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화 마지막 테스트
아시테르가 짐짓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반항하거나 대드는 경향이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들을 했는데, 그런 고민들이 무색하리만치 크로마제는 아시테르의 말에 잘 따라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들과 싸우라면 싸웠고, 그 자리에서 마법을 펼쳐보라 말하면 펼쳐 보였다.
크로마제도 초반에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시테르의 가르침에 따라 나날이 늘어가는 자신의 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불만 자체를 가지지 않았다.
아시테르가 바라봤을 때 크로마제에게 제일 부족했던 것은 사실 기초였다.
그도 예전의 아시테르처럼 기초에 소홀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를 다듬고 마력 컨트롤의 정밀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마법의 위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거기다 크로마제는 응용력도 좋았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해낼 줄 아는 것.
어쩌면 비체가 찾던 하늘의 인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좋은 재능을 가지고 썩히고 있었다니…….”
아시테르가 저도 모르게 머릿속의 말을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그러자 크로마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냐… 아니야… 크로마제 내가 항상 뭐라고 말했지?”
“아버지와 스승님과 대장님은 하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걸 명심하도록 해.”
“옙!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힘차게 대답하던 크로마제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것도 아시테르와 함께 지내다보니 닮아간 습관이었다.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이제 슬슬 최종장에 도달해야 하지 않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최종적인 테스트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야.”
“최종 테스트라 함은…….”
“그래. 이 던전의 상위종 오우거 사냥에 나서자.”
아시테르의 말에 크로마제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이곳 던전에 와서 지독하게 고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우거였다.
인간은 머릿속에 오랫동안 공포와 두려움이 남는다.
잠깐은 사라진 듯해도 그때와 비슷한 순간, 그 상대와 마주하면 다시금 공포와 두려움은 머리와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크로마제라고 다를 리 없었다.
그는 이미 오우거에게 한 번 도전한 적이 있었다.
2달 정도 지나 어느 정도 기본기가 탄탄해지고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
그날의 두려움이 잊혀지지 않아서인지 크로마제는 오우거의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했다.
잔뜩 얼어붙어버린 그를 보며 하는 수 없이 아시테르가 나서고 말았다.
“두려움을 이겨내야 해. 언제까지고 그 상황에 갇혀 있지 마. 그걸 딛고 나아가는 사람이 정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니까. 강해진다는 것은 그런 거야.”
아시테르는 그때마다 크로마제에게 많은 얘기들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했다.
크로마제를 위해 하는 말들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늘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그를 가르치면서도 자신도 배워가고 알아가고 깨달아간다.
일전에 얘기했던 테오도라의 말을 크로마제를 가르치며 한 번씩 깨닫곤 한다.
배운 것을 가르치며 또 다른 성장을 이룬다는 말.
그 말이 꼭 들어맞았다.
게다가 아시테르는 3개월 동안 크로마제를 가르치면서 자신 또한 놀고만 있진 않았다.
지금이야 자신이 크로마제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더 나은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무섭게 성장하는 크로마제를 보며 자신도 뒤처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때문에 아시테르도 틈나는 대로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물론 아시테르의 이런 모습을 크로마제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크로마제는 그런 아시테르를 서서히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아시테르는 자신을 가르치는 데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으며 늘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피곤할 법 하건만 그는 늘 자신의 수련을 빼먹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아시테르를 지켜보고 있는 크로마제가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그만큼 아시테르는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수련을 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하셔…….”
그런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크로마제가 늘 혼잣말로 내뱉는 말이었다.
눈앞에서 저렇게 노력하고 솔선수범하는 스승이 있는데 어느 제자가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크로마제는 지난 날의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아시테르가 가르치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하려 했다.
때로는 아시테르의 모든 것들을 따라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만큼 크로마제가 진심으로 아시테르를 따르기 시작하니 아시테르도 덩달아 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3개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애초에 이곳은 기본을 다듬기 위해 선택한 장소였다.
던전에 서식하는 마수들의 수준도 그다지 높지 않다.
그나마 오우거가 제일 위험한 몬스터이긴 했지만 이곳 던전에 서식하는 오우거들은 도태되어 있는 종들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마수들밖에 없으니 발전하지 않은 부류들.
때문에 어비스 던전에서 봤던 오우거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녀석들이었다.
안도와 태만이 몸에 밴 녀석들이니까.
아시테르가 생각하기에 크로마제는 이미 오우거들을 해치울 실력이 되었다.
다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의 공포와 두려움 때문.
아무리 실력이 좋고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마음부터 이겨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니 아시테르가 이곳 던전에서 크로마제에게 주는 마지막 시련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이겨내라는 과제였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에.
크로마제가 조용히 자리를 떠날 채비를 했다.
잔뜩 굳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아시테르가 괜히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너무 걱정하지 마.”
“죄송합니다. 이런 못난 모습을 보여서.”
크로마제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우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벌써부터 손이 떨리고 있었다.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것을 이겨내지 못 하면 안 된다.
아시테르는 그저 크로마제를 응원할 뿐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해내는 것은 크로마제 혼자서 해야만 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오우거가 지나다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다른 마수들이 두 사람을 공격해오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가벼웠다.
