?”

예상 밖이었는지 프라울리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프로메테 가문에서 추천한 인재라 이거였군? 어떤가, 로포.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나?”

“예단은 금물이지만, 확실히 지금까지 이곳에 왔던 개인선생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습니다.”

로포의 말에 프라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 어쨌거나 자네는 아시테르 선생이 크로마제를 가르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케어해 주게.”

“알겠습니다 가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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