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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73화 (73/424)

073화 아시테르와 크로마제가 향하는 곳

“으아아―!!! 대체 어쩌자고 그런 소리를 한 거예요?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크로마제가 괴성을 지르며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시테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제 갈 길을 걸어갔다.

“아니 이봐요 당신!”

“당신이 아니라 스승님.”

아시테르가 크로마제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괜히 침을 한 번 꼴깍 삼킨다.

“그래요… 스승님… 후우… 아무튼! 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뭐가 문제야? 설마 이길 자신이 없는 거야?”

“아니 그건…….”

그래도 자존심에 크로마제는 질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이미 달란에 대한 두려움도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시테르는 눈치채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일 터였다.

듣자 하니 본래 달란과 크로마제의 실력은 막상막하.

하지만 지금은 그 평행선이 기울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노력해온 달란과 다르게 크로마제는 제자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니 실력에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달란의 입장에서 억울할 터였다.

잠시 생각해보던 크로마제가 처음으로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했다.

“솔직히 자신 없어. 당신 따위한테도 져버렸잖아.”

딱!

아시테르가 곧바로 크로마제에게 꿀밤을 먹였다.

따끔한 통증에 크로마제가 아시테르를 노려봤으나 그렇다고 따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시테르에게 무참히 깨져버리고 난 뒤 크로마제는 아시테르의 행동에게 함부로 대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모양이었다.

“당신 따위라니?”

“스… 스승님…….”

“그래 좋아. 그리고 네가 그렇게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약해 보였어? 왜, 방심해서 졌다고 말해보게?”

아시테르의 물음에 크로마제가 슬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심해서 졌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날 크로마제는 최선을 다해 아시테르를 상대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까지 펼쳤는데도 깔끔하게 패하고 말았다.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이견이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점도 있었지만.

“그치만 나도 할 말이 있어.”

“뭔데? 말해봐.”

“나한테 사기쳤잖아.”

“내가? 무슨 사기.”

“나한테 이긴 건 검술이었잖아? 마법이 아니고…….”

크로마제가 마지막 자존심이라 생각한 부분을 결국 입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여지없이 그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깨트려 주었다.

“언제는 검술이 마법보다 하찮다며? 검술을 연마하는 아버지가 창피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검술에 졌다고 핑계 대는 거야? 마법보다 하찮은 게 검술이라면 당연히 네가 이겼어야지?”

“아… 아니 그건…….”

역시나 말로는 아시테르를 이길 수 없었다.

크로마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자신이 한 말들이었다.

그동안 검술을 얕잡아 보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검술에 자신이 무너진 것 또한 사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뭐가 어떻든 네가 패한 것은 사실이야. 무슨 이유든 핑계 대려 하지 마. 그거 안 좋은 습관이야.”

“쳇… 그래도 나는…….”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하나의 성장이야 크로마제.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아야 그 다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야.”

“하여간 말은… 아 근데 아까 그 약속은 어떻게 할 거냐고!! 당ㅅ… 아니 스승님 때문에 몇 년간 좋아해 온 모르아네를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잖아!! 내가 왜 당… 스승님 때문에 모르아네를 포기해야 해!?”

“걱정 마라 제자야. 제자의 사랑을 지켜주는 것 또한 스승의 도리야.”

“당신 속성 변환도 못하는 데다 기본 마법밖에 못 쓴다며!! 3등급까지도 검술로 올라간 것 아냐!?”

크로마제가 아시테르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아시테르는 그저 크로마제를 무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걷기만 하자 크로마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대체 어딜 가려는 거야?”

“조용히 따라와.”

아시테르는 험준한 산길을 편안하게 걸어갔다.

반면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담을 쌓았던 크로마제는 점점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또 말없이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끝이 보이질 않자 크로마제가 한바탕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럼 좀 쉬었다 가든가!! 이러다 나 죽겠어!!”

“그래? 그러자 그럼. 미안하다, 내 생각만 했네.”

아시테르는 대답과 함께 곧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행동에 크로마제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가 멀뚱하게 가만히 서 있자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뭐해? 어서 앉아.”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 앉는다고?”

“그럼 어디에 앉을 건데?”

“근처 마을이라든지… 하다못해 좀 쉴 수 있을 만한 곳으로 가야…….”

“배부른 소리하네.”

아시테르는 근처 쓰러진 나무 기둥에 몸을 뉘었다.

바닥에 등을 대면 그곳이 곧 아시테르에겐 침대였고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이 곧 이불이었다.

이를 잘 모르는 크로마제로선 그저 헛웃음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날도 따뜻하니 따로 불같은 것도 피워놓지 않고 아시테르는 그대로 잠을 청했다.

근처에 맹수나 마수들이 없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해 둔 뒤였다.

크로마제도 하는 수 없이 근처 커다란 바위에 앉았다.

팔다리가 절로 후들거렸다.

이렇게 무식하게 움직여본 적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아시테르는 이른 아침부터 갈 곳이 있다며 크로마제 방에 찾아와 따라 나오라 하더니,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계속해서 걷기만 하고 있었다.

