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화 크로마제의 개인수련 (2)
아시테르가 다시금 마력탄을 발사하자 오우거의 몸체가 조금 흔들렸다.
분명 같은 마법인데도 맞은 오우거의 반응은 달랐다.
“만약 마력탄의 위력이 약하다면 이렇게 하면 돼.”
아시테르가 손가락을 한쪽으로 가져갔다.
그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간 마력탄이 오우거의 무릎쪽을 관통했다.
이어 다른 쪽으로 발사한 마력탄은 오우거의 팔꿈치 안쪽을 꿰뚫었다.
“오우거의 관절은 상대적으로 다른 곳에 비해 피부의 강도가 약한 편이야. 그래서 같은 공격이라도 충분히 데미지가 들어가지.”
아시테르는 말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마력탄을 발사했다.
허공에 떠오른 마력탄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며 사방에서 오우거를 덮쳤다.
당황한 오우거가 두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인간이 쏘아내는 작은 빛 덩어리가 자꾸만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수들의 송곳니도 꿰뚫지 못하는 자신의 질긴 피부를 저 작은 빛덩이들이 자꾸만 찢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뤄어―!”
더이상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오우거가 웅크렸던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두 손으로 아시테르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움직임이 오우거의 움직임보다 몇 수는 더 빨랐다.
오우거의 팔을 피한 아시테르가 녀석의 팔뚝에 손을 올렸다.
아시테르가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크로마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누가 속성 변환도 못 한대?”
화륵―.
아시테르의 손에서 흘러나간 마력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커진 화마가 오우거의 몸을 집어삼켰다.
“크뤄!! 크뤄어어!!!”
화염에 휩싸인 오우거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번 오우거의 몸을 집어삼킨 화마는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크로마제가 두 눈을 부릅떴다.
“화염 마법…….”
저 커다란 오우거마저 단숨에 집어삼킬 정도의 위력.
아시테르가 보여준 마법이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님을 크로마제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우거는 뜨거운 불길에 몸부림치며 죽어가고 있었다.
녀석은 곧 고통에 찬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아시테르는 그런 오우거를 아무런 감정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마수라고 해도 하나의 생명이 눈앞에서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우거를 보면서도 아시테르는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치 오우거에게 일말의 동정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차가운 면모에 크로마제는 저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졌다.
만약 지금까지 보여온 해맑은 웃음과 천하태평 해 보이는 모습이 가짜고 저것이 진짜 모습이라면, 자신도 얼마든지 이곳에서 죽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엄습해왔다.
“진짜… 잘하면… 잘하면 나 진짜 여기서 죽을 수도 있는데…….”
다시 한 번 공포에 질린 크로마제가 절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땅에 두었지만 조금 전 보았던 아시테르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았다.
오우거가 완전히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한 아시테르가 천천히 크로마제쪽으로 다가왔다.
“크로마제. 내가 함부로 고개 숙이는 것 아니라 했지? 고개 들어.”
아시테르의 말에 크로마제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흔들리는 동공이 아시테르를 올려다봤다.
하얗게 질려 있는 크로마제를 보며 아시테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그 행동을 다른 의미로 생각한 크로마제가 황급히 자세를 고쳐잡았다.
지금 이 순간 부르르 떨리는 팔다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아시테르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앞으로… 앞으로 까불지 않고… 말도 잘 듣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살려만… 살려만 주세요……!”
크로마제의 말에 아시테르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크로마제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자 크로마제의 몸이 한 차례 움찔했다.
“그렇게 겁 먹지 마.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해?”
“예…? 절 죽이지 않는 겁니까……?”
“세상에 제자를 죽이는 스승이 어딨어?”
아시테르가 오히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의 표정이 평소처럼 돌아오자 그때서야 크로마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발밑에서 시작된 축축한 물줄기가 대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 큰 녀석이 자꾸 그렇게 아무데나 오줌 지릴래?”
“아… 아니 이건… 그게 그러니까…….”
크로마제가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그의 귀가 빨개졌다.
지금 상황에 그가 컨트롤 한다고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깨달았을 땐 이미 오줌을 지려버린 상황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때 아시테르가 크로마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어. 어차피 이곳엔 너와 나밖에 없고. 다른 것들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잖아. 그리고 앞으로 이것보다 더한 것도 보게 될 텐데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그러진 마.”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지만 크로마제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다시 입술이 파래지고 있었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크로마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더… 더한 것을 보게 된다구요……?”
“당연하지. 여기 놀러 온 것 아니잖아? 단기간에 강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아시테르의 물음에 크로마제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머릿 속에 선뜻 떠오르는 것들이 없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또 미소를 짓는다.
“바로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거야. 어떻게? 지금처럼.”
아시테르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크로마제는 알지 못했다.
이 한 마디가 자신을 어디까지 몰아붙일지 말이다.
그리고 어디까지 자신을 성장시켜줄지도.
* * *
“끄응…….”
자리에 앉아 있던 프라울리가 자신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곁에 있던 로포가 그런 프라울리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가주님…….”
“그러니까… 아직도 소식이 없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만…….”
“대체 그놈은 내 소중한 손자를 어디로 끌고 간 거란 말이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판데아는! 그 녀석이라면 자기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것 아니냐?”