크로마제가 간단한 마법만으로 마수들을 처리해내었다.
깔끔한 솜씨였다.
“이제는 마력을 함부로 낭비하지도 않네. 아주 훌륭해.”
“그럼요! 제가 누구 제자인데요.”
아시테르의 칭찬에 크로마제가 한껏 으쓱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때 아시테르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오우거다.”
아시테르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코를 킁킁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오우거가 있었다.
녀석을 보자마자 크로마제가 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된 눈은 오우거의 이곳저곳을 훑었다.
아시테르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여기서부터는 네가 혼자서 해봐.”
“네, 네에…….”
“지금 이게 이곳에서의 마지막 테스트야.”
“알겠습니다.”
크로마제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평소 같았으면 오우거의 시선에 들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렸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히려 일부러 오우거를 향해 다가가는 상황.
크로마제가 다시 한 번 마른 침을 삼켰다.
긴장되는 손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동공은 억지로나마 오우거에게 머물러 있다.
“크르……?”
그때 지나가던 오우거가 마침내 시선을 돌려 크로마제를 발견했다.
자신을 향해 가까워오는 낯선 냄새에 반응한 모양이다.
오우거의 눈동자가 크로마제에게 머물렀다.
녀석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웃기 시작하니 콧잔등에 주름이 실룩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아시테르가 오우거를 살폈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걸보니 무리에서도 싸움을 즐기는 편이다.
거기다 위로 뻗은 송곳니가 심상치 않았다.
이제보니 다른 오우거들보다 그 크기가 조금 더 커 보였다.
“저거… 오우거 무리 중에 우두머리인 것 아냐……?”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오우거 전사급은 되어보였다.
우두머리와 함께 무리에 적들이 닥치면 최전방에서 싸우는 녀석들이 바로 오우거 전사들이었다.
이것도 아시테르가 편의상 부르는 것이긴 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우거 전사 정도 되려면 무리에서도 강한 힘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테스트로 최고의 상대를 만났다고 봐야겠네.”
오우거가 흉악한 웃음을 지으며 점점 크로마제에게로 다가왔다.
녀석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던 크로마제가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으아아―!!”
그리곤 연신 소리를 질러대었다.
자신의 온몸을 옥죄고 있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시테르도 그러한 것들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잘하고 있다.”
저렇게 조금씩 두려움을 몰아내기 시작하면 몸과 머리도 서서히 속기 시작한다.
정말로 두려움을 극복해내고 있다고.
갑자기 크로마제가 소리치기 시작하자 오우거가 표정을 달리했다.
먹잇감이 발악할 것이라 판단한 건지 녀석이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그래도 지금까지 이곳에서 봐온 오우거들이랑 달랐다.
움직임도 빨랐고 크로마제에게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건 녀석의 눈빛만 봐도 알았다.
“이거 위험한 것 아냐?”
여차하면 달려갈 생각으로 아시테르가 남몰래 자세를 갖췄다.
그의 마력이 손끝에 몰리는 순간 크로마제가 몸을 움직였다.
녀석의 주변에서 솟구쳐오른 모래가 단단한 벽을 만들어내며 오우거의 공격을 막아냈다.
“오!”
아시테르는 저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마침내 크로마제가 오우거의 앞에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행동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래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마법으로 오우거의 공격을 막아내자마자 크로마제가 공격 마법을 이어갔다.
한쪽에서 솟아오른 모래줄기가 오우거의 몸을 휘감으려 했다.
크뤄!
분노한 오우거가 주먹을 휘둘러 다가오는 모래줄기를 끊었다.
이어 녀석의 손에서 불꽃이 쏘아져나갔다.
오크들과 다르게 오우거는 모든 개체가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녀석의 마법이 크로마제를 노렸다.
크로마제의 주변에서 흘러나온 모래의 파도가 오우거의 불꽃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오우거도 조금은 당황한 빛을 보였다.
모래 파도는 멈추지 않고 오우거까지 덮쳐버렸다.
크룩!
오우거가 어떻게 해서든 모래 파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때 크로마제가 손아귀를 펼쳤다.
촤락―!
모래 파도가 일순간 퍼지며 오우거를 가둬버렸다.
모래감옥에 갇힌 오우거가 괴성을 질러대었다.
녀석은 크로마제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꾸만 모래 감옥에 몸을 부딪혔다.
금방이라도 부숴질 것 같았던 모래 감옥은 놀랍게도 견고함을 유지했다.
그때 땀을 뻘뻘 흘리던 크로마제가 손끝을 모았다.
그러자 모래 감옥에서 솟아오른 모래창이 일순간에 오우거의 몸을 꿰뚫었다.
“워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저도 모르게 몸서리치고 말았다.
감옥 안에서 모래창에 온몸이 꿰뚫리는 오우거를 보며 아시테르가 괜히 자신의 몸을 매만졌다.
“아……?”
그때 마법을 펼치던 크로마제가 털썩 주저앉았다.
오우거를 상대하며 사용한 마법들은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는 마법들이었다.
특히나 모래 감옥에 이어 모래창을 만들어내는 연계는 엄청난 마력소모와 피로감을 가져왔다.
아시테르가 그에게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그것 봐. 하면 되잖아?”