루기아 가문에서 벌써 어디까지 왔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하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크로마제의 속도 모르고 아시테르는 곤히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불편한 곳에서 저렇게 편한 모습으로 잠들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천민은 원래 저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익숙해? 아니 근데 저 인간 천민은 맞아?”

정체가 오리무중이었다.

천민 출신이면 보통 루기아 가문처럼 권세 높은 가문에 오면 으레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골 때리는 스승 놈은 무슨 제집 안방 드나드는 것처럼 루기아 가문 내부를 활보하고 다녔다.

거기다 식성은 어찌나 좋은지 매번 맛있는 음식들을 탁자에 쌓아놓고 먹었다.

“알고 보면 그냥 별 생각 없이 천하태평이기만 한 인간 아냐……?”

팔짱을 끼며 가만히 아시테르를 지켜보고 있던 크로마제의 두 눈도 점차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의 피로를 견뎌내기에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결국 크로마제도 스르륵 옆으로 쓰러지며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다음날 날이 밝기도 전에 아시테르는 먼저 몸을 일으켜 먹을 것들을 준비해왔다.

투정 부리던 크로마제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저렇게 가만히 눈을 감고 잠들어 있으니 그래도 귀여운 구석은 있어 보였다.

잠들었던 크로마제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시테르가 말없이 먹을 것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먹어둬. 오늘도 많이 걸어야 하니까.”

“하아…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 맞아?”

아시테르가 내민 열매들을 크로마제가 치워버렸다.

그러자 아시테르는 미련 없이 음식들을 가져가 버렸다.

“먹기 싫으면 말아라.”

아시테르는 그대로 크로마제에게 내밀었던 음식들까지 다 먹어치워 버렸다.

크로마제에게 그의 식성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 걷고 또 걸었다.

어차피 물어봤자 어디로 가는지 대답조차 해주질 않으니 크로마제도 더는 목적지를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에 말을 아끼며 체력을 관리했다.

아시테르는 끼니때마다 크로마제에게 먹을 것들을 건네줬는데, 크로마제는 그때마다 그것들을 거절했다.

물론 아시테르는 두 번씩 권하진 않았다.

크로마제가 거절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음식들을 먹어치워 버렸다.

꼬르륵.

그렇게 하루종일 굶었더니 마침내 크로마제의 배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는 이미 잠들었고 크로마제는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닐 능력이 없었다.

아니, 능력이 없었다기보다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는 우두커니 앉아 허기짐이 수면욕을 이기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아시테르는 전날처럼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녀왔다.

늦은 밤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던 크로마제는 겨우겨우 눈을 붙이고 있는 상태였다.

아시테르가 아침부터 토끼를 잡아와 가죽을 벗겨 불에 구웠다.

그의 능숙한 솜씨에 실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던 크로마제도 내심 감탄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아시테르는 모든 움직임이 거침없었다.

“크흠…….”

몸을 일으킨 크로마제가 슬쩍 불가에 앉았다.

노릇하게 구워지는 토끼고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자 아시테르가 크로마제의 손을 때렸다.

“아직 다 안 익었다. 지금 먹으면 나중에 배 아파.”

“아……?”

크로마제가 아쉽다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익어가는 토끼고기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배고픔에 당장이라도 집어서 저 살코기를 씹어먹고 싶었다.

그를 바라보던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삼일은 시위할 줄 알았더니 하루도 못 갔네.”

“뭐?”

“아냐.”

아시테르는 토끼고기가 다 익자마자 다리부분을 뜯어 크로마제에게 건네주었다.

이전까진 쳐다도 보지 않던 음식들을 크로마제는 받아들자마자 급하게 입으로 가져갔다.

“아 뜨거워!!”

“당연히 뜨겁지. 방금까지 불에 있었는데. 천천히 먹어.”

아시테르도 다른 부위를 가져와 입으로 가져갔다.

크로마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토끼고기를 입에 가져갔다.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토끼고기가 그토록 맛있는 것은 맹세컨대 크로마제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토끼고기는 크로마제의 입에서 씹지도 않았는데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다.

크로마제는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에 허겁지겁 토끼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체한다. 아직 더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아시테르가 잡아온 토끼 두 마리를 더 보여주며 말했다.

그럼에도 크로마제는 음식을 먹는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식사를 다 마친 후에 아시테르는 말없이 다시 갈 채비를 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크로마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연다.

“아니 대체 어딜 가려는 거야? 이제 말 좀 해주면 안 돼?”

“내기 이기고 싶지?”

“다, 당연하지!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모르아네를 좋아해 왔다고.”

“내가 그런 마음을 또 아주 잘 알지.”

“스승 당신이?”

아시테르가 슬쩍 크로마제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당황한 낯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또!? 뭐가 문제야?”

“아니. 문제는 없어. 어쨌든 지금 네가 가는 곳은 너를 변화시켜 줄 곳이야.”

“나를 변화시켜? 누가?”

“누구긴. 당연히 네 스스로지.”

“아……?”

크로마제의 머리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자신 스스로 변화를 꾀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는 곧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시테르가 오랜 걸음 끝에 멈춰선 곳은 커다란 돌산이 보이는 곳이었다.

“여기 잠시만 있어 봐.”

“어디 가는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시테르는 잠시 자리를 벗어나더니 이내 금방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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