프라울리가 역정을 내듯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로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판데아님께서도 아시테르 선생님이 어디로 도련님을 이끌고 갔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애써 크로마제 도련님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말씀하시더군요. 때가 되면 아시테르 선생님과 함께 돌아올 거라면서…….”
“하아… 이런 어처구니없는!”
프라울리가 의자의 손걸이를 주먹으로 때렸다.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불쾌하기만 하다.
아시테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아시테르가 크로마제를 데리고 간 지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
게다가 프라울리가 아시테르에게 크로마제의 교육을 맡긴 기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쯤되면 슬슬 아시테르가 크로마제를 데리고 이곳에 나타나야 했다.
“그런데 왜 코빼기도 안 보이느냐 이 말이야!! 약속한 기간이 다 되어가잖아!!”
“가주님… 진정하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면…….”
“그니까 그게 언제냐 이 말이야!”
프라울리가 진정하지 못하고 또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로포라고 해서 그것에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프라울리가 크게 소리쳤다.
“당장 내 손자놈을 찾아와!!!”
* * *
프라울리가 크로마제를 찾겠다며 루기아 가문에서 노발대발할 때 크로마제는 아시테르와 함께 아직까지도 던전에 있었다.
던전에 들어오고 3개월.
그동안 크로마제의 모습은 완전히 변하고 있었다.
우선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것들을 버렸다.
이곳에선 위신이나 체면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런 것들을 차린다고 누구 하나 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생활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혹독한 던전 생활을 버텨내기 위해 체력을 길러야만 했다.
결국 크로마제도 아시테르를 따라 체력단련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심 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체력을 얼마나 단련시키느냐에 따라 하루의 질이 달라졌다.
거기다 체력이 붙을수록 마력을 다루는 느낌도 달랐다.
“느낌탓이야. 체력과 마력은 크게 상관없어.”
하지만 아시테르는 해맑게 냉정했다.
그래도 이러한 냉정함 덕분에 크로마제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어느새 크로마제가 아시테르를 대하는 태도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는 아시테르의 거듭된 세뇌(?)교육도 있었지만, 3달 동안 함께 지내며 그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덕분도 있었다.
아시테르가 얼마나 대단하고 강한 사람인지 새삼 깨달으며, 크로마제가 진심으로 그에게 감명받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크로마제는 이제 아시테르를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는 아시테르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며 옆에 앉았다.
“크로마제.”
“네!”
“다 쉬었으면 슬슬 시작해볼까?”
“좋습니다!”
크로마제가 힘차게 몸을 일으키며 먼발치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양쪽 팔을 뻗어 서서히 마력을 움직였다.
갈색빛깔의 마력이 은은하게 크로마제의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크로마제가 마력을 천천히 움직였다.
그가 이끌고자 하는 대로 마력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 마력이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호오……!”
아시테르가 이를 보며 두 눈을 반짝인다.
그의 반응을 확인한 크로마제가 활짝 웃었다.
“집중해 크로마제.”
아시테르는 매의 눈으로 크로마제의 모든 것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따끔한 한마디에 크로마제가 다시금 집중했다.
마력이 서서히 속성을 변환하며 모래를 형성해 냈다.
모래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크로마제의 손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강하게 상승하면서도 내려앉을 땐 부드럽다.
사방으로 퍼지면서도 크로마제의 컨트롤에 단숨에 모여들기도 했다.
“하압!!”
이어 크로마제가 한 차례 기합성을 터트리자 모래가 한데 뭉치며 순식간에 단단한 형태를 띠었다.
크로마제가 손아귀를 펼치자 모래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이전과 다르게 아무렇게나 흩날리는 모래가루가 없었다.
그만큼 크로마제의 마력 컨트롤이 정밀해졌다는 얘기였다.
그는 모래가루 하나하나를 피부로 느끼듯 세심하게 모래를 컨트롤 했다.
모래는 크로마제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아름다운 아지랑이를 그렸다.
솔직히 그 모습을 보며 아시테르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가르치긴 했지만 크로마제는 다른 누군가가 흔히 말하는 천재 그 자체였다.
크로마제에 비하면 자신은 그저 운이 좋은 범재에 불과해 보였다.
“끄응… 나는 오랫동안 고심해서 해낸 걸… 겨우 3개월만에 저렇게까지 깨우치다니…….”
크로마제의 마법을 보며 아시테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녀석의 타고난 재능에는 아시테르조차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왜 다들 크로마제에게 기대 가득한 시선들을 보내왔는지, 직접 가르쳐보니까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크로마제는 진정한 천재였던 것이다.
“스승님! 어때요?”
한 차례 기초 마법들을 펼친 크로마제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다른 것보다 크로마제가 저런 웃음을 보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한 발전이었다.
아시테르가 크로마제를 향해 엄지를 치켜 올렸다.
더없이 훌륭한 기본기였다.
아시테르의 칭찬에 크로마제가 뛸 듯이 기뻐했다.
그가 아시테르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모두 아시테르 선생님 덕분입니다! 저는 그동안 기본이 이렇게 중요한 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추는 것만으로 다른 마법들이 이렇게까지 함께 발전할 수 있다니… 세상 아무것도 모르고 잘난 척만 하던 저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